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8화 〉 738. 아카데미의 구원자
738. 아카데미의 구원자
경찰들이 내게 총을 겨눈다. 나는 그들에게 태연하게 말했다.
“왜 저한테 총을 겨눕니까? 제가 피해자입니다.”
“피해자? 지금 그 광경을 보고 그 말이 나와?! 너 각성자지? 손들고 무릎 꿇어!”
“아나 씨발. 경찰 양반. 내가 누군지는 압니까? 저 아카데미 학생입니다.”
“……아카데미 학생?”
경찰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분위기를 풀었다.
마루한 아카데미의 이미지는 굉장히 좋다. 한국 히어로 협회가 날마다 하는 이미지 메이킹이 아카데미다. 아카데미 학생이 사람을 구하거나, 특수한 연구를 하기라도 하면 대서특필된다.
협회의 눈물 나는 노력 덕분에 아카데미 학생들은 한국의 미래라는 공식이 일반 국민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제 주머니 안에 학생증 있습니다. 보여드려요?”
“……예. 보여주십시오.”
주머니에서 아카데미 학생증을 꺼냈다. 주민등록증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고급스러운 신분증이다. 학생증을 확인한 경찰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나를 향한 경계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번에 입학한 성유진 학생이군요. 대체 왜 이곳에 있습니까?”
“여기서 불법 사채업을 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시민들이 피해를 보기 전에 좋게 타이를 생각이었죠. 그런데 저 사장이 갑자기 저한테 덤벼들더군요. 저는 제 몸을 방어하기 위해 사장을 제압했습니다. 방법이 다소 과격하긴 했지만… 정당방위입니다.”
나는 표정 연기까지 해가며 거짓말을 했다.
사채업 직원들이 경악한 얼굴로 날 쳐다본다. 특히 팔 한쪽이 뜯긴 사장의 경우 두 눈을 부릅뜨고 눈물까지 흘리며 억울해 죽을 것 같은 얼굴이다.
“거, 거짓말하지 마라! 네가 갑자기 찾아와서 행패를 부렸잖나! 무력을 써서 장사를 접으라고 협박한 건 네놈이다!! 불법? 웃기지 마라! 우린 합법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요즘 시대에 불법으로 하는 건 미친 짓인데 누가 하나!”
경찰이 사장을 불쌍하게 쳐다보다가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렸다.
“……저렇게 말합니다만?”
“저 아카데미 학생입니다. 제 말을 못 믿고 사채업자 말을 믿는 겁니까?”
경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사건이 발생했으니 일단 서로 함께 가주시죠.”
“하아. 전 이럴 시간 없습니다. 전화 좀 써도 됩니까?”
“네. 그러시죠.”
스마트폰을 들었다. 사장은 땅바닥을 기어 하나밖에 없는 손으로 경찰의 다리를 잡았다.
“CCTV! 사무실에 설치된 CCTV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그 증거를 확보해주십시오! 저놈이 수를 쓰기 전에!”
“아. 증거가 있다면 더 편해지겠죠. 박 순경! CCTV 확보해!”
“네!”
스마트폰을 잠깐 멈췄다.
CCTV.
그 존재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사무실 구석에 떡하니 있는데 모를 리가 있나. CCTV를 내버려둔 건 굳이 파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CCTV가 있으면 오히려 내게 더 유리해지니까.
[CCTV 해킹에 성공합니다.]
“어, 경사님. 이거 사채업자가 먼저 아카데미 학생을 공격했는데요?”
“뭐? 사채업자가 구라를 친 거야?”
경찰이 눈살을 찌푸리며 사장을 노려봤다. 사장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진짜 CCTV에 녹화된 영상이 그렇습니까? 제가 확인하게 해주십시오!”
“쯧. 시시비비는 나중에 가리고, 일단 서로 갑시다.”
나는 연락처 중 하나에 연결했다.
성하리에게 전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녀가 가진 인맥과 명성을 생각하면 이런 일은 쉽게 묻을 수 있을 테니.
진령성가도 나쁘지 않다. 진령성가는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들과 좋은 관계를 쌓고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연락한 사람은 둘 다 아니었다.
“응. 소희 누나. 난데. 누나의 도움이 필요해.”
한소희.
한국 히어로 협회의 이사이자, 내 좆집.
‘현실의 헌터 협회와 달리 이 세계의 히어로 협회는 강한 권력을 갖추고 있지. 헌터와 다르게 히어로는 말 그대로 영웅취급을 받으니까. 한국 히어로 협회의 간부인 한소희의 도움이면 이 정도 일에는 쉽게 빠져나갈 수 있지. 크크.’
나는 스마트폰을 경찰에게 건넸다. 경찰은 의아한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가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한국 히어로 협회의 간부는 경찰과 비교하면 아득하게 높은 위치에 있으니까. 한소희 앞에선 경찰서장도 바짝 엎드려야 할 거다.
“…네. 네. 알겠습니다. 본래 그러면 안 됩니다만… 네. 협회 이사님의 말대로 하겠습니다. 네.”
경찰은 한숨을 내쉬며 내게 스마트폰을 돌려주었다.
“……사건은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성유진 씨는 돌아가시면 됩니다.”
“자, 잠깐!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닥쳐. 네가 불법적인 일을 했겠지. 일단 구급차에 보내 줄 테니 그 후에 나랑 대화 좀 하자. 뭐해, 다른 놈들은 전부 수갑 채워!”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
“저희가 피해자라고요! 저 새끼를 잡으라고!”
“으아아아악! 이게 대한민국이냐! 시발!!!”
나는 낄낄 웃으며 태연하게 사건 현장에서 벗어났다.
“어, 고마워. 소희 누나. 증거? CCTV가 있긴 한데 아무 문제 없어. 내가 피해자야. 나중에 만날 때 보지나 풀어둬. 바로 박아줄 테니까. 그리고 다른 놈도 조져야 하는데… 지금처럼 도와줘.”
으아아아아아아아!
울분이 담긴 외침이 등 뒤에서 들려왔다.
사채업자가 억울하다고 기자회견을 하거나, 이 사건이 공론화되어도 상관없다. 내 뒤에는 진령성가와 성하리, 협회 간부인 한소희가 있다. 사라를 이용하면 미국 쪽 협회도 움직일 수 있다.
거기에 이 나라에서 사채업자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다. 사채업자가 아카데미 학생에게 팔이 잘렸다는 기사가 나와도 오히려 사채업자를 욕할 것이다.
“이게 대한민국이지. 크크.”
나는 택시를 타고 다른 사채 사무실로 향했다.
???
오늘 사채 사무실 7개를 조졌다.
내가 아무 이유 없이, 오직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사채업자를 조지는 건 아니었다. 스트레스 해소는 좆밥들을 학살하는 것보다 미녀와 하는 질펀한 섹스가 더 낫다.
‘내가 없앤 사채 7개는 모두 영웅련과 은밀히 관련된 사채들이지.’
영웅련은 뒤에서 그들을 지원하며 자금을 모으고 있었다. 심각한 타격은 아닐 것이다. 이미 영웅련은 완벽히 자리를 잡은 상태니까. 하지만 꾸준히 들어오던 자금이 끊기면 짜증이 나고, 공격당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을 거다.
‘1회차에 빌런이었던 내가 잘 알지. 뒤가 구린 영웅련 같은 조직은 체면에 엄청 신경 쓴다는 걸.’
영웅련은 이미 나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모른다면 상대할 가치도 없는 병신 집단이다.
나는 대놓고 도시 외곽을 걸었다.
영웅련은 어떻게든 반응할 것이다. 지금 당장 움직이던가, 그게 아니면 천천히 내게 접근하던가. 영웅련의 성향을 보자면 전자일 확률이 크다.
이대로 30분내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돌아갈 생각이었다.
‘……왔군.’
나를 둘러싼 기척이 느껴졌다. CCTV도 없고, 가로등도 없는 곳이라 주위는 어두컴컴했다.
내가 걸음을 멈추자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에 복면을 쓰고 무장을 한 자들. 무장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빌런 집단이군. 수준을 보면 F급이 대부분이군.’
저들은 사냥개다.
흔한 일이었다.
영웅련은 내가 죽으면 빌런들의 짓이라며 헌신짝처럼 저들을 내다 버릴 것이다. 나를 죽였다는 죄를 뒤집어씌우고.
‘저놈들은 자신들의 주인에 대해 알고 있는 건 하나도 없겠지.’
적들 중 대표로 보이는 놈이 설렁설렁 걸어왔다. 오른팔에 손대신 날카로운 갈고리를 달고 있는 놈이었다.
“하룻강아지가 범무서운 줄 모르고 나댄다더니? 진짜 어린 놈이었군.”
“너흰 누구냐?”
“메비우스다. 내가 메비우스의 리더인 장지욱이지.”
장지욱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머리를 굴렸다.
메비우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머릿속에 없는 빌런 집단이다. 그리고 내가 모른다는 건 기억할만한 가치도 없는 어중간한 집단이라는 것.
“듣보잡이군.”
“우리가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긴 했지.”
어슬렁어슬렁.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내게 다가온다. 눈앞에 있는 장지욱과 합해서 총 20명. 대충 훑어본 결과 E급은 장지욱을 비롯해 3명 정도다.
‘날 어지간히도 얕보고 있나 보군.’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겉으로 보이는 내 신분은 이제 막 아카데미에 입학한 학생이니까. 상대가 대부분 F급이라도 쪽수는 대놓고 무시 못한다. 내가 평범한 아카데미 입학생이었다면.
“애새끼야. 힘 좀 있다고 나대면 훅 가는 거야. 왜냐, 힘을 가진 건 너뿐만이 아니거든.”
화르륵.
장지욱의 손바닥에서 시뻘건 불꽃이 일어났다. 날 위협할 생각인 모양인데, 불꽃의 크기가 라이터 불꽃보다 약간 더 강한 수준이라 병신 같았다. 놈은 불꽃을 허공에 띄워 주위를 밝혔다.
“누구지? 누가 너희를 보냈지?”
“엉? 새삼스럽게 그걸 왜 물어. 그렇게 나댔으면 짐작 가는 놈이 있을 거 아니야?”
“짐작 가는 놈이 한두 명이 아니라서.”
“크크. 그러게 작작 나댈 것이지. 비밀 유지 계약 같은 것도 없으니 저승길 선물로 말해주마. 서준식이다. 네 팔다리를 자르고 눈을 후벼 파서 최대한 고통을 주라는 리퀘스트를 받았지.”
서준식.
기억에 있다. 내가 3번째로 찾아간 사채업자다. 유독 시끄러워서 다리를 분질렀던 놈이다.
‘이렇게 순순히 말해주는 이유는 하나지 영웅련은 서준식을 죽여서 입을 막고 사건을 끝내려 할 거야. 설령 성하리와 진령성가가 나서더라도 적당히 꼬리 자르기로 빠져나가겠지.’
나는 조용히 마키나를 소환했다.
“아, 뭐야. 지금 영화의 딱 재밌는 부분이었는데… 어? 유진아. 이게 무슨 상황이야?”
마키나는 내 주위를 돌아다니며 호들갑을 떨었다. 놈들은 영체화 상태의 마키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랄하지 말고 저기서 실체화한 뒤 카메라로 영상이나 찍어. 내가 습격당하는 영상 말이야.’
“에이. 자세히 보니 좆밥들이구나.”
마키나는 내 명령을 순순히 따랐다. 저 멀리 빠르게 날아가서 카메라를 실체화해 이쪽을 찍는다. 장지욱의 불꽃 덕분에 아주 잘 찍힐 것이다.
“여, 영웅련이 보낸 거지?”
“앙? 갑자기 왜 영웅련이 튀어나와?”
“영웅련과 사채업자들이 손을 잡았을 줄이야! 난 그저 불법 사채업자들을 혼내줬을 뿐이라고!”
“이 미친 새끼. 갑자기 왜 지랄이냐.”
장지욱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면 내 생각대로 영웅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게 확실했다.
놈들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 이러지 말고 말로 하자. 말로…! 너희도 사실은 이러고 싶지 않잖아?!”
“갑자기 왜 지랄인지 모르겠지만, 네 목에 걸린 돈이 10억이야. 10억. 말로 하기엔 돈이 너무 많다고 생각 안 드냐? 어?”
“히어로 협회가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신고할 거라고!”
“해, 병신아. 히어로가 오는 것보다 네가 회 쳐지는게 더 빠를 테니까. 뭐해! 이 새끼 담가버려!”
놈들이 달려들었다.
“여, 역장!”
나는 당황하는 척 역장을 발휘했다. 제대로 펼치지 않은 역장은 다수의 공격에 손쉽게 부서진다. 놈들의 주먹, 칼, 방망이가 나를 향해 쇄도한다. 가장 위험한 무기인 칼은 피하고 주먹이나 방망이는 일부러 맞아주었다.
“컥! 아아악! 끄윽!”
실감 나게 비명까지 질러주었다. 유효타는 없었다. 대부분 비껴 맞았으니까.
몇 번 맞던 나는 한 놈에 몸통을 들이받은 뒤에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반격하기 시작했다.
‘압도적으로 보이면 안 돼. 최대한 치열하게, 내가 불리한 전투란 걸 어필해야 한다.’
내가 가진 연기 특성이 빛을 발휘한다. 나는 헉헉 거리며 싸웠다. 옷도 더러워지고 얼굴에 피가 덕지덕지 묻었다. 내 피가 아니었다. 싸우는 와중에 적들의 피를 몰래 대충 바른 것이다.
“이 답답한 새끼들…. 애송이 하나 상대하지 못해서 고전해? 비켜! 내가 처리한다!”
장지욱이 나섰다. 갈고리 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나를 향해 뛰어온다.
“크으윽! 모, 모카! 도와줘!”
최대한 비참하게 모카를 소환했다. 모카는 내 앞에 나타나자마자 사방에 뇌전을 흩뿌렸다. 시퍼런 뇌전을 맞은 적들은 그대로 감전되어 즉사했다.
“이, 이 씨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장지욱은 달려오는 자세 그대로 몸을 돌리려고 했다.
콰르르르릉!
벼락은 그에게 꽂혔다. 그는 도망가지도 못했다.
나는 힘없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컷! 컷! 컷! 성 배우! 아주 명연기야! 명연기!”
마키나가 날아와 호들갑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