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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 - 800.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580/2,000)

〈 800화 〉 800.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미르푸보스 영지를 공격한 몬스터는 1시간도 되지 않아 전멸했다.

내가 미노타우르스 세 마리를 단숨에 베어 가른 것을 목격한 병사들의 사기를 하늘을 뚫을 정도로 올랐다. 병사들은 제힘 이상을 발휘한 덕분에 전선이 유지되었다. 골든 로즈 기사단이 전선을 종횡무진으로 날뛰며 몬스터를 토벌했다. 중간, 중간 유리아가 나서줬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광장의 단상 위에 의자를 꺼내 앉아 전장을 정리하는 병사들을 지켜봤다. 완전회복을 사용했기에 몸 상태는 피로감 하나 없이 좋았다.

조금 전 상황을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껏 한 번도 없었던 신기한 감각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 감각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똑같은 조건으로 스킬을 사용하면 되려나? 허나 나는 왠지 똑같이 기술을 쓰더라도 그때와 같은 감각은 못 느낄 것 같은 판단이 들었다.

“유리아.”

그래서 그녀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네. 주인님.”

“내가 참격을 날려 미노타우르스 세 마리를 동시에 조지는 거 봤지?”

“훌륭하셨습니다. 곧게 뻗어 가는 참격은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막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오러 마스터라면 그 참격을 피하지도, 막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네가 상대라면? 솔직하게 말해봐.”

“주인님이 참격을 날리기 전에 회피했을 겁니다. 주인님의 동작은 너무 컸으니까요. 만약,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받아쳐서 상쇄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잠깐 시무룩해졌다. 그 참격도 결국 유리아에겐 통하지 않는 건가.

“근데 말이야. 내가 칼을 휘두르기 전에….”

내가 느꼈던 그 감각과 영역을 유리아에게 말했다. 유리아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 감각 말이군요.”

“알고 있어?”

“네. 저도 가끔씩 느끼는 감각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 감각을 또 느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유리아가 난색을 표했다.

“글쎄요…. 저도 마음대로 느끼는 감각은 아닙니다. 그날 컨디션이 최상이고, 한계까지 집중한 끝에 겨우 느끼는 감각입니다. 최근에는 4개월 전에 한 번 느껴봤습니다.”

“확률로 따지면?”

“……0.8%? 인 것 같군요.”

“할만하네.”

“…….”

나는 그 감각을 다시 느끼는 걸 포기했다.

할만하다고 말한 건 어디까지나 유리아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다.

그 감각을 다시 느끼려면 기본적으로 유리아의 재능이 필요하다. 열흘에 한 번, 딱 10초 동안만 천재의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내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바로 손을 털기로 했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집착하는 건 미련한 짓이다.

내게는 유희 생활 어플이 있다. 그 감각이 없더라도 나는 꾸준히 강해질 것이다.

“주군.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났습니다.”

플로이와 여기사 몇몇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들의 뒤로 밧줄에 묶인 남자들이 줄줄이 걸어온다. 여기사들은 그들을 강제로 바닥에 꿇렸다.

“꿇어라! 주군께서 그대들의 운명을 결정하실 거다!”

“허락 없이 고개 들지 마라!”

“살의를 내비치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

기사들이 포로들을 향해 윽박질렀다. 포로들은 그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50명 정도인가. 제법 많군. 뭐 하는 것들이지?”

“미르푸보스 자작의 친인척과 그를 따르던 가신과 살아남은 기사들입니다.”

의자 팔걸이에 올린 손을 까닥거렸다.

이 세계의 다른 귀족들의 경우 전쟁에서 승리하면 함부로 귀족들을 죽이지 않는다. 포로로 잡아 귀족의 다른 친척이나, 왕국에서 돈을 받고 풀어준다. 일종의 불문율이자 관습이었다. 물론 꼭 지켜야 한다는 법은 없다. 다만 그편이 더 인도적이고 이득이 되기 때문에 그럴 뿐이다.

친척이 없거나, 왕국이 돈을 주지 않으면 죽이지 않고 노예 상인에게 몰래 팔아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귀부인이나 귀족 영애는 비싸게 팔리고, 귀족은 화풀이 대상으로 팔릴 때도 있으니까.

‘기사는 노예가 되는 경우가 별로 없지.’

이 세계의 기사는 대부분이 초인이다.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미르푸보스의 기사들이여. 너희 중 내게 충성을 맹세할 기사가 있나?”

“……”

조용했다. 누구도 고개를 들지 않고, 입을 열지 않았다.

“대답해라.”

“…우리는 미르푸보스 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죽으면 죽었지. 너의 기사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냐.”

그럴 거라 생각했다.

기사들 대부분이 고지식했다. 한번 충성의 맹세를 하면 어지간해서는 맹세를 어기지 않는다.

물론 돈이나 권력 등으로 살살 꼬시면 인간인 이상 훅하기 마련이지만, 나는 이것들을 상대로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언젠간 내 등에 칼 꽂을 수도 있는 놈들이다. 그리고 남기사잖아.’

그들을 훑어봤다. 딱 한 명. 여기사가 있었다. 그러나 얼굴이 소보로빵이었다. 시선을 돌렸다.

‘기사는 죽이지 말고 팔아먹어야지. 귀족들은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은 몇몇 죽이고.’

내 시선은 가장 앞에 앉아있는 두 명의 젊은 청년에게 향했다. 이들은 여기사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를 노려봤다. 여기사들은 불쾌한 시선으로 그들을 보면서도 건들지 않았다.

“미르푸보스의 아들들인가?”

“네. 주군. 오른쪽에 있는 남자가 장남인 엘트 미르푸보스, 왼쪽이 차남인 몬드리 미르푸보스입니다. 미르푸보스 자작이 전사했으니, 장남인 엘트 미르푸보스가 자작위를 승계합니다.”

플로이가 차분히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비웃었다.

“자작위를 물려받은 걸 축하한다. 부럽군. 나도 언제쯤 아버지의 작위를 물려받을까.”

“프루커스 남작…! 우리는 결코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이 세상 모든 이들이 당신의 비열함을 경멸하고 비난할 것이오!”

장남인 엘트가 내게 소리 높였다. 그 기개에 붙잡힌 기사들이 감동한다.

“혹시 대가리에 뇌수 대신 오줌이 가득 차셨나? 지금 네 상황을 몰라?”

“죽일 테면… 죽이시오!”

엘트의 눈동자가 떨린다. 두려워하면서도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그냥 죽여줄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나, 나는 고문 따위에 굴하지 않소!”

“죽음을 앞두고도 당당한 너의 태도가 나를 감탄하게 하는군. 너희 형제 중 한 명을 살려주겠다. 그러니 서로 싸워라. 싸워서 이기는 자가 살아남을 것이다.”

내가 턱짓했다. 눈치 빠른 여기사 중 한 명이 그들을 묶고 있던 밧줄을 베고, 단검 두 개를 바닥에 던졌다.

그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둘이 사이좋게 죽겠다고 한다면 말리지 않겠다. 선택할 시간은 3분 주지.”

장남인 엘트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단검을 한 손에 쥐고, 다른 단검을 동생인 몬드리에게 건넸다.

“몬드리. 단검을 들어라.”

“혀, 형…! 정말 그럴 것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아야 복수를 할 수 있다! 단검을 들고 일어서라!”

“으으으윽!”

엘트와 몬드리가 일어서서 단검을 들고 서로를 마주했다.

“간다! 몬드리! 똑바로 해라! 내가 너를 죽이더라도 원망하지 마라!”

엘트가 단검을 내밀며 뛰었다.

“으아아아악!”

몬드리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단검을 내밀었다.

푸욱.

몬드리의 단검이 엘트의 복부에 파고들었다. 땡그랑. 바닥에 떨어진 엘트의 단검이 초라한 소리를 냈다.

“혀, 형?! 왜?! 왜 그런거야?! 형이라면 나 정도는 쉽게 죽일 수 있잖아!”

“…네가 나보다 낫기 때문이다.”

“내가 형보다 나을 리가 없잖아! 형보다 공부도 못했고, 가신들도 형을 더 따르고! 차라리 내가 죽는 편이 나아! 지, 지금이라도!”

“나는 네가 가진 무재를 믿는다. 이 혼란한 정세에 필요한 건 힘이다. 너의 재능이라면 언젠가….”

“지랄하고 자빠졌네.”

서걱.

몬드리의 머리통이 날아갔다. 도저히 볼 수 없어서 직접 화련비도를 휘둘렀다.

“유, 유진 프루커스!! 이게 무슨 짓이냐! 너는 네가 했던 말도 지키지 않는 놈이냐?! 네가 그러고도 귀족이냐!!”

“나는 서로 싸우라고 했지, 지랄을 하라고 한 적 없다.”

칼을 들어 올렸다. 엘트가 당황하며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주워든다.

“대놓고 승부 조작을 해? 백번 뒈져도 시원찮을 짓거리를….”

서걱.

엘트의 머리가 떨어졌다.

“네놈!! 이 천인공노할 놈!!!”

기사였다. 아까 내게 죽으면 죽겠다고 한 놈이었다.

“죽여.”

근처에 있던 여기사가 검을 들어 놈의 목을 베었다.

“유리아. 미르푸보스 자작의 머리는 병사 하나를 뽑아 엔티온…. 아버지에게 보내.”

“네. 주인님.”

“플로이. 사망자 집계는 끝났나?”

“아직 집계가 진행 중입니다만, 대충이라도 좋다면 보고하겠습니다.”

“보고해.”

“노예병 전사자는 약 2,000명, 정예 병사 전사자는 약 300명입니다. 중상을 입은 노예병은 300명입니다. 정예 병사는 포션을 이용해 중상을 치료했습니다만, 노예병 중상자들은 한곳에 모아두었습니다.”

“중상자는 내버려 둬. 노예 따위에게 비싼 고급 포션을 쓸 수는 없지.”

평화로울 때라면 모를까. 지금 같은 전쟁 상황에선 노예보다 고급 포션이 더 비쌌다.

“미르푸보스의 생존자는?”

“약 12,000명입니다.”

“2,000명을 빼더라도 10,000명의 노예가 새로 생겼군. 이득이군. 돌아갈 채비를 해라. 이 도시 내의 재산을 모두 챙기고, 건물에 불을 질러라. 노예의 반항이 거세면 몇백 명 정도는 죽여도 좋다.”

몇 시간 후, 미르푸보스 영지는 활활 타올랐다.

미르푸보스 영지 근처는 모두 발트 왕국의 영역이다. 이곳을 내가 점령해봤자 금세 발트 왕국의 군대에 빼앗긴다. 그렇게 될 바엔 차라리 재산을 약탈하고 영지를 불태우는 편이 낫다. 영지민들은 물론 내 노예들이다.

???

영지로 돌아왔다.

광명승천도에 넣어 두었던 스톰브레이커의 강화가 드디어 끝났다. 정확하게 계산은 안 해봤는데 대충 십몇 년은 걸린 것 같았다.

‘내가 그 세월을 겪은 건 아니고 자동 진행이란 꼼수를 사용했지.’

스톰브레이커를 꺼냈다.

2M가 넘는 거대한 창이었는데 좀 더 세련되게 미끈해졌다. 길이가 2M가 넘는 건 여전했다. 색깔이 변했다. 원래는 고급스러운 파란색이었는데 지금은 은청색이 되었다. 나는 이편이 더 마음에 들었다.

스톰브레이커의 기능은 다섯 가지였다. 변화, 수복, 분신, 육체 강화, 합체.

‘어떻게 강화되었는지 알아내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군.’

어차피 남아도는 게 시간이니 문제없다. 나는 스톰브레이커를 들고 훈련실로 떠났다.

‘아차. 파란색 단검 유물을 강화해야지.’

광명승천도는 오늘도 열일 한다.

???

며칠이 지났다.

유리아가 가져온 루루트 산의 파란색 단검 유물은 생각보다 빠르게 강화되었다.

‘유리아는 노예 하나를 이용해 실험해보자고 제안했지만…. 역시 실험은 내가 하는 게 낫겠지.’

나한테는 완전 회복과 절대정신이 있다. 정신 간섭은 애초에 통하지 않고, 뭔가 잘못되어 죽더라도 완전 회복을 통해 부활 가능하다. 거기에 완전 회복을 쓰면 상태 이상도 전부 회복된다.

‘실험엔 내가 최적이지.’

사용법은 유리아에게 들었다.

파란색 단검을 오른손에 들고 왼손을 찔렀다. 피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단검에 찔리는 고통은 생생하게 느껴진다.

[네게 합당한 시련을 주겠다.]

‘목소리? 아니야. 이건 일종의 의지다. 유물의 의지인가?’

[시련을 이겨낸다면 합당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대충 알아챘다. 이건 유물의 시련을 통과하면 보상으로 강해질 수 있다. 그냥 강해지게 해주면 어디 덧나나.

‘그래. 어떤 시련이냐.’

[금욕. 너의 성기능을 마비시키겠다.]

‘안 해. 씨발.’

손에 박힌 단검을 뺐다. 칼자루에 박힌 2개의 보석 중 하나가 부서진다.

[시련의 포기인가. 너는 그 대가를 치러라.]

퍽!

심장이 터지는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렸다.

나는 의자에 힘없이 쓰러졌다.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씨발. 진짜 좆될 뻔했네.”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고자로 살라니 미친 거 아닌가? 여기가 많은 유희 세계 중 하나라지만, 미녀들을 마음껏 따먹을 수 있는 세계다. 일주일 이상 유리아의 보지를 따먹지 않으면 난 미쳐버릴 것이다.

‘이 시련이란 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건… 아니겠지. 아마 개인마다 다를 거야. 내가 성욕이 강하니 금욕이라는 시련을 내린 거겠지. 후우.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존나 무시무시한 시련이었다….’

나는 유리아를 불렀다.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단검을 건넸다.

“웬만하면 사용하지 마. 시련에 실패하거나, 포기하면 죽게 될 거야. 강해지는 방법이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니 꼭 사용할 필요는 없어.”

내심 그녀가 포기하기를 바랐다.

“……아니요. 주인님. 저는 조금이라도 빨리 더 강해지고 싶습니다.”

“…….”

유리아의 진지한 얼굴을 보니 말릴 수 없었다.

나는 이유 모를 불길함에 기분이 나빠졌다.

???

다음 날 오후.

나른하게 복도를 걷는데 멜리사가 다급히 내게 달려왔다.

“주인님! 큰일 났다! 메이드장이…, 메이드장이…!”

멜리사가 저토록 당황한 건 거의 2년 만이었다. 내 몸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어제의 일이 떠오른다. 불길함이 내 몸을 지배한다.

“차, 차분하게 말해. 멜리사. 유리아가 왜?! 무슨 일이야?! 서, 설마 죽은 건 아니지?!”

“아, 아니. 죽지는 않았다. 그것보다 주인님. 일단 진정하고 일어나는 게 어떤가?”

“일어나? 무슨 소리야. 난 일어나 있어.”

“주인님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상태다. 자, 손을 잡고 일어나라.”

고개를 내려보니 진짜 주저앉은 상태였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나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유리아를 아끼긴 했는데, 설마 이토록 중요하게 여겼었나? 불현듯 인연 레벨이 떠오른다. 인연 레벨은 어쩌면….

“심호흡해라.”

“후우. 후우. 후우. 됐어. 말해봐. 유리아가 왜? 죽었나? 죽었으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도 부활을…!”

“안 죽었다. 호들갑 떨지 마라. 메이드장은 기억을 잃었다.”

“……진짜?”

죽는 것보단 낫긴 하다.

“이 상황에서 내가 거짓말을 할 것 같나? 서프라이즈도 뭣도 아니다. 메이드장은 기억을 잃었다. 그리고.”

“…그리고?”

“약해졌다. 오러 익스퍼트 하급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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