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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3 - 823. 그대를 위한 폭군 (603/2,000)

〈 823화 〉 823. 그대를 위한 폭군

나와 그들의 검에 오러가 치솟았다.

승산은 모르겠다. 지금 내가 얼마나 강한지 객관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건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가속.’

스킬을 사용한다. 나와 근위기사들은 동시에 지면에서 발을 뗐다. 나는 정면으로 돌진했고, 근위기사들은 옆으로 퍼지며 나를 포위하려고 했다. 숫적인 우위를 놓치지 않는다. 근위기사들의 행동은 냉정하고 효율적이었다.

콰앙!

“크으으으윽!”

나와 부딪친 근위기사가 이를 악물었다. 그의 검이 아래로 내려간다. 내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검에 힘을 더 주자 그가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아악!”

그의 팔이 견디다 못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검이 그의 몸에 닿았다. 푸른 오러가 맺힌 검은 그의 갑옷을 가볍게 베어냈다. 그의 목과 가슴팍에서 붉은 피가 치솟았다.

쓰러지는 그의 몸을 밟고 위로 점프했다. 방금까지 내가 있던 곳으로 수십 개의 검이 동시에 찔러 들어왔다. 근위기사들이 나를 포위했던 것이다.

‘뇌전.’

파지지지직.

내 몸은 시퍼런 뇌전과 함께 땅으로 떨어졌다. 뇌전에 감전당한 근위기사들이 경직된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사방으로 크게 검을 휘둘렀다.

근위기사 중 절반이 베여나갔다. 붉은 피를 뿜으며 바닥으로 쓰러진다. 동료들의 죽음 앞에서 그들은 조금도 패닉하지 않고 나를 죽이기 위해 검을 휘두른다. 지금의 나라도 그들을 한 명, 한 명 대응하는 건 불가능했다.

허나 근위기사들의 검이 내 피부에 닿는 일은 없었다. 그 검에 오러가 맺혀 있었으나 스톰브레이커의 내구도는 그들의 상상을 훨씬 초월했다. 내 갑옷을 뚫으려면 최소 오러 블레이드와 그에 걸맞는 검술 실력까지 갖춰야 한다.

“저 갑옷은 대체….”

“공격 자체가 통하지 않는다니…!”

“막아라! 반역자를 막아라!”

갑옷의 단단함에 근위기사들의 사기가 떨어진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근위기사를 한 명, 한 명 처죽였다.

피바다를 걸으며 그레이트 홀로 향했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시간은 내 편이 아니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기사단과 병사들이 몰려온다. 아무리 내게 스톰브레이커가 있다지만, 혼자서 그들 전부를 상대할 순 없어.’

그레이트 홀의 크고 화려한 문을 주먹으로 때려 열었다.

콰앙!

문이 부서질 듯이 열리고 연회를 즐기던 수많은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철컥.

내 의지에 따라 투구가 자동으로 열리고 갑옷에 수납되었다. 오늘 새로운 황제가 등극한다. 그들에게 황제가 누구인지 똑똑히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봤다. 내 시선에 닿은 자들이 몸을 움츠렸다. 로맨스 판타지 세계라 그런 것일까. 남녀 할 것 없이 평균적으로 미모가 뛰어났다.

“유진 벨라카로스?! 저놈이 왜 여기에…!”

“지, 진정하시고 뒤를 보십시오. 그레이트 홀을 지키던 근위기사들이 모두 죽어 있습니다!”

“우웨에에에엑!”

“반역! 반역이다!!”

그레이트 홀의 문 앞에는 마침 옥좌로 이어진 레드 카펫이 있었다. 레드 카펫에 발을 올렸다. 피에 젖은 발자국은 레드 카펫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오직 정면만을 주시하며 천천히 걸어나갔다.

옥좌에 앉은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깨까지 닿는 긴 검은색 머리카락과 가슴팍까지 내려오는 수염.

그는 황제다운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라고 원작을 모르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의 황제는 찌질하고 욕심 많은 놈이다. 본래 황제라면 신하가 황제의 눈치를 봐야 하는데, 저놈은 그 반대였다.

“유진! 이 천박한 놈! 당장 물러가지 못할까!”

황제의 노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렇다고 내 걸음이 멈출 일은 없었다.

쾅! 쾅쾅!

황제가 주먹으로 옥좌를 내리치며 자신의 답답함과 분노를 표현했다. 효과는 있었다. 레드 카펫의 절반을 가기도 전에 한 중년인이 막아섰으니까. 그의 검에서 붉은색 오러 블레이드가 만들어진다.

그는 율하네스 라이로트 백작, 근위기사장이다. 오러 마스터… 아니, 이 세계에선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가장 중 한 사람이다.

“유진 전하. 도를 넘었습니다. 검을 버리고 투항하십시오.”

전하.

이 세계에서 황족을 부르는 호칭이다. 그러나 내 머릿속의 정보에서 나를 전하라 부르는 이는 드물었다. 귀족은 물론이고 하인들까지. 대부분의 사람은 나를 유진 님이라 불렀다. 나를 황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뜻이기도 했고, 그들이 나를 그렇게 불러도 얻는 불이익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근위기사장. 너는 쓸만하지. 비켜라. 너는 나중에 내가 중히 쓰겠다.”

“저의 충성은 오직 황제 폐하 한 분에게만 향합니다.”

“알겠다. 명예롭게 죽어라.”

철컥.

전투 의지를 갖고 발을 내딛자, 투구가 자동으로 착용 되었다.

갑옷을 갖춰 입은 나와 달리 연회복을 입은 율하네스는 무릎을 굽히고 상체를 낮추며 검을 뒤로 뺐다. 내 눈은 그의 검에 향했다. 양산형 검. 아마 갑작스러운 사태에 급하게 주워온 검일 테지.

허나 무시할 수는 없다. 저 붉은 오러 블레이드는 그 어떤 명검보다 위협적이니까.

‘오러 블레이드인가. ……해 볼 만하군.’

손에 쥔 검으로 시선을 옮겼다. 파랗게 일렁이는 오러는 마치 불꽃과도 같았다. 감각이 이끄는 대로 마나를 운용했다. 오러를 압축한다. 형체가 없는 것에 형체를 부여한다. 푸른 불꽃은 액체가 되어 검날을 코팅한다.

“훌륭한 오러 블레이드입니다. 힘을 숨기고 계셨군요.”

“뭐, 그렇게밖에 안 보이겠지.”

“유진 전하. 그 갑옷은 평범한 보물이 아니군요. 대체 어디에서 얻으셨습니까?”

“율하네스!!!”

황제의 노성이 터졌다. 시덥잖은 잡담은 그만두고 내 목숨을 끊어내라는 재촉이었다. 율하네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나와 대화를 나누며 기사와 병사들이 들이닥칠 때까지 시간을 끌려는 속셈이었으나, 멍청한 황제는 그의 속내를 파악하지 못했다.

‘찰나.’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율하네스가 오러 블레이드를 방출했다.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을 추진력 삼아 나를 향해 접근한다. 찰나를 사용한 덕분에 그의 움직임을 훤히 볼 수 있었다.

‘오러 블레이드의 폭발을 이용하는 건 율하네스의 고유검술인가. 이건 위험하군.’

나는 방금 [폭군 퀄리티]의 보정으로 소드 마스터가 되었으나, 나와 그의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멀다. 그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소드 마스터가 되었으니까.

‘그 차이를 좁히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지.’

[10초 동안 천재의 시간을 발동합니다.]

감각이 넓혀진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3]

푸른색의 오러 블레이드가 조금 더 날카로워지고, 검에 전류가 흐른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2]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

연속적으로 찰나를 사용했다. 나와 율하네스의 검이 겹쳐진다. 폭발이 일어났다. 나와 율하네스가 동시에 밀려났다.

스톰브레이커 갑옷 일부가 찢겨 나갔다. 몸이 삐그덕거린다.

나는 태세를 갖추기 위한 약간의 시간을 벌기 위해 방전을 사용했다. 율하네스는 나 이상으로 피해가 심하니 바로 덤벼들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으나, 율하네스는 방전된 전류를 뚫고 피투성이 몸으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를 죽이겠다는 집념이 가득했다.

율하네스의 검이 내 어깨에 닿는다. 갑옷과 검날이 마찰하며 불꽃이 튀었다. 갑옷이 서서히 베어진다.

‘찰나.’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0]

오른손에 쥔 검을 휘두른다. 이미 대비하고 있었던 율하네스의 반응은 빨랐다. 몸을 틀어 내 품 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이겼다. 그는 바깥으로 빠져나가야 했다.

스톰브레이커의 기능 중 하나인 분신을 이용해 왼손에 검을 만들어냈다. 검날은 정확히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피를 토한 율하네스가 바닥에 무릎 꿇었다. 그는 죽기 직전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전하…. 부디 제국에 자비를….”

율하네스는 죽었다. 투구를 벗은 나는 왼쪽 어깨를 쳐다봤다. 어깨 부위가 베어져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어깨에 율하네스의 칼이 박혔으리라. 잘린 어깨 부위는 천천히 수복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수복하는 것도 스톰 브레이커의 기능이었다.

율하네스의 시체를 지나쳐 옥좌로 향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내게 당당히 분노를 내비치던 황제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보며 몸을 떨었다.

“오, 오지 마라. 나는 너의 아비이자, 이 제국의 주인이다!”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내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옥좌를 향하는 계단을 걷는다. 황제의 주위에 있던 귀족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오지 말라고 명령했다…!!”

황제가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그 손은 옥좌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권력을 손에 놓지 못하는 꼴이 우습다.

“그간 맞지도 않는 자리를 고수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황제가 다시 옥좌에 앉았다. 아니, 내 기세에 눌러 주저앉았다.

왼손을 뻗어 황제의 어깨를 잡아 옥좌에서 끌어당겼다.

“무엄하다! 놔라! 놓으란 말이다! 근위기사! 이 반역자를 잡아라!”

황제가 허우적거린다. 그는 내게서 벗어나기 위해 악을 썼으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오른손에 쥔 검을 들어 올렸다. 오러 블레이드는 없앴다. 이 놈을 죽이는데 오러 블레이드는 사치다.

“나, 나는 네 아비다! 거, 검을 치워라!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무슨 짓이라니? 보면 모르십니까? 황위를 계승 중입니다, 아버지.”

나는 썩소를 지었다. 꼭 해보고 싶었던 대사도 전부 내뱉었다. 더는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푸욱.

검은 황제의 복부를 관통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검을 빼고 황제의 목을 베었다. 머리가 발치에 굴렀다.

주변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꺄아아아아아악!”

“황제 폐하께서 반역자에게 시해당하셨다!”

“기사! 기사들은 뭘 하고 있는 거냐!”

“1황자 전하께 알려야 한다! 아니, 황후 마마에게 가장 먼저 알려라!”

귀족들이 소란을 떨었다. 저들은 검을 들고 내게 덤빌 생각을 못 했다. 충성심이 뛰어났다면 작은 나이프를 들고서라도 내 앞길을 막았을 것이다. 애초에 이곳에 모인 귀족들 대부분이 어중이떠중이들이다. 진짜 힘을 가진 귀족들은 13황자의 성인식 따위에 참석하지 않았다.

‘13황자…. 서열 12위. 서열 10위 밖은 가망이 없지.’

황제는 제 자식이니 참석했고, 황족 대부분도 참석하지 않았다. 힐끗 살짝 고개를 돌린다. 내게서 슬금슬금 도망치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13황자의 어미인 제 5 황비다. 황비답게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한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황비는 이 황성에서 도망치지 못한다. 아니, 황성을 나갈 생각을 안 할 것이다.

‘황제를 죽였다고해서 내가 황제가 되는 건 아니지.’

그렇게 게임처럼 간단하지 않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1황자가 기사와 병사들을 끌고 나타나 날 죽이고 황제로 등극할 것이다. 정통성은 1황자에게 있다.

‘날 지지하는 자는 한 명도 없어. 그러니… 힘으로 전원 굴복시킬 수밖에.’

나는 옥좌의 바로 앞에 섰다.

원작의 남주인공이 황제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그가 인간 최고의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검을 들어 올려 옥좌의 왼쪽 팔걸이를 내려쳤다. 팔걸이가 부서지며 안쪽에 있는 황금색 잔이 보였다. 나는 잔을 잡았다. 딱딱하고 서늘했다.

성배.

초대 벨라카로스 황제는 이 성배를 통해 인간을 초월하는 힘을 얻었고, 제국을 세웠다.

성배의 뚜껑을 열자 피처럼 붉은 액체가 들어있었다.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축적된 성액(聖液). 나는 입을 열어 한입에 털어 넣었다.

꿀꺽. 꿀꺽. 꿀꺽.

맛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뜨거웠다. 액체가 지나는 목이 타는 것 같았고, 위장에 닿자마자 몸에 흡수되어 그 열기가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땡그랑.

성배가 바닥을 굴렀다.

나는 전신이 활성화되며 힘이 넘쳐나는 걸 느끼며 옥좌에 앉았다. 오른쪽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괬다.

내 시선은 그레이트 홀의 한쪽, 궁정악단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음악.”

궁정악단이 내 한마디에 움찔거린다. 이해한다.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내 목소리에는 힘이 담겨 있었으니까.

“오늘은 좋은 날이다. 흥겨운 곡을 연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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