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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69 - 769. 광명승천도 (549/2,000)

〈 769화 〉 769. 광명승천도

769. 광명승천도

“하, 하지 마. 부탁이야. 제발 설이 만큼은….”

“크크. 좋습니다, 처형.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긴장한 남궁린이 나를 쳐다본다.

벗어라. 그리고 내게 몸을 바쳐라,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남궁린이 어디 보통 여자인가. 너무 강한 요구를 하면 반발하게 분명하다. 그러니 처음엔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서 수위를 높여 간다.

“앉으십시오.”

“뭐?”

“그 자리에 쪼그려 앉으라고.”

명령하듯 말했다. 남궁린이 눈이 날카로워졌다.

“무슨 꿍꿍이야?”

“남궁설을 건들지 않는 대신 네가 날 재밌게 해줘야지. 고작 쪼그려 앉으라고 했을 뿐인데 그것도 못 해? 하기 싫으면 하지 마. 처형이 아니더라도 남궁설이 날 즐겁게 해줄 테니까.”

나는 다시 손을 뻗어 잠든 남궁설의 어깨를 잡았다.

“아, 알았어.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설이에게서 손 떼.”

손을 떼고 남궁설을 쳐다봤다. 남궁설은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가 내가 말했던 대로 쪼그려 앉았다.

남궁린은 분명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옷을 벗는 것도 아니고 내가 몸을 만지는 것도 아니고 겨우 쪼그려 앉는 것뿐이라고.

그러나 이미 내 명령을 따른 순간부터 내가 그녀 위에 있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결정 났다. 그녀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말이다.

“일어서.”

“…….”

남궁린이 일어났다. 나는 아쉬움을 느꼈다. 남궁린을 옷으로 몸을 꽁꽁 감추고 있었다. F컵에 달하는 풍만한 가슴도 움직일 때 잘 흔들리지 않는다.

“앉아. 일어서. 앉아. 일어서.”

“…….”

남궁린은 내 말에 군말하지 않고 따랐다. 그러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 불만이 가득하다.

“머리 뒤에 양손을 올려.”

“…언제까지 이런 웃기지도 않는 짓을 할 거지?”

“처형은 재미없겠지만, 난 재밌어. 빨리 머리 뒤에 양손을 올려. 옷을 벗으란 것도 아니고, 그 정도도 못해?”

“크윽….”

그녀의 얼굴이 굴욕으로 일그러졌다. 남궁린은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내가 명령했던 대로 머리 뒤로 양손을 올렸다. 겨드랑이가 열리고 가슴이 강조되어 커진 것처럼 보인다. 옷을 벗고 있었다면 내 자지는 벌써 벌떡 섰을 것이다.

“그 상태로 앉아. 일어서.”

나는 남궁린에게 계속 명령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처음에는 싫은 표정을 짓다가 10분 정도가 지나자 무표정하게 내 명령을 따랐다. 물론 나를 향한 적의는 여전했다.

“…설마 내가 지치기를 바라는 거야? 그런 생각이라면 관둬. 겨우 이런 거로 지치지 않으니까.”

그런 거라면 나도 알고 있다. 나와 비슷한 실력을 갖춘 남궁린이다. 이런 단순한 운동으로 체력이 고갈되려면 하루 온종일 쉬지 않고 해야 한다. 그리고 내 목적은 그녀를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알고 있어. 내가 원하는 건 남궁세가의 직계인 남궁린이 내 말에 거절하지 못하고 따른다는 거지. 넌 이게 얼마나 재밌는지 모를 거야.”

이후로 30분 더,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해서 시킨 나는 남궁린의 앞으로 다가갔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오늘은, 이라고?”

“그럼 이것만으로 끝날 거라 생각하셨나? 이렇게 재밌는 일을? 뭐, 네가 꼭 안 해도 돼. 설이가 대신하게 될테니 말이야.”

“……내가 하겠어. 설이는 건들지 마. …부탁이니 설이에겐 좋은 남자로 있어 줘.”

“그건 네가 하는 것에 달렸지. 가만히 있어.”

남궁린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쓰다듬는다. 마치 주인이 애완동물을 쓰다듬는 것처럼. 물론 성감 고조를 사용한 상태였다.

짜악!

남궁린이 내 손을 쳐내며 일어났다.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내 손목이 욱신거렸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으르렁거린다. 그녀로부터 느껴지는 살의는 진짜였다. 허나 어디까지나 허세일 뿐이다. 남궁린은 나를 죽일 수 없다. 그녀의 아끼는 여동생인 남궁설의 목숨이 내게 걸려 있는 이상, 나는 그녀보다 우위에 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이게 무슨 짓이지?”

“어디서 적반하장이야?! 내가 우습게 보여?”

“적반하장은 너다. 봐주는 건 이번뿐이다. 계속 이렇게 나오면 남궁설의 미래는 지옥이 될 거란 걸 잊지 마라.”

목소리를 깔고 남궁린을 노려봤다. 남궁린이 흠칫 놀라며 내게서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시선은 침상에 누워 있는 남궁설에게 향했다가 다시 내게 향한다.

“……내가 잘못했어. 설이는 건들지 마.”

나는 다시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내 손을 쳐내지 않았다. 다만 사람 죽일 듯한 눈초리로 날 노려볼 뿐이었다.

“내일 아침에 보자.”

“…….”

나는 남궁린을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

남궁린은 우울하게 아침을 시작했다. 늙은 시녀의 시중을 받아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 가문의 어르신에게 아침 문안 인사를 하고 남궁설의 방으로 향했다. 남궁설은 깨어나 있을 것이다. 자신과 다르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게 습관인 아이니까.

“린 아가씨. 오셨습니까.”

남궁설이 머무는 별채 앞에 한 여인이 남궁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남자처럼 짧은 머리카락에 까무잡잡한 피부의 여걸이다.

남성스러움이 물씬 풍겨오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남자로 보인다는 건 아니다. 무공으로 단련된 탄탄한 몸매와 봉긋 솟은 가슴과 탄력적인 엉덩이는 여성스러움을 물씬 풍긴다. 본인은 그 여성스러움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녀의 이름은 남궁구하(南宮九夏). 남궁가의 방계이고, 남궁설의 호위무사다.

“오랜만이야. 구하. 4년 만이지? 못 본 사이에 더 강해졌네.”

“과찬입니다. 아가씨께서도 더 의젓해지신 것 같습니다.”

“설이는? 설이랑 같이 아침 식사를 하고 싶은데. 일어나 있지?”

“예. 설이 아가씨는 일어나 계십니다만….”

남궁구하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어딘가 쭈뼛거리는 그 태도에 남궁린은 불안감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남궁구하가 왜 입구에서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녀는 남궁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호위해야 정상이다.

“……누군가 이른 아침부터 설이를 찾아왔구나?”

“네. 선객이 계십니다. 린 아가씨. 죄송한 말입니다만, 아침 식사는 다음에….”

“성유진이지?”

“…네. 설이 아가씨의 약혼자이신 성 소협과 식사를 하고 계십니다.”

남궁린은 이를 악물었다. 한 걸음, 한걸음에 힘이 실리며 땅이 쿵쿵 울린다. 남궁구하가 그녀의 앞에 막아섰다.

“구하, 비켜.”

“린 아가씨. 약속해주십시오. 소란을 피우면 안 됩니다. 성 소협은 설이 아가씨의 부군이 되실 분입니다.”

“구하! 넌 성유진이 얼마나 쓰레기인지 몰라? 저 남자의 별호가 색류공자야! 색류공자!”

“압니다! 제가 아가씨의 부군이 될 남자에 대해 조사 한 번 안 해봤을 것 같습니까?!”

“알면서도 그 남자랑 설이를 둘이 내버려 뒀다고?!”

남궁린이 발끈하며 외쳤다.

“설이 아가씨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리고 성 소협이 아니면 설이 아가씨는 앞으로 3년도 버티기 힘듭니다! 성 소협은 설이 아가씨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가주님도, 장로님들도 그걸 알기에 어쩔 수 없이 성 소협을 받아들인 겁니다!”

“…….”

열변을 토하는 남궁구하를 보며 남궁린은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도 성유진의 필요성은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에서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어. 성유진이 희망이란 것쯤은 나도 잘 아니까. 비켜줘.”

“……네. 린 아가씨. 전 린 아가씨를 믿습니다.”

구하가 비켰다.

남궁린은 별채 안으로 들어가 곧장 남궁설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남궁린은 저도 모르게 기척을 숨기고 살짝 열린 문틈으로 방안을 살펴봤다.

성유진과 남궁설은 식탁 앞에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몸이 나으면 가장 해보고 싶은 게 뭐야?”

“청해를 보고 싶어.”

청해. 바다가 아니라 청해호(?海湖)를 말한다. 진제국에서 가장 큰 호수인데, 바다처럼 넓다고 해서 청해라 불린다. 청해는 바다는 아니지만, 물이 짠 소금 호수다.

“청해 말이지. 좀 먼 곳에 있네.”

“응. 너무 멀리 있어서 몸이 안 좋은 나는 가가(哥哥)가 없었다면 평생 갈 엄두도 못 냈을 거야.”

“간다고 안 했는데.”

“가가…. 안 갈 거야?”

남궁설이 그 붉은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성유진이 피식 웃더니 남궁설의 새하얀 머리카락에 손을 얹었다.

“네가 가고 싶다면 가야지. 근데 지금은 못 가는 건 알지?”

“응. 그래도 기다릴 수 있어.”

“밥은 더 안 먹고?”

“배불러.”

“오호. 절반도 안 먹었는데 배부르시다? 어디 확인 한 번 해볼까.”

“앗, 가가….”

남궁린은 두 눈을 부릅떴다. 성유진의 손이 남궁설의 상의를 살짝 풀어헤치더니 맨손으로 배를 쓰다듬는 것이었다. 남궁설은 당황하면서도 어쩔 줄 몰라 성유진의 손길을 허락했다.

언니로서 참을 수 없었다. 남궁린은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린 언니?”

“성유진! 당장 설이에게서 떨어져!”

성유진은 피식 웃었다. 떨어질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남궁설의 배를 쓰다듬었다.

“흐우으….”

남궁설이 작은 신음을 흘렸다. 기분 나빠서 나오는 신음이 아니라, 반대로 기분 좋아서 저도 모르게 흘리는 신음이었다. 물론 남궁린에겐 믿고 싶지 않은 일이다.

“떨어지라고 했어!”

남궁린의 목소리가 한층 표독스러워졌다.

“처형. 갑자기 쳐들어와서 소리 지르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십니까?”

남궁린은 남궁설이 있다고 존댓말을 하는 성유진이 가증스러웠다.

“지금 설이를 희롱하고 있잖아! 설이는 네 노리개가 아니야!”

“압니다. 제 약혼자죠. 연인 이상의 관계죠. 저희가 이러는 건 아무 문제 없습니다. 설이도 싫어하지 않고요. 그렇지?”

“…….”

남궁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유진이 남궁설을 잡고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품 안에 안긴 남궁설은 고개를 올려 멀뚱히 성유진을 쳐다봤다. 그는 느긋하게 남궁설의 작은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저희가 입맞춤을 하든, 말든 처형이 끼어들 틈은 없다는 겁니다.”

“가가….”

성유진의 얼굴과 남궁설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진다.

“아아아아아!”

남궁린은 그 모습을 보다 참지 못하고 성유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의 주먹이 성유진의 뺨을 갈긴다. 성유진은 일부러 피하지 않고 남궁설과 함께 나자빠졌다.

“가가…!”

남궁설이 벌떡 일어나 성유진의 상태를 살폈다. 한쪽 뺨이 빨갛고 코와 입술에서 피가 났다. 남궁설은 싸늘한 표정으로 남궁린을 쳐다봤다.

“린 언니. 갑자기 들어와서 이게 무슨 짓이야? 성 가가 한테 사과해.”

남궁린은 흠칫 놀랐다. 그동안 남궁설이 이토록 화내는 건 처음 있던 일이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있는 남궁설은 화낼 줄 모르고, 착하고 여리기만 한 작은 여동생이었다.

“서, 설아. 이, 이건 모두 널 위해서….”

“날 위해서? 성 가가는 내 약혼자야. 언니가 가가를 때릴 이유는 없어.”

“그 놈은…, 그 놈은 질이 좋지 않아. 네게 어울리지 않는 남자야.”

“나는 가가가 있어야 살 수 있어. 가가랑 나는 천생연분이야. 그리고 가가는 언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야.”

그녀는 남궁설의 말에 머리가 어질거렸다. 도대체 성유진이 어떤 수작을 부렸길래 남궁설이 이렇게 반응하는 것일까.

“그 남자가 밖에서 어떻게 불리는지 알아? 색류공자야. 질이 좋지 않은 놈이라고!”

“알아. 하지만 그게 가가를 때릴 이유는 되지 않아. 지금 나쁜 사람은 가가 아니라 언니야.”

“…설아….”

“가가에게 사과해. 사과하지 않으면 앞으로 언니랑 평생 이야기하지 않을 거야.”

남궁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사랑하는 여동생의 말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사과하자.

그저 말만 하는 사과라면, 여동생을 위해서라면 고개 정도는 숙일 수 있다.

남궁린은 눈을 뜨고 성유진을 쳐다봤다가 흠칫 놀랐다. 성유진은 남궁설의 등 뒤에서, 그 어느 누구보다 비열하게 웃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그 머리를 주먹으로 치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으나, 여동생의 분위기가 더 차가워지고 있었다. 남궁린은 성유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성유진. 내가 너무 흥분했었어.”

“아. 이해합니다. 용서하지요. 처형. 가족이 될 사이인데 벌써부터 얼굴을 붉히면 서로에게 안 좋지요.”

성유진이 손을 뻗어 남궁설의 어깨와 옆구리를 만지작거린다. 남궁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데 처형. 사과할 일이 하나 더 있지 않습니까?”

“…나는 다른 잘못은 하지 않았어.”

“약속을 어기지 않았습니까. 저랑 아침에 만나기로 한 약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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