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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8 - 828. 그대를 위한 폭군 (608/2,000)

〈 828화 〉 828. 그대를 위한 폭군

“이참에 대법관에게 알려주마. 짐에겐 신통력이 있다.”

“…신통력…. 네. 알고 있사옵니다. 황제 폐하께서 성배의 힘을 가지셨으니 당연한 일이옵니다.”

“내가 말하는 건 염력이 아니다. 다른 신통력이지.”

“……어떤 신통력이옵니까?”

“관심법이니라.”

대법관의 표정은 긴가민가했다. 관심법이란 단어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을 테니 당연했다.

“잘 모르는 것 같군. 관심법에 대해 말해줄 테니 귀를 씻고 들어라.”

“경청하겠나이다.”

“관심법이란 나를 보고, 상대를 보고, 세상을 보는 신통이다. 즉, 짐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는 것이다. 짐은 역심을 품은 자를 꿰뚫어 볼 수 있으며, 인간인 척하는 악마도 짐의 눈에는 훤히 보인다.”

“…….”

“왜 못 믿겠느냐? 짐은 성배의 힘을 취했다는 걸 잊지 마라.”

“미, 믿사옵니다. 폐하의 신통력이 참으로 대단하옵니다.”

“어디 보자… 대법관은… 그렇군. 아주 잘하고 있다. 짐을 향한 충성심에 대단하구나.”

“…….”

대법관은 침묵했다. 눈치를 보니 내 구라를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러나 감히 내 말을 부정하지 못한다. 뒈지고 싶지 않은 이상은.

“대법관. 짐이 관심법으로 보아하니 저 여자는 마녀가 아니다. 억울한 백성을 죽일 수는 없으니… 저 여자를 풀어라.”

“…따르겠사옵니다. 허나, 마법도구는 그녀를 마녀로 가리켰사옵니다.”

“대법관 이 새….”

“그녀를 황궁으로 불러들여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옵니다.”

“대법관이 아주 똑똑하군. 일 처리가 마음에 들어. 저 여자는 짐이 직접 마녀인지 아닌지 확인하겠노라.”

대법관이 사람을 시켜 여자를 풀었다. 여자의 손목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마녀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마법이다.

평민들이 불만의 아우성을 내지른다. 눈에 살기를 담아 평민들을 노려봤다. 평민들이 입을 꾹 다물고 내 시선을 피했다.

“폐하. 집행을 시작해도 되겠사옵니까?”

나는 마녀들을 한 번 둘러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미녀는 없었다.

“집행….”

“폐하!”

묶인 마녀 중 한 명이 내 말을 끊었다.

“폐하! 전 마녀가 아닙니다! 살려주십시오! 전 마녀가 결코 아닙니다!”

내가 마녀를 살려주는 걸 보고 희망을 가지고 외친다.

“제 몸에는 마회 장기가 없습니다! 한 번 더 확인해주십시오! 저는, 저는 억울합니다!”

그녀의 말이 어찌나 절절한지 평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쯧. 혀를 찼다. 멍청한 중세 평민 새끼들. 고작 저따위 말에 흔들리다니.

“대법관. 설명해라.”

“저 여자는 마회 장기는 없으나, 마녀의 딸이옵니다.”

마녀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봤다.

두꺼비를 닮은 얼굴이었다. 역겹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마녀가 확실했다.

“짐이 관심법으로 보아하니 저년은 사악한 마녀가 확실하노라. 형을 집행하라.”

대법관이 내 말을 받아 외쳤다.

“형을 집행하라!”

나무에 불이 붙었다.

마녀들의 비명이 대광장을 가득 채웠다. 비명이 높이 울릴수록 백성들은 더 크게 환호했다. 마녀들은 일반인보다 마나를 타고나서 그런지 오랫동안 불탔다.

이윽고 불이 꺼지고 잿더미가 바람에 흩날렸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제국 신민들은 들어라.”

마나가 담긴 내 목소리는 제도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갔다. 백성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향한다.

“오늘 벨라카로스 제도는 대마녀에게 파괴당했다. 대마녀는 짐과 제국에 저주를 퍼부었다. 이는 마녀섬이 제국에 전하는 선전포고이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대광장은 대마녀의 습격으로 여기저기 부서졌다. 파괴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였다. 백성들은 그 흔적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짐은 이곳에서 그대들의 앞에서 맹세하겠다. 이 세상의 모든 마녀를 붙잡아 불로 태워 정화할 것이다. 짐의 이름, 유진 벨라카로스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백성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내가 폭군이란 걸 모르지 않을 텐데도 기뻐한다. 역시 내부에 문제가 있을 때는 외부로 시선을 돌리게 만들어야 한다. 괜히 일본이 한국 때리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이어 말했다.

“황제의 이름으로 마녀 사냥을 선언한다. 마녀를 죽이고 시체를 가져오는 자에게 300 골드를 하사하며, 생포해오는 자에게 3,000 골드의 포상금을 하사할 것이다.”

평민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주위에 있는 대법관과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참고로 평민 4인 가구의 한 달 생활비가 1 골드다. 300골드만 해도 족히 20년은 놀고먹을 수 있고, 3,000 골드면 3대가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이다. 마녀 한 명만 생포해도 팔자가 피는 것이다.

모험가, 용병, 노예사냥꾼들은 혈안이 되어 마녀를 사냥할 것이다. 굳이 생포하라는 이유는 마녀 중에 미녀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미녀가 죽으면 아깝다.

“폐, 폐하. 현상금이 너무 과한 것 같사옵니다만….”

대법관이 우려를 표했다.

“괜찮다. 돈은 복사하면 된다.”

“…돈을 복사한다니…. 그게 가능한 일이옵니까?”

“세금을 올리면 된다. 그럼 돈은 복사가 되지.”

“…….”

???

옥좌에 앉았다.

내 앞에는 재상과 대장군, 대신관, 궁정 마법사가 있었다. 나는 그들 앞에서 옷을 벗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은 파란 로브를 입고 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에게 향했다.

현 마탑의 주인이자, 궁정 마법사인 로드릭 시드레이지다. 로드릭은 긴장감 어린 기색으로 내게 말했다.

“대마녀는… 자신의 목숨을 제물로 바쳐 폐하께 저주를 걸었습니다. 호수의 가호가 저주를 막아내지 못한 건 그 때문입니다. 허나 저주가 억제하는 것도 호수의 가호 덕분입니다. 적어도 당분간은 저주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역시 그랬나. 해제 방법은?”

“……없습니다.”

“지금 장난 하나, 궁정 마법사? 그렇게나 내가 저주로 뒈지길 원하나?”

내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 심기가 불편해지자 로드릭이 당황했다. 수염이 파르르 떨린다.

“아닙니다! 이 저주는 그 대마녀가 영혼까지 걸었습니다! 대마녀의 수준은 저 이상의 마법 실력을 갖추었습니다! 거기에 저주는 대마녀의 특기입니다! 마법으로 대마녀의 저주는 해제하는 건 저를 비롯해 그 어떤 마법사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대신관 페넬로페를 바라봤다.

“대신관. 저주를 해주 해라. 저주에 강한 신성력이면 가능하겠지.”

“예. 폐하.”

대신관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몸에서 신성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의 손위에 신성한 빛, 신성력이 모여들었다. 페넬로페가 저주로 일렁이는 부위에 신성력을 내밀었다.

신성력이 픽 사라졌다.

“…….”

“이, 이게 무슨…. 다시, 다시 해보겠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페넬로페의 신성력은 저주를 없애지 못했다.

“쯧.”

나는 시종을 시켜 포션을 가져오라 시켰다. 평범한 포션도 아니다. 최상급을 넘어선 보물이라 일컬어지는 포션을 그대로 들이켰다. 마찬가지로 아무 반응도 없었다.

불현 듯 마녀가 내게 저주를 내리며 지껄인 말을 떠올렸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너를 증오하리라!

그 말은 아마도 지금 상황을 말하는 거겠지. 갑자기 성질이 난 나는 빈 포션병을 페넬로페에게 내던졌다. 포션병은 그녀의 이마에 맞고 부러졌다. 유리 파편이 그녀의 이마에 박혔는지 피가 주르륵 내렸다. 페넬로페는 신음하나 흘리지 않았다.

“대신관이란 년이 이딴 저주 하나 제대로 해주 하지 못하느냐?”

“……송구하옵니다. 폐하.”

“무능한 년. 꼴도 보기 싫다. 꺼져라. 네놈도 마찬가지다, 궁정 마법사.”

페넬로페와 로드릭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물러났다.

[대신관과 궁정마법사를 모욕했습니다.]

[650 폭군 점수를 획득합니다!]

성질 나는 대로 행동했더니 뜻밖의 소득이 있었다. 개꿀.

기분이 좋아진 나는 대장군에게 고개를 돌렸다.

“루테온.”

“예. 폐하.”

“데르렝 자작령에 대해 알고 있나?”

“……제국 남부에 위치한 곳이 아니옵니까?”

“맞다. 데르렝 자작 영애의 미색이 아주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었다. 소문이 참인지 거짓인지 짐이 직접 확인하려 한다. 그런데 일주일 전에 데르렝 자작에게 서한을 보냈는데, 영애가 병에 들어 입성하지 못한다더군. 그대가 군대와 함께 가서 데려와라.”

“……신이 직접, 군대와 함께 말이옵니까?”

“가는 길에 아르베고라는 마을이 있다. 그 마을의 상인이 감히 짐과 같은 이름을 쓴다더군. 기분 나쁘니 몰살해라.”

“폐하. 송구하오나, 그런 이유로 마을을 몰살하면 제국 신민들이 폐하께 반발심을 가질 것이옵니다.”

“아, 짐이 말을 덧붙이는 걸 깜빡했군. 짐이 관심법으로 보아하니 그 마을에서 역모의 준비하고 있다. 전초제근이라 하였다. 가서 역모의 씨앗을 뿌리째로 뽑아버리도록. 알고 있겠지만, 미녀가 있으면 데려와라.”

“…….”

“불만 있느냐?”

“신은 그저 황명을 따르겠나이다.”

루테온이 홀을 떠났다.

남은 건 한 명이었다.

“재상.”

“예. 폐하.”

“이 제국은 짐의 것이다.”

“…실로 그러하옵니다. 폐하.”

“따라서 제국의 영토도 당연히 짐의 것이지. 그러한데 짐의 영토에 살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 무뢰한들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폐하. 설마…. 아니, 아니 되옵니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재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무릎까지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귀족들에게 세금을 거둬라.”

“제국의 모든 귀족이 들고일어날 것입니다!”

“그것들이 들고일어나면, 뭐가 달라지나?”

무심하게 재상을 쳐다봤다. 재상은 식은땀을 잔뜩 흘렸다. 쩍쩍 갈라진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세율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시옵니까?”

“60%.”

“…20%로 해주시옵소서. 귀족들 또한 황제 폐하의 신민이란 것을 잊지 말아 주시옵소서.”

“그것도 그렇군. 30%”

세율이야 차차 높여가면 될 일이었다.

“…인정하지 못할 귀족들이 많을 것이옵니다. 특히 척박한 북부지역의 대공은 더욱더….”

“북부는 사시사철 눈이 내리고 한파가 휘몰아친다지? 북부대공이 불만을 내비친다면, 짐이 친히 북부에 자비를 내리겠다. 북부는 6,000도 정도로 따뜻해질 것이다.”

“부디 통촉하여주시옵소서.”

“황명이다. 하라는 대로 해라.”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아, 그리고 흑마법사들을 데려와라.”

재상은 이번에도 깜짝 놀랐다. 그는 치음을 꿀꺽 삼켰다.

“폐하. 그들은 금단을 어긴 세계의 범죄자들이옵니다. 상종하지 못할 천한 것들이오니 부디 황명을 거두어주시옵소서!”

“오늘부로 흑마법사는 죄인이 아니다. 제국법이 바뀌었음을 신민들에게 알려라.”

“천신교와 마탑의 입장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황성은 그들의 힘이 필요하옵니다. 특히 천신교는 제국의 근본 중 하나이옵니다.”

“재상. 제국의 근본은 오직 한 명, 짐뿐이다. 그 사실을 잊지 마라.”

“…황공하옵니다.”

???

오닉스 데오바르트를 비롯한 흑마법사들은 근위기사를 따라 황성을 걸었다. 제국의 황성은 그 위명답게 화려했다. 눈에 보이는 대형 궁전만 해도 6개가 넘는다. 그들은 가장 깊숙한, 심처에 있는 궁전으로 걸었다.

오닉스는 후드를 눌러썼다. 젊은 시절부터 이어진 버릇이었다. 그는 흑마회의 수장이지만, 흑마법사는 공공의 적으로서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고 다닐 수 없었다. 일주일 전까지는.

다른 국가에선 몰라도 제국에서는 흑마법사는 더는 죄인이 아니었다. 비록 눈초리는 좋지 않더라도 현상금 사냥꾼이나, 경비병에게 쫓기는 일은 사라졌다.

후드를 쥔 오닉스의 손이 떨렸다. 기쁘면서도 두렵다. 지금의 황제는 폭군으로 위명이 자자하다.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른다.

오닉스의 귓가에 낯선 발소리가 섞였다. 오닉스는 눈을 슬쩍 들어 정면을 응시했다. 반대편에서 로브를 걸친 마법사들이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마탑 소속의 마법사들이었다. 그들은 흑마법사 무리를 보며 대번에 인상을 찌푸렸다.

“더러운 시궁쥐들이 황성까지 기어 나오다니… 말세로군.”

“…….”

오닉스는 두 눈에 힘을 주고 하얀 수염의 노인, 마탑주 로드릭을 노려봤다.

근위기사가 혀를 찼다.

“로드릭 님. 이들은 황제 폐하의 손님들입니다. 말씀을 가려주십시오.”

“내가 오죽 답답했으면 그러겠나? 황제 폐하께선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저딴 천한 버러지들은.”

“로드릭 님. 황제 폐하께 지금 언행을 보고해도 되겠습니까?”

로드릭이 깜짝 놀랐다. 그는 체면도 잊고 근위기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하네. 내가 잠시 흥분했네. 부디 이 일은 황제 폐하께 비밀로….”

“후우. 이 앞은 어전입니다. 부디 언행에 주의해주십시오.”

근위기사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레이트 홀의 정문을 지키고 있던 근위기사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근위기사는 황제와 옥좌가 있는 그레이트 홀의 문을 열었다.

“황제 폐하! 마탑과 흑마회의 마법사들이 알현하옵니다!”

그레이트 홀의 내부를 본 오닉스는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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