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7화 〉 777. 광명승천도
777. 광명승천도
비둘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저 멀리서 날아온 화살에 몸이 꿰뚫려 피를 흩뿌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비둘기의 입에서는 짜증스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런 빌어먹을… 침입자가….”
비둘기의 몸에서 회색 기운이 흘러나와 허공에 사라졌다.
신종우가 비둘기를 향해 다가가 그 시체를 살펴봤다. 정확하게는 비둘기를 꿰뚫은 화살을 보고 있다.
“비둘기에 어떠한 술법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고…. 화살은 평범합니다. 특징이 없습니다.”
“…신 소협. 설마 그들인가요?”
“그들 말고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방해하려고 하진 않겠죠. 비둘기가 날아가면서 우리 위치가 발각되었을 겁니다. 일단 움직여야 합니다.”
신종우와 남궁린은 침착하면서도 신속하게 행동했다. 이런 경험이 몇 번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 시점에서 신종우를 뒤쫓는 건 흑룡성이겠지. 둔목정의 척살과 신종우의 무공을 탐내고 있으니까.’
원작의 사건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면 적의 정체는 내 생각대로 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모르는 척 신종우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갑자기 공격해온 적들은 누구고?”
신종우는 잠깐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끌어들이기 싫어서 침묵할 생각이었습니다만, 이미 여기까지 왔으니 말할 수밖에 없군요. 저들은 흑룡성입니다. 저와 둔목정 어르신을 노리고 있습니다. 린 소저와 성유진 씨는 말려들었을 뿐입니다. 죄송합니다.”
“신 소협. 사과하지 마세요. 신 소협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요.”
“…흑룡성(黑龍城)이라. 그 이름은 들어본 적 있지. 잔혹 무도한 놈들로 유명한데… 어쩌다 그런 놈들과 엮이게 된 거야?”
“제가 가진 무공을 노리고 있습니다. 제 무공이 특이하다 보니 흑룡성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둔목정 어르신의 사정은… 제가 말할 순 없는 사정입니다.”
나는 남궁린은 힐끗 봤다. 그녀는 둔목정이 무영신투라는 걸 모르는 눈치였다.
“어쩔 거야? 계속 도망치기만 할 거야?”
“적들은 한, 두 명이 아닐 겁니다. 정확한 적의 숫자는 몰라도 우리 셋이서 감당하기 어려울 테죠.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좋습니다.”
“이쪽은 숲 밖으로 나가는 길이 아닌데?”
“은조사를 구해야 합니다. 그는 다른 술법사와 다릅니다. 뭔가를…, 뭔가를 알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은조사가 어디 있는지 알고 움직이는 거야?”
“…아니요. 감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처구니없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이놈은 주인공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어지간한 정보보다 주인공의 감이 더 믿음직스럽다. 뭐, 나와 남궁린이 어떤 관계인지는 감도 못 잡은 모양이지만.
푸드드드득, 푸득!
하늘에서 새 떼가 날아간다. 비둘기, 매, 참새 등등 온갖 조류들이 무질서하게 움직이며 유난을 떨었다.
은조사의 술법이 틀림없었다. 그 술법사는 새를 부리기로 유명한 술법사니까.
“저쪽입니다!”
“방향은 맞았군.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흑룡성과 싸우고 있는 것 같은데.”
“가야 합니다. 은조사에게 대답을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돕기로 했으니 끝까지 도와주지.”
“저도 성 소협과 같은 의견이에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방향을 틀어 수많은 새가 날아다니는 곳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우리의 예상과 반대였다. 깃털 망토를 걸친 은조사가 20명이 넘는 흑룡성 무인들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흑룡성 무인들은 이미 절반 이상 죽었다.
“젠장. 고작 술법사 주제에…!”
검은 갑옷을 걸친 무인이 이를 빠득 갈았다. 그가 창을 휘두를 때마다 자살하듯 맹렬히 공격하는 새가 피를 뿜으며 바닥에 떨어졌다.
“고작 술법사? 내 눈에 봤을 땐 너희들은 고작 무인일 뿐이다.”
깃털 망토로 몸을 숨기고 있는 은조사는 짧은 턱수염에 왼쪽 뺨에 X자 모양의 흉터가 있는 남자였다. 두 눈이 깊다 못해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다.
“네놈이 이 정도로 강하다는 정보는 못 들었다! 이딴 작은 숲에 은거하고 있을 뿐인 술법사 나부랭이 주제에…! 네놈은 대체 정체가 뭐냐!”
“속세에 나가 있는 술법사들과 나를 동일시하지 마라. 내가 이 숲에 자리 잡고 속세에 나가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하나. 내 경지를 증진 시키기 위해서다. 그것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나를 향한 모욕이다.”
나는 잠깐 의아했다. 무인이 상대하고 있는 건 새다. 영물도 뭣도 아닌 일반 새. 저 검은 갑옷의 무인은 나와 비슷한 실력으로 보인다. 새가 많다고 해서 당할 인물이 아니다.
‘…아니야. 저 새들… 술법으로 강화되어 있나?’
알아차리고 나니 경악스럽다. 저기 있는 새의 숫자는 어림잡아도 5,000마리가 넘는다. 저것들을 하나, 하나 강화시켜 입식(入式) 경지의 생물로 강화한다? 은조사는 내 상상을 뛰어넘는 괴물이라는 것이다.
“크아아아아악!”
“아아아악!”
흑룡성의 무인들이 비명을 지른다. 조류에게 눈알이 파먹히고, 피부 가죽을 잘근잘근 씹힌다. 조금 떨어져 있는 이곳까지 피 냄새가 비릿하게 퍼져온다.
이미 흑룡성 무인에게 승산은 없다.
“이건 말도 안 돼요…! 은조사가 저렇게나 강하다니…. 은조사가 저렇게나 강했더라면 본가가 내버려 뒀을 리가 없어요.”
경악한 남궁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말에 정신이 반짝 들었다. 남궁린의 말대로다. 가문 주위에 이 정도의 강자가 있다면 가만히 내버려 둘리 없다. 토벌하거나, 회유하거나, 아니면 조공하거나.
남궁가문이 남궁린에게 은조사에 대해 따로 언질조차 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
“눈속임입니다. 술법을 이용해 강해 보이는 척 연기하고 있습니다.”
신종우가 말했다. 놀라는 나와 남궁린과 다르게 그는 시종일관 냉정했다. 처음부터 은조사가 허세를 부린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크으으윽…. 은조사! 거래를 합시다!”
혼자 남은 검은 갑옷의 무인이 외쳤다. 온몸이 피투성이었다. 대부분 그가 죽인 조류의 피였다.
“불리해지니 거래를 신청하는 건가? 들어는 주마. 지껄여 보거라.”
“나는 흑룡성 자적대(刺敵隊) 3조장, 백총무요!”
은조사의 두 눈은 한층 더 서늘해졌다.
“그래서? 내가 너 따위의 이름을 알아야 하나?”
“내가 죽으면 흑룡성이 그대를 내버려 둘 것 같소? 흑룡성은 적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소. 내가 죽으면 흑룡성의 다른 고수들이 나타나 그대를 죽여 흑룡성의 위엄을 보일 것이오!”
가능성이 아예 없는 말이 아니었다. 흑룡성은 이 인정머리 없는 세계에서도 잔혹하기로 유명한 무리니까.
“내가 흑룡성을 두려워하리라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다.”
조은사가 손을 들었다. 하늘을 가리던 수천 마리의 새들이 저 멀리 날아간다. 대신 5M가 넘는 커다란 매 한 마리가 하늘 저편에서 날아왔다.
‘저건 영물이다.’
확실하다. 일반적인 매는 저런 크기로 못 자란다. 요괴라고 하기엔 사이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격이 좀 많이 낮긴 하지만 영물이니 내단이 있겠지.’
탐욕이 슬금슬금 머리를 치켜든다.
커다란 매는 검은 갑옷 무인을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내밀며 달려들었다. 그는 다급히 칼을 들어 매의 발톱을 받아쳐 냈다.
“으, 은조사! 아직 내 말은 안 끝났소!”
“내 말은 끝났다. 지껄이고 싶은 대로 지껄여 봐라.”
“날 살려 보내주시오! 이곳을 다시는 건들지 않겠소! 흑룡성에도 내가 잘 이야기하겠소! 맹세하오!”
“네놈의 맹세에는 무게가 없다. 너무 가벼워서 병아리 깃털만도 못하다.”
“대가를 치르겠소! 이 갑옷! 내가 입고 있는 이 갑옷은 이무기의 비늘로 만든 기물이오!”
“그게 다냐? 기물이라면 특별한 효능을 가지고 있을 텐데?”
까칠한 말과 달리 은조사는 흥미가 생긴 모양이다. 그가 손을 흔들자 커다란 매가 하늘로 날아갔다.
“이린흑갑(?鱗黑鉀)을 입으면 체력이 늘어나오.”
“설마 그것 하나만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이린흑갑을 입은 내가 만약 치명적인 공격을 받으면, 나를 대신하여 이린흑갑이 피해를 대신 받소.”
“호오. 그거 대단하군. 끝인가?”
대단하다는 말과 다르게 은조사의 말투와 분위기는 평탄했다. 그에 조바심이 난 갑옷 무인은 서둘러 말을 이었다.
“뱀을 부릴 수 있소!”
“…설마 영수도 부릴 수 있는 건가?”
“그, 그건 아니오. 평범한 뱀만 부릴 수 있소.”
“하긴. 그 정도로 뛰어나다면 네놈 따위가 그 물건을 가질 리가 없지.”
“이린흑갑은 치명적인 피해를 대신 받는 것만으로 대단한 물건이오! 이린흑갑을 입으면 생명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소!”
“그 능력은 나도 인정한다. 물론 한계가 있겠다만…. 그런데 말이다. 내가 굳이 너와 거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 어차피 널 죽이면 그 갑옷은 내가 갖게 된다.”
“이, 이린흑갑은 소유권을 정당하게 넘겨줘야만 입을 수 있소!”
“흐흐…. 그딴 개도 속지 않을 거짓말을….”
커다란 매가 다시 그를 향해 쇄도한다.
그때, 우리의 귓가로 은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은조사가 흑룡성 무인 몰래 전음을 보낸 것이다.
-너희들. 보고만 있지 말고 놈을 기습해서 죽여라! 만약, 너희가 놈을 죽이지 못한다면 너희도 적으로 간주하겠다!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 사실로 판명 났다. 은조사가 압도적으로 강했다면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수천 마리의 새를 부리던 것을 관둔 것도 힘이 떨어졌기 때문이겠지.
나와 남궁린, 신종우는 눈빛을 교환하고 흑룡성 무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흑룡성 무인은 어차피 죽여야 할 적이었다.
“허억?! 이, 이놈들! 비겁하게 기습이냐!”
“네가 할 말은 아니지.”
가장 먼저 놈의 뒤를 잡은 내가 피식 웃으며 화련비도를 휘둘렀다. 무인은 기겁하며 바닥을 굴렀다. 화려한 나려타곤이었다.
“은조사! 멍청이시오? 이린흑갑은 치명적인 피해를 대신 입소, 즉, 내가 죽으면 이린흑갑을 얻을 수 없소! 나보다 먼저 이린흑갑이 부서질 테니까!”
“괜찮다. 이미 술법을 걸어뒀으니. 지금 네가 걸친 이린흑갑은 단순한 갑옷에 불과하다.”
“어, 언제!”
그의 갑옷 뒤쪽 옆구리에 깃털 하나가 꽂혀 있었다. 아마도 저것이 이린흑갑의 효과를 억누르는 것이겠지.
남궁린의 검이 쇄도했다. 무인이 왼팔을 베었다. 아쉽게도 검은 깊은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여,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비켜라! 이 애송이들아!”
그가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렀다. 아니,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다. 잘 보면 규칙이 있다. 초식 중 하나다.
‘보이지 않는 칼날의 기척… 검풍이다.’
나와 남궁린은 동시에 양옆으로 피했다. 검풍이 우리가 있던 자리를 지나간다. 무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것들이…!”
“끝이다.”
신종우가 말했다. 그의 양손에 뭉쳐져 있던 마기가 흑룡성 무인에게 쏘아졌다. 큰 공격을 사용한 직후였던 그는 신종우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검은 기운이 그의 머리를 없애버렸다. 머리가 사라진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시기적절하게 나서주었다. 잘했다.”
은조사가 여유롭게 다가왔다. 그는 우리에게 치하의 말을 하고는 곧장 무인의 시체로 다가갔다. 이린흑갑을 회수하는 것이다.
“이 흑갑은 내 것이다. 설마 불만이 있는 건 아니겠지?”
“가지십시오.”
“그럴 것이다.”
은조사는 서투른 손짓으로 무인의 몸에서 이린흑갑을 벗기고 깃털 망토 아래에 착용했다. 뇌수와 피가 덕지덕지 붙은 갑옷이었는데 전혀 개의치 않았다. 괴짜라고 하더니 또라이가 맞는 것 같았다.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군.”
은조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우리를 지나쳤다.
“여기서 이야기하기 뭐하니 따라와라. 차는 대접해주마.”
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신종우는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
“은조사 님. 다른 세계에 관한 정보를 알고 싶습니다.”
“차분한 분위기와 달리 성미가 급한 놈이로군. 잠자코 따라와라. 중요한 이야기는 그에 마땅한 곳에서 해야 하는 법이다.”
“……예. 실례했습니다.”
신종우는 사과했다. 아쉬운 것이 많은 쪽은 신종우였다. 그는 지금 간절하게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 하니까.
다만 나는 은조사에게 큰 관심도, 잘 보여야 할 이유도 없었기에 궁금한 걸 물었다.
“다른 침입자들은 다 죽었습니까?”
“다 죽었다. 너희를 제외하고 말이지.”
“…저희도 죽일 생각입니까?”
“너희는 내가 손님으로 인정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 직접 안내해주겠느냐? 생각 좀 해라.”
“…….”
이 새끼 마음에 안 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