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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 - 810.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590/2,000)

〈 810화 〉 810.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자정이 되었을 무렵, 카일은 밖으로 나왔다.

그는 좀처럼 잘 풀리지 않는 상황과 유리아에 대한 생각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서늘한 밤바람을 맞으면 답답한 기분이 풀릴까 싶어 주변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카, 카일 님!”

“여, 여긴 무슨 일로…?”

돌아다니던 카일과 맞닥뜨린 병사들이 당황하며 부동자세를 취했다. 경계를 서던 도중에 갑자기 최고 사령관이 나타났으니 당황할 만 했다.

“긴장하지 마. 잠이 안 와서 잠깐 나왔을 뿐이니까. 금방 돌아올테니 너희는 하던 대로 해.”

“네, 넷!”

카일은 발길이 가는 대로 걸었다. 그러다 숲으로 향하게 되었다. 깊은 숲은 아니었다. 병사들이 머무는 군막이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숲에 들어오니 마음이 진정되는군.’

전생의 기억이 떠오른다.

잠이 안 올 땐 이렇게 숲을 걸었었다. 조용한 숲과 시원함이 좋았다. 멧돼지 같은 들짐승을 자주 마주치긴 했으나, 무공을 익힌 그에겐 전혀 위험이 되지 않았다.

‘이런…. 너무 나온 것 같네. 슬슬 돌아가자.’

몸을 돌려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앞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카일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은 전쟁 중이다. 아군을 정탐하려는 적들일지도 모른다. 카일은 기척을 숨기고 살금살금 앞으로 걸어갔다. 적이라면 붙잡은 뒤 역으로 정보를 캐내야 한다.

“밖에 나오니 어때? 시원하지 않아?”

“네…. 여보랑 이렇게 밤 산책 하는 건 시원하고 좋네요.”

익숙한 목소리들이다.

동생인 유진과 유리아의 목소리.

카일은 심장이 멈추는 기분을 느꼈다. 불길함이 치솟는다. 갑자기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애써 부정하던 사실이,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 눈앞에 있다.

‘…나와 마찬가지야. 잠이 안 와서 산책을 왔을 뿐이야. 우연히 마주친 것뿐이니 가서 짧게 대화를 나누고 같이 돌아가면 돼.’

그러나 카일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기척을 드러내지 않았다. 더욱 확실하게 기척을 숨겼다. 숨소리마저 죽이며 천천히 접근한다.

유진과 유리아는 나무 밑동에 앉아 있었다. 좀 더 정확히는 유진이 나무 밑동 위에 앉아 있고, 유진의 허벅지 위에 메이드복을 입은 유리아가 앉아 유진의 품에 기대고 있다.

카일은 멈춰 섰다.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들을 응시했다. 그들의 분위기는 평범한 주인과 하인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서로를 보는 두 눈에는 따뜻함이 담겨 있다. 그들은 연인이었다.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했다.

가슴이 답답하다. 목에 비수가 박힌 것처럼 따끔하다. 기분 나쁜 무언가가 마음속에 있다.

‘방금…. 방금 유리아가 유진을 뭐라고 불렀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방금 유리아가 했던 말이 기억나지 않는다.

유리아의 어깨를 잡고 있던 유진의 왼손이 유리아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유리아는 유진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드럽게 웃으며 유진의 손길을 즐겼다.

그녀의 미소를 본 카일은 주먹을 꽉 쥐었다. 분노가. 이유 모를 분노가 느껴진다.

“여보. 사랑해요.”

카일이 입술을 깨물었다.

“나도 사랑해, 유리아.”

유진과 유리아가 입을 맞추었다. 서로 눈을 감고 입술을 비빈다. 입술이 조금씩 꾸물거리더니 벌어지고 혀와 혀가 얽힌다.

10초가 지나고, 30초가 지나고, 1분이 지났음에도 그들의 키스는 끝나지 않았다.

‘…추, 축하해줘야 해. 형으로서 유진과 유리아의 관계를 축하해줘야 해.’

주먹 쥔 오른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손톱이 손바닥에 점점 파고 들어간다. 유진이 있는 위치에는 자신이 있어야 한다. 유리아와 사랑을 속삭이는 건 유진이 아니라 자신이어야 한다. 숨기고 싶은 추잡한 감정이 자꾸만 고개를 들려고 한다.

‘도, 돌아가자.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유리아는 유진과 행복할 거야. 유리아가 행복하다면 난 됐어. 난… 그걸로 괜찮아.’

눈을 떼려고 했다. 이대로 기척을 죽이고 천막 안으로 돌아가서 잠을 자면 된다. 전쟁이 끝나면 유리아에게 고백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되었으니 포기하면 된다. 자신의 마음을 묻어두면 누구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유진의 오른손이 움직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오른손은 유리아의 가슴으로 움직였다. 커다란 손이 유리아의 풍만한 가슴을 움켜쥔다. 손가락이 유방을 주물럭거린다.

“으흥…, 흐우응….”

유리아가 작은 신음을 흘렸다. 집중한 카일에겐 그 작은 소리도 잘들렸다.

붙어 있던 그들의 입이 서로 떨어졌다. 늘어지던 은색의 실이 천천히 끊어졌다.

카일은 유리아가 화를 내기를 바랐다. 멋대로 가슴을 만진 유진의 뺨을 후려 갈기며 도망치기를 원했다. 화가 난 유진이 언성을 높이며 유리아와 싸우기 시작하고… 자신이 나타나 유진을 때려눕힌 뒤 유리아를 데리고 도망치는 그림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바람과는 전혀 달랐다. 유리아는 양팔을 들어 유진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응…. 기분 좋아요…. 여보, 좀 더 만져줘요.”

유진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가슴을 주무르던 손은 유리아의 허벅지를 만지다가 치마 속으로 들어간다.

“유리아. 여기도 만져도 돼?”

“괜찮아요. 원하시는 곳 전부 만져주세요. 저는… 여보의 것이니까요.”

유진의 손이 유리아의 치마 속에서 움직인다. 허벅지를 만지다가 더 안쪽으로 향한다.

카일이 손과 입술에서 피가 났다. 너무 세게 힘을 준 것이다. 그는 부릅뜬 눈으로 유진의 행태를 지켜봤다. 유감스럽게도 치마에 가려져 손이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유리아의 여기 엄청나게 뜨겁고 축축하네.”

“하앙! 소, 손가락 넣으면 안 돼요…!”

“정말 안 돼?”

“괘, 괜찮아요. 마음대로 만져주세요. 흐으응…! 여보의 손가락… 기분 좋아요.”

찌긋찌걱.

유리아의 치마 속에서 끈적한 소리가 났다.

“여보…. 키스, 키스해줘요….”

“유리아는 키스 정말 좋아하네. 오늘만 몇 번째야?”

“그렇지만…. 키스가 너무 좋은 걸요.”

“어쩔 수 없지. 자, 입 벌려.”

“네엣.”

쪼옥. 쭈르릅.

찌걱. 찌긋.

유진과 유리아가 다시 키스했다. 유진의 손은 여전히 치마 속에서 움직인다. 유리아는 몸을 움찔 떨면서 키스에 집중했다.

카일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내렸다. 사타구니 사이 바지를 뚫을 기세로 서 있는 물건이 보였다. 카일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유리아에 대한 배신감, 유진에 대한 질투심, 자신에 대한 혐오감.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 마음을 잠식한다.

카일은 몸을 돌려 그곳에서 벗어났다. 조심히, 조심히 들키지 않게 물러나다가 달리기 시작했다. 경공까지 써서 단번에 자신이 머무는 천막에 들어왔다. 입술과 손바닥에서 피가 흐른다.

카일은 피도 닦지 않고, 침대가 아닌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자하신공의 구결을 외웠다. 그러나 집중은 좀처럼 되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운기행공을 반복하던 카일이 기침을 토했다.

“콜록.”

기침에 피가 섞여 나왔다. 카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말도 안 돼… 이건…!’

심마(心魔).

즉, 주화입마에 빠졌다. 목숨이 위험한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 주화입마 중에서도 처음 단계다. 기혈이 조금 꼬였을 뿐이다.

‘…이 상태에서 무리하게 되면 주화입마는 더 심각해진다. 심마를 다스리고 안전한 곳에서 요양할 필요가 있어.’

지금은 전쟁 중이다. 쉽게 물러날 수 없었다. 카일은 이를 악물었다.

???

나는 유리아와 키스하면서 사라지는 카일의 등을 쳐다봤다. 카일은 중간부터 기척을 전혀 숨기지 못 했다.

“여보…?”

“유리아. 슬슬 돌아가자.”

“네. 여보.”

유리아가 대답했다. 그러나 일어나지는 않았다. 내 오른손이 그녀의 치마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른손을 뺐다. 중지와 약지에 투명한 액체가 묻어 있었다. 입안에 손가락을 넣어 유리아의 애액을 맛봤다.

“여, 여보…!”

유리아가 얼굴을 붉히며 내 어깨를 잡았다. 나는 능글맞게 웃었다.

“맛 좋은데?”

“으으…. 저, 저도 여보의 자지를 먹고 싶어요.”

“돌아가서 마음껏 먹여줄게.”

유리아와 손을 잡았다. 단지 그뿐인데 유리아가 배시시 웃으며 좋아했다.

군막으로 돌아가면서 카일에 관해 생각했다.

‘카일이 어떻게 나올지는… 대충 짐작되는군. 아마 유리아를 포기하겠지. 좀 더 가지고 놀아도 재밌었을 것 같긴 한데…. 뭐, 됐나.’

애초에 유리아를 통해 카일을 이용할 생각은 없었다. 카일이 유리아에게 반한 것은 내 예상외였을 뿐이다. 나와 카일이 형제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따뜻한 침대 위에서 유리아와 알몸으로 뒹굴었다.

???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도구를 이용해 투석기에 사용할 바위를 하나씩 옮겼다. 스칼렛이 진두지휘하며 병사들을 이끌고 있다. 어제 처녀를 잃은 여자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다부지다.

물론 나는 멀리 떨어져서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내 옆에는 카일이 있었다. 카일은 안색이 좋지 못했다. 병에 걸린 환자처럼 가만히 있는데도 식은땀을 잔뜩 흘리고 있다.

“카일 형. 어디 아파? 안색이 엄청 안 좋아.”

카일은 나를 힐끗 봤다. 한순간 그의 표정이 복잡해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괜찮아. 내 마음의 문제야.”

“마음의 문제? 내가 형을 도울 방법은 없어?”

“…없어. 나 혼자 할 수 있어. 그것보다 아까부터 유리아가 안 보이던데.”

“아, 유리아라면 지금 자고 있어.”

“곧 점심인데 자고 있다고?”

“많이 피곤했나 봐.”

“……새벽까지 깨어 있었나 보네.”

“뭐, 그렇겠지.”

“…….”

카일은 입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했다. 내게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인데, 곧 포기하고 고개를 돌렸다.

작업은 저녁까지 이어졌고, 내일 새벽에 본격적으로 마벨로트 고성 공략을 시작하기로 했다.

???

일렬로 선 투석기가 일했다. 투석대에 실린 바위가 허공을 날아가 강에 떨어졌다.

적들도 아군의 의도를 알아 차렸는지 마법을 이용해 바위를 치우거나, 투석기를 향해 파이어볼을 날리는 등 적극적으로 방해해온다.

적들의 방해는 큰 의미가 없었다. 마법사는 적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쾅! 콰콰쾅!

바위가 강을 채우며 어느 정도 길이 만들어졌다. 스칼렛이 내게 신호를 보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성을 향해 진격해라!!”

3,000명에 달하는 노예병들이 비명인지, 함성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달려간다.

아마 비명일 것이다.

저들도 머리가 있으니 자신들이 어떻게 될지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 저들은 노예. 선택지가 없으므로 노예다. 그들의 주인인 내가 그들에게 죽으라고 명령했음으로, 그들은 죽어야 했다.

노예병들이 죽는다.

화살을 맞아 죽고, 발을 헛디뎌 죽고, 강에 빠져 죽고, 마법을 맞아 죽는다. 그들의 시체는 바위의 틈을 메꿔 일종의 다리가 되었다.

“이건… 이건… 미친 짓이야. 유진. 넌 그들의 죽음을 어떻게 감당하려는 거야?!”

내 옆에 있던 카일이 식은땀을 질질 흘렸다. 정상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식중독에라도 걸렸는지 의심스러웠다.

“형. 노예는 노예답게 죽었을 뿐이야. 노예가 죽으면서 발생한 손해는 승리하면 얼마든지 메꿀 수 있어.”

“……너는 유리아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유리아가 갑자기 왜 나와?”

“대답해!!”

카일이 나를 노려본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저것들과 유리아는 달라. 하지만… 유리아가 내 것이라는 건 똑같네.”

“……나는 혼란스러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카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다.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탔다.

“전원 출격 준비!”

카일은 말을 타고 달릴 준비를 했다.

강 위에 길이 만들어지고 드디어 제대로 된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나의 정예 병사들과 카일의 군대가 출격했다. 카일의 기사들이 벽을 타고 올라 내부로 침입했다. 그들이 성문을 장악하고 열었다.

기병들이 달리며 마벨로트 성으로 돌진했다.

“주군. 공을 쌓을 기회다. 출격 허가를.”

플로이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앞에서 전쟁이 벌어지니 몸이 달아오른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공은 이미 충분히 세웠어.”

나는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겼다.

카일이 변했다.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변했는지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느끼기엔 어딘가 변했다. 어젯밤의 일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나 보다.

이게 득이 될지, 아니면 독이 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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