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6화 〉 766. 광명승천도
766. 광명승천도
화월루(花月樓).
안휘성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며, 유명한 기루다. 음식이면 음식, 술이면 술, 여자면 여자. 향락을 위한 모든 것들이 갖춰져 있다.
화월루는 총 9층짜리 건물로 현대의 어지간한 호텔보다 훨씬 낫다. 다만 이곳의 가격은 무척 비싸다. 음식만 해도 다른 가게의 기본 5배다. 술은 더 비싸다.
그리고 나는 이곳의 단골이다.
화월루는 북적거렸다. 1층과 2층은 식당이었다.
화월루는 비싸긴 한데 맛은 확실히 보증하기에, 안휘성의 사람들은 뭔가 축하할 일이 있으면 큰맘 먹고 화월루에 와서 음식과 술을 먹는다.
기녀? 화월루의 기녀를 한 번 품으려면 평민이 5년 동안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 그 값비싼 돈을 내야만 화월루의 매난국죽(梅蘭菊竹) 중 가장 낮은 죽(竹)급 기녀와 놀 수 있다.
나는 물론 화월루의 기녀들을 모두 맛봤다. 모두가 맛있는 미녀였지만, 등급이 높을수록 보지맛이 뛰어났다.
“헉! 성 공자님! 오셨습니까!”
근처에서 일하던 점소이가 나를 보자마자 뛰어와 허리를 굽혔다. 뒷짐을 쥐고 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여 점소이의 인사를 받았다.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군. 점소이. 보기 아주 좋아.”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기특하군.”
손에 쥐고 있던 은자 한 냥을 튕겼다. 점소이는 양손으로 은자를 받아들고는 더욱 깊게 머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성 공자님! 제가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루주는 있나?”
점소이는 식은땀을 흘리며 내 눈치를 봤다.
“루주는 계십니다만… 그….”
화월루의 기녀들은 모두 맛봤지만, 화월루의 루주는 따먹지 못했다. 화월루의 루주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루주가 기녀가 아니란 건 알고 있다. 그저 인사나 할 생각이다.”
“루, 루주께 여쭤보겠습니다. 자리는 평소처럼 8층으로 안내하면 되겠습니까?”
“그래.”
“오늘 시간이 되는 기녀는….”
“지금은 됐다. 루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부르지.”
“예. 안내하겠습니다!”
점소이를 따라 걸어갔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힌다. 기루에 올 때마다 이러기에 별로 놀랍지도 않다. 그리고 난 사람들의 시선에 쪼는 성격도 아니었다.
올라가는 도중에 기녀들이 나를 보며 기웃거렸다. 그녀들의 옷차림은 야했다. 어깨와 쇄골을 드러내는 건 기본이고, 미끈한 다리도 보여준다. 국죽(菊竹)급 기녀들이었다. 그녀들은 노골적으로 날 유혹했다.
“공자님. 오늘은 저희랑 노시지 않을래요? 우리 오늘 널널해요.”
“미안. 선약이 있어서 그건 힘들어.”
“어머. 아쉽다~.”
내가 꿈쩍도 하지 않자, 그녀들은 노골적으로 날 유혹했다. 젖가슴을 까서 잡고 흔들 거나, 다리를 활짝 벌려 보지가리개를 보여준다. 나는 잠깐 흔들렸으나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다. 지금 내 최대 목적은 루주를 따먹는 것이다. 그걸 잊으면 안 된다.
점소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을 보며 걸었다. 손님이 나와 달리 점소이는 기녀들을 함부로 봐선 안 된다. 화월루의 규칙이기도 하고, 기녀들과 엮여서 좋은 일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화월루의 입장에서 점소이는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다.
“공자님. 그간 평안하셨나요?”
“물론이지. 너도 잘 지냈지?”
“잘 지내지 못했어요. 공자님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들끓으니…. 오늘은 공자님 품에 안기고 싶어요.”
“나도 그러고 싶어. 근데 선약이 있어서 안 돼.”
“하아…. 아쉽네요.”
매난(梅蘭) 등급의 기녀들은 옷을 야하게 입지 않았다. 노출을 최대한 줄였다. 그러나 퇴폐적인 분위기와 다른 여자들에게서 보기 힘든 기품이 그녀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8층에 도착했다. 화월루는 9층이지만 손님은 사용할 수 있는 건 8층이 전부다. 9층은 오직 한 명, 화월루주를 위한 공간이다.
“성 공자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루주께 성 공자님의 뜻을 알리고 오겠습니다.”
“음식과 술은?”
“기녀들이 곧 준비할 것입니다.”
나는 창가에 기대어 앉아 느긋하게 기다렸다. 사실 루주를 만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화월루의 주인이다. 그 콧대가 무척 높다. 내가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여자가 아니다.
창문을 통해 밖을 쳐다봤다. 서울 야경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도시 곳곳이 등불로 반짝이고 있어 제법 봐줄 만한 야경이었다.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기녀들이 들어와 상을 음식과 술로 채웠다. 기녀들이 은근한 시선을 보내온다. 나를 불러달라고 원하고 있다.
‘크크. 내 좆 맛을 한 번 봤으니 당연하지.’
오늘은 누구랑 떡을 칠까.
“성 공자님.”
점소이가 돌아왔다. 깊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할 줄 알았는데,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날 쳐다본다.
“루주께서 일다경 후에 내려오신다고 합니다.”
화월루주가 응한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일은 아니었다. 점소이는 조용히, 기녀들은 아쉬워하며 방을 나갔다.
일다경. 차 한 잔을 먹는 시간. 약 15분이 지나고 화월루주가 들어왔다.
화려한 붉은 옷을 입은 여성이다. 흑단같이 검은 머리카락을 옥비녀로 장식했고 눈썹은 초승달처럼 휘어졌으며 입술은 앵두처럼 붉다. 피부는 새하얗고 가슴은 풍만하다. 내가 봤을 때 가슴은 E컵이 확실했다.
그녀가 화월루주 공비(共泌)다.
“이렇게 인사하는 건 무척 오랜만이네요. 성 공자.”
공비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오랜만입니다. 못 본 사이에 더 예뻐지셨군요.”
“후후. 빈말인 거 알고 있지만, 막상 들으니 기분 좋네요. 앞에 앉아도 될까요?”
“이 건물의 주인은 루주가 아닙니까. 원하는 자리에 앉으십시오.”
“지금 이 방의 주인은 공자예요.”
기녀였다면 내 옆에 앉아 술을 따라주었을 것이다. 물론 공비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녀는 기녀가 아니니까. 그리고 사회적 신분으로 따지면 나보다 그녀가 더 높은 사람이다.
“절 부른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루주와 자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례한 말이었다. 그러나 공비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성 공자. 전 기녀가 아니에요. 춤과 노래를 팔지 않고, 웃음도 팔지 않아요. 제 일은 화월루를 운영하는 게 전부예요.”
“그래도 예외는 있지 않습니까? 저 이래 보여도 자신 있습니다.”
“알아요. 성 공자에게 색류공자라는 별명을 붙인 건 화월루의 기녀들이니까요. 그거 아시나요? 화월루의 기녀들 중 누구도 성 공자를 욕하지 않아요. 오히려 성 공자를 대접하기 위해 따로 제게 부탁하는 아이까지 있을 정도예요.”
“루주는 기녀들이 왜 그러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지 않습니까? 전 자신 있습니다.”
“공자가 어떤 말을 해도 안 돼요.”
“전 가진 돈이 많습니다.”
“화월루가 하루에 얼마를 벌어들이는지 공자에게만 특별히 가르쳐드릴까요?”
정공법으로는 안 된다. 철벽이었다.
나는 그녀가 처녀라는 것을 직감했다. 기녀와 함께 사는데도 나와의 섹스를 거부하는 게 그 증거다.
“어떻게 하면 루주와 잠자리를 가질 수 있습니까?”
“성 공자는 지나칠 정도로 직설적이네요.”
“돌려 말하는 건 취향이 아닌지라.”
“전 공자의 그런 점을 매력이라 생각해요. 공자, 혹시 저를 사랑하시나요?”
“…….”
대답을 망설였다.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녀와 섹스할 수 있나? 난 멍청이가 아니다. 그럴 리 없겠지.
“공자는 저를 볼 때마다 심장이 뛰나요?”
“…….”
심장이 뛴다. 심장이 안 뛰면 강시다.
“잠을 잘 때, 식사할 때, 거리를 걸을 때 저를 떠올리시나요?”
“…….”
“공자는 저를 사랑하지 않아요. 공자가 원하는 건 제 몸뿐이죠. 저는 사랑하는 남자와 관계를 갖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루주.”
“……전 공자를 사랑하지 않아요.”
“차였군요. 아쉽습니다.”
“제 뜻은 확실히 아셨죠? 이만 가볼게요. 공자.”
공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호한 그 태도는 나와 선을 긋겠다는 의지를 표출하는 것 같았다.
“루주.”
“네. 공자.”
“루주의 사랑을 얻으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글쎄요.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서 고민이네요. 음…. 강한 남자?”
강간이 답인가.
???
눈을 떴다.
나는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내 주위에는 4명의 기녀가 알몸 상태로 널브러져 잠들어 있다. 그녀들 모두 어젯밤 나와 광란의 밤을 보낸 흔적이 보지에 찐하게 남아 있었다.
창문을 열었다. 약간 텁텁한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가고 신선한 공기가 안으로 들어왔다. 태양은 중천에 떠 있었다. 옷을 입고 2층으로 내려간다. 방안에서 먹기에는 꼬라지가 별로였다.
“성 공자님!”
어제 날 안내한 점소이가 나를 보자마자 쏜살같이 달려왔다.
“점심을 드시러 오셨습니까? 이쪽에 자리가 있습니다!”
“늘 먹던 거로 줘. 냉수 한 잔 가져오고.”
이 세계에서 그냥 물을 달라고 하면 대부분 따듯한 물을 가져온다. 그러니 꼭 냉수를 콕 집어 말해야 했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점소이가 떠난 사이, 나는 식탁 앞에 멍하니 앉아 1층을 내려다봤다. 창가도 아니어서 그나마 볼 게 사람뿐이었다.
‘어?’
일련의 무리가 화월루에 들어왔다. 손님의 등장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낮이라곤 해도 화월루는 식당을 겸하고 있으니까. 점심에 음식을 먹으러 오는 손님이 있어도 이상할 것 없다.
내가 놀란 것은 그 손님의 차림새다.
‘저 새끼 뭔데 운동복 입고 있어?’
현대의 검은색 운동복이다. 나는 현대의 물건들을 이것저것 팔긴 했으나, 운동복을 판매한 적은 없었다.
번쩍!
머릿속에서 무언가 떠올랐다.
‘광천승명도는 총 5개의 창작물이 뒤섞인 유희 세계야.’
그 창작물 중 하나 ‘이세계 천마’가 있다. 그 내용은 현대인이 오래된 창고에서 천마신공(天魔神功)을 손에 쥐는 순간 이셰계로 이동해 천마가 되는 이야기다.
‘그 소설의 주인공도 초반에 운동복을 입고 활동했었지. 주인공의 이름은… 신종우였어.’
신종우의 뒤를 따라 노인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온다. 노인은 키와 체구가 무척 왜소하고 염소수염이었다.
둔목정.
‘이세계 천마’의 조연이다. 모종의 사건으로 힘을 잃은 무영신투다. 이야기의 초반 시점에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딘가 어설픈 주인공을 이용하려는 목적이 있다.
‘그럼 저 뒤에 들어온 여자는….’
여자는 삿갓을 눌러 쓴 것으로도 불안했는지 얼굴에 면사를 써서 외모를 감추고 있다. 검은색 무복을 입었으며 검을 착용했다.
‘이세계 천마의 히로인 중 한 명인 남궁린이겠군.’
정체를 숨기고 주인공과 함께 행동하는 남궁세가의 직계, 남궁린. 히로인인 만큼 그 미모는 확실히 보증되어있다.
그들은 점소이와 대화를 나누더니 계단을 통해 올라오기 시작했다. 꼴을 보아하니 3층 이상에서 따로 방을 잡아 편하게 식사를 하려는 모양이다.
나는 그들이 3층 계단에 올라가기 직전 앞을 가로막았다.
“……저희에게 볼일이라도 있습니까?”
신종우가 차분하게 물었다. 그의 뒤에 있는 둔목정은 귀찮음이 가득한 눈으로 날 보고, 남궁린은 얼굴이 보이지 않아 모르겠다.
“꽤 멀리서 오신 것 같은데. 같이 식사라도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이곳에 대해 알려드리죠.”
“괜찮습니다. 이곳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쪽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켜주십시오.”
신종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있었다. 아마도 지금 막 안휘성에 도착한 모양이다. 남궁세가에 가지 않은 건 남궁린이 아직 자기 정체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겠지.
“정말. 정말 비켜도 됩니까?”
되물으면서 신종우의 실력을 살폈다. 나와 비슷한 경지다.
“후우. 전 그쪽과 실랑이를 벌일 생각도, 기운도 없습니다. 비켜주십시오.”
“정말로?”
“네, 정말…….”
신종우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낸다. 나는 방금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인 한국어로 말했다.
“다, 당신 뭐야?! 당신도 나처럼 한국에서 여기로 온 겁니까?!”
신종우는 내 어깨를 잡으며 다급하게 말을 쏟아낸다. 전부 한국어다. 그의 어깨너머로 둔목정의 놀란 얼굴이 보인다.
‘남자 새끼가 어깨를 잡으니 기분이 나빠지는데…. 젠장. 지금은 참자.’
저 멀리서 깜짝 놀란 점소이가 땀을 흘리며 황급히 달려온다. 어찌나 급한지 쟁반 위의 냉수가 흔들려 바닥에 쏟아지고 있다.
“손님! 손님! 화월루에서 싸우시면 안 됩니다! 제발, 손님! 진정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