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9화 〉 739. 아카데미의 구원자
739. 아카데미의 구원자
“컷! 컷! 컷! 성 배우! 아주 명연기야! 명연기!”
마키나가 날아와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완전 회복은 일단 아꼈다. 이후에 다른 습격자가 올지도 모르니까.
“제대로 찍었지?”
“카메라 3대로 동시에 찍었어! 볼래? 네 얼굴도 잘 나왔고, 저 허접들의 한심함도 잘 찍혔어. 뉴튜브에 올릴까? 못해도 100만 조회수는 가뿐히 넘을 거야!”
요새 뉴튜브에 푹 빠져 흥분한 마키나는 찍은 영상을 내 스마트폰에 전송했다. 마키나가 말했던 대로 아주 잘 찍혔다. 음성까지 노이즈 없이 잘 들린다.
“마키나. 이거 편집할 수 있지? 내가 더 처절한 피해자로 보이도록.”
“물론이야. 그 정도 작업은 식은 죽 먹기지! 근데 나 같은 고급 인력을 공짜로 부려 먹을 생각은 아니지?”
“우리 집에서 빌붙어 사는 주제에 뭘 바라?”
“정령옥! 정령옥 좀 줘! 최근에 너무 안 주잖아!”
“그건 귀한 거야. 고작 동영상 좀 편집했다곤 줄 순 없어. 때가 되면 내가 줄 테니 평소에 잘하라고.”
“으으….”
불만 어린 시선이 내게 향한다. 내가 빤히 쳐다보자 마키나는 고개를 돌렸다. 마키나는 나와 몇 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내 성격이 얼마나 지랄 맞은 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계약에 의해 내게 개기지도 못한다.
“이제 남은 건 뒷수습이군.”
주위에 시체들이 한가득하다. 감전당해 죽은지라 더럽지도 않고 고요했다. 시간이 지나면 또 모르겠지만.
경찰에 연결하는 건 하책이다. 각성자들 간의 전투에 의해 벌어진 일이다. 경찰은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 한소희에게 부탁하면 깔끔하게 정리된다. 단, 한소희를 통해 성하리가 이 일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성하리가 알게 되면 분노해서 날뛸 테지.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안 나올 수 있어. 차라리….’
통화음이 울린다. 정확히 5번째 통화음이 시작될 때,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미리 말해두지만, 난 바쁘다. 너와 같이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은 없다.”
아카데미 학장, 강지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최근, 그녀의 호감도를 얻기 위해 집요하게 저녁 식사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이모. 오늘은 그게 아니라….”
“이모라 부르지 말고 학장님이라 불러라. 넌 이제 아카데미 학생이다. 그 사실을 잊지 마라.”
“지금은 업무 시간도 아니잖아.”
“…정론이라 반박하기 힘들군. 전화의 용건은?”
“메비우스라는 빌런 집단에 습격당했어.”
“……어디냐. 성하리에게 연락은 했나?”
“엄마한테는 안 했어. 엄마 성격상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 알잖아. 연락한 건 이모가 처음이야.”
“…잘했다. 내게 먼저 연락했다는 건… 공론화되지 않기를 원하는 건가?”
“맞아.”
“알겠다.”
강지영이 적극적으로 날 도와주는 건 학부모회 때문이다. 학부모회는 이 일을 빌미로 권한을 행사하고, 영향력을 넓힐 수 있으니까. 특히 성하리가 극성이겠지.
“대략적인 상황은 알아야겠으니 전화로 말해라.”
전부를 솔직하게 말할 순 없었기에 사채업자와 엮인 부분에 거짓말을 섞었다. 교묘한 거짓말이니 강지영이 따로 조사하더라도 진실을 밝히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이미 내가 빌런 집단에 습격당한 이상 그 원인은 중요하지 않다.
“입학하자마자 사고를 칠 줄이야…. 유전자는 어디 안 간다는 건가. 앞으로 어떤 사고를 칠지 벌써부터 두려워지는군.”
“내가 먼저 덤빈 게 아니라, 메비우스인가 뭔가가 덤벼들었다니까.”
“증거는 있겠지?”
“확실한 증거가 있어. 대한민국이 뒤집히지 않더라도, 조금 들썩일 정도의 증거가.”
나는 스마트폰을 들고 기분 좋게 웃었다.
???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그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영웅련 휘하의 사채를 없애고 다녔다. 사채 시장에 나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나는 영웅련과 관련 없는 사채는 건들지 않았기에, 대부분의 사채업자는 나를 방해하지 않고 알게 모르게 응원했다. 그들의 입장에선 성가신 경쟁자를 줄여주고 있는 것이니까.
캐시 로드.
오늘의 내 목표 사채였다. 강원도에 있는 5층짜리 건물을 모두 쓰고 있는, 사채치곤 엄청나게 큰 사무실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러하듯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들이 날 보며 반사적으로 환영인사를 내뱉을 것이라 생각 했으나, 안쪽의 광경은 내 예상 밖이었다.
직원 대신에 무장한 남자들이 있었다. 대략 10명으로 상대하기 껄끄러운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
일주일 전에 나를 습격했던 메비우스인가, 뭔가하는 어중이떠중이들과는 질이 다르다. 이들은 모두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았다. 개개인의 수준은 E~D급 추정된다. 한 번에 덤벼들면 나로서도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남자가 중심에서 걸어 나왔다. 키는 나와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몸이 비쩍 말랐다. 꺽다리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겁도 없이 내 앞에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선 남자는 무테안경을 거만하게 추켜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성유진 학생. 반갑지는 않습니다만, 반갑다고 말해야겠죠.”
“넌 또 뭐야.”
“위에서 온 신종철입니다. 직함은 과장이니, 신 과장이라 불러주십시오.”
“위에서 왔다라….”
“예. 성유진 학생이 바라는 대로 위가 움직인 겁니다.”
신종철이 말하는 위는 두말할 것도 없이 영웅련이다. 일부러 영웅련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영웅련은 최대한 조용히 이 일을 해결하고 싶어 한다.
“저희는 처리를 전문으로 하는 사냥꾼 부대입니다.”
“사냥꾼이 아니라 사냥개겠지.”
“예, 뭐, 그렇게도 불립니다. 원래라면 성유진 학생의 뒷덜미를 바로 노렸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가 앞으로 나서서 성유진 학생과 인사까지 나눴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진 아시겠습니까?”
“좋게 끝내자는 거군.”
“예. 좋게. 좋게. 위쪽은 성유진 학생과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습니다. 성유진 학생과의 마찰은 이득은 없고 손해뿐이라고 판단을 내렸거든요. 더 손해를 보기 전에 성유진 학생과 타협하고 싶습니다.”
“분위기는 타협할 분위기가 아닌데?”
주위에 있는 자들은 무기를 들고 있으나, 기세를 절제하고 있다. 허나 두 눈은 살벌하다. 일이 꼬이면 바로 내게 달려들어 죽일 거라는 눈이다.
“저는 각성자가 아닙니다. 저들은 제 안위를 지켜주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일이 틀어졌을 때 처리를 해야 하니까요.”
신종철이 나를 보며 웃었다. 협상이 틀어지면 여기서 날 죽이겠다는 협박이었다. 나도 그를 보며 마주 웃었다.
“성유진 학생.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행적을 보니 돈은 아닌 것 같더군요. 뭐, 금수저이시니 당연히 돈은 필요 없겠지만요. 혹시 위쪽에 원한을 가진 누군가가 계십니까? 누구냐에 따라 내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나오나. 뭐, 말이 통한다면 나도 편하지. 박성구. 그놈을 내놔.”
“……음. 혹시 제가 아는 그 박성구가 맞습니까?”
“맞을걸.”
신종철의 얼굴이 싹 굳어졌다. 웃음이 사라지자 인상이 확 날카로워졌다. 잔혹 무도한 살인자의 얼굴이다.
“미친 새끼. 애새끼가 좋게 대해주니 한도를 모르는군. 그분이 누군지는 알고는 있는 거냐.”
박성구.
영웅련 강원도 지부장이다. 영웅련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알고 있으니 이름을 말하지.”
“그분은 네가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건방진 것. 널 여기서 처리… 큽?!”
오른손을 내뻗어 신종철의 목을 움켜잡았다. 내 손톱이 놈의 목에 파고들며 피가 흘러나온다.
“아까부터 짜증 났었는데…. 혹시 네가 갑이고 내가 을이라 생각했나? 영웅련은 뭐 이딴 놈을 내게 보낸 거야.”
“커억! 컥! 끄읍!”
신종철이 발버둥 친다. 내 오른손을 팔로 때리고, 발로 내 몸을 찬다. 왼손으로 신종철의 팔을 비틀어 꺾었다.
“……!!”
신종철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두 눈이 위로 올라간다. 나는 신종철이 죽기 전에 오른손에 힘을 풀었다. 기절한 신종철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다.
직후, 내 등 뒤로 한 남자가 나타났다. 조용하고 신속하게 손에 든 쿠크리를 휘두른다. 노리는 것은 내 뒷목이다.
‘찰나.’
세상이 느려진다. 몸을 회전시켜 놈의 팔목을 잡아 쿠크리를 빼앗았다. 놈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하지만 당황하는 것도 잠시. 놈은 곧 내게서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류하나보다 느리군.’
서걱.
놈의 목이 잘리고 머리통이 바닥을 굴렀다.
적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모카.’
“꾸우우욱!”
소환된 모카는 실체화와 동시에 사방에 벼락을 흩뿌렸다. 날 향해 달려들던 적들의 다리가 흠칫거린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놈들을 향해 쿠크리를 휘둘렀다. 쿠크리 칼날에 푸른 검기가 일렁였다.
“검기…! 놈은 최소 D급 이상이다. 신중하게 대응해라!”
“결계를 가동해라!”
가장 뒤쪽, 나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남자가 결계를 사용한다.
몸이 10배 이상 무거워졌다. 다리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건물 내를 날아다니며 번개를 흩뿌리던 모카는 나보다 심하게 압력을 느끼는지 바닥에 떨어져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이 결계. 보통이 아니야. 날 확실히 죽이기 위해 준비한 거군.’
적들이 다가온다. 그들의 발걸음은 가볍다.
“아카데미에 막 입학한 학생 수준이 아니군.”
“그래 봤자 결국 이 꼴이죠. 역시 중온 결계는 엄청나다니까요.”
“잡담 떨 시간 없다. 빨리 처리해라. 이 결계를 유지하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소모되는지 알고 있을 텐데.”
“옙, 대장.”
적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천심.’
스킬을 발동한다.
내 몸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전부 사라졌다. 몸이 가벼워졌다.
영천류(影天流) 뇌광(雷光).
번개를 품은 칼날이 적들을 베어 가른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천심이 지속되는 1분. 내 신체 능력은 올라갔다. 뇌전을 일으키며 아까보다 더 험하게 일으켰다.
“…젠장. 이번 임무는 최악이었군.”
마지막으로 죽인 적들의 대장은 죽을 걸 알면서도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그의 몸을 깔끔히 양단했다.
“…….”
전투를 끝낸 나는 숨을 고르며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신종철을 향해 다가갔다.
“기절한 척하지 마. 아까 일어난 거 다 알고 있으니까.”
“…사, 살려주십시오.”
“살려는 줄게. 네가 말하는 위쪽에 전해야 하고, 여기 뒷정리는 네가 해야 하니까.”
“끄아아아아악!”
쿠크리를 휘둘러 신종철의 팔다리를 잘라냈다. 점혈과 포션을 이용해 신종철이 죽지 않도록 신경 썼다.
“박성구가 언제 내게 연락할지 기대되는군.”
『카르마: 선(善)이 1 상승합니다.』
나쁜 놈들을 죽이니 카르마가 올렸다.
“개꿀.”
???
그날 저녁, 박성구에게 연락이 왔다.
영웅련 강원도 지부 사무실에서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내용이었다. 함정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정식으로 날 초대한 것이다.
“어서 오게. 내가 박성구라네.”
박성구는 풍채 좋은 중년인었다. 인상 좋은 아저씨로 보이지만, 실제 성격은 냉혹하고 무자비하다. 그렇지 않으면 영웅련의 지부장이란 자리까지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성유진입니다.”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커피는 좋아하나?”
“아까보니 복분자 주스가 있던데. 그거나 주십시오.”
“그러지.”
박성구의 비서가 커피와 복분자 주스를 내왔다. 달달한 복분자 주스를 한 입 삼켰다.
“신 과장에게 이야기는 들었네. 나를 콕 집어서 말했다지. 시간이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자네가 원하는 게 뭔가?”
“제가 원하는 걸 말하면 들어 줄 겁니까? 오늘 낮처럼 절 죽이려 하지 않고?”
“그건 신 과장의 독단이네. 우린 신 과장에게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았네.”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신종철은 위쪽을 들먹였었다. 애초에 사냥개에 불과한 신종철은 명령 없이 움직일 놈이 아니다.
“그놈은 어떻게 됐습니까?”
“신 과장은 죽었네. 사고가 있어서 팔다리가 잘려 과다출혈로 사망했지.”
나는 신종철에게 점혈과 포션으로 조치를 했다. 과다출혈? 내가 응급처치를 한 순간부터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신종철은 영웅련에 처분당했다.
“자네는 영웅련의 심기를 살살 건드렸어. 영웅련에 관한 복수심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방식을 취했겠지. 자넨 처음부터 나와 접촉하고 싶었던 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처음부터 당신을 만나려고 했다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만났다 하더라도 의미 없는 대화만 나누고 끝났겠지. 지금처럼 자네를 보지 못하고 말이야. 다시 묻겠네. 무엇을 원하나?”
“반대로 묻겠습니다. 영웅련은 어디까지 해줄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