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1화 〉 841. 그대를 위한 폭군
우테모의 워해머가 쇄도한다. 나는 염력을 사용해 피했다. 염력으로 내 몸을 뒤로 잡아끄는 방식으로. 상식 밖의 회피 방식은 효과적이었다.
꽈앙! 워해머에 부딪힌 땅바닥이 지면에 부딪힌다. 지면이 함몰되고 파편이 튀었다. 힘 하나만큼은 기겁할 정도다.
“단순무식하군.”
“싸움이 복잡할 필요는 없다! 적의 골통은 부순다! 그게 과인의 전투다!”
“이해는 간다.”
우테모의 전투 방식은 오직 힘이었다. 그렇다고 민첩하지 못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힘이 강하니 민첩함이 저절로 따라붙는다. 당장 내 움직임을 따라붙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있다.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셈이냐!”
나는 힐끗 성문 쪽을 쳐다봤다. 기사와 함께 제국군이 들이닥치며 드워프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말을 탄 기사들이 종횡무진으로 날뛰고 있으니, 승기는 제국군 쪽에 있다.
‘내가 도와줄 필요는 없어 보이는군. 우테모의 전투법도 대충 파악했고. 슬슬 진짜로 싸워볼까.’
5개의 분신검을 소환했다. 염력을 이용해 5개의 검을 제각각 조종해 그를 향해 날렸다. 우테모는 분신검을 무시했다. 시선조차 주지 않고 나를 향해 다가왔다. 5개의 분신검은 그의 몸을 지키고 있던 바위 방패에 맥없이 막혀 튕겨 나갔다.
그러나 튕겨 나간 분신검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다시 우테모를 향해 쇄도했다. 분신검이 몇 번 두들기자 바위 방패에 금이 가고 부서진다. 다만 새로운 방패가 다시 나타나 분신검을 막아냈지만.
‘영원한 건 없지. 두들기다 보면 결국엔 깨지게 되어 있다. 뇌전!’
지면을 타고 전류가 흘렀다. 우테모의 몸이 움찔거리긴 했으나, 그뿐. 그는 굳건하게 걸었다.
‘미미하지만, 효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군.’
나는 온몸에 뇌전을 두르고 우테모를 향해 돌진했다.
검과 워해머가 교차한다. 제대로 맞붙으면 워해머 쪽이 우세하다. 검을 비틀어 워해머의 힘을 비껴낸다. 힘의 여파를 전부 흘려보내는 건 불가능했다. 내 자세가 무너진다.
‘찰나!’
틈이 보였다. 분신검 5개가 만들어준 바위 방패의 틈. 나는 그 틈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검과 우테모의 어깨 갑옷이 맞닥뜨렸다. 평범한 갑옷은 아닌 듯 은은한 빛을 내며 검에 반발한다.
‘평범한 검이 아닌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아론다이트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응축된 오러블레이드가 갑옷을 관통하고 검이 우테모의 어깨에 닿는다.
“크으읍!!”
우테모가 비명을 삼켰다. 그는 물러나지 않고 반격을 준비했다. 내 옆에 바위 말뚝이 나타나 내 옆구리를 노린다.
‘먼저 죽는 건 네 쪽이 될 거다.’
힘의 방향을 바꿨다. 어깨에서 곧바로 목을 노린다. 아론다이트가 놈의 살을 가르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몸이 뒤로 날아간다. 우테모의 바위 말뚝은 내 몸에 닿지도 않은 상태였다.
‘…뭐?!’
이 감각. 기시감을 느꼈다. 이전에도 당해본 것 같다.
‘……대지모신의 대신관이 내게 저주를 날려 땅에서 추방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군.’
뒤로 날아간 나는 염력을 통해 다시 자세를 잡았다. 우테모의 어깨에서 타고 흐르던 피가 멈췄다. 아니, 치료되었다.
“대지모신이시여, 감사하나이다!”
“……대지모신이라고? 신관이었나? 그렇게 전혀 안 보였다만.”
“과인은 신관이 아니다. 그저, 대지모신께서 도움을 주셨을 뿐이다. 대지모신께서는 네놈을 어지간히도 싫어하는 것 같군.”
“……!”
내 몸에 압력이 가해졌다. 중력이 갑자기 배로 강해진 것이다. 마나도, 신성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자연 그 자체가 나를 방해하고 있다. 움직이기 힘들었다. 우테모를 공격하던 5개의 분신검은 이미 바닥에 떨어져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
“신이… 직접 손을 썼다고?!”
“이 세상의 모든 땅은 대지모신의 영역이시다.”
우테모의 두 눈이 빛난다. 그와 나 사이로 거대한 바위 말뚝이 나타났다. 바위 말뚝은 압축되어 작아졌다. 땅이 부서지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울린다.
“황제여. 갈라틴의 빛이 보이는가? 이 빛은 너의 악을 알리는 빛이요, 과인의 승리를 약속하는 빛이다.”
상대가 악할수록 빛이 강해지고, 소유주에게 그만큼의 힘을 주는 능력.
성가신 능력이었다. 저 능력이 없었다면, 우테모가 나와 대등하게 싸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황제여! 이곳에서 죽어라!”
우테모가 압축된 말뚝의 뒤를 워해머를 휘둘러 쳤다.
‘천심, 찰나.’
두 개의 스킬을 연달아 사용한다. 천심으로 내 몸을 붙잡는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찰
나로 가속했다. 날아오는 바위 말뚝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그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통했다. 천심으로 강해진 신체능력이 빛을 발했다. 우테모를 지키는 바위 방패를 모조리 부수고 갑옷을 찢어내며 육체에 치명상을 입혔다.
“……!!”
기겁한 우테모가 워해머를 번쩍 들었다. 내 몸통을 치려고 한다. 단순하다. 그가 워해머를 들기 전부터 그 공격을 예측했다. 우테모의 공격을 피하고 이번에야말로 목을 노린다.
-나의 친우여!
공기가 떨릴 정도로 육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우테모가 사라졌다. 내 검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만 갈랐다.
“쯧.”
혀를 차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용이 있었다. 그리고 그 용의 등위에 우테모가 올라타 있었다.
100M는 될듯한 거대한 몸. 딱딱한 바위로 이루어진 것 같은 비늘. 위협적인 뿔에 태양을 가리는 날개. 황금색의 눈동자가 도시를 내려다보며 마법을 사용한다. 하늘에서 생성된 바위가 지상으로 떨어지며 제국군을 공격했다.
“폐하! 무사하시옵니까?!”
“…대장군. 짐은 멀쩡하다. 그보다 저 망할 도마뱀이 뭔지 아나?”
“톨토스의 수호룡이자, 지룡인 텔그마오 이옵니다. 현 국왕인 우테모는 그와 오래된 친분을 가졌다고 하나이다. …설마 드래곤이 톨토스를 구하기 위해 직접 나타날 줄은….”
루테온이 말했다. 본래 드래곤은 인간 세계에서 동떨어져 있다. 수호룡이라 하더라도 직접 나타나 국가를 돕는 일은 매우 드물다.
“아니다. 놈은 국가를 구하기 위해서, 우테모를 돕기 위해 나타난 게 아니다. 짐을 죽이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드래곤의 찌릿찌릿한 살기가 여기까지 느껴지는군.”
“…폐하. 드래곤의 출현은 상식 밖의 사태이옵니다.”
“후퇴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아니옵니다. 후퇴는 있을 수 없사옵니다. 드래곤의 가장 강력한 공격은 브레스이오나, 현재 텔그마오는 브레스를 자제하고 있사옵니다.”
“드워프가 휘말리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이겠지. 대장군. 전장을 지휘해라. 난쟁이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드래곤은 짐이 쳐죽이겠다.”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나는 염력을 사용해 하늘로 솟구쳤다. 드래곤과 가까워질수록 그 덩치에 비해 내 검이 무척이나 작다는 걸 느끼게 된다.
‘유성검천(流星劍釧).’
광명승천도에서 유성검문주를 죽이고 빼앗은 팔찌 형태의 법기다. 본래 이름은 유성검이지만, 나는 편의를 위해 유성검천이라 부른다. 소환된 즉시 스톰브레이커와 합체했다. 이걸로 스톰브레이커의 영향을 받은 유성검천의 효과는 몇 배나 더 올라가리라.
‘첫 번째 유성검이다.’
하늘에서 유성검을 소환한다. 나의 기운을 빨아들여 뇌전을 머금은 거대한 검이 하늘에서 나타나 드래곤을 향해 수직 낙하했다. 검의 길이만 해도 300M가 넘는 초대형. 드래곤은 기겁해서 거칠게 날갯짓하며 회피했다.
유성검은 그대로 지상에 떨어져 드워프 도시에 꽂혔다. 검에서 번개가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적군, 아군 할 것 없이 근처에 있던 자들이 죽어 나갔다.
나는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유성검을 소환해 드래곤을 노렸다. 드래곤은 곡예 비행을 하며 유성검을 모조리 피했다.
-아군까지 휘말려 들어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가. 들었던 대로 미친놈이로군.
드래곤이 질린 듯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텔그마오여! 황제는 반드시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한다!”
-알고 있다. 대지모신께서 내게 신탁을 내리셨지. 너를 도와 대륙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수많은 생명을 고통에 빠뜨릴 황제를 멸하라고!
드래곤이 날아온다.
나는 다시 중력이 몸을 압박하는 걸 느꼈다. 떨어지는 몸을 염력을 통해 막아선다.
“빌어먹을 대지모신! 짐의 모든 걸 걸고 맹세하마. 기필코 네년을 개처럼 따먹겠다!”
차오르는 숨을 참으며 드래곤을 향해 아론다이트를 휘두른다. 오러블레이드가 담긴 검은 드래곤의 딱딱한 비늘을 뚫고 상처를 입혔다. 허나, 드래곤의 덩치와 비교하면 내 검은 이쑤시개나 다름없다. 이 정도 피해는 결코 치명상이 되지 않는다.
드래곤의 꼬리가 채찍처럼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이를 악물며 충격을 버티며 드래곤의 꼬리 비늘을 잡아 매달렸다. 검을 꼬리에 박아 넣는다. 드래곤의 피가 흘러나왔으나 치명상이 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유성검!!”
3개의 거대한 검을 소환해 각각 드래곤의 정면 위와 좌우를 노린다. 드래곤이 기민하게 날았으나, 왼쪽의 검을 피하지 못했다. 드래곤이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악!
드래곤의 왼쪽 날개가 꿰뚫리고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냉기의 기운.
이전에 라이스트 대공이 생일 선물로 내게 바친 프로스트 웜의 심장을 복용하고 얻은 새로운 능력이다.
드래곤이 휘청거리며 떨어진다. 나는 꼬리 위에 안정적으로 올라타 우테모를 향해 내달렸다. 우테모 또한 워해머를 양손에 쥐고 내게 뛰어온다.
콰아앙!
검과 워해머가 부딪혔다. 나는 우테모의 오른쪽 어깨를 베었고, 내 몸은 드래곤의 밖으로 날아갔다. 허공에 추락하는 걸 염력으로 막은 순간, 아래에서 날아온 바위 말뚝이 내 몸을 위로 쳐올렸다.
직후, 날개가 찢겼음에도 마법으로 하늘을 부유한 드래곤이 숨을 들이켰다. 대기의 마나를 흡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나를 향해 숨결을 내뱉었다.
펄펄 끓는 뜨거운 용암 숨결이 올라온다. 호신강기로 몸을 감쌌다.
“유성검…!!”
냉기를 품은 거대한 검이 내 뒤에 생성되어 용암 브레스를 향해 떨어졌다. 유성검이 버티는가 싶더니 검끝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유성검 하나로는 부족하다.
나는 이어서 두 개의 유성검을 추가로 생성했다. 역부족이다. 두 개를 더 소환한다. 용암 브레스의 기세가 떨어졌다. 그럼에도 내 갑옷의 절반을 녹이고 없애는 데는 성공했다. 그래도 호신강기와 갑옷 덕분에 내 몸은 멀쩡하다.
“유성검!!”
냉기가 흐르는 3개의 유성검을 소환했다. 두 개의 거대한 유성검을 겹쳐 기세가 약해진 용암 브레스를 막아내고, 나머지 하나는 브레스를 뚫고 드래곤의 몸을 관통했다.
-말도 안 되는…! 이게 정녕 인간 개인이 가질 수 있는 힘이란 말인가!!
드래곤은 300M가 넘는 유성검의 힘을 버텨내지 못하고 산기슭에 처박혔다. 나는 이어서 두 개의 유성검을 추가로 떨어뜨렸다. 유성검이 드래곤의 목과 배를 관통한다. 이어서 드래곤의 시체는 유성검의 냉기로 얼어붙었다.
나는 염력을 이용해 드래곤의 시체 앞으로 착지했다. 그곳에 우테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
우테모가 전력을 다해 달려온다. 그의 몸을 지키던 바위 방패는 없다. 내가 그러하듯, 우테모 또한 한계인 것이다. 대신 그의 앞에는 압축된 바위 말뚝 하나가 있었다.
‘드래곤이 뒈져서 분노했나? 힘은 엄청나지만, 빈틈 투성이군.’
이 정도면 손쉽게 이길 수 있다.
나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무시하며 검을 들어 올렸다. 피곤해서 당장에라도 쓰러지고 싶으나, 그건 우테모를 죽이고 해도 늦지 않다.
그때였다. 갑자기 땅속에서 녹색 식물 줄기가 올라오더니 내 다리와 허리, 어깨를 휘감아 구속했다.
“망할 년이 또 방해를!!”
우테모가 코앞이다.
절반도 남지 않은 갑옷, 스톰브레이커를 해제했다. 분해된 스톰브레이커는 내 정면에 정육각형의 방패가 되었다.
꽝!
바위 말뚝이 방패에 부딪힌다. 나는 뇌전을 일으켜 내 몸을 구속한 식물을 남김없이 태웠다.
우테모가 말뚝을 워해머로 때렸다. 스톰브레이커 방패가 산산조각났다. 하지만 스톰브레이커는 이미 제 할 일을 끝마쳤다. 내 가슴을 노리던 바위 말뚝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말뚝에 닿은 왼쪽 어깨가 가루가 되어 박살 난다.
그러나 내 검은 우테모의 머리에 성공적으로 박혔다.
전투는 끝이었다.
드래곤과 우테모가 없는 이상 톨토스의 수도도 곧 함락할 것이다.
나는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