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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7 - 747. 아카데미의 구원자 (527/2,000)

〈 747화 〉 747. 아카데미의 구원자

747. 아카데미의 구원자

싸아아아.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는 마치 악마의 웃음소리처럼 섬뜩했다.

“피해.”

내가 말했다. 나와 김천우는 동시에 거리를 벌렸다. 나와 김천우가 있던 땅바닥에서 검은 화염이 치솟았다.

‘평범한 화염이 아니군.’

검은 화염에서 악마의 힘이 느껴졌다. 위험하고 기분 나쁜 불꽃이다.

나는 곧장 유승준을 찾았다. 유승준은 내가 아닌 김천우에게 쏜살같이 달려들고 있었다. 얼굴에는 붉은 텐구 가면을 썼고, 등에는 검은색 까마귀 날개가 퍼덕거린다.

‘내가 아니라 김천우를 노렸군. 김천우가 어지간히도 좆같았나 보네.’

김천우를 도울까 하다가 지켜보기로 했다. 지금 김천우의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유승준 따위는 내가 진심으로 나서면 언제든지 제압할 수 있다.

‘이참에 김천우에게 경험을 쌓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김천우가 특성 성전(S)을 발동한다. 그의 대검에 황금빛의 성스러운 기운이 서린다. 창과 대검이 맞부딪혔다. 밀려나는 건 창을 쥔 유승준이었다. 힘의 차이라기보다는 상성의 차이였다.

유승준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 힘! 빌어먹을 성스러운 힘! 내가 저번에 진 건 그 힘 때문이다!”

유승준이 하늘로 날았다.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다. 하늘을 날 수 없는 김천우에겐 유승준을 공격할 수단이 없었다.

유승준은 하늘에서 마구잡이로 창을 휘둘렀다. 창끝에서 발생한 바람과 검은 화염이 칼날이 되어 김천우에게 떨어진다.

김천우는 냉철하게 움직였다. 저번과 다르게 김천우는 냉정함을 끝까지 유지하고 있다. 폭주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계속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죽어라! 하하하!”

반면에 유승준은 악마의 힘에 취해 있었다. 써도 써도 마르지 않을 것 같은 마력, 일방적으로 자신만 공격하는 상황. 게임으로 치자면 치트를 쓰고 있는 기분이겠지.

힐끔. 김천우가 날 쳐다봤다. 도움이라도 요청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는 숲 쪽으로 내달렸다.

“김천우! 넌 이미 내 손아귀에 있다!”

눈 돌아간 유승준이 김천우의 뒤를 쫓는다. 나는 놈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모양이다.

‘덕분에 증거를 얻는 건 쉽겠군.’

나는 몰래 들고 있던 카메라를 아예 대놓고 꺼내 들고 김천우와 유승준을 따라 들어갔다.

일방적일 거라 생각했던 전투는 숲 속에서 반전했다. 김천우는 나무를 타고 뛰어올라 하늘을 나는 유승준의 날갯죽지를 잘라내는 데 성공했다.

“크아아아악!”

유승준이 비명과 함께 땅에 추락한다. 상대가 유승준이 아니었다면 날개는 회복되었을 테지만, 그에겐 상성이 좋지 않았다.

‘볼 것도 없어. 끝났어.’

유승준은 김천우의 기량을 따라갈 수 없다. 악마의 힘? 유승준의 검은 화염과 바람은 김천우의 황금빛 앞에 힘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파괴당하고 있다.

카앙! 챙! 차앙!

대검과 창이 부딪히고 튕겨 나가기를 반복한다. 황금빛과 검은 화염은 서로 섞이고 상쇄되어 사라진다. 전투는 이어졌고 유승준의 육체에 피해가 누적되어갔다.

“크아아아악! 왜! 왜! 네놈이 내 앞을 막아서는 거냐!”

이성을 잃은 유승준이 마력을 폭주시켰다. 그의 육체가 점점 마력에 침식되어간다. 유승준의 실수였다. 나름 팽팽하게 이어지던 균형이 무너지고 유승준에게 큰 틈이 벌어졌다. 김천우는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서걱.

유승준의 오른팔이 잘리고 아래로 툭 떨어졌다. 유승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나는…!”

유승준은 뒷걸음질 쳤다. 그는 지쳐있는 김천우의 눈치를 보다가 도망치려고 했다. 내가 없었다면 도망에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지켜보고 있던 내가 끼어들어 유승준의 등을 발로 찼다.

가죽 공 터지는 소리와 함께 유승준이 바닥을 굴렀다. 잘린 어깨에서 검붉은 피가 울컥울컥 나왔다.

“성유진…!”

유승준이 상체를 일으켰다. 이를 뿌득 갈며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나는 그의 머리를 짓밟았다. 쿵! 유승준의 머리가 흙바닥에 짓밟힌다.

“아아아악! 네놈!!”

마력이 뿜어져 나온다. 유승준은 남은 왼손을 버둥거리며 나를 향해 휘두른다.

‘뇌전.’

파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아!”

유승준의 비명이 울린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칼을 휘둘러 유승준의 왼팔마저 잘라내고 점혈을 짚어 제압했다.

“유진. 너무 심한 거 아니야? 그러다 죽기라도 하면….”

김천우가 다가왔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마인이 고작 이 정도로 쉽게 죽을 리가 없잖아. 그보다 너는 괜찮고? 꽤 힘들어 보이는데.”

“나는… 괜찮아.”

김천우의 안색은 썩 좋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손발도 덜덜 떨리고 있다. 전투의 흥분이 아직 그의 몸을 떠나지 않고 있다.

나는 유승준의 목에 칼날을 겨누었다. 서늘한 금속에 유승준이 나와 두 눈을 마주쳤다. 두 눈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늦은 밤에 서로 피곤하게 굴지 말고 묻는 말에 잘 대답하라고.”

???

2시간을 넘도록 유승준을 심문했다. 허나 알아낸 정보는 적었다. 기껏해야 유승준의 정체와 일본 마도정의 정보 일부가 전부였다.

“그러니까. 마루한 아카데미에 있는 다른 마인에 대해선 전혀 모르신다?”

“모른다. 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하지? 나는 홀로 임무를 받아 수행할 뿐이다.”

“마도정이 너같이 덜 떨어진 놈 하나 믿고 일을 진행할 리 없잖아.”

“네가 뭐라고 말하든,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이 새끼. 눈 안 깔아?”

유승준의 눈초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놈의 몸통을 있는 힘껏 발로 찼다. 유승준은 고통에 찬 비명과 신음을 흘렸다.

“김천우. 넌 이 새끼한테 묻고 싶은 거 없어?”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김천우가 다가왔다.

“유승준. 넌 왜 마인이 된 거야? 네 재능과 실력이라면 굳이 악마의 힘이 없더라도 히어로가 될 수 있을 텐데.”

“…나는 고아다. 살아남기 위해 마도정에 들어가 악마의 힘을 받아들였다. 악마의 힘이 없었다면, 나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골목길에 버려져 썩어 사라졌겠지.”

“…….”

김천우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나는 김천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저 새끼 말을 믿는 건 아니지?”

“놈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어. 유승준은 살아남고 싶어서 악마와 계약을….”

“돌겠네.”

빡!

김천우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김천우가 뒷머리를 손으로 문지르며 나를 노려봤다.

“무슨 짓이야?”

“네가 답답해서 그래. 잘 들어. 유승준은 고아가 아니야. 부모는 버젓이 살아 있지.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악마와 계약했다? 그것만큼 참신한 개소리는 없어. 이 세계에서 마인이 받는 취급과 악마의 침식을 생각하면 차라리 고아 시설에 들어가는 편이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지.”

“거짓말… 이었다고…?”

“저놈은 마인이야. 마인의 말을 간단히 믿는 네가 병신이지. 솔직히 난 네가 왜 유승준의 말을 믿는지도 모르겠다.”

거짓말이 들킨 유승준은 식은땀을 흘리며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렀다. 상황을 모색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 찰나, 내가 칼을 들고 허공에 이리저리 움직이자 얌전히 입을 다물고 눈치만 살폈다.

“설령 저 새끼의 말이 사실이라도 흔들리면 안 되지. 불우한 과거 때문에 마인이 되었다? 그딴 이유로 마인이 된 걸 용서받는 건 아니야. 내가 말하지 않아도 너도 알잖아, 김천우. 이놈은 여기서 풀어주면 미래에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거야.”

“……내가 미숙해서 잠깐 흔들렸을 뿐이야.”

김천우는 마음을 되잡듯이 대검을 다시 손에 쥐었다.

“성유진, 유승준은 어떻게 할 거야?”

“원래는 죽일 생각이었는데…. 죽일 수 있겠어?”

“내게 맡겨 줘. 죽일 수 있어. 유승준은 여기서 죽어야 해.”

“말했잖아. 원래는 죽일 생각이었다고.”

“……죽이지 않겠다고? 캐낼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캐냈잖아.”

“이놈이 여기서 죽고 실종되면 아카데미에 문제가 생겨. 학생 한 명이 갑자기 실종됐으니 안팎으로 소란스러워지겠지.”

나와 김천우가 유승준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누구나가 알고 있었다. 유승준이 갑자기 실종되면 여러 가지로 귀찮아질 것이다.

“히어로 협회에 유승준을 넘길 생각이야?”

“소란스러워지는 건 원하지 않는다니까. 그리고 히어로 협회는 믿을 수 없어. 일본의 마도정이 손을 쓰기도 쉽고.”

“그럼 어떻게 하게?”

“능력 좋고, 권력도 가지고 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넘겨야지.”

“그런 사람이 있어? 난 도무지 모르겠어.”

“있어.”

스마트폰을 들어 어딘가로 연락했다. 스마트폰 스피커를 통해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마루한 아카데미 학장, 강지영의 목소리였다.

“이모. 문제가 발생했어.”

-저번 일이라면 알아서 해결한다고 하지 않았나?

“영웅련과 관련된 일이 아니야. 더 심각한 문제야.”

한숨 소리가 들렸다.

-…말해봐라.

나는 유승준에 관해서 말했다. 유승준이 마인이다. 그 말을 들은 강지영은 곧장 태도를 진지하게 바꾸고 우리의 위치를 물었다.

강지영은 마루한 아카데미 학장이다. 아카데미의 일상이 평화롭기를 바라는 인물이다. 그녀라면 이 일을 조용히 끝내길 원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유승준이 어떻게 되든지 내 알 바 아니다.

“유승준. 철혈의 여장부께서 이곳으로 오고 있어. 헤어지기 전에 미리 작별 인사나 해둘까. 잘 가라.”

“씨… 발….”

세간에 알려진 강지영의 이미지는 강철이었다. 자비가 없고, 융통성도 없다. 물론 실제 강지영과 조금 다르긴 하지만, 적에게 자비가 없다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팔 없는 유승준이 우리 눈치를 살피다가 벌떡 일어나 도망치려고 했다. 나는 발치에 있던 돌멩이를 찼다. 돌멩이는 허공을 가르며 정확히 유승준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유승준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어딜 도망가려고. 김천우. 저 새끼 다리 잘라버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 그러다가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마인이 이 정도로 죽을 리 없잖아. 그리고 여차하면 포션을 쓰면 돼. 설마 저 새끼가 불쌍해서 다리를 못 자르겠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마인에게 자비는 사치지.”

무표정한 얼굴의 김천우가 대검을 들고 유승준에게 다가갔다. 대검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끔찍한 비명이 메아리쳤다.

???

아침 조례시간.

평소와 달리 가라앉은 분위기의 윤희정이 교실에 들어왔다. 분위기를 민감하게 감지한 학생들은 조용히 윤희정을 주목했다.

“너희들에게 안 좋은 소식을 알려줄게. 어제 유승준이 자퇴했어.”

“…….”

학생들은 조용했다. 윤희정에게 따지거나, 그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그간 보여준 유승준의 태도를 생각하면 대부분이 유승준의 자퇴가 잘 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진짜는 자퇴가 아니지만 말이지.’

강지영은 유승준이 마인이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마인이 아카데미에 숨어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고, 학장인 강지영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나는 강지영의 조치를 지지한다. 학장인 강지영이 흔들리면 아카데미 자체가 흔들리게 될 테니까. 내가 굳이 강지영에게 유승준의 신병과 증거자료를 넘긴 것도 이 때문이다. 강지영이 있어야 아카데미는 제대로 돌아간다.

‘유승준은… 뭐, 둘 중 하나겠지.’

죽었거나. 아니면 어딘가에 갇혀있거나.

“어…. 뭔가 질문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네. 오늘 일정은 전에 말했던 대로 던전 실습이 진행될 거야. 열심히 준비했던 만큼의 결과를 얻게 될 테니, 모두 긴장하지 말고 잘해.”

윤희정은 짧게 말하고 교실을 나서 사무실로 향했다. 나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

던전 실습이 시작되었다. 던전 실습은 1조와 2조, 3조가 동시에 진행했다. 대기하고 있는 학생들은 TV 화면을 통해 던전 실습의 진행을 지켜볼 수 있었다. 불공평하진 않았다. 어차피 공략해야 할 던전은 조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6조. 너희에 대해선 들었다. 너희 조원인 유승준이 자퇴했다지? 둘이서 던전을 공략하기엔 힘들 것 같군. 포기하겠나?”

기필우.

던전 실습 담당 교사가 나와 신정미의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 그는 건장한 체격에 검은색 짧은 머리카락의 남자였다.

“괜찮습니다. 저희 둘이서 할 수 있습니다.”

“네. 둘이서 준비해왔습니다.”

나와 신정미가 자신감 있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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