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8화 〉 798.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798.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유리아는 이틀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움직이며 루루트 산을 뒤졌다.
산에 있는 동굴이나, 특수한 장소는 모조리 찾아내어 직접 들어가 확인까지 했다. 그러나 성유진이 말한 유물은 없었다.
이쯤 되면 유리아도 의문을 느끼게 된다.
물론 성유진의 말을 믿지 못한다는 건 아니다. 단지, 성유진이 잘못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유리아는 곰곰이 생각했다. 자신이 유물을 보고 놓쳤을 수도 있었다. 유물의 생김새도 모르는 상태이니까.
‘특이해 보이는 물건들은 몇 개 챙기긴 했습니다만.’
유물의 느낌은 전혀 나지 않았다. 마나를 이용하고, 마법을 사용해봐도 반응이 전혀 없었다.
‘시간을 너무 끌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니 일단은 본래의 임무를….’
유리아가 멈칫했다. 약 500M 떨어진 곳에 특이한 몬스터가 보였다. 하얀 바탕에 검은 줄무늬 가죽을 가진 곰이었다. 그 곰은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고 있었는데 이마 부분에 단검이 박혀 있었다.
검날부터 자루까지. 전부 파란색인 단검이 곰의 머리 중앙에 박혀 있다.
유리아의 시선이 곰의 꼬리 부분으로 향했다. 너구리와 똑 닮은 꼬리다.
‘…라쿤 베어?’
너구리의 꼬리를 가진 곰. 라쿤 베어라는 몬스터다. 그리 강하지 않은 몬스터로 루루트산의 안쪽인 이곳에 있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다른 몬스터가 라쿤 베어를 내버려두지 않았을 테니까.
‘변종이군요.’
유리아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변종이 아니고서야 저 변이된 외모와 이곳에 있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라쿤 베어의 이마에 꽂혀 있는 단검은 유물일 확률이 높다. 급소인 이마에 단검이 박혔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움직이는 라쿤 베어가 그 근거다.
‘그림 사이스(Grim Scythe).’
그림자 마법을 사용했다.
라쿤 베어의 그림자에서 거대한 낫이 위로 솟구쳤다. 그림자 낫은 소리와 기척이 없어서 라쿤 베어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낫이 휘둘러지고 라쿤 베어의 머리통이 흙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그림 사이스는 기습과 암살에 특화된 그림자 마법이었다.
유리아는 그림자 이동으로 라쿤 베어의 시체 앞에 순식간에 나타났다. 그녀는 라쿤 베어의 이마에 꽂혀 있는 파란색 단검을 뽑았다.
단검의 그립에 작은 황금색 보석이 3개 박혀 있었다. 칼자루에 파여있는 홈을 보면 원래는 보석 7개가 박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단검을 본 유리아는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마법으로 확인해본 결과 단검에 신비한 힘이 깃들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이 세계의 유물이 얼마나 기상천외한 물건인지 잘 알고 있는 그녀로서는 수상쩍은 유물을 성유진에게 가져가고 싶지 않았다. 만약, 이 유물이 성유진에게 해를 끼치기라도 한다면? 유리아는 자기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사용법이랑 효과는 알아내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짐작 가는 사용법이 있다. 단검으로 대상을 찌르는 것. 애초에 단검이란 물건은 상대에 해를 입히기 위한 물건이다.
유리아는 움직였다. 여기 루루트 산에는 모르모트가 되어줄 몬스터가 많았다.
몬스터는 어렵지 않게 찾았다.
이족보행하는 근육질의 소.
미노타우르스.
유리아는 가볍게 단검을 던졌다. 허나 그 결과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단검은 아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미노타우르스의 가슴에 박혔으니까.
미노타우르스가 뒷걸음질을 치다가 유리아를 발견했다. 괴성을 내지르며 유리아에게 돌진하려던 몬스터는 그대로 멈춰 섰다.
“…….”
명백한 이상 현상이다. 유리아는 팔짱을 끼며 미노타우르스를 지켜봤다.
그 상태로 1시간이 지났다. 아무 변화도 없었다. 미노타우르스는 여전히 돌처럼 굳어 있었다.
추가로 3시간이 지났다. 미노타우르스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갈색의 털이 붉은색으로 변하고 덩치가 커졌다. 변종 미노타우르스가 된 것이다.
‘……몬스터를 변종으로 만드는 유물?’
유리아가 움직였다. 라쿤 베어를 즉사시킨 그림 사이스를 발동한다. 미노타우르스의 등 뒤로 거대한 그림자 낫이 솟구쳤다.
미노타우르스가 반응했다. 몸을 획 돌리더니 손을 뻗어 그림자 낫을 붙잡아 박살 낸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아아!”
미노타우르스가 포효를 내질렀다. 근처에 있는 1M가 넘는 바위를 한 손에 쥐고 유리아를 향해 던졌다.
유리아는 바위를 옆으로 피하며 미노타우르스에게 달려들었다. 미노타우르스도 물러서지 않고 돌진해온다. 미노타우르스의 검은 손톱이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영천류(影天流) 암전(暗轉).
유리아와 미노타우르스의 주위가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 시전자인 유리아는 어둠을 꿰뚫어 봤다. 반면에 미노타우르스가 갑작스러운 어둠에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유리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유리아가 단검을 휘둘렀다. 오러 블레이드가 날아가며 미노타우르스를 반으로 갈라 죽였다. 그녀는 마법을 이용해 미노타우르스의 가슴팍에 박혀 있던 파란색 단검을 회수했다.
어둠이 사라졌다.
‘세 개의 보석 중 하나가 부서졌군요.’
그녀가 짐작하기로 칼자루에 박혀 있는 보석은 사용횟수를 뜻한다. 즉, 이 단검 유물의 남은 사용횟수는 2번. 신중하게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유리아는 약간 후회했다. 미노타우르스가 아니라 인간에게 사용했어야 더 정확한 실험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을 테니.
하지만 후회도 잠시. 그녀는 곧 자신의 주머니 속에서 무전기를 꺼냈다.
“개인 임무는 지금 막 끝냈습니다. 계획했던 대로 몬스터 유인을 시작하세요.”
???
보름달이 뜬 늦은 밤.
나는 여기사 셋과 침대에 파묻혀 잠들어 있었다.
“주군!”
플로이가 날 부르며 군막 안으로 들어왔다. 슬쩍 눈을 떴다. 갑옷 차림의 플로이가 침대로 한걸음에 다가왔다. 그녀는 잠든 여기사들의 등짝을 차가운 건틀릿을 낀 손으로 후려쳐서 한 명, 한 명 깨웠다.
“주군, 일어나라! 메이드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쟁을 시작할 시간이다!”
“헉! 정말요?!”
“지,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왜 하필 우리 차례일 때…!”
세 명의 여기사들은 황급히 침대에서 내려갔다.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옷을 빠르게 입고 갑옷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기사이자 군인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신기한 눈으로 그녀들의 착의 쇼를 느긋하게 보고 있자, 플로이가 내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지금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다. 주군도 옷을 입어라. 병사들은 이미 전투 준비를 끝내가고 있다. 군대의 진격 명령을 내리는 것은 주군이어야 한다. 그 사실을 잊지 마라.”
“알았어. 알았어.”
나는 몸을 일으켰다. 낮부터 저녁까지 섹스만 해댔더니 아무리 나라도 좀 피곤해진다. 팬티 하나를 입으니 만사가 귀찮아졌다.
“플로이. 입혀줘.”
“……뭐?”
“입기 귀찮아. 네가 입혀줘.”
플로이가 눈썹을 꿈틀거리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치겠군. 내가 옷도 입혀줘야 하나?”
“입혀줘. 힘든 일은 아니잖아? 유리아는 매일 입혀줬다고.”
“나는 메이드가 아니라 기사다…. 메이드장은 대체 주군을 얼마나 오냐오냐 대한 건지….”
나는 느릿느릿하게 옷을 갈아 입었다. 그러자 결국 답답해진 플로이가 내게 옷을 입혀주고, 갑옷까지 장비해주었다.
“갑옷은 불편한데.”
“입어라. 전쟁에선 위엄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
우여곡절 끝에 무장을 전부 끝낸 나는 군막 밖으로 나갔다. 기사와 병사들이 오와 열을 맞춰 서 있었다.
먼저 성벽을 쳐다봤다. 저쪽도 전투 준비를 끝냈다. 우리를 계속 감시하고 있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플로이. 저것들은 뭐지?”
나는 턱짓으로 한쪽에 밧줄로 팔다리가 묶여 있는 남자들을 가리켰다. 대략 50명 정도 된다.
“탈영병들입니다.”
“지저분한 꼴을 보아하니 노예병들이군. 왜 살려뒀어?”
“수가 많아 한곳에 모아두었습니다. 저들의 처분을 내려주십시오, 주군.”
“사형이다. 처형해라.”
검을 든 병사들이 움직였다. 병사들이 탈영병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살려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영주님!”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영주님!“
나는 저들의 애원을 무시했다.
이 세계에서 탈영은 죽음으로 다스려야 한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귀족이, 모든 지휘관이 그러했다. 탈영의 처벌이 가벼우면 탈영병들이 계속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저들의 이름과 출신은 기록했나?“
”예. 주군.“
”영지로 돌아가면 저들의 가족을 처형하겠다.“
”예. 주군.“
나는 단상 위에 올라갔다. 준비된 의자에 앉아 병사들을 한 번 둘러보고 정면의 성을 쳐다봤다. 굳게 닫혀 있는 성, 나의 군대가 뚫어야 하는 성.
성벽 위에서 화살이 하나 날아왔다. 정확하게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온다. 플로이가 내 앞에 서서 검으로 화살을 튕겨냈다.
”대놓고 내 머리를 노리는군.“
”적들의 도발입니다.“
”같잖군.“
나는 주머니에서 수정 구슬을 꺼냈다. 손바닥 위에 올리고 기다렸다. 15분 정도가 지나자 수정 구슬이 진동하며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유리아가 보내는 신호였다.
의자에서 일어났다. 나는 수정 구슬을 땅에 내던지며 소리쳤다.
”가라! 적들을 죽이고 놈들을 점령해라! 미르푸보스 자작의 목을 가져오는 자에게 1억 네르의 포상금을 하사하겠다!“
”와아아아아아아!“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공성전이 시작했다.
마구잡이로 전투를 시작한 건 당연히 아니었다.
노예병을 앞세우고 그 뒤를 정예 병사로 채웠다. 가장 앞에 선 노예병들은 고기 방패에 가까웠다. 저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5%도 되지 않는다.
성벽 위에서 화살과 마법이 날아왔다. 병사들은 방패를 들어 화살을 막았다. 마법의 경우 우리 쪽 마법사들이 대처했다. 디스펠을 사용하거나, 반대되는 속성의 마법으로 상쇄했다. 그럼에도 사망자는 계속 발생했다.
5분도 안 지났는데 노예병은 벌써 500명 이상이 죽었다. 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원래 노예병은 소모품에 가까웠다. 성벽에 달라붙었으니 사망률도 낮아질 것이다.
”적들이 갑자기 당황하기 시작했군.“
성벽을 지켜보고 있던 내가 말했다.
”예. 메이드장이 유인한 몬스터들이 뒤편에서 미르푸보스를 공격하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양동은 성공입니다.“
적들의 비명이 바람에 실려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콰아앙! 쾅!
노예병들이 공성추로 성문을 두들긴다. 다른 노예병들은 성벽에 사다리를 걸고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쾅! 쾅! 콰앙!
성문이 들썩이며 열릴 기미가 보인다.
”플로이. 준비해.“
”네. 주군.“
플로이를 비롯한 골든 로즈 기사단이 말에 탔다. 중장갑을 입은 그녀들은 문이 열리는 순간 성내로 들어가 적들을 유린 할 것이다.
콰아아아앙! 쾅!
성문이 활짝 열렸다. 병사들은 성문에서 떨어져 기사들이 돌진할 길을 열어주었다. 말이 힘차게 내달렸다. 플로이가 성내에 진입한 이상, 이 전쟁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주인님. 임무를 마치고 귀환했습니다.“
유리아와 AM 부대 메이드들이 내 옆에 나타났다. 모두 어두운 복장을 하고 있었다.
”수고했어. 다친 사람은 없지?“
”없습니다. 유물도 찾았습니다.“
유리아가 유물에 대해 설명했다. 나는 그녀가 내게 바친 파란색 단검을 이리저리 들고 둘러봤다. 화려하다는 것 말고는 딱히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단검에 찔린 몬스터가 변종이 되었다? 원작에서 유물을 사용한 악역은 강해졌다고만 묘사되었는데….’
파란색 단검은 일단 챙겼다. 나중에 광명승천도로 강화하고 유리아에게 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전용 흑마에 올라탔다. 암말이었다. 나는 암컷이 아니면 키우지 않는다.
”주인님. 주인님이 출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플로이 기사단장이 미르푸보스 자작의 목을 가져와 주인님에게 바칠 것입니다.“
”알아. 그래도 내가 직접 전장에 나서는 편이 명성 쌓기 좋잖아.“
가끔씩 직접 전장에 나서서 미담 몇 개는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금껏 계속 군막 안에 있었더니 몸을 풀고 싶다.”
”…저도 주인님을 따르겠습니다.“
”됐어. 피곤할 텐데 가서 쉬어.“
”이 정도 피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인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해. 대신 다른 애들은 쉬어.“
AM 부대원들은 내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녀들은 날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이해한다. 유리아가 내 곁에 있는 걱정될 리가 있나.
유리아는 갑옷을 입어 기사인 척 모습을 숨기고 내 뒤를 따랐다.
”길을 비켜라! 미르푸보스 자작의 멱을 따러 내가 왔노라!“
짜릿한 막타는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