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9화 〉 789. 광명승천도
789. 광명승천도
흑적변의 머리가 박살 났다. 두개골이 부서지고 뇌수가 바닥을 적셨다. 확실하게 죽은 것을 확인한 나는 몸을 돌렸다. 남은 것은 공비가 상대하고 있는 오비환뿐이다.
‘쓰읍. 내력이 좀 딸리네.’
남은 내력은 2할 정도다.
아까 천마군림보를 사용할 때 절반 이상의 내력을 사용한 게 컸다.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천마군림보 덕분에 어중이떠중이들은 단숨에 정리할 수 있었으니까.
‘내게는 완전 회복이 있어. 공비와 힘을 합쳐 오비환을 죽인 뒤에 공비를 제압한다. 완전 회복을 잘 사용하면 가능할 거야.’
오비환을 향해 발걸음을 뗄 때였다. 뒤에서 거대하고 음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확인을 위해 몸을 뒤로 돌렸다.
머리 없이 몸밖에 없는 흑적변에게서 시커먼 기운이 폭발하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죽은 게 확실하다. 머리통은 여전히 박살 난 상태고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뭐지.’
저 음습한 기운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느껴졌다. 흑적변의 몸에서 살아가고 있는 기생충. 딱 그것이다.
기운은 꿀렁거리며 흑적변의 몸을 뒤덮는다.
“뭐해요! 보고만 있지 말고 당장 없애버려요!”
오비환을 상대하던 공비가 다급하게 외쳤다. 공비는 이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 모양이다.
‘공비가 저렇게 급박하게 말할 정도면…. 위험하다는 거군.’
나는 주먹을 쥐었다. 솔직히 어느 정도로 위험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변수가 생기는 건 내게 좋지 않았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응축된 마기가 일직선으로 날아가며 흑적변의 몸을 꿰뚫는다. 이것으로 진짜 끝이다. 라고 생각할 때였다. 흑적변의 머리통 없는 몸이 벌떡 일어났다. 검은 기운이 그 몸에 달라붙으며 형태가 바뀌기 시작한다.
검은색의 도마뱀이었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도마뱀이었다. 그것은 네발로 땅을 기지 않고 천천히 두 발로 일어났다. 꼬리와 날개가 부서지고 만들어지기를 반복한다.
‘리자드맨 같은 건가? 기분 나쁘군.’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다시 한 번 용권을 날렸다. 이번에도 놈의 복부를 꿰뚫었다. 허나 구멍난 복부는 검은 기운이 꿀렁이며 순식간에 메꿨다.
‘이런 공격이 안 통한다면… 한 번에 짓눌려 주지.’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신장(天魔神掌)
하늘에서 기운을 떨어뜨렸다. 도마뱀이 땅바닥에 처박힌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신장(天魔神掌)
다시 천마신장을 사용했다. 신종우의 천마신공에 있던 기술인 천마신장의 사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하늘에서 기운을 떨어뜨리는 것. 다른 하나는 일정 범위의 중력을 일시적으로 극대화하는 것. 이번에 두 가지를 전부 사용했다.
도마뱀의 몸이 찌그러지고 그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검은 기운이 사라지고 흑적변의 몸통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 몸통도 중력에 짓눌려 정상인 상태는 아니었다.
『특별 임무를 성공했습니다.』
『성공 보상으로 천옥 50개를 획득합니다.』
눈앞에 천강성 시스템이 떴다. 머리통을 박살 냈을 때도 뜨지 않았던 창이 지금 떴다는 것은 이젠 흑적변은 두 번 다시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뜻이겠지.
‘그러고 보니 처음 특별 임무가 생성될 때, 천강성 시스템은 흑적변을 위험한 존재라 규정했지.’
어쩌면 천강성 시스템은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천강성 시스템은 대놓고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비를 제압하고 따먹으면서 물어보면 되겠지.’
나는 우선 시체에 박혀 있는 화련비도를 회수했다. 오비환과 공비의 전투를 지켜봤다. 두 사람 모두 부딪히며 싸우고 있다. 경지는 비슷한데 무공 실력은 오비환 쪽이 더 뛰어나다.
‘좀 더 화끈하게 싸워서 둘 다 힘 좀 뺐으면 좋겠는데.’
오비환은 그럴 생각이 있어 보이는데 공비가 지나치게 방어적이었다. 오비환이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공비는 귀신같이 거리를 벌렸다. 제대로 싸우지 않고 시간만 벌겠다는 의지가 확연하게 느껴졌다. 오비환의 입장에선 그녀가 얄미워 죽여버리고 싶을 것이다.
“성 공자! 뭐 하세요?! 당장 절 도우세요!”
“방금 힘을 너무 많이 써서 좀 힘듭니다만….”
“성 공자!!”
“후우. 어쩔 수 없죠.”
나는 설렁설렁 걸어가다가 갑자기 달리기 시작해 오비환의 등 뒤를 노렸다. 공비도 타이밍에 맞춰 정면에서 연검을 휘두른다.
“이것들이…!”
오비환이 쌍창을 휘두르며 나와 공비의 무기를 막아낸다. 그가 손바닥으로 창을 굴렸다. 힘의 방향이 미끄러지며 무기가 튕겨 나간다.
공비는 뒤로 물러났고, 나는 미련없이 칼자루에서 손을 뗐다.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디디며 그에게 주먹을 날린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폭(天魔爆).
주먹에서 검은색 폭발이 일어났다.
통하지 않았다. 오비환은 도리어 폭발력을 추진력으로 이용해 공비에게 달려들었다. 공비는 다급히 검을 들어 오비환의 창을 막아냈다. 그러나 비껴 나간 창이 그녀의 어깨를 아슬하게 스쳤다. 옷이 일부 찢어지고 피가 튀었다.
“크으윽!”
“네 목을 노렸다만, 운이 좋구나, 계집!”
“죽어버려!”
공비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술법을 발동했는지, 땅바닥에서 단단한 나무뿌리 같은 것이 치솟는다.
“어림 없다!”
오비환이 화려한 신법을 선보였다. 나무뿌리를 밟으며 허공을 이리저리 움직여 공격을 피해낸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유성검!’
하늘에서 뇌기를 품은 유성검이 오비환을 향해 떨어졌다. 놀란 오비환이 다급히 몸을 뒤틀었다. 그 작은 틈에 나무뿌리가 그의 왼쪽 발목을 잡아 비틀었다. 동시에 유성검이 땅과 충돌하며 사방에 뇌전을 뿜어댔다.
“크아아아악!”
뇌전에 감전당한 오비환이 비명을 내질렀다. 온몸이 찢겨나가는 고통을 느낄 텐데도 쓰러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내력을 폭발시켰다. 뿌리가 먼지로 변하고, 바닥에 박힌 유성검이 하늘로 날아갔다.
‘내력을 터트렸군. 오비환은 도망을 포기하고 죽을 각오를 했어.’
화련비도를 꽉 쥐며 경계 자세를 취했다. 함부로 나섰다간 오비환과 같이 죽을 수도 있다. 그것만큼은 피해야 한다.
다행히도 오비환의 시선은 내가 아닌 공비에게 향해 있었다.
‘흑적변을 죽인 나보다 공비를 더 죽이려 하는 걸 보니…. 흑적변에 대한 충성심은 처음부터 크지 않았던 모양이군.’
오비환이 창 하나를 잡아 공비를 향해 내던지고 공비에게 질주했다.
그리고 공비의 움직임이 변했다. 그녀의 몸에서 붉은 빛깔의 기운이 나타났다. 그 기운은 마치 선녀의 날개옷처럼 하늘거렸다.
공비가 창을 피했다. 그녀의 연검이 풀어지며 채찍처럼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 땅을 밟는 그녀의 발걸음을 우아하면서도 경쾌했다.
“주영신무(朱影神武)…! 그렇군! 역시 네년이 성주님이 말씀하셨던 그 일족이로군!”
오비환은 이를 악물며 창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창이 공비의 몸에 닿는 일은 없었다. 공비는 종이 한 장 차이로 그의 공격을 완벽히 피해 버린다.
그녀가 이리저리 춤을 추듯이 움직이며 불길에 휩싸인 검을 휘두른다. 오비환은 3번을 막으면 1번은 막지 못했다. 전투의 승패는 이미 갈렸다.
“빌어먹을! 흑룡성주님! 이 오비환은 성주님의 적과 함께 지옥에 떨어지겠습니다! 성주님은 부디 목표했던 바를 이루소서!”
오비환은 창을 번쩍 들어 올렸다. 검은 기운이 창을 완전히 감쌌다. 창끝은 그녀가 아니라 땅바닥에 겨눠진다. 자폭이다.
-성 공자!!
공비의 다급한 전음이 들렸다.
‘유성검.’
유성검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오비환의 창과 부딪히며 강렬한 폭발이 일으켰다. 나는 발에 내력을 집중해 땅바닥에 박아 폭발의 여파를 버텼다.
‘공비는… 너무 가까웠는데… 폭발에 휘말려 죽어버렸나?’
폭발로 인해 흙먼지가 너무 많이 떠올라서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시간이 야간 지나자 언덕 위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흙먼지를 너 멀리 날려 보낸다.
‘공비!’
공비는 무사했다. 약간 지쳐 보이긴 하나, 폭발에 의해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그녀는 내 쪽으로 걸어왔다.
“일은 끝났습니다. 흑룡성의 무인 중 살아남은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거래도 끝이니 얼른 안휘성으로 돌아… 흡…!”
말하는 도중에 불덩어리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몸을 옆으로 돌려 다급히 불덩어리를 피했다. 불덩어리가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다시 나를 향해 날아온다.
‘떨어져라!’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며 불덩이를 소멸시켰다.
“화월루주! 이게 무슨 짓입니까?!”
“미안해요, 성 공자. 아무리 생각해봐도 성 공자를 내버려 두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는 결론만이 나와요.”
나는 긴장하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올 것이 왔다.
“이유가 뭡니까?”
“성 공자의 성정과 신뢰도에요. 남몰래 아녀자를 강간하는 색마를 어떻게 믿을까요? 거기에 성 공자의 재능은 무척 뛰어나요. 제가 지금까지 봐온 그 누구보다 더. 성 공자를 살려두면 분명 후환이 되어 저를 찾아오겠죠.”
“쥐 죽은 듯이 살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성 공자 같으면 그 말을 믿겠어요?”
“…….”
당연히 믿지 못한다. 나는 전투를 대비해 내력을 끌어올렸다.
“성 공자. 제안 하나 하죠. 제게 적극 협조해준다면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해드리죠.”
“…협조? 그건 또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전 성 공자에게 궁금한 게 많아요. 성 공자의 마공. 그 마공은 뭔가 궤를 달리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연구할 가치가 충분히 있어요.”
요컨대 천마신공이 탐난다는 뜻이었다. 점잖은 척하더니 욕심이 보통이 아니다. 뭐, 욕심이 없었다면 오기의 경지에까지 이르지도 못했겠지만.
“그리고 술법사로서 성 공자의 본질에 대해서도 궁금해요.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인간. 성 공자는 조사하고 연구한다면…. 어쩌면 세계의 진리를 알게 될지도 모르죠.”
흠칫 놀랐다. 전생의 기억? 내가 이런 말을 했던 건 신종우에게다.
술법으로 신종우와 나의 대화를 알아낸 것이 틀림없다.
“……혹시 은조사도….”
“그 짐작은 틀렸어요. 은조사는 그저 감시 대상일 뿐이에요. 뭐, 덕분에 여러 가지를 알게 됐죠. 성 공자가 신종우를 죽인 것과 남궁세가의 자매들과의 관계도. 알고 나서 정말 놀랐어요.”
“…….”
공비가 사정거리 내로 들어왔다. 나는 전력을 다해 칼을 휘둘렀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검(天魔劍) 구중삼살(九中三殺).
공비의 양쪽 어깨와 복부. 세 부위를 동시에 찌른다. 그러나 내 칼은 그녀의 몸에 닿지 못했다. 몸이 멈췄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을 벌어 힘을 갈무리한 건 성 공자뿐만이 아니에요. 오비환이 죽었으니 결계를 조작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오비환이 쉽게 죽은 건 이 결계, 사혼주박진(邪昏呪縛陣) 덕분이에요.”
나는 이를 악물었다.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내 몸을 휘감아 구속한 것 같은 느낌이다. 오비환은 이 주박진에 당하면서도 그렇게 움직였다고? 새삼스레 오비환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오비환과 대등하게 싸운 공비는 내 생각 이상의 강자다.
‘…이때를 대비해서 힘을 아끼며 오비환과 싸운 건가.’
이미 이 결계에 들어온 순간부터 내가 불리했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포기할 수는 없다. 아직 내게도 수단은 남아 있다.
‘천심(天心)!’
천심을 사용한다.
나를 묶고 있는 보이지 않는 사슬이 모조리 끊어지고, 신체 능력이 잠시간 상승한다. 1분. 그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 화련비도의 칼날이 공비의 허벅지를 노렸다.
깜짝 놀란 공비가 다급히 연검을 휘두른다. 연검이 채찍처럼 화련비도의 칼날을 휘감고 내 오른팔을 붙잡는다. 여기서 팔을 빼지않으면 내 오른팔이 병신이 될 것이다.
‘안 뺀다!’
내게는 완전 회복이 있다. 칼이 공비의 허벅지를 절반 이상 베었다. 연검이 내 오른팔을 뱀처럼 휘감는다. 오른팔의 근육이 베인다.
“으윽!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죠?!”
공비가 연검을 거두며 물러났다. 그녀는 술법으로 허벅지의 상처를 지혈했다.
‘천심의 지속 시간은 1분! 멈출 수 없다!’
콰앙!
오비환이 그랬던 것처럼 내력을 터트렸다. 내장이 상하는 것을 느끼며 일시적으로 빨라진 육체에 찰나를 사용한다.
‘방금 걸로는 부족해! 못 해도 사지 중 하나는 잘라야 해!’
공비가 춤을 추듯 몸을 움직였다. 오비환이 주영신무라 불렀던 그 무공이다.
‘찰나! 찰나! 찰나!’
연속으로 찰나를 사용했다. 허나 내 칼은 그녀의 옷자락 하나 스치지 못했다. 미칠 노릇이었다. 눈앞에 존재하는데, 칼날이 도저히 닿지 않는다. 아니, 닿았는데 닿지 않았다.
‘뇌전!’
붉은 번개가 그녀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