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1화 〉 771. 광명승천도
771. 광명승천도
남궁린은 점심시간이 되어 남궁설의 별채에 향했다. 남궁설과 성유진. 이 둘과 함께 셋이서 점심식사를 한다. 점심은 갈비찜이라는 음식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지만, 부드러운 고기와 짭조름한 양념의 맛에 손이 멈추지 않았다.
“가가. 배불러.”
남궁설이 젓가락이 내려놓았다.
“벌써? 아직 조금밖에 못 먹었잖아.”
“배불러서 못 먹어. 봐봐.”
남궁설이 배를 내밀었다. 사실 그녀의 복부는 별로 나오지도 않았다. 남궁설은 성유진이 잘 볼 수 있게 상의를 풀어 배 부분을 보여주었다. 하얗고 귀여운 배꼽이 보였다. 남궁린은 경악했다.
“서, 설아! 지금 이게 무슨 짓이니?! 어서 옷으로 가려!”
남궁린이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남궁설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괜찮아. 여긴 언니랑 성 가가 밖에 없잖아.”
“그래도 이건 예의가 아니야!”
“성 처형. 너무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설이의 말대로 이곳에 우리밖에 없지 않습니까. 어디….”
성유진은 오른손을 뻗어 남궁설의 매끈한 배를 만졌다.
“오. 배가 빵빵한데? 진짜 배가 부른 모양이네.”
“응. 배불러…. 후으…. 가가의 손은 기분 좋아.”
남궁설이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성유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남궁린은 저도 모르게 남궁설에게 공감했다. 성유진의 성격을 둘째치고 이상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지거나, 배를 만져지면 몸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잘못 생각한 거야.’
남궁린은 자신의 생각을 부정하며 성유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성유진에게 바로 따질 수는 없었다. 언성을 높이면 남궁설이 화를 낼 것이다. 화를 내더라도 남궁설이 없는 곳에서 내야 한다. 남궁린은 시간이 지나길 바라며 초조하게 다리를 떨었다.
“가가. 머리도 쓰다듬어줘.”
“그래.”
알콩달콩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성유진과 남궁설은 약혼한 사이니까. 하지만 지켜보고 있는 남궁린은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강제로 둘을 떨어뜨리기엔 명분이 없었다. 예의범절을 들먹여도 씨알도 통하지 않으니.
점심 시간이 끝났다. 성유진은 자신의 별채로 돌아갔다. 남궁린은 성유진의 별채로 떠나기 전에 잠시 남궁설과 이야기를 나눴다.
“설아. 성 소협과 넌 아직 약혼 관계일 뿐이야. 그렇게 함부로 맨살을 만지게 해주면 안 돼.”
남궁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가가와의 결혼은 이미 확정이니 괜찮아. 어제는 가가의 어머님과 할아버님도 만났는걸.”
“그건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남들의 시선이란 게 있잖아.”
“남들 앞에선 안 그래. 언니 앞이니까 그러는 거야.”
“그 말은 기쁘긴 한데….”
남궁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순수한 남궁설은 자신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성 소협이 다른 짓은 안 했지?”
“다른 짓?”
“몸의 다른 곳을 만지거나 말이야. 예를 들면… 가슴이나 그, 다리 사이의 중요한 곳이나.”
“그런 적은 없는데. 다리는 만져 줬어.”
남궁린의 얼굴이 급속히 냉각되었다.
“…다리? 설마 맨다리는 아니겠지?”
“맨다리야. 이상하게 가가가 만져주면 몸이 기분 좋아져.”
“…….”
남궁린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에게 성유진은 자기 욕구를 채우기 위해 순진한 여동생은 속이는 놈팡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부부가 되면 그보다 더한 일을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애초에 약혼을 하는 이유도 성유진이 가진 엄청난 양기 때문이니까.
그러나 성유진과 남궁설은 아직 부부가 아니었다.
지금도 이렇게 대하는데 부부가 되면 성유진의 태도가 바뀔까? 남궁린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심해지겠지. 성유진이 괜히 색류공자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린 언니?”
남궁설이 순진한 눈으로 남궁린을 올려다봤다.
‘이렇게 착한 아이인데… 왜 그딴 놈과…!’
남궁린은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만 갈게. 저녁도 같이 먹자. 괜찮지?”
“응.”
그녀는 남궁설의 별채를 나와 아무도 모르게 성유진의 별채로 이동했다.
성유진은 의자에 앉아 남궁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하는 듯한 태연한 얼굴을 보니 부아가 치밀었다.
“약속과 다르잖아!!”
“약속?”
“나는 네 조건대로 네 말을 따랐어! 그런데 왜 설이를 건든 거야?!”
“뭔가 착각하는 모양이군. 난 설이를 건들지 않았어. 아까 설이의 배를 만진 것 때문에 그래? 그건 설이가 먼저 만져달라고 한 거라고.”
“설이에게 들었어. 설이의 맨다리도 만졌다며?! 그리고 설이가 만져달라고 해서 네가 그렇게 만지면 안 되지! 내가 무엇 때문에 네 명령을 듣고 있는데!”
남궁린이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살기까지 보였다. 허나 성유진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다.
“아. 그런가. 그게 마음에 안 들었나?”
“지금 그게 말이라고…!”
남궁린은 남궁세가의 직계만이 익히는 게 가능한 제왕신공(帝王神功)을 전력으로 운용했다. 그녀는 때로는 이성보다 감성이 먼저 나갈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성유진에게 한 방 먹여 주지 않고는 못 버틸 것 같다.
파지지지직.
제왕신공의 천뢰가 담긴 주먹이 성유진의 얼굴을 노린다.
성유진의 반응은 느렸다. 분명 주먹이 닿기 일보 직전까지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유진은 믿기 힘든 속도로 머리를 뒤로 빼고 왼손을 들어 그녀의 주먹을 잡았다.
그녀는 당혹스럽긴 했으나, 제왕신공의 천뢰를 믿었다. 천뢰가 이제 놈의 몸으로 이동해 감전시킬 것이다.
“찌릿찌릿하군.”
남궁린이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뭔가 일이 틀어졌다. 그녀는 성유진의 손을 뿌리치고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허나 그보다 앞서 성유진의 손에서 전류가 흘러들어왔다. 제왕신공의 천리와는 다른 종류의 뇌기(雷氣)였다.
“……!!”
남궁린은 뇌전에 저항할 수 없었다. 출력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감전당한 그녀는 온몸의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온몸의 근육이 풀리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느낌이다. 이상하게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하루아침에 남궁세가의 데릴사위가 된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뭐, 아직 결혼은 한 건 아니다만.”
“…….”
남궁린은 입을 떼고 싶어도 뗄 수 없었다.
하지만 성유진의 말은 꽤 큰 충격이 되었다. 아무리 그가 남궁설을 살리는 데 중요하다고 해도 남궁세가가 그냥 바로 받아들이는 건 깊게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남궁설의 아버지이자, 가주인 남궁호천이 허락하더라도 장로들이 바로 허락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녀는 장로들이 얼마나 꼬장꼬장한 지 대충 알고 있었다. 단지 남궁설을 구한다는 이유만으로 간단히 그를 남궁세가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뇌령(雷靈)이야. 남궁세가는 내 재능을 인정한 거지.”
뇌령.
번개의 기운을 타고난 자를 일컫는 말.
그의 말대로라면 남궁세가는 성유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의 재능은 진짜니까. 특히 뇌령이라는 점이 장로들의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남궁세가의 상징은 검, 하늘, 번개니까.
“너는 내가 남궁설의 배도 만지지 말고, 다리도 만지지 말기를 원하는 거지? 설마 그 정도로 깐깐할 줄 몰랐는데…. 좋아. 앞으로는 남궁설의 몸을 만지지 않을게. 대신, 네 몸을 만지게 해줘야겠어.”
“……!!”
남궁린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 허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전신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는다.
성유진은 남궁린을 뒤집었다. 그리고 상의의 옷을 살짝 풀었다. 풍만한 가슴이 출렁였다. 가슴가리개가 있어 가슴이 전부 노출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성유진은 그녀의 가슴을 힐끗 보다가 매끈한 배에 손을 얹어 쓰다듬었다.
남궁린은 당장 성유진을 때려죽이고 싶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무엇보다 더 짜증 나는 건 그의 손길에 저도 모르게 편안함을 느낀 것이다.
쪼르르르르.
“……!!”
남궁린은 사타구니가 젖어가는 게 느껴졌다. 낭궁린이 실금한 것이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기 위해 애를 썼다. 제왕신공도 사용했다. 그러나 몸은 움찔 움찔거릴 뿐이었다.
성유진은 웅덩이가 만들어지는 바닥을 내려다봤다.
“이거 참. 남의 방에서 오줌을 지리다니…. 배변 운동도 시켜줘야 하나?”
“…….”
남궁린의 얼굴은 새빨개졌다.
“걱정 마. 내 앞에서 오줌을 지렸다는 걸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 …지금도 지리고 있는데 대체 얼마나 참았던 거야?”
남궁린은 수치스러워 죽고 싶어졌다. 아니, 성유진을 죽이고 자신도 자결하고 싶었다. 성유진의 손이 배에서 그녀의 머리 위로 움직였다. 항상 그러했던 것처럼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지금은 여기까지로 하지. 대신 저녁 식사 전에 나를 찾아와.”
남궁린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성유진의 손길에 무심코 편안함을 느낀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성유진은 실금이 멈췄는데도 한동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졌다.
남궁린이 일어난 건 그로부터 5분 뒤였다.
???
남궁린은 저녁 식사 전에 찾아오라는 성유진의 말을 어겼다. 저녁 식사도 걸렸다.
성유진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성유진에게 계속 끌러가면 안 돼. 상황을 바꿔야 해. 차라리 성유진을….’
성유진을 물리적으로 제압하고 지금 이 관계를 바꾼다. 성유진이 자신에게 협박하는 관계가 아니라, 자신이 성유진을 협박하고 감시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선제조건은 성유진을 제압해야 한다는 것.
‘점심때는 내가 방심했어. 성유진에 관해 너무 몰랐어. 성유진이 뇌령이란 사실을 알았으니… 대비하고 다시 싸운다면 내가 이길 거야.’
남궁린은 실력에 자신 있었다. 남궁세가의 힘을 등에 업어 어렸을 때부터 온갖 영약과 우수한 무인의 지도를 받아온 그녀다. 또래 중에서 이기지 못할 사람은 신종우를 제외하고 없다고 자신한다. 신종우는 상식 밖에 있는 사람이니까.
‘오늘 밤에 실행하자.’
남궁린은 행동력이 뛰어났다.
그러나 그녀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남궁설의 별채였다. 저녁을 같이 먹자고 약속했는데 무시하게 됐다. 남궁설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다.
“린 아가씨. 멈춰주십시오.”
남궁설의 호위무사인 남궁구하가 그녀를 막아섰다.
“…구하. 왜 또 막는 거야? 난 설이에게 사과하러 왔을 뿐이야.”
“죄송합니다. 지금은….”
남궁린은 두 눈이 커졌다. 남궁구하의 어깨너머, 반짝반짝 빛나는 별빛 아래에서 서로를 껴안고 입을 맞추고 있는 남궁설과 성유진이 보였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성유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은근슬쩍 손을 움직이더니 남궁설의 봉긋한 가슴을 손으로 주물렀다.
남궁린의 이성이 뚝 하고 끊어졌다.
“성유진…!!!”
남궁린이 뛰쳐나가려는 것을 남궁구하가 그녀의 어깨와 허리를 잡으며 막았다.
“린 아가씨! 진정하십시오! 제발!”
“린 언니?”
성유진가 멀어진 남궁설이 멍한 눈동자로 남궁린을 쳐다봤다. 곧 그녀의 미간이 천천히 구겨졌다.
“여기까지인가 보네. 다음에 보자. 설아.”
“…네. 가가.”
성유진은 남궁린을 보며 비열하게 웃었다. 그 의미를 눈치챈 남궁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검을 놔두고 왔다는 게 한스러울 뿐이었다.
성유진은 그녀를 지나치며 전음을 남겼다.
“내가 저녁 식사 전에 오라고 했잖아. 약속을 어기면 안 되지. 내일은 해가 뜨기 전에 찾아와. 안 오면…. 크크.”
남궁린은 몸을 떨었다. 그녀의 안색은 창백했다. 이건 보복이었다. 자신이 성유진의 말을 어겨서, 성유진이 남궁설에게 보복한 것이다. 이번은 입맞춤과 가슴을 만지는 것으로 끝났지만…. 이 다음에는? 상상만으로 끔찍하다.
“언니. 대체 왜 그러는 거야?”
화난 남궁설이 그녀의 앞에 다가와 물었다. 말투는 조곤조곤했지만,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나는… 설이 널 위해….”
“언니는 꼭 날 방해하는 것 같아. 혹시 언니는 내가 죽기를 원하는 거야?”
“아니야! 내가 그럴 리 없잖아! 나는 단지…, 단지… 네가 걱정돼서….”
남궁린의 두 눈에 눈물이 흐른다. 남궁설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양팔을 벌려 남궁린을 안았다.
“언니. 난 괜찮아. 성 가가는 좋은 사람이야. 린 언니가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어. 이거 봐봐. 성 가가가 준 노리개야. 예쁘지?”
남궁설의 손에 들린 붉은 노리개가 흔들렸다.
남궁린은 불길한 상상을 했다. 남궁설이 성유진의 노리개가 되어 이리저리 망가지는 상상. 남궁린은 남궁설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불쌍한 내 동생….’
“린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