〈 732화 〉 732. 아카데미의 구원자
732. 아카데미의 구원자
『10』
김천우는 홀로그램 숫자를 보며 성유진이 주었던 유승준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유승준은 마인이다.
‘…성유진의 말만 믿고 판단하는 건 섣부른 짓이야.’
『8』
유승준과 성유진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 시작은 유승준이라곤 하나, 성유진이 대응하는 태도도 굉장히 나빴다. 김천우는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간 성유진을 더 나쁘게 봤다.
‘하지만 성유진이 내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나? 그것도 마인과 관련된 거짓말을.’
성유진이 마지막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악마 새끼가 싫다. 악마 새끼와 관련된 것들이 싫다.
동감이다.
『5』
“유승준. 넌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난 후에 어느 클랜에 들어갈 거지?”
“갑자기 웬 생뚱맞은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난 클랜이 아니라 협회에 들어가 일할 거다.”
“…….”
유승준의 대답은 김천우의 의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확인해보면 될 일이야.’
『2』
두 사람은 전투 자세를 취했다. 김천우는 대검을 비스듬히 뒤로 뺐고, 유승준은 자세를 낮추고 창 자루를 쥐었다. 마치 기회를 노리는 짐승 같은 자세다.
‘원래는 최대한 숨길 생각이었지만….’
『1』
‘성검 발현.’
김천우는 자신의 특성인 성전(S)의 능력 중 하나를 사용했다.
우우우웅.
대검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아무것도 모를 정도로 최대한 약하게 사용했다.
움찔.
유승준이 몸을 떨었다. 그는 자신이 몸을 떤 이유에 대해 짐작하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김천우는 그 모습을 똑똑히 봤다.
‘……아니야. 성검에 반응한 게 아닐 수도 있어.’
『0』
창을 쥔 유승준이 쇄도한다. 그 민첩함은 족제비를 떠올리게 했다. 김천우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유승준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침착하지 않으면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가 몸 밖으로 빠져나올 것 같았기에.
창과 대검이 부딪히며 충격파가 일었다. 창은 어떻게 해서든 대검의 빈틈을 노렸고, 대검은 어떻게 해서든 창을 막았다.
“무거운 대검으로 내 창을 전부 막다니…. 과연, 괜히 차석은 아니군.”
“유승준…. 미안 대련은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할 것 같아.”
김천우가 힘겹게 말했다. 유승준의 공격을 막을 때마다 자꾸만 무언가가 치솟는다. 시야가 좁아지고 몸에 필요 이상으로 힘이 들어간다. 이러다가 진짜 사달이 날 것 같았기에 최대한 빨리 대련을 끝내고 싶었다.
“네가 끝낸다고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웃기는 새끼. 성유진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죄다 마음에 안 드는군.”
“…….”
“이곳이 시뮬레이터 안이라는 게 아쉽군. 시뮬레이터만 아니었다면 팔병신으로 만들어 주제를 깨닫게 해줬을 텐데.”
유승준은 창을 한 손에 들고 등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특성, 텐구의 가면(A)을 사용했다.
허공에 가면이 나타나 유승준의 얼굴에 덮인다. 길쭉한 코, 주름지고 화난 붉은 얼굴, 진한 눈썹의 텐구 가면이었다.
김천우는 몸을 옆으로 비틀어 대검을 앞으로 세웠다.
콰앙!
창이 대검에 부딪힌다. 김천우의 몸이 뒤로 세 발자국 밀려났다.
텐구의 가면을 쓴 유승준의 능력치가 전반적으로 상승했다. 김천우도 잠깐 놀랐을 정도다. 하지만 신체 능력이 올라갔다고 해서 유승준의 창술 실력이 변하는 건 아니었다.
그가 느끼기에 유승준의 창술은 평범했다. 빠르고 화려하긴 한데 직설적이다. 눈에 잘 보이는 이상 경계할만한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 언제까지 수비만 할 거냐!”
유승준이 소리쳤다. 순간적으로 그의 호흡이 흐트러지며 빈틈이 드러난다. 드디어 김천우의 대검이 반격했다.
깜짝 놀란 유승준은 바람을 일으켜 대검을 밀어냈다. 대검은 아슬아슬하게 오른쪽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큭?! 크아아아악!”
유승준이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갔다. 남들이 봤을 땐 엄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대검에 베이긴 했으나, 전투에 지장이 없고 피 몇 방울 흘러나온 게 전부였다. 더군다나 오로라 시뮬레이터가 진행되니 실제로는 팔에는 어떠한 상처도 없다.
김천우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성검은 악마나 마인의 극상성이다. 조금만 몸이 베여도 저렇게 고통에 허덕이며 발광한다. 즉, 유승준이 마인이라는 게 증명된 것이다.
“이, 이이이, 이이이익…!”
김천우가 이를 악물었다.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가 마인을 직접 만나는 건 5세 이후 이번이 처음이었다.
죽이고 싶다. 죽여버리고 싶다. 유승준의 몸을 갈가리 찢어 죽여버리고 싶다!
오랜 기억이 떠오른다. 악마에게 살해당한 부모님들. 공포와 무력감에 두 눈을 감고 덜덜 떨던 자신.
“죽여버리겠다!”
김천우는 기억을 날리듯, 자신이 가진 모든 마나를 터트리며 유승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커다란 대검은 마치 세검처럼 가볍게 움직여 유승준을 공격한다.
유승준은 창을 뻗어 대검을 쳐내려고 했다. 허나 창은 대검의 기묘한 움직임에 저 멀리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 무방비가 된 유승준이 퇴보를 밟으며 물러나려고 했으나, 김천우가 놓아주지 않았다. 대검이 무자비하게 유승준을 도륙한다.
“컥, 크아악! 크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
나는 벽에 기대어 모니터를 쳐다봤다. 차석인 김천우와 유승준의 대련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카데미 차석의 전투. 아카데미 학생 대부분이 화면을 주시했다.
“쟤가 차석인 김천우?”
“얼굴은 좀 생기긴 했는데…. 다른 건 글쎄.”
“김천우가 유승준을 지목했다며? 2위가 185위를 지목하다니…. 인상은 좋아 보이더니 속내는 새까맣네.”
“수석이랑 차석의 전투를 보고 싶었는데.”
여론은 김천우에게 좋지 않았다. 입학 순위 2와 185위. 차이가 너무 심하니 학생들 대부분이 유승준을 응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승준이 특성을 발동하고 텐구 가면을 쓴 순간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저게 185위라고? 지금 저 모습만 보면 50위권 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인데?”
“힘을 숨겼네. 저 새낀 왜 힘숨찐 짓거리를 하고 있냐? 병신인가?”
“힘을 숨기고 있는 놈이 저 새끼 하나만은 아닐 거야”
그리고 어느 순간, 유승준이 처절한 비명을 내지른 순간부터 주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김천우는 피에 미친 광전사마냥 미친 듯이 대검을 휘둘렀다. 유승준이 끔찍한 비명을 내질러도 멈추지 않았다.
팔을 베고, 다리를 베고, 몸통을 베고, 몸을 베도 도륙을 계속한다. 시뮬레이터는 제대로 가동하고 있었기에 유승준은 죽지도 못하고 고통만 계속 받아야 했다.
‘김천우가 폭주했군.’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원작에서도 김천우가 폭주하는 일이 있었다. 다만 원작에서 처음 폭주를 겪는 시기는 빨라도 여름 방학 때다.
‘나 때문에 그런 거겠지. 오히려 잘 됐어.’
직원이 헐레벌떡 5번 시뮬레이터 룸으로 들어가려는 게 보였다.
‘해킹.’
5번 시뮬레이터 룸의 전자문과 마이크를 해킹한다.
“젠장! 문이 안 열리잖아! 거기 너! 보고만 있지 말고 선생님과 직원들을 불러와라! 젠장! 메인 통제실은 뭐하고 있는 거냐?!”
직원은 초조하게 지시를 내리며 스마트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전자문을 뜯고 억지로 들어가진 못하겠지. 시뮬레이터 룸은 비싸니까.’
해킹으로 전자문과 마이크를 컨트롤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3분.
김천우는 3분 동안 마음껏 폭주할 것이고, 유승준은 지옥을 맛볼 것이다.
‘마음 같아선 오로라 시뮬레이터를 해킹하고 싶은데…. 오로라 시뮬레이터는 기계가 아니라 마법이라 불가능하단 말이지.’
1분 정도가 지나자 선생들 무리가 뛰어왔다. 이미 이야기가 끝났는지 그들은 전자문을 힘으로 박살 내고 안으로 들어가 김천우를 제압했다. 유승준은 간질에 걸린 환자마냥 바닥에 쓰러져 간헐적으로 발작했다.
“…미친 새끼. 김천우랑은 대련하지 말아야겠다.”
대부분의 학생은 김천우의 폭주를 보고 몸을 가늘게 떨었다.
???
“성유진, 최다연. 준비됐나?”
중년 남자 교사가 나와 최다연에게 물었다.
“네. 준비됐습니다.”
“네.”
나와 최다연이 대답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시선이 있었다.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교사들, 그리고 다른 학년까지 모여들었다. 스포트라이트가 나와 최다연을 비추는 느낌이었다.
“너희가 마지막 대련이다. 1번 시뮬레이터 룸으로 들어가라.”
최다연이 먼저 걸어갔다. 그녀는 수많은 시선에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걸었다.
나는 무기들을 챙기고 그녀의 뒤를 느긋하게 따라갔다. 나와 그녀는 아카데미 운동복을 입고 있었는데, 운동복 위로도 최다연의 몸매는 좋았다. 치마면 더 좋았겠지만.
들어가기 직전, 2층에서 지켜보고 있는 류하나와 두 눈이 마주쳤다. 수석인 류하나는 30분 전에 안기산과 대련을 했고 승리했다. 나는 시선을 돌리고 시뮬레이터 룸으로 들어갔다.
-오로라 시뮬레이터 가동.
기계음이 들린다.
가상이 나와 룸 전체를 뒤덮었다. 공간이 확 늘어났다. 딱딱한 바닥은 어느새 초원이 되었고, 잿빛 천장은 새파란 하늘이 되었다. 놀랍게도 바람까지 불었다. 아카데미 시뮬레이터 룸 중 가장 좋은 1번 시뮬레이터 룸이라 가능했다.
『10』
홀로그램 숫자가 나타나 카운트 다운을 시작한다.
최다연은 시종일관 당당함을 유지하며 활을 들었다. 나는 그녀의 화살통을 살펴봤다. 대략 20발의 화살이 들어 있다. 적은 편이었다.
‘20발로 날 이길 자신이 있거나, 화살이 많이 필요한 편이 아니거나. 둘 중에 하나지.’
나는 웃었다. 최다연의 성격을 생각하면 아마 둘 다다.
‘최다연은 오만하고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지. 상태창을 한 번 봐볼까.’
『이름: 최다연
근력: D+ 체력: D- 민첩: C- 내구: E 마나: C+
특성: 아폴론의 태양시(SS)
스킬: 궁술(A), 공중기동(C), 충격파(C)
호감도: 15』
특성 하나만큼은 끝내줬다. 괜히 입학 순위 4위가 아니었다.
『5』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인데. 동성명이나 할까? 난 성유진이다. 너랑 같은 반이고 17번이지.”
“너랑 할 이야기는 없어. 전투에나 집중해.”
『3』
나는 창 12자루를 바닥에 내려놓고 로켓 런처를 어깨 위에 올렸다. 주무기인 칼은 허리춤에 장비한 상태다.
총기는 약하다. 로켓 런처의 화력으로 상대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D등급 하위 몬스터가 전부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D등급 하위 몬스터는 현대 병기로 제압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아카데미 신입생들은 마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애송이들이다. 지금 시점에선 수석인 류하나도 검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최다연이라고 해서 다를 것 없다.
『1』
『0』
1이 0으로 변하자마자 방아쇠를 당겼다. 로켓 런처는 매캐한 후폭풍을 일으키며 로켓을 발사했다. 로켓이 일직선으로 날아가 폭발했다.
“로켓 맛이 어떠냐. 좀 화끈하지?”
낄낄거리고 있을 때였다. 바람이 불어와 연기를 걷어냈다.
“시시하네. 언제까지 장난질할 생각이야?”
최다연은 멀쩡했다. 옷에는 그을림조차 없었다. 나는 정령안을 발동해 황금색 눈동자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뭐야. 낚였잖아.”
내 앞에 보이는 최다연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였다. 특성인 ‘아폴론의 태양시(SS)’를 이용한 신기루다.
정령안을 데굴데굴 굴렸다. 찾았다. 조금 떨어진 오른편에 투명한 상태로 서 있는 최다연을 발견했다.
본래 그녀는 하늘에 태양이 있을 때만 신기루나, 투명화를 사용할 수 있다. 태양을 직접 볼 수 없는 실내에선 불가능한 기술이다.
‘비록 가상이지만 태양은 하늘에 떠 있지.’
설마 가상 태양까지 영향을 받을 줄 몰랐다.
“그 눈. 평범한 눈은 아니네.”
최다연이 모습을 드러내고 활시위를 당겼다. 화살이 날아온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창을 발로 찼다. 창은 정확히 날아오는 화살을 부서뜨리며 최다연의 몸통을 노렸다.
나의 가진 유희 생활 어플 ‘사격’은 쏘거나, 던지는 등 원거리라면 모두 영향을 받았다. 설령 그게 발로 차는 것이라도.
최다연이 위로 뛰었다. 뛴 그녀는 계속해서 또 뛰었다. 그녀가 가진 스킬인 공중기동(C)의 효과다. 그녀는 하늘을 날면서 내게 화살을 쏘았다.
나는 창을 잡아 크게 휘둘러 화살을 쳐냈다.
‘정면에서 오는 화살 정도는 쉽지. 한정된 공간에서의 1대1 대련은 내가 유리할 수밖에 없어.’
투창 자세를 잡은 순간이었다. 정면과 좌우. 각 3방향에서 동시에 화살이 날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