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7화 〉 827. 그대를 위한 폭군
“오만한 놈!”
대마녀가 추레한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 끝에서 발생한 검은 저주가 나를 향해 떨어졌다.
나는 저주를 피하는 대신에 분신창을 만들어 대마녀에게 던졌다.
내 몸에 대마녀의 저주가 들러붙고, 대마녀의 오른쪽 어깨에 창이 꽂혔다. 대마녀가 피를 흘리며 지상으로 추락한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당장 궁정 마법사를 불러오겠습니다!”
“이따위 저주가 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대마녀를 붙잡아라. 화형식을 거한다.”
“예, 폐하!”
기사들이 대마녀를 향해 달려갔다.
나는 내 몸에 들러붙은 저주를 쳐다봤다. 몸의 왼쪽 전체가 시커먼 기운으로 일렁인다.
스톰브레이커 갑옷은 물리적인 내구도 뿐만이 아니라 마법 방어력도 뛰어나다. 저급한 마법은 아예 통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좀 다르다. 대마녀가 혼신을 다한 저주답게 스톰브레이커가 막지 못하고 있다.
저주의 기운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스톰브레이커도, 성배의 힘도, 완전회복이나 천심같은 스킬을 쓴 것도 아니다.
황궁의 지하에서 가져온 아론다이트의 효과다.
아론다이트는 두 가지 효과가 있다. 하나는 신수인 거대 늑대, 레디오스를 불러내어 부리는 능력이다. 그러나 지금 이 능력은 온전히 사용하기 힘들다. 신수는 현재 힘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다른 효과는 호수의 가호다. 아론다이트의 주인인 나는 호수의 가호를 받는다. 그 효과로 내게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대마녀의 저주가 내 몸을 침범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물론 호수의 가호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대마녀의 저주도 전부 사라졌군.’
나는 기사들에게 붙잡힌 대마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대마녀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악!”
대마녀에게서 초록색 불길이 치솟았다. 기사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물러났다. 불길은 기사들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고 활활 타올랐다. 저주의 불길이다. 기사들은 숯덩이가 되어 죽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대마녀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입가에 피를 토하며 귀기 어린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다.
“과연 전설에 나오던 성배의 힘이다! 무섭구나! 허나 자만하지 말라! 성배의 힘을 취했다고 해서 네가 인간이 아니게 된 것은 아니니!”
대마녀가 지껄였다. 아마도 저주가 통하지 않은 걸 성배의 힘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꼭 틀린 말은 아니다. 성배의 힘으로 강화된 내 신체는 마법 저항력을 가지니까. 다만 그 효과가 생각보다 미미할 뿐이다.
“다 죽어가는 년이 말이 많군. 모르가나는 어디에 있지? 마녀섬에 있나?”
“너의 말에 내가 대답할 것 같으냐!”
대마녀가 마법을 사용했다. 허공에 지름 30M가 넘는 대형 마법진이 그려진다. 그 마법진에서 거대한 바위가 나타나 지상으로 떨어졌다. 건물들이 박살 난다.
‘…평범한 바위가 아니라 골렘이군.’
골렘이 몸을 일으켰다. 크기만해도 20M가 넘는다. 골렘이 걷는다. 쿵쿵. 땅이 울린다. 골렘의 목적은 나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나를 향해 번개가 떨어지고, 토네이도가 내 주위를 휩쓴다. 초록색 불덩어리가 유성처럼 날아오며, 지면에서 슬금슬금 피어나는 한기가 발목을 붙잡는다. 저주가 통하지 않으니 물리적으로 날 죽이려고 작정한 모양이다.
과연 대마녀다. 도시 하나쯤은 우습게 없애버릴 힘을 가지고 있다. 모르가나가 2황비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겠지.
그러나 저것들 모두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들. 호수의 가호로 인해 내게 피해를 주지 못한다. 고작해야 내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에 그친다.
‘저 마법 중에 가장 내게 위협적인 건 골렘이군.’
어디까지나 저 마법 중에서다. 내 눈에는 골렘도 시시해 보였다.
힐끗.
황성을 쳐다봤다. 황성은 멀쩡했다. 황성을 지키는 마법 결계가 대마녀의 마법을 막아냈기 때문이다. 궁전 마법사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키이이이이잉!
정면에서 거대한 얼음 말뚝이 날아온다. 마법뿐이라면 무시했겠지만, 얼음 말뚝 자체가 품고 있는 질량은 호수의 가호로도 어찌하지 못한다.
‘호수의 가호에 대해 대충 알아차렸나.’
아론다이트를 휘둘렀다. 얼음 말뚝이 쪼개지고 빙결 파편이 되어 나를 때렸다. 허나 내 갑옷을 뚫진 못했다.
무릎을 굽혔다가 폈다. 단지 그것만으로 소닉붐을 일으키며 골렘의 머리 앞에 도달했다. 아론다이트를 치켜들었다. 푸른색 오러 블레이드가 5M 높이로 치솟는다. 위에서 아래로 검을 휘둘렀다.
쩌억!
골렘의 몸이 절반으로 갈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골렘의 내부가 꿈틀거리더니 갈라진 몸이 다시 붙고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골렘의 주먹을 향해 왼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아앙!
골렘의 주먹이 부서져 그 파편이 흩날렸다.
‘검으로 베었을 땐 바로 재생하더니…. 이놈은 부수는게 더 효과적이군.’
아론다이트를 버리고 주먹으로 골렘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염력을 이용하면 공중을 날아다니는 건 문제 없다. 그리고 염력이 없더라도 골렘의 몸에서 나온 파편을 밟으면 추락할 일은 없다.
콰앙! 쾅! 콰아앙!
주먹을 휘둘러 골렘을 박살 낸 나는 땅바닥에 내려서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대마녀는 나를 보며 식은땀을 잔뜩 흘리고 있었다.
“이, 이, 이 괴물놈…!”
먹구름에서 굵은 번개가 내게 떨어졌다. 물론 통하지 않았다.
“…지금의 내 힘으로는 네놈을 죽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다음에 왔을 때는 반드시 손자와 손녀의 복수를 하겠다. 네놈과 네놈의 제국은 주춧돌 하나 남기지 못하고 멸망할 것이리라!”
대마녀의 몸이 더 높이 치솟는다. 도망치려는 것이다.
“짐을 아주 개병신으로 보는구나.”
번개를 다루는 건 내 전문이다.
먹구름에서 뇌전이 꿈틀거리더니 벼락이 되어 대마녀에게 떨어졌다. 설마 자신에게 벼락이 떨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대마녀는 막지도, 피하지도 못하고 명중 당해 지상으로 추락했다.
퍼억.
고깃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대마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대마녀의 몸 아래로 붉은 피가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투구를 벗었다. 전투는 끝났다.
“죽었나? 산채로 붙잡아 불태워 죽여야 했는데… 아쉽군.”
이렇게 된 이상 그 시체라도 태울 생각이었다.
“끄으으윽….”
대마녀가 꿈틀거리더니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살아 있었군. 잘된 일이다. 오래가지 않아 뒈질 것 같으니 네년은 1시간 내로 화형이다.”
대마녀는 기침하며 피를 몇 번 게워내더니 두 눈을 부릅뜨고 날 노려봤다. 실핏줄이라도 터진 것일까. 두 눈에서 피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오만한 황제에게 파멸을! 어리석은 제국에게 멸망을!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너를 증오하리라!”
손가락 끝에서 검은 저주가 내 몸에 들러붙었다.
나는 한심한 눈으로 대마녀를 쳐다봤다.
“멍청한 년. 짐에겐 호수의 가호가 있다. 마법은 짐에게 통하지 않는다. 겪어 보고도 모르겠느냐?”
“키키키. 그 오만함이 너의 죽음이니라…!”
대마녀는 시커먼 피를 토하고 바닥에 고꾸라져 죽었다. 갑자기 죽어버린 것에 짜증이 났다.
나는 내 몸에 들러붙은 검은 기운, 저주를 내려다봤다. 아론다이트는 몸에서 떨어져 있지만, 내가 주인이기에 호수의 가호는 유효하다. 곧있으면 이 저주도 사라질 것이다.
“……?”
저주가 사라지지 않는다.
저주는 갑옷을 넘어 내 몸에 안착했다. 전신이 욱신거리고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콜록.
기침을 터트리자 피가 섞여 나왔다.
‘……내가 저주에 걸렸다고? 어처구니없군.’
죽을 것 같진 않았다. 허나 힘이 약해진 게 느껴졌다. 완전 회복을 고민하던 나는 잠시 멈췄다.
“폐하! 무사하시옵니까?! 폐하!”
대장군 루테온과 병사들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대광장에 있던 병사들은 전부 죽었으니 황성에서 온 지원군들이다.
콜록.
또다시 피를 토했다.
루테온와 병사들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진다.
“대마녀의 저주다. 짐은 현재 약해진 상태다. 네 입장에서는… 짐을 죽이기에 절호의 기회로구나.”
루테온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곧바로 내 앞에 부복했다.
“신이 어찌 감히 제국의 태양이신 황제 폐하를 해하겠나이까! 통촉하여주시옵소서!”
“…농담이다. 대장군은 재미 없었나보군. 일어나라.”
루테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폐하! 대신관을 불러오겠나이다! 부디 옥체를 보전하여주시옵소서.”
“됐다. 약해빠진 저주다. 조금 쉬면 나아지겠지. 병사들을 시켜 주변을 정리하라. 2시간 뒤에, 대마녀의 화형식을 행하겠다.”
“대마녀는 이미 사망했사옵니다. 마녀섬과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대마녀의 시체는 일단 보전하는 편이….”
“대마녀가 죽었으니 마녀섬의 대표자는 그 직계인 모르가나다. 이미 제국과 마녀섬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대장군, 대마녀는 사악한 마법을 부리니 머리를 잘라라. 또한, 제도 내에 있는 모든 마녀를 잡아 와라. 화형식은 대광장에서 진행한다.”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루테온과 병사들이 움직였다.
나는 갑옷을 해제하고 의자에 앉았다. 황성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2시간 뒤에 나와야 하니까. 차라리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편이 낫다.
“…….”
입고 있는 검은 제복의 상의를 풀어 내 몸을 확인했다. 저주에 의해 왼쪽 옆구리와 가슴 부위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물든 부분이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저주가 내 몸을 좀먹고 있었으나, 그 속도는 매우 느렸다.
‘성배의 힘과 호수의 가호가 저주를 억제하는 건가.’
가끔 각혈하고 어지러울 뿐이지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저주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근위기사.”
“예. 폐하.”
루테온이 두고 간 기사가 각을 잡으며 대답했다.
“여자가 필요하다. 시녀를 데려와라.”
“예. 폐하.”
근위기사가 갑옷을 절그럭거리며 황성으로 돌아갔다.
10분 정도 지나자 황성에서 마차가 나왔다. 마차는 내 근처에 멈췄고, 예쁘게 화장한 시녀 4명이 우르르 내렸다. 그녀들 모두 얼굴이 굳어 있었다.
“짐에게 오라.”
내가 손짓하자 시녀들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옷을 벗어 던지고 그녀들을 탐했다.
???
대광장 중심에 화형식 준비가 되었다.
나무 건초 더미 꼭대기에 대마녀, 메르탈리안의 머리가 장식되었고, 그 아래에 대마녀의 시체가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32명의 마녀들이 나무에 매달려 빙 둘러싸고 있다.
처형장 주위에는 백성들이 가득했다. 백성 모두가 분노하고 있다.
“죽여라!”
“마녀를 죽여!”
“찢어 죽일 마녀년들!”
“내 아들! 죽은 내 아들 살려내!”
제도는 대마녀에게 습격받았다. 재상이 그 사실을 제도 전체에 공표하며 백성들을 선동했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벼락이 치며 녹색 불덩어리가 떨어지고 골렘이 주위를 파괴하는 걸 직접 본 평민들이 많았기에 선동은 쉬웠다.
거기에 역사적으로 인간은 다른 종족과 그리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마녀족과 관계가 좋아진 것도 초대 황제가 제국을 세우고 나서부터다. 마녀족은 겉모습은 인간과 다를 바 없고, 제국법으로 마녀족에 대한 차별은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지금까지 잠잠했을 뿐이다.
“폐하. 준비를 모두 끝마쳤습니다.”
대법관이 말했다. 대마녀의 습격에서 용케도 살아남은 모양인데 얼굴에는 피로함이 가득했다.
“잠깐. 뭔가 잘못된 것 같군.”
내 말에 대법관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그는 식은땀을 잔뜩 흘리며 당황했다.
“무, 무엇이 말이옵니까?”
“저 여자 말이다. 저 여자는 마녀가 아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나무에 매달린 젊은 여자를 가리켰다. 긴 연갈색 머리를 한 여자였다.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있는 모습은 청초하면서도 가련했다. 가슴 윗부분이 노출되었는데 깊고도 아름다운 가슴 계곡이 내 시선을 끌었다. 내 자지를 화나게 하는 발칙한 년이었다.
“…송구하오나, 저 여자는 마녀가 확실하옵니다. 마법도구를 이용해 몸속에 있는 마회(魔回) 장기의 존재 여부를 확인했사옵니다.”
“대법관.”
무심하게 부르자, 대법관이 흠칫 떨었다. 그의 눈동자가 요동친다.
“짐은 대법관이 제국법의 자랑스러운 수호자라는 걸 안다. 허나, 짐의 옥좌는 제국법 위에 있다.”
“……옳으신 말씀이옵니다.”
“이참에 대법관에게 알려주마. 짐에겐 신통력이 있다.”
“…신통력…. 네. 알고 있사옵니다. 황제 폐하께서 성배의 힘을 가지셨으니 당연한 일이옵니다.”
“내가 말하는 건 염력이 아니다. 다른 신통력이지.”
“……어떤 신통력이옵니까?”
“관심법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