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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5 - 735. 아카데미의 구원자 (515/2,000)

〈 735화 〉 735. 아카데미의 구원자

735. 아카데미의 구원자

나는 후드를 벗고 의자에 앉았다. 손님의 기척을 느낀 것일까. 안쪽에 있는 문이 열리며 가게 주인이 밖으로 나왔다.

“어서 오….”

가게 주인은 날 보고 멈칫했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시, 그녀는 자연스럽게 헛기침을 하며 내게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그녀는 검은색의 치렁치렁한 로브를 입고 있었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마스크까지 했다. 유일하게 드러난 신체 부위는 눈인데 진한 화장을 했다. 옷의 폼이 너무 커서 몸매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다만 좁은 어깨와 언뜻 보이는 굴곡으로 보아 여자는 확실했다.

목소리는 중성적인 느낌이 들었다.

“음.”

목소리까지 마법으로 변조해 모습을 감추고 있으나, 그 정체는 윤희정이 확실했다.

그녀는 성큼성큼 다가와 내 맞은편에 앉았다.

“여기가 어디고, 제가 무엇을 하는지는 알고 찾아오신 거겠죠.”

“최고의 인챈트리스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실제로 최고일지는 모르겠지만요.”

“처음에 이곳으로 오셨으니 의뢰 조건을 말씀드리죠. 인챈트를 위한 재료는 모두 손님께서 제공하셔야 하며, 시간이 다소 걸릴 수 있다는 걸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의뢰비는 인챈트에 따라 가격이 달라집니다만, 기본 최소 의뢰비는 500만 원입니다.”

“…….”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쳐다보고 있으니 윤희정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린다.

“한 가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네. 뭐가 궁금하시나요?”

“장인급의 실력을 가졌다고 하는데 왜 여기서 장사하십니까? 세금이 아깝더라도 소문이 날 정도의 실력이라면 정식 가게에서 일해도 될 텐데.”

“……개인적인 사정입니다.”

물론 그 개인적인 사정을 나는 알고 있다.

윤희정은 제 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았다. 그것도 꽤 질이 좋지 않기로 소문난 곳, 10년 전까지만 해도 제 3금융권이었던 곳이다.

빚의 정확한 금액은 몰라도 2,000억이 넘는 건 확실했다. 그 정도의 돈을 빌릴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아카데미 교사이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교사직을 그만두게 되면 그들은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한 번 잡혀 들어가게 되면 평생을 인챈트 노예로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주머니에서 꺼내는 척, 인벤토리에서 상자 두 개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상자 하나에는 옷과 장갑, 신발 등이 들어 있었고, 다른 상자에는 붉은 장작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화목귀의 장작이군요. 원하시는 인챈트는 화속성 내성인가요? 아니면 보온?”

“보온 쪽입니다. 될 수 있으면 방어력도 올리고 싶군요.”

“의뢰비가 좀 올라갈 텐데 괜찮으시죠?”

“얼마입니까?”

“어려운 인챈트는 아니지만, 양이 좀 되네요. 1,200만 원입니다. 착수비로 20%, 240만 원을 받습니다. 이 계좌에 입금해주세요. 사흘 후에 다시 찾으러 오세요.”

1,200만 원이면 양심적인 가격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조작해 계좌에 입금했다. 내가 떠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자 그녀가 물었다.

“……다른 궁금한 거라도 있으신가요?”

“윤희정 쌤?”

의심 어린 눈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윤희정은 당황하지 않았다.

“전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스마트폰을 만졌다. 그녀가 보는 앞에서 윤희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갔으나, 윤희정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다른 곳에 둔 모양이다.

‘몇 년 동안 여기서 일했으니 대비는 철저하게 해뒀겠지.’

윤희정을 당황시키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

“손님. 제 정체를 알아내려고 하지 마세요. 저희 가게의 규칙입니다. 규칙을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의뢰는 받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따로 연락 수단이 없는 것도 불편한데. 전화번호 좀 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네. 그러죠.”

윤희정이 번호를 가르쳐줬다. 이걸로도 윤희정을 당황하게 할 수는 없다. 보나 마나 대포폰이겠지. 구하려고 한다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으니까.

“…안 가시나요?”

“아. 가겠습니다. 그런데 최근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는 거 아십니까?”

“흉흉한 소문? …글쎄요.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네요.”

당연히 그러겠지. 지금 막 내 입에서 시작된 소문이니까.

“A급 빌런이 아카데미 근처를 돌아다닌다는 소문입니다. 어떤 목적이 있어 뭔가를 찾고 있다고 하던데…. A급 빌런과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네. 조심할게요.”

???

다음날.

등굣길을 걸었다. 아카데미 본교 건물과 기숙사의 거리는 약 15분. 먼 거리는 아니었기에 여유는 있었다. 늦잠만 자지 않는다면.

주위는 한산했다. 지금은 오전 8시 20분. 20분이나 늦었다.

‘갑자기 뭔 등교야. 대학교도 잘 안 나가는데….’

아직 사라지지 않은 잠기운과 싸우며 정문으로 걸었다.

“거기 너.”

누군가 날 불렀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이 확 달아갈 정도의 미녀가 정문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포니테일로 묶은 검은 머리카락, 각 잡힌 교복, 왼쪽 팔뚝에 착용한 노란색 완장. 완장에는 ‘선도’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다. 허리춤에는 환도를 장비했다.

그녀는 두 눈에 힘을 주고 날 주시한다. 피부는 하얗고 몸매도 뛰어났다. 가슴은 C컵 정도로 보이는데, 나는 그녀가 가슴을 붕대로 감아 압박하고 있다는 걸 안다. 실제로는 G컵이다.

그녀의 이름은 남궁화연.

2학년 1위이자, 선도부장이다.

“소매는 보니 1학년이군. 입학식이 그저께 치러졌는데 벌써 부터 지각이라니…. 문제아로군.”

아카데미 교복 소매 부분에는 줄이 들어가 있다. 이 줄의 색깔로 학년을 구분한다. 1학년은 파랑색, 2학년은 붉은색, 3학년은 초록색이다.

“어쩌다 지각 한 번 한 거 가지고 문제아라니. 말이 좀 심하시네요.”

“내 경험상 학기 초에 지각하는 놈들은 학기 끝날 때까지 지각하더군. 특히 너는 문제아의 분위기가 풀풀 난다. 아마도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최대의 문제아일지도 모르겠군.”

“…….”

나는 어이가 없었다. 설마 지각 한 번 했다고 최대의 문제아 취급을 받을 줄이야.

남궁화연은 내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검은색 치마가 흔들린다. 치마는 허벅지 절반을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다. 튼실한 허벅지가 움직일 때마다 내 애간장이 녹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움직이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보란 듯이 치마를 줄였다. 선도부장이면서 너무 야하다.

“반과 번호, 이름은 뭐지?”

“1학년 1반 17번 성유진입니다.”

“당당하군. 그 태도는 마음에 든다.”

남궁화연은 스마트폰을 조작해 내 이름과 번호를 적었다.

“하지만 지각은 지각이다. 본래 지각생에겐 0.3점에 벌점을 부과하지만, 넌 20분 이상 늦었다. 추가로 0.2 점을 더 부과해 총 0.5점의 벌점을 부과하겠다.”

마루한 아카데미는 상벌점제도다.

지각하거나, 수업 중에 졸거나, 과제를 해오지 않으면 별점을 받는다. 벌점을 너무 많이 받으면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별점은 성적에 영향을 주기에 최대한 벌점을 받지 않으려 하고 상점을 원한다.

“네.”

“…항의하지 않나? 네가 반성하고 두 번 다시 지각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벌점을 0.3점으로 바꿀 수도 있다.”

나는 성적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기에 아무래도 좋았다.

“잘못했습니다. 반성했습니다.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남궁화연은 쓴웃음을 지었다.

“영혼이 없군. 반성은커녕 잘못했다는 생각도 없고. 내 감은 틀리지 않았군.”

“이제 가봐도 되나요?”

“벌점을 제외하고 다른 처벌은 없으니 가도 된다. 그런데 혹시 선도부에 들어올 생각은 없나?”

“……제가요?”

뜻밖의 말에 남궁화연을 쳐다봤다.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런 제안을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에 대한 소문은 들었다. 1학년 5위. 성적 자체는 우수한데, 실력은 2학년 상위권과 맞먹는다는 소문이 들더군. 게다가 너의 어머니가 성하리 님이라지?”

성하리의 이름이 나올 때, 남궁화연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전설이라 불리는 성하리는 젊은 여성 히어로들의 우상이나 다름없었다.

“예. 엄마 이름이 성하리가 맞긴 한데…. 전 엄마 이름 때문에 선도부에 들어갈 생각은 없어요. 그리고 선도부는 저랑 맞지도 않고.”

남궁화연을 꼬시려면 선도부에 들어가는 게 맞다. 선도부에서 그녀와 함께 행동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호감도를 올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선도부는 너무 귀찮다.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선도부는 협회 취직을 노리는 학생들에게 좋지만, 너무 많이 부려 먹는단 말이지.’

남궁화연은 아쉬워했다.

“너 같은 문제아는 곁에 두고 감시하는 게 제일이라 생각했다만…. 본인이 싫다니 어쩔 수 없군.”

“…그런 의미로 제안한 겁니까. 선배도 좀 별나시군요.”

“뭐, 그런 말은 제법 듣는 편이다. 볼일은 끝났다. 바로 교실로 들어가라. 그리고 내일은 지각하지 말도록.”

내 어깨를 한 번 두들겨준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2학년 교실 쪽으로 향했다. 나는 그녀의 뒤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경찰이라하면 왠지 더 야하듯, 선도부라고 하니 다른 여자들보다 더 야하게 느껴지는군.’

교실에 들어갔다.

아직 선생은 오지 않았는데 분위기가 묘했다. 2학년인 남궁화연이 나에 대해 알고 있을 정도니, 1학년 사이에선 이미 나에 대한 소문이 쫙 퍼진 게 확실했다.

“유진아. 안녕.”

이시은이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인사를 해주고 주위를 둘러봤다.

김천우는 복잡한 표정이고, 마진배는 고개를 돌려 노골적으로 날 피했다.

이강후는 안절부절 못하며 날 보고 있다. 유승준은 등교하지 않은 듯 자리가 비어 있었다.

최다연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어제 대련에서 패배하고 자존심이 꺾여 화가 났으리라 생각했는데, 화난 기색은 안 보인다.

‘뭐지. 최다연의 성격이면 날 죽일 듯이 노려볼 줄 알았는데.’

『최다연의 호감도: 34』

분명 어제만 해도 호감도가 15 정도였는데 34로 깡충 뛰어 있었다.

‘게임이랑 현실은 다르다지만…. 음. 좋은 게 좋은 거겠지.’

나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유, 유진아. 네가 성하리 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이야?”

내 뒤에 앉은 여학생이 물어왔다. 남학생이었다면 무시했겠지만, 곧 내가 따먹을 여학생이다. 난 친절히 웃으며 여학생에게 대답했다.

“맞아. 우리 엄마가 성하리야.”

“정말?! 나 성하리 님의 진짜 팬인데.”

“엄마 이야기 좀 해줄까?”

여학생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여학생들도 이쪽을 주목하는 게 느껴진다.

나는 씨익 웃었다.

???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윤희정의 개인 사무실로 향했다. 교실의 반의반도 안되는 작은 사무실 안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윤희정은 나를 보고 마른 침을 삼켰다.

“유진아. 무슨 일로 왔니?”

“심각한 일은 아니고요. 제가 어제 뒷골목의 보석을 만나고 왔거든요.”

문을 닫고 윤희정에게 다가갔다.

“…어제 나갔다고? 설마 밤에 몰래 나간 거야?”

“네.”

“너…. 지금 자수 하는 거니? 밤에 몰래 나가는 건 벌점 20점이야. 지금 나랑 선도부에 갈까? 응?”

“지난 일이에요. 한 번 봐주세요.”

“봐달라니. 난 네 담임 교사야. 네가 잘못 나가지 않도록 교육할 필요가 있어.”

“그것보다 뒷골목의 보석에 관해 할 말이 있는데요.”

“마, 말 돌리지 마렴. 그게 문제가 아니잖니.”

“진짜 저한테 벌점 주시려고요?”

“잘못을 했으면 벌점을 받는 게 당연한 거야.”

“증거는 있어요? 내가 나갔단 증거 말이에요.”

“…네가 방금 인정하지 않았니. 밤에 몰래 밖으로나가 뒷골목의 보석을 만났다고.”

“제가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혹시…. 선생님은 밖에서 절 봤어요?”

“나, 나는 학생들의 말을 믿는 편이야. 그리고 조사하면 다 나와. 기숙사 근처에 CCTV와 결계가 설치되어 있는 거 알지? 지금 가서 조사해볼까? 응?”

“네. 그러세요. 대신 증거가 없으면 전 역으로 선생님을 신고할 거예요.”

“뭐?”

“증거가 없는데 억울하게 벌점을 받을 순 없잖아요. 저희 엄마가 이번에 학부모회를 만들었는데…. 엄마한테 말하면 절 도와주겠죠.”

“……하아. 알았어. 이번 일은 묻어두자. 너도 무사한 것 같으니 큰일은 아닌 것 같으니. 곧 수업 시작하겠다. 이만 교실로 돌아가 보렴.”

“선생님.”

의자에 앉아 있는 그녀의 어깨를 양손으로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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