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8화 〉 768. 광명승천도
768. 광명승천도
남궁린의 검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그들을 몰아쳤다. 그들은 검을 세워 방어에 집중하고는 다시 남궁린에게 달려들었다.
남궁린의 장법이 어느 한 남자의 복부에 작렬한다. 남자의 몸이 붕 떠오르더니 점소이들의 몸과 부딪혀 바닥을 굴렀다. 김치찌개가 바닥에 엎어졌다.
그리고 신종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쏟은 김치찌개를 보는 그의 얼굴은 분노와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신종우! 참아라! 참아! …이런 젠장. 눈이 아예 돌아버렸군.”
둔목정은 신종우를 말리는 걸 포기하고 방구석으로 이동했다.
“밥 먹을 때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다. 너희는 꼭 우리가 밥 먹고 있을 때 린을 데려가야 했나? 우리가 식사할 시간을 기다리는 건 어렵지 않았을 텐데!”
신종우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마기(魔氣)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마신공에 의한 마기 일 텐데, 내가 알고 있는 천마신공의 마기와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같은 이름의 천마신공이라고 해서 똑같은 천마신공이 아닌 것이다.
“마공을 익힌 놈이군. 경고하겠다. 여긴 안휘성이고, 우린 남궁세가의 무인이다. 기운을 거둬라.”
평범한 무림 세계였다면, 마기를 내보인 순간부터 길길이 날뛰었을 것이다. 허나 이 세계의 주된 배경은 선협물인 ‘광명승천도’다. 단지 마공을 익혔다고 해서 범죄자로 몰아가지 않는다. 이 세계는 마공도 무공으로 인정하고 있다.
키이이이잉.
신종우의 양손에 천마신공의 기운이 뭉쳐지며 구체를 이룬다. 신종우의 천마신공은 주먹과 기공을 주로 이용하는 마공이다.
“죽이지는 않겠다. 그러니 죽지 마라.”
“…어처구니없는 놈이군. 저놈을 제압한다. 아가씨의 동료다. 죽이지 말도록.”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지면을 박차고 움직였다.
신종우는 다리를 한 걸음 내디뎠다. 순간, 주위 공기가 무거워지고 몸속이 울렁거린다. 남궁세가의 무인들도 마찬가지인 듯 그들의 몸이 휘청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신종우는 방금 천마군림보를 사용했다.
“김치찌개의 원한. 여기서 갚겠다.”
신종우는 양손의 검은 구체를 터트렸다. 마기가 사방을 휩쓸고 지나간다. 나는 다급히 기운을 일으켜 몸을 보호했다. 다행히 늦지 않았다.
기운이 사라지고 드러난 광경은 장관이었다. 음식들은 사방에 떨어졌고, 남궁린을 포함해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널브러져 기절했다. 천장은 뼈대가 보일 정도로 떨어지고, 벽까지 허물어졌다.
둔목정이 내 곁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기운으로 몸을 보호한 건가. 알고는 있었는데 실력이 제법이군. 그나저나 이거 큰일이로군. 남궁세가를 건들었으니… 후우. 신종우 이 녀석은 냉정하면서도 가끔가다 폭탄처럼 터져서 문제다.”
“…….”
둔목정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창문 밖을 쳐다봤다. 수십 명이 넘는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보였다. 아주 작정하고 남궁린을 데려가려는 듯 했다.
‘이세계 천마 원작에서 이러지 않았는데…. 그리고 아까 남궁린이 말한 설은 또 누구야. 원작에서 나왔던가?’
내가 알기로 남궁린의 가출 이유는 강호행을 동경하여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 원작에서는 따로 검봉(劍鳳)이라 불렸으나, 여기선 아니었다.
‘5개의 창작물이 섞이다 보니 바뀐 게 많아. 원작에만 너무 의존하면 안 되겠어.’
곧 화월루주와 남궁세가 무인들이 들이닥쳤다.
일은 어찌어찌 해결됐다. 다만 나와 신종우, 둔목정은 남궁세가로 끌려갔다. 비록 포승줄에 묶이지는 않았지만, 남궁세가의 시선은 영 좋지 않았다.
???
남궁린은 눈을 뜨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윽.”
몸이 저렸다.
“아이구! 린 아가씨! 더 누워 계세요!”
옆에 있던 늙은 시녀가 호들갑을 떨었다. 남궁린이 아는 시녀였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돌봐주던 시녀 중 한 명이다.
“…마소.”
이름이 불린 늙은 시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네. 아가씨. 마소예요.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합니다…!”
“마소. 어떻게 된 거야. 설명 좀 해줘.”
“무인들이 아가씨를 모셔오셨어요. 몸에 상처는 없었지만, 무리하셨는지 많이 피곤하실 거예요.”
“맞아. 피곤해. …나와 같이 있던 그들은? 설마 죽인 건 아니지?”
“아유. 걱정 마세요. 가주님의 명령으로 손님으로 대접받고 있으니까요.”
남궁린은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죽었더라면 자신은 평생 죄책감을 느끼고 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설이는?”
“설이 아가씨는….”
마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것만으로 남궁린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설이를 만나야겠어.”
“리, 린 아가씨! 우선 가주님을 먼저 만나는 게 맞아요!”
“아니야. 설이가 더 먼저야.”
남궁린이 침대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문이 열리고 한 남성이 들어왔다. 30대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옷을 정갈하게 입었고, 짧게 턱수염을 길렀다. 차분한 눈동자가 남궁린에게 향한다.
남궁호천. 남궁린의 아버지이자 남궁세가의 현 가주였다. 마소는 남궁호천에게 인사하며 다급히 밖으로 나갔다.
방안에는 부녀만이 남았다.
“아버지…”
“이럴 줄 알고 내가 찾아왔다. 몸은 괜찮으냐?”
“괜찮아요. 나중에 대화하면 안 될까요? 우선 설이를 만나고 싶어요.”
“오랜만에 보는 아비에게 매정하구나. 그리고 설이는 네가 걱정할 필요 없다.”
“설이는 이대로 있으면 죽어요!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남궁설이 눈살을 찡그리며 외쳤다. 목소리에는 오래 묵은 분노가 담겨 있다.
“린. 설이도 내 딸이다.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고 생각하느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네가 아니더냐?”
“전 설이를 구하기 위해 가문을 나갔어요! 드넓은 천하에는 설이를 구할 방법이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아버지가 한 건 뭐죠?! 그저 영약만 설이에게 먹였을 뿐이잖아요!”
“설이가 조금이라도 오래 살려면 영약이 필수다. 그런데 네가 한 것은 무엇이냐. 설이를 구할 방법을 찾기 위해 가문을 나가? 그래서 찾았느냐? 가문을 나서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더냐? 세상이 그리 만만해 보였더냐?”
“조,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소득이 있었을 거예요!”
“변명하지 말거라. 네게 4년이란 시간을 주었다. 나는 충분히 많은 시간을 주었다. 거기에 네가 무사히 강호행을 할 수 있었던 게 모두 네 힘이라고 생각하느냐?”
“……설마. 제 뒤에 사람을 붙인 건가요?!”
“강호는 위험한 곳이다.”
“……!”
남궁설이 이를 으득 갈았다. 그녀는 맹렬히 남궁호천을 노려봤다. 허나 남궁호천은 안색 하나 바꾸지 않았다.
“설이의 치료법을 찾았다.”
두 눈이 커진다.
“그, 그럴 리가.”
“이 아비를 좀 믿어라.”
“어떤, 어떤 방법이죠? 영약으로는 설이를 살릴 수 없을 텐데요!”
“영약이 아닌 다른 방법이 있다. 다만 현실적이지 않아 묻어 뒀을 뿐이다만…. 어떻게 보면 네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구나.”
“…내 덕분? 그게 무슨 소리죠?”
“너와 함께 있던 남자가 그 답이었다.”
“……신 소협 말인가요? 확실히 신 소협은 신기한 남자죠. 신 소협의 그 상식을 달리하는 마공이라면…!”
남궁린은 신종우라면 가능하다고 저도 모르게 납득했다. 지금껏 보아온 신종우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신기한 남자였으니까.
그러나 남궁호천은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신 소협? 내가 말하는 남자는 마공을 쓰는 그 남자가 아니다. 성유진이란 이름의 사내다.”
“…그 남자요? 그 남자가 대체 왜?”
어리둥절한 남궁린을 보며 그는 차분히 설명했다.
“…짧게 설명해 줄 테니 듣거라. 나는 낙월산에 올라 낙월신녀에게 방법을 물었다. 오래전부터 그 명성이 자자한 낙월신녀라면 설이를 구할 방법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리고 그 생각은 적중했다. 낙월신녀는 3가지 조건과 함께 도와주기로 했다.”
“그분이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설이를 구할 방법이 어떤 것인지 자세히 말해줘요. 그리고 그분이 건 조건은 뭐죠?”
“그건….”
그는 한숨을 내쉬며 낙월신녀가 말한 방법과 조건을 말했다. 남궁린은 점점 경악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남궁호천의 배에 주먹을 내질렀다. 남궁호천은 피하지 않고 딸의 주먹을 맞았다.
???
나는 침상에 누워있는, 방금 잠든 남궁설을 쳐다봤다.
남궁린의 동생, 남궁설.
그녀는 작은 체구의 여자였다. 성인식은 이미 훨씬 옛날에 지났다고 하는데 몸은 꽤 어려 보였다. 남궁린이 청순하면서도 건강한 미녀라면, 남궁설은 병약하고 가련한 미녀였다. 현실의 박수호의 동생인 박가인과 비슷한 분위기다.
머리카락은 백발이고 두 눈은 붉은색이다. 흔히 말하는 알비노, 백색증이다. 눈썹까지 전부 하얗다.
남궁설은 구음절맥이다.
‘원래는 타락천마에 나오는 등장인물로 백리설일텐데.’
원작, ‘타락천마’에서 백리설로 나온다. 그녀는 주인공의 도움을 받아 구음절맥에서 회복하게 되고, 백리세가의 가주가 되어 주인공을 몰심양면 돕는 조연이다.
그런데 그녀는 백리세가가 아니라 남궁세가의 남궁설이다. ‘타락천마’의 원작이 뒤틀린 것이다. 뭐, 이제 와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크크. 설마 내가 남궁설과 약혼하게 될 줄이야.’
남궁세가는 구음절맥의 치료법을 찾았다. 음양조요대법(陰陽照耀大法).
간단히 설명하자면 순도 높은 양기를 가진 남자와 섹스를 통해 구음절맥의 음기를 중화시키는 것이다. 다만 대법이라 불리는 만큼 그냥 섹스 해선 효과가 없다. 음양조요대법을 하려면 구월신녀의 도움이 필요하다.
‘약혼은 이미 확정이야.’
남궁세가주인 남궁호천과 이야기를 끝냈다. 남궁세가의 데릴 사위가 되겠지만, 내겐 나쁜 일이 아니었기에 바로 받아들였다. 공짜로 미녀를 따먹고 남궁세가라는 배경도 생기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남궁설도 허락했지.’
살짝 백치미가 느껴지는 남궁설은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받아들인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추측하기로는 가문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나는 침상에 누워있는 남궁설의 머리카락을 잡았다. 은발과는 다르다. 그 어떠한 색깔도 없는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이었다. 내 손은 점점 위로 올라가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오늘부로 남궁설은 내 것이다. 아직 정식으로 혼인을 한 건 아니지만, 남궁호천은 절대 남궁설을 포기하지 않을 테니 조만간 진행될 것이다. 내 손은 그녀의 가슴팍으로 향했다. B컵. 아쉽긴 한데 자세히 보면 작기만 한 크기도 아니었다.
후다다닥.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남궁린이었다. 그녀는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다, 당장 떨어져…! 이 빌어먹을 강간마야!”
“처형. 갑자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전 설이의 남편입니다.”
“웃기지 마, 혼인은커녕 정식으로 약혼한 것도 아니잖아!”
“그것도 곧 조만간입니다. 약혼을 파기해도 전 상관없습니디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
약혼을 파기하면 남궁설은 죽는다. 순도 높은 양기를 가진 남자, 즉 정력이 나만큼 뛰어난 남자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쉽게 찾을 수 있었다면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벌써 찾았겠지. 크크.’
남궁린의 굳어진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남궁설의 희망은 오직 나뿐이다. 내 손은 남궁설의 가슴부위로 움직인다. 한 번 잠든 남궁설은 소란에도 잘 일어나지 않았다.
“멈춰! 지금 자는 애한테 뭐하는 거야?!”
“설이가 답답해 보여서 그랬습니다. 자꾸 간섭하지 마시죠.”
“나는, 나는 인정 못 해! 기루에서 놀고먹기만 하는 너 따위가 남궁설의 남편이라니!”
“처형이 인정못하면 어쩔 겁니까? 절 죽이기라도 할 겁니까?”
“이. 이익!”
남궁린이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었다. 나를 죽인다는 건 남궁설을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뭐, 이대로 남궁설을 따먹을 생각은 원래부터 없었어. 적어도 정식으로 약혼을 한 뒤에 따먹어야 탈이 없으니까.’
남궁린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한 게 내 별호는 색류공자다. 남궁린의 내 평가는 아마 땅에 처박히다 못해 지하 끝까지 내려갔으리라.
“처형. 자꾸 그러시면… 설이에게 화풀이를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너 진짜…! 그러고도 네가 무사할 줄 알아?!”
“물리적으로 뭔가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설이가 제 아내가 되면 이야기는 다릅니다. 설이에게 지옥의 신혼생활을 선사해줄 수 있죠. 착한 설이는 남궁세가에게 알리지도 않을 테고요. 크크.”
남궁린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남궁설이라면 괴롭힘을 당해도 꿋꿋하게 견딜 것이라는 걸 그녀도 알 것이다.
“하, 하지 마. 부탁이야. 제발 설이 만큼은….”
“크크. 좋습니다, 처형. 단, 조건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