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767 - 767. 광명승천도 (547/2,000)

〈 767화 〉 767. 광명승천도

767. 광명승천도

나는 신종우 일행과 함께 화월루 5층의 방중 하나로 들어갔다. 방은 내가 아니라 신종우가 선택했다. 기녀를 부르지 않고 오직 식사를 위해 5층의 방을 잡은 걸 보면 돈을 많이 가진 것이 틀림없었다.

‘뭐, 돈은 저 늙은이가 내겠지만.’

일행의 중심은 신종우다. 그러나 일행을 은근슬쩍 이끌고 주도하는 건 둔목정이었다. 힘을 잃은 무영신투. 신투라고 불리는 만큼 가진 돈은 많을 것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고급 음식들을 주문했다.

그 둔목정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당신도 저와 같은 경우입니까?”

“너와 같은 경우? 나는 네가 어떤 상황인지 몰라. 입고 있는 옷으로 보아 지구에서 이 세계로 넘어왔다고 추측할 뿐이지.”

나와 신종우는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 세계의 없는 언어이니 누군가가 옆에서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니 내용이 유출될 걱정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대답해도 상관없나? 저 둘과는 어떤 사이지?”

“특별한 사이는 아닙니다. 이곳에 오면서 어쩌다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네가 지구에서 왔다는 걸 아나?”

신종우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처음엔 다른 사람에게 말을 꺼냈으나 미친놈 취급만 당했습니다. 오히려 먼 곳에서 왔다고 하니 의심하지 않고 이해해주더군요.”

이 세계의 기본 배경이 되는 [광명승천도]는 선협물이다. 기본적으로 선협물 세상은 넓다. 지구의 10배 이상의 넓이라고 이상하지 않다. 그러니 다른 먼 곳에서 왔다고 하면 다들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주는 것이다.

“넌 어떻게 이 세계에 왔지?”

“……아까부터 저만 계속 대답하고 있군요. 이번엔 먼저 당신이 말씀해주시죠. 성유진 씨.”

“환생이다.”

“…환생? 지구에서 죽어서 이 세계에 태어났다는 겁니까?”

“지구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더니, 이 세계의 아기로 태어났다. 조금 특이한 능력도 생겼지. 너는 어떻게 이 세계에 왔지?”

“…창고에 있던 낡은 책을 만졌더니 이 세계로 이동되었습니다. 대충 2년 전의 일입니다. 숲 속이었는데 다행히 그 근처에 마을이 있어서 오랫동안 신세를 지고 무공을 수련했습니다.”

“마을에 가만히 있지 않고 돌아다니는 이유는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서인가?”

“네. 이 세계는 술법이나 도술 같은 신비한 힘이 존재한다더군요. 제가 이 세계에 왔으니, 돌아갈 방법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원작인 ‘이세계 천마’의 결말을 떠올렸다. 결과를 말하자면, 신종우는 지구로 돌아가지 못한다. 천마로 무림을 군림하며 히로인들과 알콩달콩 살면서 끝이 난다. 이 세계는 원작 배경과 많이 달라서 원작처럼 끝이 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굳이 지구로 돌아갈 필요가 있나?”

“…저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세계는 처음에 불편했지만, 그럭저럭 적응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지구에 있는 부모님과 친구들이 생각나더군요. 저는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부모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아주 효자 납시었군. 나는 비아냥거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성유진 씨는 지구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까?”

“난 이 세계에 환생했다. 이 세계가 곧 내 세계다. 그리고 환생한 내가 다시 지구로 돌아가려면…. 다시 목숨을 끊어야겠지. 넌 내가 자살하기를 원하나?”

“아나요.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알고 있다. 농담이다.”

“…혹시 지구로 돌아가는 방법을 따로 조사하신 건 없습니까?”

“없다. 하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군. 전이술에 대해 아나?”

전이술.

뛰어난 술법사들이 사용하는 공간이동 술법이다. 최소 삼정(三頂) 이상의 경지여야 한다고 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전이술에 특출나게 재능이 뛰어난 술법사는 꼭 삼정의 경지가 아니더라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것들을 조사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희망을 놓지 못하는 이유도 전이술 때문입니다. 술법으로 공간이동이 가능하다면, 지구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할 테니까요.”

“전이술에는 몇 가지 조건이 붙지. 이동할 곳을 한 번 가봤던 곳이어야 한다든가, 아니면 특수한 물건으로 좌표를 특정해야 하거나, 먼 거리일수록 술법에 필요한 기운이 많아지지. 지구 정도쯤 되면 세계최고의 술법사를 찾아가야 할 거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세계 최고의 술법사를 찾고 있습니다. 누가 세계 최고의 술법사인지는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고 쉽게 찾아갈 수 없어서 문제지만요.”

똑똑똑.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라.”

둔목정이 말했다. 문이 열리고 점소이들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테이블 위에 음식들을 나열했다. 둔목정이 시킨 음식들은 하나같이 눈을 즐겁게 해주는 고급 요리들이었다. 물론 맛도 뛰어나다. 입맛 까다로운 내가 화월루의 음식은 아주 잘 먹는다.

“심각하고 중요한 이야기는 밥부터 먹고 해도 늦지 않다. 먹고 해라.”

신종우는 둔목정을 잠깐 쏘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작 초반이 확실했다. 신종우와 둔목정의 관계는 초반에는 그리 좋지 않았으니까.

“너는 왜 젓가락을 들지 않는 거냐? 가만. 왜 네 앞에는 음식이 비어 있냐?”

둔목정이 물었다.

“제가 시킨 요리는 아직 나오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화월루의 요리는 어느 것 하나 일품이다. 화월루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 먼곳에서 찾아오는 낭인들도 있을 정도다. 다른 거라도 먹거라. 내가 추천하는 건 이 동파육이다. 보아라. 윤기부터가 남다르지 않느냐?”

둔목정은 설명충 기질이 남달랐다. 입을 한 번 열게 두면 계속 말할 것이다.

“압니다. 제가 여기 화월루 단골인데 음식을 모르겠습니까? 먼저 드십시오. 전 따로 시킨 음식을 먹을 테니.”

“대체 무슨 음식을 시켰기에 이 많은 음식을 건들지 않는 거냐?”

“제가 어제 과음을 해서 해장에 좋은 음식을 시켰습니다. 아, 오는군요.”

점소이가 내 앞에 음식을 세팅했다.

나와 대화하면서 무표정을 유지하던 신종우의 얼굴에 변화가 생겼다. 두 눈이 커지고 손이 덜덜 떨린다.

내가 시킨 음식은 돼지김치찌개였다.

“기, 김치를 어떻게?!”

“이 세계는 구하기 어려울 뿐이지 지구에 있는 식재료는 거의 다 있습니다.”

현실에서 식재료를 가져와 팔았다. 레시피 몇 개도 팔아 돈을 마련했다. 현실의 식재료는 개량을 걸쳐 뛰어나고 맛좋은 품종이 많으니 비싸게 팔린다.

“저, 점소이! 나도 그와 같은 음식을 원합니다!”

“그, 손님. 익숙지 않은 음식이라 시간이 좀 걸립니다.”

“상관없습니다! 얼마든지 기다릴 테니 부디 내게 김치찌개를! 어서!”

신종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치고 있었다. 이해한다. 2년 동안 고향의 음식은 먹지도 못했을 것이다. 김치는커녕 배추도 못봤겠지.

“점소이. 이분을 위해 김치도 가져오도록.”

“아, 네.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나갔다. 신종우는 열망이 담긴 눈으로 내 테이블 위에 놓인 김치찌개를 빤히 쳐다봤다.

“종우가 그토록 흥분하는 건 처음 봤다. 종우의 고향 음식인가 보군.”

둔목정의 호기심 어린 눈이 내게 향했다.

“안 줄 겁니다. 먹고 싶으면 따로 시켜서 먹으십시오.”

“음. 그래야겠군.”

“신 소협의 고향음식이라…. 저도 맛이 궁금하군요.”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남궁린이 말했다. 식탁 앞에서도 삿갓과 면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목소리는 고왔다. 내 자지에 힘이 불끈 들어갈 정도로.

그들은 점소이를 불러 돼지김치찌개를 시켰다. 음식이 너무 많았으나,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세계의 돈 많은 부자들은 음식을 남길 정도로 시키는 게 당연했다. 버려지는 음식은 거지들이 알아서 치울 것이다.

나는 김치찌개 한 숟가락을 펐다. 붉은 빛깔의 국물과 김치가 예술적이다. 한입 가득 삼켰다. 김치찌개의 기운이 몸 전체로 싸악 퍼지는 기분이었다.

꿀꺽꿀꺽.

신종우는 날 보며 연신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부릅뜬 눈은 충혈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그렇다고 내 음식을 저 새끼한테 줄 의리는 없지.’

김치찌개를 다시 한 숟가락 떠먹고 새하얀 쌀밥을 입에 넣었다. 역시 백미와 김치찌개의 궁합은 백미였다.

“커흠. 거 맛있게도 먹는구만. 종우야. 다른 음식이라도 먹는 게 어떠냐?”

“아니요. 전 기다릴 겁니다. 제가 먹고 싶은 건 김치찌개입니다. 배터지게 먹을 겁니다.”

단호한 의지가 느껴지는 신종우의 말이었다.

“캬아!”

나는 열심히 김치찌개를 퍼먹었다.

드르르륵.

문이 열렸다.

신종우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안타깝게도 그가 기다리던 점소이는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은 10명이 넘는 무인들이었다. 모두 똑같은 무복을 입고 검을 착용했다. 오른쪽 팔뚝 부위에 남궁(南宮)이란 글자가 박혀 있다.

“어허. 갑자기 들어오더니. 이게 무슨 짓이오? 보아하니 남궁의 무인들 같은데, 왜 우리를 이렇게 무시하는 것이오?”

“죄송합니다, 어르신. 허나 이 일은 남궁세가의 어떠한 일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양해 바랍니다.”

가장 앞에 서 있는 무인의 태도는 완고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꼰대력이 느껴졌다. 나는 계속 식사를 이어갔다.

그는 남궁린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아가씨. 가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희와 함께 가문으로 돌아가시지요.”

“…아가씨라니, 무슨 말을 하시는 거죠? 남궁세가와 전 아무 관계도 없어요.”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씨. 다 알고 왔습니다.”

“전 남궁 쪽 사람이 아니에요. 돌아가 주세요.”

“가주님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오지 않으려 한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억지로 데려오라고. 저희는 아가씨께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습니다. 부디 협조해주십시오.”

“……하. 무력을 쓰면 날 데려갈 수 있다? 날 너무 얕보는군요.”

남궁린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한 성깔 하는 여자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아가씨…!”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이를 악물고는 검을 뽑아 들었다.

신종우가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걸, 둔목정이 그의 손목을 잡아 막았다.

“종우. 이건 우리가 참견해서는 안 되는 종류의 일이다.”

“…상대는 10명입니다. 린이 혼자 싸우게 내버려 두자는 말입니까?”

“너도 린의 정체는 대충 눈치채지 않았느냐. 이건 남궁가문의 일이다. 우리가 참가하면 일이 더 복잡해진다.”

“…….”

결국, 신종우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챙, 채채챙, 챙

검 부딪치는 소리가 울린다. 실력은 모두 뛰어났다. 당장 남궁린의 검술 실력만 따지면 나보다 위다. 내가 그녀와 싸우면 100합 이상 견딜 자신이 없었다. 남궁세가 무인들의 실력도 대단했다. 개개인의 실력은 남궁린에게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합격에 특화되어 있었다.

한 손이 열 손 못 막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남궁린의 실력은 압도적이지 않으니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

전투 중에 그녀의 삿갓과 면사가 떨어져 내렸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흑단같이 검은 머리카락과 새하얀 피부. 분홍빛이 도는 앙다문 입술. 확실히 화월루주보다 더 뛰어난 미모였다.

“허, 헉! 무사님들! 이러지 마십시오! 여긴 화월루입니다! 무사님들!”

김치찌개를 들고 오던 점소이들이 소리 질렀다. 그러나 이미 전투는 이미 심화되어 있었다. 힘이 없는 점소이로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남궁린의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검에 푸른색 검기가 불안하게 흔들린다.

“아가씨. 그만 포기하십시오. 저희는 10명입니다. 아가씨를 보고 싶어하는 가주님의 마음도 헤아려주십시오.”

“난 아직 돌아갈 수 없어! 설이를 구할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으니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자세를 되잡는다.

파지지직.

그녀의 검에 뇌전이 일어났다. 제왕신공(帝王神功)의 천뢰(天雷)다. 무인들이 긴장했다.

“린 아가씨! 대체 언제까지 어리광을 피우실 작정이십니까?!”

“어리광? 내가 하는 일이 고작 어리광이라고? 웃기지 말라 해! 가문이 아무것도 안 하니까 내가 방법을 찾아 움직이는 거잖아!”

“…죄송합니다. 아가씨. 방금은 실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아가씨는 무언가 오해를… 크윽! 마, 막아!”

남궁린의 검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그들을 몰아쳤다. 그들은 검을 세워 방어에 집중하고는 다시 남궁린에게 달려들었다.

남궁린의 장법이 어느 한 남자의 복부에 작렬한다. 남자의 몸이 붕 떠오르더니 점소이들의 몸과 부딪혀 바닥을 굴렀다. 김치찌개가 바닥에 엎어졌다.

그리고 신종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