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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76 - 776. 광명승천도 (556/2,000)

〈 776화 〉 776. 광명승천도

776. 광명승천도

“…호오. 내 정체를 알아냈군. 보통이 아닌 놈인 건 알고 있었다만, 생각보다 유능하군. 종우가 말했나?”

“어떨 것 같습니까?”

“몰라서 묻나? 당연히 종우가 말했을 리 없다. 그놈은 입이 무거운 놈이다. 지나치게 무거운 놈이지.”

“예. 맞습니다.”

이간질을 하려고 했는데 분위기를 보니 전혀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계획을 수정했다.

“어르신이 정체를 숨기고 신종우와 함께하는 건, 힘을 잃었기 때문입니까?”

“…….”

둔목정이 입을 다물었다. 우묵한 눈으로 날 관찰한다. 아마도 머리를 굴리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내 말을 부정할까. 아니면 긍정할까.

“…어떻게 알았느냐?”

“천하공적인 무영신투가 신종우와 함께 남궁세가에 머물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전 어르신의 정보를 알아내고도 한동안 의심했습니다. 설마 무영신투가 애송이와 함께하며 버젓이 남궁세가에 들어와 있을 줄이야.”

“내가 힘을 잃었다는 건 추측했다는 거냐?”

“네. 지금 제 앞에 있는 어르신은 무영신투라는 어마어마한 명성과 다르게 저보다 약해 보이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강호에는 여자와 어린이, 노인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충분히 조심하고 내린 결론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저를 제압하지 못하는 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힘을 잃지 않았다면 신종우와 함께하지 않았을 테죠.”

“…으음. 그래. 네 말이 맞다. 나는 현재 힘을 잃었다. 너보다 약해진 상태다. 그래도 날 우습게 보지 마라. 네놈 하나 정도는 약해진 상태로도 죽일 수 있으니.”

허세다.

진짜 날 죽일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다면 저런 말 따윈 내뱉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 번 더 말해드리겠습니다. 전 어르신과 싸울 의지가 없습니다.”

“남궁세가에 내 정체를 알리지 않고 날 찾아온 목적이 뭐냐? 원하는 게 있을 테지?”

“크크. 무영신투에게 원하는 거야 하나밖에 없지 않습니까.”

무영신투의 명성은 높다.

30년 전에 세상에 나타난 무영신투는 천하 곳곳을 누비며 온갖 보물들을 훔쳤다고 한다. 황금 봉황의 내단, 절세무공비급, 머리보다 더 큰 천옥. 무영신투는 그 모든 것들을 비고에 숨겼다고 한다.

세상 어딜 가나 들을 수 있는 소문이다.

그리고 단순히 소문으로만 치부하기엔 무영신투의 행적은 진짜였다. 진제국이 무영신투에 목에 건 현상금만 금자 20,000냥이다. 참고로 금자 1냥은 한화로 대략 천만 원에 가깝다. 즉, 그 목에 걸린 액수가 2,000억인 것이다.

‘무영신투에게 털린 고관대작이 엄청 많다 보니 이런 막대한 현상금이 붙었지.’

그리고 이 막대한 현상금 때문에 무영신투의 소문은 신뢰성을 갖게 되어 사람들이 믿게 괴었다. 어느 곳에서는 무영신투를 인간이 아닌 신으로 여겨 신성시한다는 말도 있다.

“허…. 너도 그 허무맹랑한 소문을 믿는 거냐?”

“아닙니까?”

“무영신투의 비고같은 건 없다. 내가 뭐하러 훔친 물건들은 창고에 넣겠냐? 보석을 훔치면 팔았고, 무공비급은 친구에게 줬다. 영약? 영약은 아끼다가 똥 되는 경우가 많은데 당연히 내가 먹었지. 젊은 네게 충고해주마. 영약은 아끼는 게 아니다.”

“…뭐, 그 충고는 대충 받아들이겠습니다.”

무영신투의 비고는 실존한다.

원작에서 그랬으니까. 그 위치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다만 이 세계는 ‘이세계 천마’의 세계와 좀 다르다 보니, 내가 알고 곳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꿍쳐둔 건 몇 개 있지 않습니까? 설마 진짜 없습니까? 그건 좀 많이 실망스럽습니다만.”

“…흐흐. 영약이 너무 많으면 복용하기도 힘들더군. 네 말대로 몇 개 꿍쳐두었다.”

“그 꿍쳐둔 것들을 원합니다.”

“결국, 협박이로군.”

둔목정이 비수를 꽉 쥐었다. 비수의 칼날에 푸르스름한 검기가 맺힌다.

“난 강도놈과 상종 안 한다.”

“도둑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날 얕보지 마라. 그 황제의 물건을 훔치고도 살아 남은 게 나다. 너 따위에게 당할 것 같으냐?”

“싸울 생각이 없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합니까?”

“나는 나의 것을 네게 나눠줄 생각이 없다.”

“신종우에겐 나눠주고 말입니까? 아니지. 신종우를 일방적으로 이용하고 있으니 나눠줄 필요도 없겠군요.”

“…네놈이 여기서 죽을 이유가 더 늘었다.”

짙은 살기가 느껴진다. 숨이 턱 막혀왔다. 약해졌다고 해도 그 농축된 경험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거래를 합시다. 제가 신종우를 대신해 어르신을 돕겠습니다.”

“…….”

“전 신종우보다 잘할 수 있습니다. 전 남궁세가의 데릴사위이고, 신종우 만큼의 실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인맥, 재력, 무공. 종합적으로 봤을 때 신종우보다 제가 더 적합합니다.”

“확실히 그렇군. 허나 넌 안 된다. 내가 힘을 잃은 이유를 모른다. 그 이유를 알고 나면 바로 도망치려 할 테지.”

“흑룍성주의 배신 말이지요.”

“어떻게?!!”

둔목정의 두 눈이 커진다. 얼마나 놀랐는지 공간을 가득 채우던 살기가 사라지고, 뒷걸음질까지 했다.

“크크. 전 어르신의 생각보다 더 뛰어납니다. 이제 생각이 좀 바뀌셨습니까?”

당황하던 둔목정은 빠르게 냉정함을 되찾았다.

“그래. 바뀌었다.”

그는 이를 갈며 무릎을 굽히고 전투 자세를 취했다.

“네놈과 손을 잡으면 결코 그 끝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 신종우와 달리 넌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종류의 인물이다. 반드시 여기서 죽이겠다!”

분노에 찬 목소리였는데 그의 행동은 신중했다. 그는 천천히 나와 거리를 좁히고 있다.

나는 화련비도를 뽑았다. 붉은 칼날에 푸른 검기가 일렁인다.

“정말 이러실 겁니까? 저와 어르신은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습니다.”

“동료? 그따위 말에 넘어갈 정도로 내가 멍청해 보이냐?”

둔목정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그의 비수가 날아오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신강(新疆). 단목가(端木家). 뒷산. 단목소하.”

“네놈이…!”

둔목정의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찰나.’

첫 번째 찰나로 그의 앞에 순식간에 접근했다.

‘찰나.’

두 번째 찰나로 둔목정의 복부를 갈랐다.

‘찰나.’

세 번째 찰나로 비수를 쥔 오른팔을 자르고, 쓰러지는 둔목정의 머리를 붙잡았다.

“커억, 어, 어떻게 그 정보를…. 너는 대체 뭐냐…!”

둔목정은 바로 죽지 않았다. 무영신투라는 이름값이 있는데 하반신과 팔이 좀 잘린 거 가지고 바로 즉사했다면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 반응을 보니 무영신투의 비고는 단목가의 뒷산에 있나 보군.”

둔목정의 본명은 단목정이다. 그 진실을 아는 건 천하에 딱 두 명이다. 단목정과 그 손녀인 단목소하. 단목정은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이다.

단목가는 신강에 있고, 무셩신투의 비고는 단목가의 뒷산에 있다. 다행히 이 설정은 원작대로다.

“소하는…! 소하는 어떻게 한 거냐!”

“아무것도 안 했어. 아직은. 크크.”

“이놈, 이놈, 이놈…!”

마지막 기혈을 짜내 왼팔을 휘두른다. 손가락이 뒤틀리며 손톱이 짐승의 것처럼 길어지고 날카로워졌다. 원작에서 나온 무영신투의 비장의 한 수다. 저 손에 닿으면 심장을 도둑맞는다.

‘마지막 발악은 이미 예측했어.’

냉정하게 칼을 휘둘렀다. 둔목정의 왼팔이 잘리고 떨어진다.

“……내가 네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정말 날 도울 생각이었나?”

“그때는 적당히 이용하다가 죽였겠지.”

둔목정이 입을 크게 벌리려고 한다. 사람을 부르려는 것이다.

‘찰나.’

둔목정의 목에 칼을 꽂아 넣어 목을 베어냈다. 이걸로 둔목정은 확실하게 죽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상자를 꺼내 대충 둔목정을 넣어 다시 인벤토리에 넣었다.

나는 떠나기 전에 바닥에 떨어진 피도 마법으로 깔끔하게 치웠다. 둔목정의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남궁세가는 떠들썩하게 될 것이다.

‘시체가 발견되면 일이 너무 커져. 남궁세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돼버리니까. 실종이 낫지.’

일루시터를 이용해 몸이 투명해진 나는 기척을 최대한 감추며 별채로 돌아갔다. 흔적을 지웠으니 들킬 일은 없다.

???

둔목정이 실종되고 일주일.

나와 남궁린, 신종우는 남궁세가 밖으로 나왔다. 남궁린은 처음과 달리 외모를 감추지 않았기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물론 남궁린의 신분을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남궁린의 얼굴도 얼굴이지만, 입고 있는 옷에 남궁이라는 글자가 대놓고 적혀 있으니까.

우리가 향하는 곳은 안휘성 밖에 있는 숲 속이다. 어느 한 괴짜 술법사가 머문다는 숲이다. 나와 남궁린은 신종우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신 소협.”

남궁린이 신종우를 불렀다. 그는 천천히 남궁린을 쳐다봤다.

“린 소저. 말씀하십시오.”

“둔목정 어르신이 실종되고 항상 날이 서있는 것 같아요. 괜찮으신가요?”

“……말없이 사라질 분이 아니라서 좀 충격적입니다. 어쩌면…. 아니요. 이건 실언입니다. 둔목정 어르신은 노련한 강호인입니다. 아마 무슨 사정이 있어 저희와 떨어졌겠지요. 그 사정도 대충 짐작 갑니다.”

신종우가 앞장서서 터벅터벅 걸어갔다. 나는 그의 등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 만나는 술법사에게서 별 소득을 얻지 못한다면, 그는 내일이나 모레쯤에 안휘성을 떠날 것이다.

‘그 이전에 죽이던가. 아니면 떠날 때 죽이던가. 역시 떠날 때 몰래 따라가서 죽이는 게 낫나?’

고민되는 일이었다.

‘내가 왜 오늘 남궁린과 같이 신종우를 따라왔는데. 적당히 기회가 생기면 오늘 죽이자. 남궁린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주면서 말이야.’

신종우는 걸어가면서 남궁린에게 물었다.

“린 소저. 전에 했던 질문의 대답. 오늘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가 전에 했던 질문은 자신과 함께 안휘성을 떠나겠냐는 질문이었다.

남궁린은 내 눈치를 한 번 살피고는 대답했다.

“……미안해요. 신 소협. 제가 가문을 떠났던 건 설이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서였어요. 이미 그 방법을 찾은 이상 가문을 떠날 이유는 없어요. 제가 떠나고 싶어도 가문이 허락하지 않겠죠.”

“그렇군요.”

신종우가 담백하게 대답했다.

“미안해요.”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사실 대답은 예상했습니다. 그럼에도 물어본 건….”

“물어본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종우는 무감정하게 대답하고 정면만을 응시했다. 그의 걸음이 앞서 나간다. 잘된 일이었다. 나는 주위의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손을 뻗어 남궁린의 엉덩이를 희롱했다.

남궁린은 움찔 놀랐으나 내 손을 쳐내진 않았다. 역시 탄력적이고 좋은 엉덩이다.

숲 속에 들어왔다.

“윽.”

나는 작게 신음을 흘렸다. 몸이 무거워졌다. 남궁린도 나와 같은 듯 몸을 살짝 비틀거렸다. 신종우만이 멀쩡했다.

“결계군요. 제대로 찾아온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조금 갑갑하긴 한데 괜찮아요.”

“나도 괜찮아.”

남궁린과 내가 대답했다.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가도 됩니다.”

“아니요. 신 소협. 이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니 끝까지 도울게요.”

“이 정도로 뭘.”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익숙해졌는지 답답함도 사라졌다.

푸드득.

하늘에서 비둘기가 우리 쪽으로 날아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 비둘기처럼 작은 짐승들은 사람을 피하기 마련이니까. 우리는 걸음을 멈춰 서서 비둘기를 올려다봤다.

나뭇가지 위에 앉은 비둘기가 입을 열었다.

“너희는 무슨 볼일로 숲에 들어왔느냐? 남궁가의 여식이 있으나, 남궁가의 대표로서 찾아온 건 아닌 듯하군.”

귀여운 비둘기의 외형과는 다른 중후한 목소리가 울렸다.

은조사(隱鳥士).

안휘성 근처 숲에 기거하며 조용히 살아가는 술법사. 비둘기를 술법으로 조종하는 인물은 은조사가 확실했다.

“은조사 님에게 여쭤볼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내게?”

“저는 신종우라 합니다. 고명한 술법사들을 찾아다니며 답을 구하고 있습니다.”

신종우는 포권을 취하며 정중히 말했다.

“호오. 내 흥미를 자극하는군. 네가 나를 찾아왔다는 건, 이전에 만난 술법사들은 모두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는 것이로군. 내 말이 맞나?”

“…예. 모두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질문이냐?”

“다른 세계에 관한 질문입니다. 저는 다른 세계로 가고 싶습니다.”

“…하하. 진제국 밖을 말하는 것이냐?”

“진제국의 바깥도, 천상도, 지옥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이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과연. 너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들었다. 이 비둘기를 따라오거라.”

비둘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저 멀리서 날아온 화살에 몸이 꿰뚫려 피를 흩뿌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비둘기의 입에서는 짜증스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런 빌어먹을… 침입자가….”

비둘기의 몸에서 회색 기운이 흘러나와 허공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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