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8화 〉 838. 그대를 위한 폭군
“짐은 내일 에르넬과 약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
나와 함께 식사하던 라이스트 부자가 경악했다. 현 라이스트 대공인 프린츠는 얼마나 놀랐는지 손에 쥐고 있던 나이프를 바닥에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폐, 폐하. 시, 신이 귀가 좋지 못해 잘못 들은 것 같사옵니다.”
“이해한다. 그대는 현재 병에 걸렸으니 그럴 수 있지. 짐이 다시 한 번 말해주마. 짐과 에르넬은 내일 약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프린츠는 떨리는 눈으로 날 보다가 우아하게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에르넬을 쳐다봤다. 에르넬은 아비의 시선을 받고서도 식사를 멈추지 않았다.
‘크크. 아까는 허리가 아프다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더니…. 연기한 번 잘하는군.’
프린츠는 서둘러 표정 관리를 하고는 에르넬을 불렀다.
“에르넬. 폐하의 말씀이 사실이냐?”
“네. 아버지. 폐하께서 제게 청혼하셨고, 전 청혼을 받아들였어요.”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말이냐?”
“폐하께서 그 자리에서 대답하기를 요구하셨어요.”
“…….”
에르넬이 시종일관 나를 들먹였다. 효과는 뛰어났다. 프린츠는 내 눈치를 보느라 언성도 높이지 못했다.
“폐하. 무례를 무릅쓰고 말하겠사옵니다. 약혼식을 재고하여 주시옵소서.”
프린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허리까지 숙여 가며 말했다.
힐끗.
에르넬의 얼굴을 곁눈질했다. 에르넬이 인상을 확 찌푸리고 있었다. 불쾌함이 가득 묻어 나오는 표정이다.
‘에르넬은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묘사가 있었지.’
나는 식사를 이어가며 무심하게 쳐다봤다.
“짐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느냐?”
“그것은 절대 아니옵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시옵소서. 제 여식은 폐하의 배필로 어울리지 않사옵니다.”
“어울리지 않는다라…. 짐은 그대를 이해하지 못하겠군. 에르넬은 그대의 딸이다. 라이스트 대공가의 핏줄이지. 혈통적으로 짐의 배필의 될 자격이 충분하다. 거기에 에르넬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제국 제일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지.”
“…폐하. 제국의 안주인입니다. 그 신분이 뛰어나고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제국의 안주인을 선택해선 아니 되옵니다. 제국의 안주인은 폐하를 보필하고, 제국을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지혜로우며 다정해야 하옵니다.”
나는 식기를 내리고 와인잔을 들었다. 별빛이 담은 것 같은 와인이 찰랑찰랑 흔들린다. 엘프의 비법으로 만들어 한 병에 1,000 골드가 넘는 와인이었다. 비싼 만큼 맛은 무척 뛰어났다. 여유롭게 와인을 마신 뒤 프린츠를 보며 말했다.
“그대는 에르넬에게 신랄하군. 에르넬은 짐이 본 영애들 중에서 가장 교양있는 여인이다. 에르넬은 황후의 자리에 걸맞은 여인이니 그대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결혼이 아닌 약혼이긴 하다만.”
프린츠가 에르넬을 쳐다봤다. 에르넬은 당당했다. 내가 자기를 두둔해서 그런지 기분도 아까보다 훨씬 좋아보였다.
“……폐하. 폐하는 제 여식을 몰라도 너무 모르시옵니다.”
“모른다라…. 재밌는 이야기가 될 것 같군. 해 보거라.”
“아버지. 뭘 말씀하시려는지 모르겠지만…. 그쯤 하시죠? 설마 가문의 치부를 스스로 들추려는 건 아니겠죠?”
“너는 제국의 안주인이 되면 안 된다. 그게 제국을 위한 일이다.”
결심을 굳힌 프린츠가 입을 열었다.
라이스트 가문의 치부.
생각보다 시시한 내용이었다. 에르넬이 어렸을 때부터 하인들을 괴롭혔고, 마을 평민들을 몰래 잡아 와 고문하다 죽였다는 내용이었다. 뿐만이 아니라 그녀는 사치가 심하고 공부도 꺼려해서 지식수준도 낮다고 한다. 라이스트 가문의 치부라는 건 에르넬이 저지른 일들을 모두 권력으로 덮은 일을 말한다.
“폐하. 에르넬이 제국의 안주인이 된다면, 제국은 고통에 신음할 것이옵니다. 저는 에르넬을 평생동안 가문에 둘 생각이옵니다. 부디 약혼식은 파하여 주시옵소서.”
“시시하군.”
“…폐하.”
“대공. 짐은 그저께 마을 하나를 짓밟았다. 평민 400명이 흙이 되었지. 왜 그랬는지 아나?”
“…그 마을이 반역을 모의하였다고 들었사옵니다.”
“아. 겉으로는 그렇지. 그러나 실제로는 반역 모의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대도 알고 있지 않나.”
“…….”
“그 마을이 짓밟힌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하도록 명령했다.”
실제로는 이유가 있었다.
폭군 점수를 얻기 위해서였다. 한 번씩 마을 하나를 조져줘야 내 악명이 퍼지고 폭군 점수가 빠르게 오른다.
“짐이 저지른 것들에 비하면, 에르넬이 저지른 것들은 애교 수준이다. 장난기 넘치는 고양이처럼 귀엽지.”
에르넬이 고개를 숙였다. 은색 머리카락 사이로 살짝 붉어진 뺨이 보인다.
“마음에 안 드는 하녀를 괴롭혀 죽였다? 평민을 잡아와 고문하고 죽였다? 그래도 된다. 왜냐, 에르넬은 귀족이기 때문이다. 귀족이 평민의 목숨을 가지고 노는 게 뭐가 잘못된 거냐?”
“…….”
내 말에 그는 기가 막힌 듯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에르넬이 악녀라곤 하나, 내가 저지른 것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약혼식은 예정대로 내일 진행된다. 짐은 내뱉은 말을 번복할 생각이 없으니 알아둬라.”
“…예. 폐하. 저는 이만 물러나겠사옵니다.”
“그리고 에르넬은 오늘부터 황금 백조의 궁에서 생활할 것이다.”
“화, 황금 백조의 궁이라는 그곳은 황후마마의 궁이 아니옵니까?! 제 여식에겐 너무 과분하옵니다! 여식은 본가에 데려가 신부 수업을 철저하게 시킬 테니 허락해주시옵소서!”
“어차피 짐과 그녀가 결혼하게 되면, 그녀는 황금 백조의 궁의 진정한 주인이 될 것이다. 시간문제일 뿐이다. 거기에 황궁의 예법은 황궁이 직접 가르치겠다.”
“하오나….”
“대공. 짐을 화나게 하지 마라.”
“……송구하옵니다.”
프린츠가 떠났다. 아벨 또한 제 아비를 따라 식당을 떠났다. 에르넬은 그들의 등을 표독스럽게 쳐다봤다. 눈빛을 보니 알겠다. 그들에게 쌓인 게 제법 있는 모양이다.
어쩌면 북부는 에르넬의 손에 멸망할지도 모르겠다.
“에르넬. 허리를 괜찮으냐?”
“소첩을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허리는… 조금 아프네요. 오늘 밤에는 폐하께 안기지 못할 것 같네요.”
“괜찮다. 짐이 영약을 하사할 테니 걱정 마라.”
“예? 예. 가, 감사합니다.”
나는 에르넬을 보며 씨익 웃었다. 에르넬도 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어서 빨리 에르넬의 보지를 내 것으로 길들이고 싶었다.
???
약혼식은 그레이트 홀에서 시작했다.
그녀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었다.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디자이너가 만든 신부복이었다. 나는 검은 턱시도를 입었다. 수백 명의 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약혼식은 성공리에 진행되었다.
나는 에르넬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웠다.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직접 끼워주었다. 에르넬은 나를 보며 미소지었다. 어딘가 비틀어진 미소는 악녀와 몹시도 잘 어울렸다.
“감사합니다. 폐하. 소첩, 오늘 일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사옵니다.”
“이 반지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소유주에게 독에 대한 완전한 면역을 부여해주지.”
에르넬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녀는 탐욕으로 끈적이는 눈으로 반지를 쳐다봤다.
“엄청난 보물이군요. ……어디서 들어본 듯한 능력인데… 으음.”
“하르멜 왕국의 보물이다. 원래는 하르멜의 왕비가 대대로 착용하던 반지지.”
“아. 그렇게 귀한 보물을 제가 가져도 되나요?”
“짐에게는 네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에르넬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한쪽 팔로 휘감았고, 그녀는 양팔로 내 목을 잡았다. 우리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입을 맞추었다.
이후에 나는 그녀를 안아 들고 침실로 향했다. 넓고 큰 침대에 그녀를 내던졌다.
“꺄아아악!”
침대에 던져진 그녀가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폐, 폐하. 소첩은 도망가지 않으니 진정하시고… 흐으웁….”
나 또한 침대에 달려들어 그녀를 덮쳤다. 침대에 엎드려 있는 그녀의 등위에 올라타서 강제로 입을 맞추었다. 숨결을 나누고 혀를 탐한다. 그녀의 몸이 점점 달아올랐다.
찌이익. 찌이이익.
내 손은 쉬지 않고 움직여 그녀의 드레스를 찢었다. 그녀의 하얀 살결과 달콤한 살 내음에 점점 흥분된다. 나는 그녀의 엉덩이와 보지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다가 애액이 나오자마자 자지를 찔러 넣었다.
철퍽!
“아아앗, 아아아앙!”
뜨거운 첫날 밤을 보냈다.
???
[당신의 약혼자가 당신의 권력을 휘두릅니다.]
[150 폭군 점수를 획득합니다!]
[당신의 약혼자가 사치를 부립니다.]
[30 폭군 점수를 획득합니다!]
[당신의 약혼자가 자작가의 귀족 영애를 괴롭힙니다.]
[75 폭군 점수를 획득합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폭군 점수를 얻었다. 에르넬이 저지르는 일들 때문이었다.
에르넬은 대단한 여자였다. 권력이 생기자마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휘두른다. 황궁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 게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폐, 폐하! 라이스트 영애를 말려주시옵소서!”
“재상. 갑자기 무슨 말이냐?”
“라이스트 영애께서 황금 백조의 궁을 개조하려고 하옵니다! 부디 말려주시옵소서!”
“하…. 궁을 개조하는 것뿐이지 않느냐. 뭐가 문제지?”
“황금 백조의 궁은 제국의 역사 깊은 건물이옵니다! 황금 백조의 궁에는 제국의 역사와 전통, 자부심이 깃들어 있사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황금 백조의 궁의 주인은 에르넬이다. 에르넬이 궁을 개조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해라.”
“폐하!!”
“시끄럽다, 재상. 에르넬을 대할 때는 짐을 대하듯이 대하라. 알겠나?”
“……알겠사옵니다.”
[당신의 약혼자가 당신의 권력을 휘두릅니다.]
[255 폭군 점수를 획득합니다!]
어느 날은 에르넬이 내게 다가와 아양을 부렸다. 그녀는 내 허벅지 위에 올라앉아 섬섬옥수를 내 뺨을 매만지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소첩은 메리보트 백작이 가지고 있는 다이아 광산을 갖고 싶어요.”
다이아 광산? 그딴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가. 네가 갖고 싶다면 짐이 구해주지. 재상, 메리보트 백작에게 다이아 광산의 권리를 가져와라.”
나는 에르넬의 커다란 가슴을 손에 쥐어 주물렀다. 만질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가슴은 크고 봐야 한다.
“토, 통총하여 주시옵소서! 메리보트 백작은 남부의 귀족 중에서도 뛰어난 인망과 강인한 군대, 현명한 지혜를 두루 갖춘 인물이옵니다! 그가 황실에 반기를 들게 해선 안 되옵니다!”
“메리보트 백작에게 전해라. 다이아 광산을 내놓지 않는다면, 친히 짐이 나서서 영지를 쓸어버리겠노라고.”
재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황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에르넬을 내게 깊게 고개를 숙이며 부복하는 재상을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폐하. 소첩에게 친구가 있어요. 소첩이 사교계에 데뷔했을 때부터 꾸준히 만나온 친구들이죠. 그녀들을 궁으로 부르고 싶어요. 될 수 있다면… 폐하의 후궁으로 삼아 줄 수 없나요?”
“후궁이라… 나쁘지 않지. 그녀들은 예쁜가?”
“…….”
에르넬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폐하의 눈을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친구들이에요.”
현재 내겐 수많은 후궁이 있었다. 모두 하나같이 수준 높은 미녀들이었다. 나의 후궁이 되기 위해선 정말로 뛰어난 미모를 갖추어야 가능했다.
“안 된다. 아무리 너의 부탁이더라도, 후궁의 자리는 오직 뛰어난 미모를 갖춘 미녀들에게만 허락된다.”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에르넬은 한발 물러났다. 그녀가 내 총애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건,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파악을 잘하기 때문이다.
“그럼 그녀들을 소첩의 시녀로 삼아도 될까요?”
“그 정도는 상관없지.”
“고마워요, 폐하.”
쪼옥.
에르넬이 입을 맞춰왔다.
그녀의 부탁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폐하. 드워프를 구해주실 수 없나요?”
“드워프?”
“네. 소첩은 요즘 황금 백조의 궁을 개조하는 일에 빠져있답니다.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만드는데 드워프만큼 뛰어난 종족은 없다고 하니….”
“드워프가 노예의 종족이긴 하지. 그런데 황성에서 일하는 드워프 몇 명이 있을 텐데?”
“그 정도로는 부족해요. 황금 백조의 궁을 개조하려면 못해도 뛰어난 드워프 장인 20명은 있어야 해요.”
“그렇군. 재상, 대장군에게 알려 군을 소집해라. 이참에 드워프의 나라, 톨토스 왕국을 정복하겠다.”
“폐, 폐하! 하르멜 왕국을 안정화하는 도중이옵니다!”
“소, 소첩은 그저 드, 드워프가 필요할 뿐이지 톨토스를 정복해달라는 말은 아니었어요!”
재상과 에르넬이 당황했다.
“짐의 의지는 확고하다. 군대를 준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