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0화 〉 760. 가인박명
760. 가인박명
“난 호수를 보러왔는데 왜 재수 없는 영감이 내 앞에 있는 거야. 짜증 나게.”
“예카테리나. 더는 네가 마음대로 설치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 넌 공화국에서 정당한 재판을 받을 것이다.”
빅토르가 두 눈을 빛낸다. 그의 몸에서 마나가 흘러나왔다. 암석처럼 무거운 마나였다.
“…….”
예카테리나는 표정을 지우고 나와 박수호를 보았다. 눈동자에 분노와 짜증이 가득했다. 그녀의 연기력은 뛰어났다. 사전에 이야기를 나눴던 나조차도 의심이 들 정도로.
“함정이었네?”
예카테리나의 눈동자가 싸늘해진다.
“모두 네가 자초한 일이다. 그리고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얌전히 나와 함께 공화국으로 돌아간다면, 네 죄는 어느 정도 참작될 것이다.”
피식. 예카테리나가 소리 내어 빅토르를 비웃었다.
“참작?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 어차피 당신은 날 죽일 생각이잖아?”
“넌 옛날부터 무언가 깊게 오해를 하고 있군. 나는 널 죽이지 않는다. 너는 솔리트 공화국의 미래다. 공화국의 미래를 빛낼 인재를 내 손으로 없앨 것 같나.”
“당신이 정말 공화국을 위했다면, 지금 공화국이 이 모양 이 꼴이 아니었겠지. 보면 볼수록 역겨운 위선이야. 당신에 비하면 도적 떼가 귀여워 보일 지경이라니까?”
“…말이 안 통하는군. 널 설득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겠다. 예카테리나, 우선 정당한 재판으로 죗값을 치러라!”
쿵!
빅토르가 진각을 밟았다.
그의 마법이 발현한다. 바닥에서 흙덩이가 모여들더니 암석으로 변하며 골렘이 되었다. 총 10개의 스톤 골렘이 만들어지기까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당신의 마법은 따분하고 볼품없어. 고리타분한 냄새가 진동한다고!”
예카테리나는 검지와 중지를 붙여 휘둘렀다. 그녀를 중심으로 물의 채찍이 주위를 휩쓴다. 나무가 부서지고, 골렘이 무너진다. 그러나 무너진 골렘은 빅토르의 손짓에 따라 다시 몸을 일으킨다.
그녀가 다시 물의 채찍을 휘두르려다가 몸을 흠칫거렸다. 빅토르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예카테리나.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은가 보군.”
“……망할 영감.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무리 나라도 평소의 널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건 힘든 일이지. 그렇다고 널 내버려둘 수도 없었으니…. 공화국의 미래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일이었다.”
“비겁한 새끼가. 뭘 잘했다고 당당히 지껄이는 거야?”
“네가 뭐라고 욕해도 상관없다. 공화국의 미래를 위해 오욕을 쓸 각오는 이미 옛적에 해두었으니. …그나저나 입이 점점 거칠어지는구나. 내 누누이 말했을 터다. 공화국의 마도원수라면 그에 어울리는 품격을 갖추라고.”
“품격? 댁이 말하니 웃음 밖에 안 나오네.”
철썩!
잔잔하던 호수가 바다처럼 출렁이며 점점 범람하기 시작했다. 마법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여긴 호숫가야. 바로 앞에 대량의 물이 있지. 여길 전투 장소로 선택하다니…. 혹시 치매라도 났어?”
“고작 호수 하나로 오만하게 굴지 마라. 땅은 어디에나 있다.”
“……점점 마나를 쓰기 힘들어지네. 미스테르의 물이구나? 마도원수가 아무렇지 않게 금기를 어기다니…. 당신 같은 구역질 나는 위선자 새끼는 좀처럼 없을 거야.”
“모두 대의를 위한 일이다.”
호수에서 물기둥이 일어나 빅토르의 등을 노린다. 땅에서 벽이 솟아 물기둥을 막아냈다.
그들의 마법 전투는 계속 이어졌다. 주로 예카테리나가 빅토르를 공격했고, 빅토르는 방어에 집중했다.
‘빅토르는 미스테르의 물을 믿는 거지. 미스테르의 물은 내 인벤토리에 있지만.’
완벽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기에 예카테리나가 유리하다. 이곳은 호숫가. 그녀가 이용할 수 있는 대량의 물이 바로 근처에 있다.
콰아앙!
굉음이 울렸다.
거대한 암석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다. 암석의 중심에 쩌억하고 금이 갔다. 암석 아래, 예카테리나가 아무렇지 않게 서 있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는 물로 이루어진 우산이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그로부터 3분 후, 빅토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냐.”
예카테리나가 약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100개가 넘는 스톤 골렘을 단번에 일으켜도 물폭발에 휩쓸려 사라진다. 미스테르의 물에 효과로 약해지기는커녕 도리어 기상 마법까지 발동해 하늘에 먹구름을 부르고 있다. 이슬비가 내린다.
“왜 약해지지 않는 것이냐! 예카테리나!!”
그녀가 웃었다. 사악한 미소는 빅토르를 비웃는다.
“내가 당신한테 한두 번 당하는 줄 알아? 이 정도는 당연히 예상했지.”
“……미스테르의 물에 중독되지 않았다고…?”
빅토르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신사 같았던 그의 얼굴은 부쩍 20년은 더 늙은것처럼 변했다. 깔끔함과 선량함은 어디에도 없다. 그 얼굴에 남은 건 망집과 추한 질투, 그리고 두려움뿐이다.
“박수호! 성유진! 보고만 있지 말고 나를 도와라! 여기서 우리가 지면 모든 게 끝난다!”
빅토르가 소리 질렀다.
박수호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내게 말했다.
“형. 빅토르 씨의 말에 틀린 건 하나도 없어요. 여기서 예카테리나에게 지면… 우린 끝이에요.”
“…네 말대로야. 우리가 어디까지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예카테리나를 여기서 쓰러뜨려야 해.”
박수호가 검을 쥐고, 나는 화련비도를 허리춤에서 뽑았다. 빗물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가자.”
“네!”
나와 박수호가 내달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예카테리나도 우리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물로 이루어진 말과 늑대가 우리를 막아서며 공격한다. 나와 박수호는 물의 동물을 베어내며 빅토르의 옆으로 접근했다.
“빅토르 씨!”
“박수호 시장! 성유진! 시간이 없네! 내가 예카테리나에게 향하는 길을 만들겠으니, 자네들이 예카테리나에게 치명상을 입혀주게! 설령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내게 마법 술식을 짤 시간을 만들어주게!”
“예! 빅토르 씨를 믿습니다!”
박수호가 힘차게 대답했다.
빅토르는 정면에 마법을 사용했다. 바닥에서 커다란 바위 송곳이 솟구쳤다. 바위 송곳 사이에 예카테리나에게 향하는 길이 만들어졌다.
“지금일세!”
“예!”
박수호는 용감히 뛰쳐나갔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가는 척하면서 뒤로 돌아 빅토르의 복부에 칼을 찔러 넣었다.
푸욱.
혈육을 찌르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붉은 피가 튀었다. 그러나 나는 혀를 찼다. 내가 노린 곳은 옆구리 따위가 아니라 심장이었다. 빅토르는 나를 믿지 않았기에 치명상을 피했다.
“성유진…! 네가! 네가 배신자였나!”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뇌전!’
파지지지지직!
붉은 뇌전이 빅토르의 몸을 타고 흐른다. 감전시켜 죽일 생각이었으나, 빅토르에겐 뇌전이 통하지 않았다. 그의 몸은 바위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퍼억!
땅바닥에서 바위 주먹이 날아와 내 배를 공격했다. 뒤로 날아가 바닥에 착지했다.
“유, 유진 형?! 형이 왜…?!”
박수호의 얼굴은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검이 흔들린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며 연기했다.
“이, 이건 내 의지가 아니야…! 피해! 박수호!”
“네?!”
박수호에게 벼락이 떨어졌다. 박수호는 벼락을 맞았으나 살짝 비틀거릴 뿐 쓰러지지 않았다.
“형!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 안 돼! 내 몸이 멋대로…! 젠장!”
박수호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러면서 빅토르를 곁눈질했다. 무언가 거대한 마법을 준비하고 있다. 빅토르를 방해하기 위해 놈에게도 벼락을 떨어뜨린다. 곁에 있던 골렘 하나가 몸으로 벼락을 막아선다.
벼락을 몇 번이나 내려쳐도 소용없다. 비에 젖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뇌전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상성이 최악이다.
“형! 멈춰요! 유진 형!”
“후후후. 박수호. 네가 빅토르와 손을 잡은 걸 뻔히 아는데, 내가 아무것도 안 한 줄 알아?”
물론 나는 예카테리나에게 조종당하지 않고 있다. 박수호를 공격하는 건 순전히 내 의지다.
“예카테리나…!!”
“수호야! 피해!”
벼락이 다시 떨어진다. 박수호의 자세가 흐트러진다. 나는 그의 안쪽으로 달려들었다. 팔 하나 정도는 잘려버릴 생각이었다.
까앙.
박수호가 검을 들어 내 공격을 막아냈다. 놀랐다.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박수호에게 내 공격이 막힐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죽이지 마, 아직 박수호는 쓸모가 있으니까.”
예카테리나는 위로 날아올랐다. 그녀의 목적은 빅토르다.
“수호야! 피해! 피하라고!”
나는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박수호를 공격했다. 팔을 자를 생각은 버렸다. 대신 박수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졌다.
‘……이 정도면 C급 헌터 상위잖아. 벌써 이렇게 성장했다고?’
이 성장 속도는 재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게 뭔가를 숨기는 건 아닐 테고.
‘문신 능력. 내 생각보다 더 엄청난 능력이군.’
칼날에 푸르스름한 검기를 일으켰다.
“박수호! 왜 도망치지 않는 거야?!”
“도망치지 않는 게 아니라 못 치는 거예요!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요!”
까앙!
무기가 교차한다. 놀랍게도 그의 검에도 검기가 맺혔다. 내 것에 비해 선명하지도 않고 당장에라도 꺼질 듯이 미약하지만, 검기가 확실했다.
‘신체 능력은 내가 완전히 우위고…. 검술도 예전보다 많이 발전하긴 했는데 나보다 못해. 찰나를 이용하면 당장 죽일 수 있어.’
나는 박수호에게 벼락을 떨어뜨렸다. 박수호는 문신 마법을 이용해 벼락을 맞고 내게 몇 번 반격하다가 결국 체력이 떨어져 허점을 보였다.
“크으윽…. 유진 형…!”
주먹으로 박수호의 머리를 때려 기절시켰다.
화련비도를 내리고 하늘을 쳐다봤다. 어처구니없는 광경이 눈앞에 있었다. 50M는 가뿐히 넘을 듯한 바위 거인과 해일이 부딪친다. 해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리저리 출렁이며 몇 번이고 거인과 부딪쳐 쓰러뜨리려고 한다.
예카테리나는 하늘 위에서 물의 채찍과 물의 고리를 휘두르며 빅토르를 공격한다. 빅토르는 한동안 방어에 집중 하다가 기회를 보며 도망쳤다.
예카테리나는 불쾌한 얼굴로 땅에 내려섰다. 하늘의 먹구름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놓쳤습니까? 아쉽겠군요.”
“…그래도 그냥 놓치지는 않았어. 놈의 오른팔을 빼앗았거든.”
“보복에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빅토르가 세력을 끌고 오기라도 한다면….”
“당분간은 괜찮아. 부하를 데리고 올 수 있었다면, 애초에 혼자서 오지 않았을 거야. 이 일에 대해서도 함구하겠지. 다른 마도원수들의 눈치가 보이고, 알려져 봤자 명성을 잃을 게 뻔하니까.”
“이 일이 알려지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는 거군요.”
“나도 마찬가지지만.”
그녀의 시선은 기절한 박수호에게 향했다.
“얘는 또 기회가 오면 날 죽이려 하겠지. 마음 같아선 죽여버리고 싶은데…. 베로프린 도시에는 이 녀석이 필요해.”
“어쩌시겠습니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 목줄은 채워둬야지.”
예카테리나는 다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네게 상도 줘야겠지. 뭔가 원하는 거라도 있어?”
“제게 줄 상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네가 없었다면, 난 빅토르에게 당해 죽었을지도 몰라. 추가로 원하는 게 있다면 지금 말해.”
“그럼….”
나는 기절한 박수호와 예카테리나를 번갈아 봤다. 재밌는 생각이 났다. 아주 재밌는 생각이.
???
나와 박수호는 저택 관저 지하 감금실에 갇혔다. 원래는 창고용으로 쓰던 곳이었는데 예카테리나의 명령에 따라 하인들이 급하게 감금실로 개조했다.
“크으….”
기절한 박수호는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그리고 당황했다.
나와 박수호는 5M 정도 떨어져 있었고, 서로 알몸으로 구속당했다. 남자의 알몸을 보는 건 굉장히 불쾌했지만 참았다. 그나마 그의 상체가 움직이는 문신이라 볼만했다.
“유, 유진 형?!”
절그럭, 절그럭.
박수호가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팔과 다리가 사슬에 구속되어 있었다. 마나도 봉인 당했다.
참고로 박수호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고, 나는 딱딱한 의자에 앉은 상태였다. 사슬에 구속당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건 똑같았지만.
“…깨어났어?”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된 거긴. 예카테리나의 짓이지.”
“또 예카테리나가…! ……빅토르! 빅토르는 어떻게 됐어요?”
“빅토르는 불리해지자 우리를 버리고 도망쳤어.”
“예? 빅토르 씨가? 그럴 리가…!”
끼이이이익!
감금실 문이 열렸다. 나와 박수호는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고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또각또각. 예카테리나가 걸어왔다. 하이힐에 검은색 스타킹, 짧은 미니스커트와 검은색 브래지어가 비치는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었으며 손에는 말채찍을 쥐고 있다.
박수호가 그녀를 노려봤다.
“예카테리나…! 당장 이거 풀어!”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나와 박수호를 번갈아 쳐다봤다. 정확하게는 우리의 사타구니를. 그리고 박수호를 보며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박수호. 넌 왜 그렇게 자지가 작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많이 실망스럽네. 못해도 이 정도는 돼야지.”
예카테리나는 내 자지를 잡아 과시하듯 흔들었다. 자극받은 자지는 점점 커져 우람해졌다. 그녀는 색정적으로 혀를 내밀어 분홍색 입술을 날름 핥았다.
“이게 자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