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5화 〉 755. 가인박명
755. 가인박명
“하으응….”
나는 방문에 귀를 갖다 댔다. 예카테리나의 신음 소리를 듣고 안심했다. 계획대로다. 그녀의 기억은 성공적으로 조작되었다.
자위를 하는 건 기억 때문만이 아니다. 그녀가 깨어나기 직전까지 성감 고조를 사용한 상태로 그 몸을 마음대로 주물럭거렸다. 성감 고조의 영향으로 몸이 흥분하여 성욕이 끓어 오르는 상태이니 자위를 하는 건 당연했다.
‘자위를 안 하면 더 문제지. 자신의 모든 욕구를 컨트롤 할 줄 안다는 뜻이니까. 뭐, 그 정도의 정신력이었다면 기억 조작도 통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문에서 귀를 떼고 조심히 문에서 물러났다. 마음 같아선 훔쳐보고 싶지만, 들키기라도 했다간 모든 일이 틀어진다.
‘카메라를 방에 설치해둘 걸 그랬나? 아니지. 이 저택엔 박수호도 있고, 예카테리나는 이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일단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웠다는 것에 만족하자.
???
다음날.
예카테리나는 나와 박수호를 앞에 두고 화려한 의자에 오만하게 앉았다. 검은색 스타킹을 신은 매혹적인 다리를 꼬고, 의자 팔걸이에 팔꿈치를 대고 손으로 턱을 지지하며 우리를 오만하게 주시한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녀가 여왕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첫 번째 시험은 성유진이 성공했어.”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가 입꼬리 끝을 말아 올렸다. 어제 보여주었던 조소와 다르다. 나를 향한 경멸과 무시의 느낌이 사라졌다.
“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시험은 박수호 네가 해야 해. 대신하는 건 허락하지 않아. 설마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려는 건 아니겠지?”
“그럴 일 없습니다. 지금 제 컨디션은 나쁘지 않습니다.”
예카테리나는 무감정한 눈으로 박수호를 쳐다봤다. 이것도 어제와 달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녀는 박수호에게 제법 흥미가 있었다.
‘기억 조작의 영향이 제대로 먹혀들었군.’
예카테리나는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공간이 갈라지고 종이 하나가 그녀의 손위에 떨어졌다. 아공간이다.
그녀는 종이를 박수호에게 던졌다.
“…이건?”
“네가 내일 저녁까지 구해와야 할 것들이야. 총 10개. 하나라도 가져오지 못하면 실패야.”
나는 슬쩍 고개를 내밀어 종이에 적혀 있는 글자를 훔쳐봤다. 의미 없는 짓이었다. 한글도, 영어도 아닌 처음 보는 생소한 언어다.
나와 달리 박수호는 읽을 수 있는 듯 종이를 빤히 보다가 말했다.
“…너무 많습니다. 거기에 몇 가지는 구하기 힘든 희귀한 마법 재료입니다. 저 혼자 이틀 만에 구해오는 건 불가능합니다.”
“혼자 구해오라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어. 이 시험은 네 능력이 아니라, 베로프린의 능력을 확인하려는 거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도 됩니까?”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도시의 힘을 이용해서 가져오라는 거야. 이 정도도 하지 못하는 무능한 도시라면…. 내가 많이 실망할 거야.”
서늘한 목소리에 박수호가 흠칫 몸을 떨었다.
“베로프린 도시의 힘이라면… 이 정도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시험은 무엇입니까?”
“두 번째 시험에나 신경 써.”
“…만약. 제가 예카테리나 님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죽일 겁니까?”
“죽이지는 않아. 성유진과 너는 입장이 다르니까. 넌 베로프린의 시장이잖아.”
“…….”
“그래도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으니…. 후후. 열심히 해.”
“…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가 봐. 아, 성유진. 넌 조금 있다가 내 방으로 오고.”
“네. 예카테리나 님.”
나는 박수호와 함께 예카테리나의 방을 나섰다. 박수호의 얼굴은 썩 좋지 않았다.
“그 종이에 뭐가 적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힘들 것 같아?”
“베로프린 시민들의 도움을 받으면 절반 이상은 지금 당장에라도 구할 수 있고, 나머지 물건도 어떻게든 될 거예요. 다만, 2가지는 제가 직접 나서서 근처 마을로 이동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럼 다행이고.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해?”
“아뇨. 괜찮아요. 형도 예카테리나의 시험 때문에 피곤하잖아요? 형은 저택에서 쉬세요. 이 일은 제가 해결할게요.”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데. 뭐 신경 쓰이는 거라고 있어?”
“그게…. 뭔가 예카테리나가 달라진 것 같아요. 뭐가 달라진 거냐고 묻는다면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 둔한 놈이 예카테리나의 변화를 감지했을 줄이야.
“내가 보기엔 그대로였어. 네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겠지.”
“그런가요…. 예카테리나가 형을 불렀죠? 무슨 일을 하려는 걸까요.”
“어제 내가 네 대신에 첫 번째 시험을 통과했잖아. 아마 그 일로 뭔가 물으려는 거겠지. 예카테리나의 성질을 최대한 건들지 않도록 조심할 테니, 넌 두 번째 시험에 집중해. 네가 실수하면 저 여자가 어떻게 나올 줄 몰라. 그 여자는 기본적으로 잔인한 여자야.”
“네. 형. 지금은 예카테리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만…. 언젠가는….”
???
박수호는 도시의 주요 인물들과 짧은 회의를 한 뒤에 물건을 구하기 위해 도시를 떠났다.
나는 점심을 챙겨 먹고 베로프린 도시를 둘러봤다. 도시의 시민들은 일분일초가 아깝다는 듯이 바쁘게 움직였다. 시민들 모두가 협력하여 박수로를 도우려 한다. 시민들이 베로프린 도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산책을 끝내고 예카테리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늦었잖아. 조금 있다가 오라고 했지. 이렇게 늦게 오라는 말은 안 했는데?”
“죄송합니다. 일이 있다 보니….”
“됐어. 이쪽으로 와. 내가 널 왜 부른지 알아?”
“모르겠습니다.”
예카테리나의 손짓에 따라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나뿐인 의자는 그녀가 차지하고 있어서 부동자세로 서서 그녀를 내려다봤다.
예카테리나는 고개를 들어 날 올려다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손을 아래로 까딱였다.
무릎 꿇으라는 뜻이었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무릎 꿇었다. 기억을 조작했다고 해서 기본적인 성질머리가 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나를 향한 감정은 분명 바뀌었다.
“첫 번째 시험. 생각해보니 네가 어떻게 호수에서 보석을 꺼내왔는지 자세히 묻지 않았더라고.”
“아.”
“경고하는데 거짓 없이 고하는 게 좋을 거야. 후후. 너도 거친 꼴을 당하고 싶지는 않지?”
“숨기지 않고 말하겠습니다. 그런데….”
내 시선이 아래쪽으로 향했다. 예카테리나의 하이힐이 내 가슴팍을 꾹꾹 누르고 있다. 치마 속의 빨간 팬티가 보였다. 트집 잡힐 수는 없기에 최대한 팬티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발을 내려주시지 않겠습니까? 하이힐이 아파서 말을 하기 힘듭니다.”
“발 올리기 딱 좋아서 그건 안 되겠어. 대신… 이러면 됐지?”
그녀는 하이힐을 벗었다. 검은색 스타킹이 있었기에 맨발은 아니었다. 발이 내 상체를 꾸욱 누르거나, 문지른다. 묘한 느낌이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살펴봤다. 여전히 건방진 미소를 입가에 띄우고 있다. 그러나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고 두 눈은 내 얼굴이 아니라 몸에 고정되어 있다.
‘기억 조작의 영향이군. 어제 자위로 성욕을 전부 못 풀었나? 그게 아니면…. 내가 성에 관심 없던 처녀의 성욕에 불을 질러버린 걸지도 모르겠군. 크크.’
상황은 좋게 흘러가고 있다.
“네. 한결 편합니다. 원하시는 대로 상세히 말해드리겠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마구간에서 좋은 말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을 촉박했기에 1분 1초를 아끼기 위해 뛰어난 말이 필요했습니다.”
말을 늘여 놓기 위한 개소리였다. 말은 대충 아무거나 골라 탔다.
“그래서?”
예카테리나는 화도, 짜증도 내지 않고 되물었다. 내가 하는 말 자체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녀의 정신은 발로 날 희롱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도착하니 호수가 범람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바다처럼 물살도 거칠었죠. 조금 두렵긴 했으나, 예카테리나 님의 시험을 수행해야 했기에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리고 옷을 벗고 호수에 들어갔습니다.”
“…잠깐 옷을 벗고? 혹시 전부 벗었어? 그럴 필요는 없었을 텐데.”
“속옷 하나 걸치지 않고 전부 벗었습니다. 젖은 옷을 입고 돌아가기는 건 싫었고, 수영할 때 옷은 거추장스러웠습니다. 저 그런데….”
“왜?”
“이러시면 말하기 힘듭니다만….”
내 어깨와 가슴팍에서 놀던 그녀의 발은 어느새 내 얼굴을 밟고 있었다. 검은 스타킹의 매끈한 감촉은 나쁘지 않다. 향기로운 냄새까지 느껴진다. 예카테리나는 미녀이니 발로 내 얼굴을 건드려도 역겹지도 않았다.
“힘들 뿐이지 말하지 못하는 건 아니잖아. 계속해.”
“…네. 저는 호수속에 들어갔고 운이 좋아 보석을 바로 발견… 읍….”
그녀의 발가락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예카테리나의 눈치를 살폈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동자다.
‘그렇게 원하면 기대감을 충족시켜줘야지.’
적당히 말을 이으면서 은글슬쩍 그녀의 발가락을 빨고 핥았다. 내 혀가 닳을 때,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은근슬쩍 그녀의 치마 속을 힐끔 확인했다. 붉은색 팬티, 그 중심 부위는 아까와 달리 젖어 있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물속에서 워터 젤리랑 싸우고 보석을 가져왔다 이거지?”
“네.”
예카테리나는 발을 뗐다. 그녀의 입가에 있던 미소가 모습을 감췄다.
“거짓말하지 마. 워터 젤리는 사람의 호흡과 산소를 뺏는 능력이 있어. 물속에서 워터 젤리의 촉수에 닿으면 10초도 못 버티고 질식해. 그런데 넌 워터 젤리와 제법 오랫동안 싸웠다고 했지.”
설마 그것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을 줄이야.
예카테리나에게서 적의와 살기가 느껴진다. 이건 좋지 않았다.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전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습니다.”
“이제 되지도 않는 변명까지 하네?”
그녀 주위에 물방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물방울 하나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마나에 몸이 절로 긴장되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무, 물만 주신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증명해보겠습니다!”
“증명이라….”
물방울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그려진다.
“증명하지 못한다면 죽게 될 거야. 난 날 기만한 놈을 살려둘 정도로 성격 좋은 여자가 아니거든.”
딱.
예카테리나가 검지를 튕겼다. 내 옆에 물기둥이 천장까지 치솟았다. 물기둥은 흘러내리지 않고 그대로 멈추었다. 나는 물기둥이 일종의 어항처럼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지?”
“……저 물기둥 안으로 들어가면 됩니까?”
“맞아. 네 말이 맞다는 걸 직접 증명해봐.”
“…….”
“안 일어나고 뭐해? 그대로 머리를 조아리고 변명이라도 할 거야?”
“아, 아뇨. 그게….”
예카테리나의 기세가 사나워진다. 나는 한숨을 내쉰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카테리나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내 자지가 바지를 뚫을 듯이 발기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무릎 꿇고 앉아 있을 때야 허벅지를 이용해 어떻게든 감췄는데, 일어서면 감추는 건 불가능하다.
“후, 후후후….”
예카테리나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나는 그대로 물기둥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잠깐 멈춰. 옷은 벗고 들어가.”
“네?”
“네가 말했잖아. 어제 호수 속에 들어갈 때 물을 벗었다고. 같은 조건이어야 더 신뢰가 가지. 그리고 네 옷에 특수한 마법이 걸렸을지도 모르잖아?”
그 수작이 훤히 보여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내 옷이 평범하다는 건 마도사인 그녀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옷을 벗으라 하는 것은 내 몸이 보고 싶은 거겠지.
‘내 자지가 좀 대단하긴 하지.’
옷을 벗었다. 양말은 물론이고 팬티까지 전부. 예카테리나는 묘하게 안절부절못한 분위기로 날 쳐다봤다.
“이걸로 물기둥 안으로 들어가도 됩니까?”
“어, 그, 그래. 들어가. 15분 동안 그 안에서 버틴다면 인정해줄게.”
물 안으로 들어갔다. 뭔가 특별한 느낌이 있진 않았다. 평범한 물이었다. 나는 물기둥 안에 서서 예카테리나는 가만히 쳐다봤다.
그녀의 눈동자는 자꾸 내 자지를 쳐다봤다.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자지의 발기가 풀리고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큰 자지이란 건 변하지 않지만.
15분이 지났다.
예카테리나가 손을 허공에 흔들자, 물기둥이 사라졌다. 내 몸은 여전히 물에 젖어 있었다. 자지 끝을 타고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이제 믿어주시겠습니까?”
“…직접 봤는데 믿지 않을 수 없지. 하지만 괘씸해. 내가 말하지 않았다면 그 능력을 끝까지 숨길 생각이었지?”
“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벌이야. 무릎 꿇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