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3화 〉 843. 그대를 위한 폭군
린다는 엘사가 가져온 신문들을 테이블 위에 쌓아두고 차근차근 하나씩 펼쳤다.
벨카로스 황실에서 제국 전체에 발행하는 신문이라고 한다. 원작 소설에서는 없었던 물건이었다. 물론 소설에선 언급되지 않았을 뿐이지 있어도 이상하진 않다. 이 세계는 지구의 중세와는 많이 다르니까.
‘처음 신문이 발행된 건 일 년 전이야…. 유진 벨라카로스가 황제가 되고 몇 달이 지난 시기….’
그 내용은 귀족들에게도 세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평민들이 내야 할 세금이 늘어나는 건 아니었기에 평민들은 좋아할 만한 내용이었다.
신문을 살펴본 린다는 이질감을 느꼈다. 전부 황실이 유리해지도록 교묘하게 조작되어 있다. 간혹 실리는 안 좋은 이야기는 귀족이나, 평민, 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벨라카로스 황실과 관련하여 안 좋은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엘사.”
“네. 린다 아가씨. 또 뭐가 필요하신가요?”
“…다른 신문은?”
“다른 신문이요? 서재에 있던 신문은 전부 가져왔어요.”
“황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출판한 신문 말이야.”
“신문은 황실에서만 나오는데요?”
“……정말. 정말로 황실에서만 신문을 독점하고 있다고?”
“네!”
엘사가 순진무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린다는 그럴 수 없었다. 그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말도 안 돼. 신문을 통해 얻는 이득을 생각하면 교활한 귀족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어…!”
특히 소설 원작을 생각하면 제국 제일의 상단인 베르메르 대상단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뇌리를 스쳐 가는 최악의 과정이 하나 떠오른다.
폭군은 이미 제국을 장악한 것이다. 황제의 권위가 귀족들의 권위를 한참 넘어섰다. 유진 벨라카로스는 이미 굳건한 절대 황권을 만들었다.
생각만으로도 린다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원작 소설 속에 들어온 거 맞지…? 내가 알던 거랑 왜 이렇게 다른데…?!’
그녀는 다른 신문들의 내용도 전부 읽었다. 제국민을 선동하고 기만하기 위한 교활한 내용이 한가득 이다.
“엘사. 혹시 너도 이 신문을 애독하는 거야?”
“그럼요! 많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재밌잖아요? 게다가 요즘엔 신문을 보는 사람보다 안 보는 사람을 더 찾기 어려울 정도로 유행이에요. 글을 배워둬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이 세계는 오락거리가 극단적으로 적었다. 평민은 먹고사는 것만으로도 바쁘니 평민들은 신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큰 자극을 느끼는 것이다.
“엘사. 이 신문을 전부 믿는 건 아닌지?”
“무슨 소리세요, 아가씨. 당연히 전부 믿고 있죠. 제국의 중심, 황실이 간행하는 신문이니까요.”
“…신문의 내용이 거짓말이라곤 생각하지 않는 거야?”
“네? 다른 사람들 모두가 진짜라고 하던걸요. 그리고 황실에서 거짓말을 퍼뜨릴 이유도 없잖아요.”
“황제는… 신문을 통해 평민을 길들이려는 속셈이야. 신문을 맹신하지 마.”
“아. 네. 린다 아가씨.”
엘사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린다는 몇 번 더 말하려다가 포기했다. 저 표정은 증거를 눈앞에 들이밀지 않는 이상 자신이 뭐라 말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다시 신문을 읽는 데 집중했다. 대부분이 평민들을 선전하는 내용인지라 쏠쏠한 정보는 적었다.
‘…흑마법사를 받아들이고 작위와 영지까지 부여하다니…. 원작 소설에서는 흑마법사는 죄인, 전 대륙 공공의 적이잖아. 게다가… 황제가 에르넬과 약혼했다니….’
자신이 아는 것과 너무 다르다. 그녀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다.
???
린다는 점심시간이 되어 식탁에서 가족과 함께 음식을 들었다.
밸런타인 가문의 직계는 3명이었다.
가주, 네룬 밸런타인.
비쩍 마른 신체에 머리숱이 적고 눈썹과 눈이 날카로운 중년 남자였다. 뺨이 움푹 파여 굉장히 어두운 인상이다. 그의 붉은 머리카락은 가르마를 타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장녀, 레일라 밸런타인.
붉은 머리카락에 호박색 눈동자의 미녀였다. 그녀의 하얀 피부는 탱탱했고, 몸매는 풍만했다. 식기를 사용하는 손놀림은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린다는 익숙하지 않은 식기를 곁눈질로 사용하면서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달라. 소설 내용과 완전히 달라.’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
풍요롭다. 일류 요리사가 만든 요리란 게 느껴질 정도다. 겉모습도, 향기도, 맛도 전부 고급지다.
‘원작에선 요리 2~3가지가 전부라고 묘사됐었는데…!’
밸런타인 백작은 의류 사업을 말아먹고 사기까지 당해 거액의 빚까지 졌다. 덕분에 밸런타인 백작가는 몰락하기 일보 직전의 귀족 가문이었다.
린다는 식당에 오기 전에 엘사를 통해 가문의 빚을 확인했다. 빚은 확실히 있었다.
‘밸런타인 백작은 고압적이고, 레일라는 히스테리를 부리며 밸런타인 백작과 싸워야 정상인데…!’
밸런타인 백작은 고압적이긴커녕 조용했다. 그는 오히려 레일라의 눈치를 살폈다. 레일라는 신경도 쓰지 않고 식사에 집중했다. 이 식탁을 지배하고 있는 건 누가 봐도 레일라였다.
‘…그리고 레일라는 몸매가 나와 비슷하다고 묘사된 거랑은 전혀 다르잖아. 가슴이 엄청 커. 못해도 E컵은 되겠어. 나는 전생도 현생도 A컵이었는데….’
레일라의 눈동자는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신경질적인 히스테리 대신 침을 삼키게 만드는 퇴폐미가 느껴진다.
“린다.”
“어, 응? 어, 언니. 왜?”
린다는 원작 소설을 떠올리며 린다를 연기했다. 레일라가 잠깐 이상하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봤다.
“…몸 상태는 아직도 많이 나쁘니?”
“지난 일주일 동안 푹 쉬었더니 괜찮아졌어.”
“그러니? 그럼 너도 슬슬 사교계에 나서야지.”
“…….”
린다는 어색했다. 레일라가 짜증 하나 부리지 않고 자신을 대했기 때문이다. 원작 소설의 레일라는 악역으로서 이러지 않았다.
“왜 대답이 없니?”
“잠깐… 생각을 하느라. 내가 정말 사교계에 나가도 될까?”
원작 소설의 린다의 첫 사교 파티는 최악이었다. 귀족 영애들의 비웃음을 사게 되고 악역 영애이자, 북부대공의 영애인 에르넬과 척을 지게 된다.
“내가 도와줄 테니 안심하렴. 3주 후에 황성에서 승전 기념 연회가 열려. 너의 기념적인 데뷔탕트가 되겠네. 준비할게 많을 거야. 드레스는 새로 맞추는 게 좋겠지.”
“새로 맞춰? 아니야. 괜찮아, 언니. 가문에 있는 걸 입으면 돼.”
“맞다. 레일라. 굳이 린다의 드레스를 새로 맞출 필요는….”
“아버지는 닥치세요.”
“…….”
밸런타인 백작이 입을 다물었다. 레일라가 노려보자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괜히 식기를 만지작거렸다.
“린다, 네 인생에 한 번뿐인 데뷔탕트야. 황제 폐하는 물론이고 제국 내의 모든 귀족이 모이는 자리야. 준비를 소홀히 할 수는 없어. 거기에 황졔 폐하도 기대하고 계시고.”
“…황제 폐하께서 날 기대한다고? 왜?”
“내 동생이니까.”
레일라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린다는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알고 있는 소설 내용과 맞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색한 저녁 식사가 끝났다. 린다는 레일라의 요청으로 식사 후에 티타임을 가졌다. 레일라는 린다에게 연회의 예법 등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다 돌연 레일라가 하녀들을 방 밖으로 내보냈다.
린다는 긴장한 눈으로 레일라를 쳐다봤다.
“린다. 옷을 벗으렴.”
린다가 당황했다. 그녀는 흔들리는 찻잔을 서둘러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어, 언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데뷔탕트를 위한 준비 과정이야. 가뜩이나 넌 몸이 약하잖니. 철저하게 준비해야지. 네게 밸런타인의 이름이 걸려있다는 걸 잊지 마.”
“아무리 그래도 느닷없이 벗으라니! 경우가 있어!”
린다는 레일라가 귀족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이건 같은 여자라도, 자매라도 선이 넘었다.
레일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하나뿐인 여동생을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봤다.
마치 자신이 비상식적인 인간이 된 것 같아서 괜히 울컥해진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이 세계에선 이게 정상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뭐가 문제야? 벗는 게 부끄러워서 그러니? 목욕 시중은 잘 받잖아.”
“…최근에는 혼자서 목욕하고 있어.”
“하아. 옷 벗는 것 정도는 익숙해지도록 노력하렴. 매일 벗으면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렇지도 않다니…. 언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
레일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린다는 싸대기가 날아오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다행히도 레일라가 자신을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레일라는 덤덤하게 옷을 벗었다. 드레스를 벗고, 스타킹과 속옷, 구두까지 전부 벗어 알몸이 되었다. 크고 모양 좋은 유방 끝에는 살짝 처진 분홍색 유두가 자리했고, 복부에는 군살 하나 없었다. 사타구니 사이에는 붉은색 음모가 무성히 자라있다.
그녀는 뺨도 붉히지 않고 린다를 똑바로 쳐다봤다. 경악한 린다는 딱딱하게 굳어 멍하니 서 있었다.
“옷을 벗는 게 뭐가 어렵니? 자, 너도 벗으렴.”
린다는 결국 레일라가 시키는 대로 옷을 벗었다. 그렇지 않으면 밖으로 보내지 않을 기색이었다. 일단 레일라가 여자이기도 했고, 이 세계는 어쩌면 이게 당연한 상식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난… 대한민국 출신 여자야. 공중목욕탕도 몇 번 가봤어.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
레일라에 비해 초라한 몸매였다. 가슴은 작아서 윤곽만 겨우 보인다. 남자 가슴이라 해도 믿을 정도다. 거기에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몸이 말랐다. 머리카락과 같은 금색 음모는 수북했다.
레일라는 무기질적으로 린다의 몸을 훑어 봤다.
“말라도 너무 말랐어. 음식을 좀 더 많이 먹는 게 좋을 것 같네. 넌 털에 곱슬기가 많아서 지저분해 보이니… 적당히 정리하는 편이 낫겠어. 팔을 들어봐.”
린다는 입술을 깨물며 팔을 들어 올렸다.
“팔뚝에 작은 흉터가 있네. 이건 지워야겠고…. 앉아서 다리도 벌려봐.”
“다, 다리까지?”
“가장 중요한 부위야. 빨리하고 끝내자. 다리 벌리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잖니?”
레일라는 먼저 시범을 보였다. 테이블 위에 다리를 올리고 손가락으로 은밀한 부위까지 벌린 것이다. 분홍색의 모양 좋은 보지였다.
그래도 린다가 망설이자 레일라는 한숨을 내쉬며 완력을 행사했다. 린다를 강제로 의자에 앉히고 다리를 벌리게 한 것이다. 몸이 약한 린다는 저항하지 못했다. 레일라는 린다의 음부와 항문을 확인했다.
“모양, 색, 냄새. 전부 괜찮네. 처녀도 확실히 있고….”
“서, 설마 처녀를 확인하려고 이런 거야?”
“처녀의 유무는 중요해. 처녀가 아니라면 차라리 사교계 공식 데뷔는 영원히 하지 않는 게 나아.”
린다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이토록 순결을 추구할 줄이야. 깜짝 놀랐다.
레일라는 벗었던 옷들을 다시 차분히 입었다. 그녀는 서랍에서 유리병을 꺼냈다. 분홍색 액체가 들어 있었다.
“매일 가슴에 바르도록 해. 매일 확인할 테니 빼돌릴 생각은 하지 말고.”
“이, 이게 뭔데?”
“풍유약.”
“…가슴을 크게 해주는 약?”
“맞아.”
린다는 빠르게 손을 뻗어 유리병을 잡았다. 전생의 그녀도 가슴이 AA컵으로 작았다. 가슴이 작아서 불편하지는 않았으나, 약간 서럽기는 했었다. 현대에서 가슴 크기는 여자의 매력이기도 하니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순결을 내다 버리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마렴.”
레일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다. 린다는 문득 아까본 레일라의 음부를 떠올랐다.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레일라는 처녀가 아니었다.
???
린다는 그날 밤에 첫 번째 계획을 완료했다. 지하에 봉인된 고대의 정령과 계약을 완료한 것이다. 힘들지도 않았다. 힘을 회복하길 원하는 고대의 정령은 린다가 가진 뛰어난 정령 친화력에 이끌렸다.
고대의 정령과 계약한 린다는 건강함을 얻었다.
그리고 3일 뒤.
밸런타인 백작가의 채권을 가진 베르메르 상단주, 베르메르 스켈로그 자작이 찾아왔다.
‘올 것이 왔구나….’
그는 빚을 독촉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레일라를 빚을 내세워 이용하려 하겠지.
밸런타인 백작과 레일라, 린다는 저택 입구에서 그를 맞이했다.
“이런. 보잘것없는 상인을 맞이해주시는 겁니까? 감사합니다.”
진녹색 머리에 안경을 낀 깔끔한 인상의 미남자는 정중하게 인사했다. 린다는 겉모습에 속지 않는다. 저 남자의 마음은 시커멓다 못해 암흑물질 수준이란 걸 알고 있다.
레일라는 베르메르 앞에서 팔짱을 꼈다. 채권자를 대하는 채무자의 태도가 결코 아니었다.
“요구한 물건은 어떻게 됐죠?”
“예. 예. 요구하신 드레스와 장신구, 그 외의 물건들도 모두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