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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3 - 833. 그대를 위한 폭군 (613/2,000)

〈 833화 〉 833. 그대를 위한 폭군

천신교에는 교주가 없다. 대신 3명의 대신관이 최고 권력자로서 교단을 운영한다.

그 3명의 대신관이 천신교의 본부에서 만났다. 본래 그들은 하는 일이 달라 한자리에 모일 일은 거의 없었다. 만나지 않더라도 편지, 마법, 성법 등으로 대화할 수 있으니까.

대신관 페넬로페.

성녀 출신인 그녀는 천신교의 동반자라 할 수 있는 벨라카로스 황실에 머무르며, 벨라카로스 제국을 향한 천신교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일을 한다.

대신관 오블랑.

그는 제국 내의 천신교 본부를 운영한다. 그가 바로 천신교의 실질적인 대표라 할 수 있었다.

대신관 게드릭.

그는 제국 외부의 일을 담당한다. 천신교의 교리를 제국 외부로도 퍼뜨리는 게 그의 일이다. 인간이 꼭 제국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이 아닌 다른 지성족도 신을 믿고 따를 수 있다.

서로 모인 그들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본론에 들어갔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오블랑이었다.

“이번 대의 황제…. 유진 벨라카로스는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숙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니, 이제는 숙청도 아닌 학살에 불과하다. 죽은 인간의 시체를 모은다면 산을 만들고도 남겠지.”

오블랑의 얼굴은 일그러져있으며 목소리에는 불쾌함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다른 대신관은 그 목소리에 숨겨진 두려움을 느꼈다.

“황제의 폭정은 그것만이 아니오. 귀족과 우리 천신교에 세금을 부과했고, 대륙의 죄인인 흑마법사들을 불러들였소. 내 듣기로는 흑마법사들로 하여금 수용소를 운영하라고 명령했다지. 그 수용소가 인간 학살장이라는 말이 있소.”

게드릭이 말했다. 성기사 출신인 그는 셋 중에서 가장 심기가 굳건하고 황제에 대한 두려움도 옅었다.

“…….”

페넬로페는 침묵했다. 두 대신관이 황제를 욕하고 천신교의 미래를 논할 때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블랑, 페넬로페. 황제의 검은 언젠가 우리 천신교에게 향할 곳이오. 황제는 성배의 힘으로 30만 대군을 홀로 이겨내는 힘을 갖췄으니…. 황제가 작정하고 천신교를 파괴하려 든다면 막을 방법이 없소.”

“게드릭. 그걸 누가 모른다 말인가. 허나 우리에겐 황제에게 대항할 힘이 없다. 천신교는 현 황제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어쭙잖게 황제를 자극했다간, 불어온 역풍으로 천신교만 피해 입을 뿐이다.”

“그렇다고 황제를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제국은 물론이고 이 세계 전체가 고통으로 신음할 것이오.”

“천신께서 아무런 답도 내리지 않으시니…. 우리는 경거망동하지 말고 침묵해야 한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오블랑. 내게 황제를 죽일 방법이 있소.”

“어떤 방법인가?”

오블랑이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황제는 너무 위험했다. 황제가 천신교를 천대하면서, 천신교의 위상과 권력이 땅에 떨어지고 있다. 이러다간 천신교 자체가 흔들릴지도 모른다. 황제를 없앨 수 있다며 없애고 싶은게 오블랑의 솔직한 심정이다.

“안 됩니다!”

줄곧 침묵했던 페넬로페가 말했다. 오블랑과 게드릭이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안 됩니다! 황제를 자극해선 안 됩니다! 우리는 그저 황제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황제는 폭풍이니, 지나갈 때까지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페넬로페. 말투에 확신이 차 있군. 혹시 미래를 보았나?”

오블랑이 기대를 담아 물었다.

페넬로페가 젊었던 시절, 성녀였던 날에 간혹 예지몽을 꾸었다. 그 예지몽 덕분에 천신교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었고, 그녀가 대신관의 자리에 오른 이유였다.

“…자세히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천신께서 허락하신 건 일부분뿐이었습니다. 황제는… 황제는 이 세상을 지배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황제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것만이. 오직 그것만이 살길입니다.”

오블랑은 조용히 페넬로페를 바라봤다. 페넬로페의 이마에는 흉터가 있었다. 황제가 그녀에게 새긴 흉터였다.

그녀가 황성에서 어떤 홀대를 받는지는 이미 유명했다. 아니, 홀대 수준이 아니다. 황제는 페넬로페를 구타하고 모욕을 일삼았다.

이건 페넬로페에게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황제는 병사들에게 후작 부인을 범해라 명령한 적이 있다. 그 후작 부인의 연배가 페넬로페와 비슷했다. 황제에게 홀대 받는 페넬로페다. 이대로 있으면 그녀도 어느 후작 부인처럼 병사들에게 범해질지도 모른다.

오블랑은 주먹을 쥐었다. 페넬로페는 그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이었으며 마지막이었다.

“페넬로페. 나는 이를 천신께서 내리는 시련이라 생각한다. 시련은 인내해서만은 안 된다. 극복해야 마땅하다. 태풍이 온다면 집이 무너지지 않게 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아…. 오블랑. 부디 다시 생각을….”

“페넬로페. 나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게드릭 말해주게.”

“……페넬로페. 나가주시오. 나는 당신을 믿을 수 없소.”

게드릭이 단호하게 말했다. 오블랑은 침묵했다. 게드릭을 이해했고, 페넬로페에겐 이게 더 최선이라 판단했다.

“……예. 저는 그저 슬플 뿐입니다. 오늘 일은… 제 기억에서 잊겠습니다.”

페넬로페가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났다. 페넬로페는 황제에게 이 일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게드릭. 황제를 죽일 방법이 뭔가?”

“황제의 강함은 성배의 힘이오. 독은 독으로 다스린다는 말이 있듯이, 성배의 힘을 가진 황제는 같은 성배의 힘을 가진 자가 상대해야 하오.”

“……설마. 황제를 대항할 자에게 성배를 주자는 말인가?”

“그랑드 왕국의 국왕. 그라면 황제에게 대항하고도 남을 것이오. 그에 대해선 내가 잘 알고 있소. 성배의 힘을 가졌다 하더라도 폭군이 될 일은 없을 것이오.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오.”

“…그랑드의 국왕이라면 나도 들었다. 가능성은… 있군. 허나 성배가 문제다.”

“페넬로페가 성배를 회수했다고 들었소만.”

오블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페넬로페는 황제로부터 성배를 회수했다. 훔친 것도 아니다. 황제가 허락한 일이다. 물론 대가를 지불해야했지만.

“회수한 성배에는 힘이 없었다. 성배의 힘이 쌓이려면 못해도 100년은 있어야 한다.”

“성배를 내게 주시오. 내가 성배의 힘을 채우겠소.”

“…그게 인위적으로 가능한가?”

“다른 보물들을 이용하면 가능하오. 나를 믿어주시오.”

“알겠다. 나는 널 믿는다. 게드릭.”

오블랑과 게드릭은 이후에도 날이 저물 때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성배를 받은 게드릭은 교단의 정원을 조용히 거닐었다. 그는 커다란 나무 아래로 향했다.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음울한 보라색의 긴 머리카락과 황금색의 눈동자, 하얀 피부와 풍만한 몸매를 가진 매혹적인 미녀였다.

성직자인 게드릭은 그녀를 보자마자 욕망이 꿈틀거리는 걸 느끼고 미간을 좁혔다.

“모르가나. 이게 무슨 짓이오? 내게 마법을 쓴 것이오?”

그녀는 요염한 붉은색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그녀가 게드릭을 비웃었다.

“마법? 네가 내게 욕정을 느낀 거? 미안하지만, 이건 내가 타고난 거야. 시시한 늙은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재밌는 면도 있잖아. 다시 봤어.”

모르가나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행동은 하나같이 색정적이다. 그렇기에 게드릭은 그녀를 경계했다.

“차라리 그대가 황제를 유혹하는 게 빠르지 않겠소? 지금의 황제는 선황 이상으로 여자를 밝히지 않소. 그대의 아름다움이라면 황제도 분명 혹할텐데.”

“불가능해. 황제는 여자를 밝히지만, 여자에게 휘둘리지 않아. 호수의 가호가 있으니 마법도 통하지 않고…. 내가 황제의 앞에 직접 나서는 건 날 죽여달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황제라면 날 평생 동안 농락할 테지.”

게드릭은 모르가나가 현 황제의 어미를 독살했다는 소문을 떠올랐다. 모르가나와 마녀족에 대한 황제의 적개심과 모르가나의 태도를 보면 소문은 사실인 모양이다.

게드릭은 오블랑에게 받은 성배를 꺼냈다. 천신교가 막대한 재산을 대가로 지불하며 얻어온 성물이다. 그러나 현재 이 성배는 평범한 잔이다.

“성배의 힘을 채울 수 있다는 말을 믿겠소.”

“걱정하지 마. 성배의 힘은 확실히 채워서 돌려줄 테니까. 그리고 너야말로 욕심부리지 말도록 해.”

모르가나는 성배를 만졌다. 황제에게 무적의 힘을 부여한 증오스러운 물건. 성배를 쥔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성배의 힘은 인간에게 무적의 힘을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개개인의 차이가 있소. 뛰어난 인간일수록 더 큰 힘을 선사하지. 나는 내 한계를 잘 알고 있소. 그랑드 국왕이라면 능히 황제를 뛰어넘는 힘을 얻을 것이오.”

“그것만으로 부족해. 알지?”

“나는 내가 할 일을 할 것이오. 그 외의 일은 당신의 일이 아니오? 여기선 내가 물어야겠지.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소?”

“착착 진행 중이야. 황제는 너무 강하고, 너무 무도하니까. 이번에 황제가 하르멜의 30만 군대를 혼자서 이겨버린 게 컸어. 그 계기로 제국에는 관심도 없던 자들이 황제를 경계하기 시작했지.”

“……어째 그대는 지금 상황이 즐거워하는 듯하오. 황제가 증오스럽지 않소?”

“증오스러워. 내 아들을 불태우고, 내 딸을 범하고, 내 어머니를 죽인 게 황제야. 황제를 죽이고 싶지 않은 이유가 없어. 하지만… 즐거운 것도 사실이야. 황성에 있을 때보다 훨씬 재밌어. 후후후.”

모르가나의 황금색 눈동자가 빛난다. 먹이를 노리는 짐승같은 눈빛에 게드릭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곧 모르가나가 마법을 사용했다. 그녀의 몸이 안개처럼 흩어진다.

“내가 다시 성배를 가져오기 전까지 허튼짓은 하지 마.”

“…….”

모르가나가 사라졌다.

게드릭은 서늘해진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아름답지만, 소름끼치는 여자다. 대마녀를 부추겨 황제를 공격하게 시켰다고 하던데…. 저 여자는 정말로 황제를 증오하는 게 맞는가? 선황은 어떻게 저런 여자를 황비로 맞이할 생각을 한 거지? …어쩌면 선황에게 수작을 부렸을지도 모르겠군.’

게드릭은 모르가나가 사라진 곳을 한참을 노려봤다.

이곳은 천신교 본교.

본교를 지키는 결계, 그리고 수많은 성기사와 사제들은 뚫고 모르가나는 침입했다.

‘……어쩌면 대마녀 이상의 실력자일지도 모르겠군. 황제도 그렇고… 이 세계에는 괴물들이 많구나.’

게드릭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

황성이 소란스러웠다.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제국의 모든 귀족들이 황성으로 몰려온다.

특별한 날인 만큼 평소와는 다른 연회를 열기로 했다. 재상의 의견이었으나, 솔직히 매일매일 여는 연회는 질리는 감이 있었다. 가끔씩 특별한 연회를 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생일 연회의 시작은 정오부터다.

아침에 일어난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는 나를 제외하고 여자들 10명가량이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하나같이 미색이 뛰어난 여자들이었다.

내가 일어나자 시녀들이 다가왔다. 그녀들은 익숙하게 내 몸을 씻기고 치장했다. 시녀들은 돌아가면서 내 자지를 봉사했기에 지겹지는 않았다.

아침 식사를 했다. 식탁을 가득 채운 요리의 가짓수만 해도 300개가 넘는다. 나는 이 중 몇 개만 먹는다. 나머지는 전부 버린다.

‘오늘도 독은 없군.’

약 4개월 전, 내가 하르멜의 30만 대군을 혼자서 박살 낸 이후로 암살시도가 뚝 끊겼다. 내게 반항하던 귀족들은 그 이후로 나타나지 않았다. 모든 귀족들이 나를 향해 고개를 수그렸다.

‘제국 장악도 거의 끝난 것 같고….’

내게 반항하는 놈들이 없었다. 어쩌다 반항심 있는 놈이 눈에 보이면 망설이지 않고 처죽였다.

최근에는 미녀들과 놀기만 했다.

나는 복도를 걸으며 폭군 점수를 확인했다.

[현재 폭군 점수 ? 8,024,147]

폭군 점수는 내가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올라가고 있다. 여자를 안을 때마다 1~2 점수를 얻는다.

‘탈모르 백작이 수용소를 잘 운영하고 있어서 가만히 있어도 폭군 점수가 오르고 있지.’

그러나 부족하다.

내 목적은 1억 폭군 점수다. 아직 목표 점수의 8%밖에 채우지 못했다.

‘저번에 하르멜 왕국을 복속시켰을 때 점수를 많이 주던데. 정복 전쟁이나 해볼까.’

다행히도 이 세계에는 정복할 왕국이 제법 많았다. 마녀족이나 쌍익족같은 다른 지성족 종족도 있었고.

정복 생각을 하다 보니 복도가 끝나고 황궁의 정원이 나왔다.

정원은 아름다웠다. 향기로운 꽃, 싱그러운 나무. 그리고 나체의 미녀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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