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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45 - 845. 그대를 위한 폭군 (625/2,000)

〈 845화 〉 845. 그대를 위한 폭군

린다는 속이 울렁거렸다.

기분 나쁜 기억이 떠오른다. 전생의 기억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이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다. 억지로 삼켜야 했던 더러운 음료. 자신을 지켜보던 여자들의 조롱 섞인 시선.

꾸욱.

덜덜 떠는 린다의 손을 잡은 건 뮤라였다.

뮤라는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어쩔 수 없어요. 린다. 이번만…. 이번만 지나면 돼요.”

어쩔 수 없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상대는 후작 부인을 폭행하고, 규탄받기는커녕 후작과 후작 부인의 사과를 받을 정도의 권력을 가진 자다. 전생의 그 상황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남작가의 영애와 몰락하는 백작가의 영애 따위는 손가락 하나로 죽일 수 있겠지.

저벅저벅.

다섯 명의 데뷔탕트 영애 중 가장 먼저 움직인 건 린다도 뮤라도 아니었다. 검은 머리에 다소 넓적한 얼굴을 가진 영애였다. 그녀는 구두 끝을 잡아 잔 속으로 넣었다. 에르넬 공녀의 오줌이 섞인 술을 구두에 가득 담는다. 그녀는 아주 잠깐 망설였다가 입으로 꿀꺽꿀꺽 삼켰다.

키득키득.

에르넬이 만족스럽게 웃는다. 그녀 외의 다른 몇 명의 영애들도 웃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웃는 사람은 적었다는 것이다.

“당신의 데뷔탕트를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에르넬 공녀님…. 옷을 입어도 될까요?”

“데뷔탕트는 이제 시작이에요. 옆에 서 있도록 하세요.”

“…네.”

에르넬의 시선이 남은 네 명의 영애에게 향했다. 다른 한 명의 영애가 에르넬을 향해 움직였다.

린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서 굴복하면 편해진다. 전생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이건 일종의 신고식이자, 불순분자를 가려내기 위한 의식이다. 따르지 못하면 적이 된다. 그리고 에르넬에게 찍힌다는 것은 죽음이 확정된다.

‘하고 싶지 않아. 내가 왜 저 여자의 즐거움을 위해 내 존엄을 버려야 하는데…! 하지만 하지 않으면….’

린다의 시선은 레일라에게 향했다. 같은 피를 이었다는 이유로, 같은 성씨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그녀 또한 에르넬에게 찍히게 될 것이다.

린다는 왜 레일라가 원작과 달랐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이미 현실에 포기하고 굴복하고 타협한 것이다.

레일라는 눈으로 말하고 있다. 그냥 견디라고. 침착하게 감정을 죽이고, 에르넬에게 거슬지 말라고.

린다의 손을 잡고 있던 뮤라의 손이 떨어졌다. 어느새 뮤라가 4번째로 에르넬의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뮤라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았다. 그 씩씩한 태도는 자신보다 몇 배는 더 강인해 보였다.

린다의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상황이 무섭고 분한데 할 수 있는 게 없다.

-도와줄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묘한 무게를 지닌 목소리다. 제가 심심하거나, 원할 때만 물어오던 까탈스러운 고대 정령의 목소리였다.

-이곳의 결계가 내 힘을 억제하고 있지만, 나 정도 되는 정령이 겨우 이 정도에 당할 리는 없지. 힘은 아직 회복이 덜 되었어도 널 도울 수는 있어. 여기 있는 여자들을 죽이거나, 널 데리고 도망치거나.

그 어느 쪽도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에르넬이 죽으면, 황제와 북부대공을 적으로 돌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붙잡히면 고문당하다가 죽게 될 것이다.

도망친다? 에르넬에게 찍히게 된다. 밸런타인 백작가는 풍비박산 날 것이고, 마찬가지로 고문당해 죽을 수도 있다.

“겉보기와 달리 당차군요. 쥬랑드 영애.”

“가, 감사합니다. 에르넬 공녀님.”

뮤라의 차례가 끝났다.

남은 건 이제 한 명, 린다뿐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린다에게 향했다. 린다는 떨리는 다리로 앞으로 걸어갔다.

-멍청하긴. 내가 도와준다니까?

‘…멍청한 건 너야. 네 힘만으로는 이 상황을 끝낼 수 없어. 내가 반항하면… 나뿐만이 아니라 레일라 언니까지 죽게 될 거야.’

3주.

그동안 레일라와 정이 쌓였다.

차가워 보이는 레일라는 의외로 자신을 잘 챙겨주었다. 그게 설령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고 해도, 정이 쌓여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레일라가 고문받는 모습을, 자신을 원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 이해할 수 없군. 왜 굴욕을 감당하려는 거지?

‘넌 인간 세계를 몰라.’

-…쯧. 하나만 알아둬라. 나는 너한테 실망했다.

‘…….’

린다는 자신의 구두를 끝에 쥐고 술잔에 넣어 들어 올렸다. 약간 노랗게 변해 있는 액체는 지린내 대신에 지독한 알코올 냄새가 났다.

에르넬의 조롱 섞인 시선을 감내하며 구두를 입에 가져다 댔다. 입안으로 술이 들어왔다. 독했다. 전생과 지금을 통 들어 이토록 독한 술은 처음이었다.

다행이었다. 덕분에 오줌 맛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레일라 밸런타인 양의 동생이시죠? 자매가 아름답군요.”

“…감사합니다. 에르넬 공녀님.”

에르넬이 박수를 쳤다. 그녀를 따라 연회장에 있는 모든 영애가 박수를 쳤다.

“자, 데뷔탕트들의 신고식은 이걸로 첫발을 뗐군요. 다음 단계로 넘을 갈까요?”

첫발.

이제 시작이었다.

겨우 이것만으로 넘어갈 정도로 에르넬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린다를 비롯한 다섯 명의 데뷔탕트 영애들은 사색이 되었다.

이후에 에르넬의 명령에 따라 강제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야 했다. 평범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다섯 명의 데뷔탕트 영애는 모두 알몸이었다. 같은 여자라고 해도 수많은 사람 속에 자신들만 알몸이니 부끄럽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수위는 높아지고 있었다.

네 발로 바닥을 기며 레이스를 한다거나, 그 레이스에서 떨어진 뮤라가 에르넬의 발을 핥거나, 벌주를 마시거나. 에르넬과 말싸움을 해서 패배하고 채찍을 맞는다거나. 특히 에르넬과 하는 게임에서는 무조건 져야 했다.

“하아. 재밌었네요.”

에르넬이 말했다. 그녀는 하녀들을 시켜 향로를 가져왔다. 향로에서 나온 뿌연 연기가 천장을 기어 다녔다. 마약이었다.

그때, 하녀들은 그냥 나가지 않고 뮤라를 데리고 나갔다. 에르넬은 하녀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린다는 뮤라가 부러우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두 번째로 가볼까요. 아, 린다 양은 예외예요.”

에르넬의 손짓에 다른 영애들이 움직였다. 린다를 제외한 다른 세 명의 영애들을 붙잡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에르넬이 사악하게 웃으며 무언가를 들었다.

남자의 성기를 본뜬, 검은색의 굵은 딜도였다.

쪽.

에르넬은 딜도 끝에 입을 맞추었다. 익숙해 보이면서도 무척이나 음란해 보였다.

“안타깝게도 여러분은 수준이 미달인지라, 이 딜도로 만족하셔야겠어요. 후후후.”

에르넬이 한 영애에게 다가갔다. 다른 영애의 손에 강제로 벌어진 다리 사이에 들어가 딜도로 음부를 비비적거린다.

“시, 싫어…. 하지, 하지 말아주세요. 에르넬 공녀님…!”

“건방진 소리군요. 그래도 처음이니 이해해요. 하지만 봐주는 건 한 번뿐이랍니다. 한 번만 더 건방진 소리를 하면 영애의 가문은 몰락하고, 영애의 상대는 돼지가 될 거랍니다.”

“히이이익….”

푸욱.

딜도가 영애의 음부로 파고들었다. 처녀막이 찢어지고 핏물이 바닥에 흐른다.

“아아악! 아아아악!”

에르넬은 개의치 않고 딜도를 앞뒤로 흔들었다. 영애가 비명을 지를수록 에르넬을 즐거워했다.

‘미쳤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던 린다의 어깨를 누군가 붙잡았다. 레일라였다.

“어, 언니!”

“잘했어, 린다. 이제 넌 마지막만 잘하면 돼. 그럼 모든 게 잘 풀릴 거야.”

“마, 마지막이라니…!”

“너와 뮤라는 저 영애들과 달라. 넌 운이 좋게도 미모를 타고났으니까.”

레일라는 입을 다물었다.

에르넬은 영애들의 처녀를 딜도를 모두 뚫고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걸로 데뷔탕트의 신고식은 끝내도록 하죠. 린다 양은 조금 기다리시고요. 자, 저희의 연회를 시작할까요?”

“네. 에르넬 공녀님.”

영애들이 대답했다.

하녀들이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고, 연회장 중심이 갈라지더니 바닥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유리로 막힌 경기장이었다.

경기장 안에는 한 여자가 있었다. 2M가 넘는 큰 키를 가진 근육질의 여자 바바리안이었다. 풍만한 가슴도 근육질로 이루어진 것 같다. 복근은 선명하게 갈라졌고, 허벅지는 또 얼마나 굵은지. 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린다는 그 바바리안 여성의 고간을 보고 경악했다. 커다란 남자의 성기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놀랄 것 없어. 흑마법사들이 저렇게 만들었으니까.”

레일라가 담담히 말했다.

이어서 하녀들이 움직였다. 경기장 안에 평민으로 보이는 여자 4명을 넣은 것이다. 그 평민 여자들은 모두 못생겼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시작하세요.”

에르넬의 명령이 떨어졌다. 여자 바바리안과 평민 여자 4명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수적인 차이는 의미 없었다. 여자 바바리안이 평민들을 압도하며 승리했다. 그리고 여자 바바리안이 평민들을 겁탈하고 죽이기 시작했다.

에르넬이 재밌다는 듯이 웃고, 다른 영애들도 흥미롭게 쳐다본다. 심지어 믿었던 레일라 마저 경기장을 빤히 쳐다봤다.

광기다.

이 연회장은 광기로 가득하다.

“린다 밸런타인 님.”

하녀들이 린다에게 다가왔다. 린다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하녀들을 쳐다봤다.

“린다. 갔다 오렴. 위험하지 않을 거야. 충고하자면…. 그냥 즐기렴. 기분 좋을 테니까. 이걸로 우리 가문은 30년을 보장받은 거나 다름없어.”

레일라가 웃으며 말했다. 하녀들에게 붙잡혀 연회장을 나서는 린다는 이해할 수 없었다.

린다는 하녀들과 함께 복도를 걷다가 어느 방 안으로 홀로 들어갔다. 하녀들은 감히 문턱을 넘지 못했다.

“왔나.”

그곳에 검은 머리의 검은 눈을 가진 남자가 있었다. 린다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가 바로 폭군이라 불리는 황제. 유진 벨라카로스임을.

린다의 시선은 황제의 옆으로 향했다. 흐트러진 상태의 뮤라가 침대 위에 쓰러져 있었다. 가쁘게 숨을 내쉬고 있는 뮤라는 혀를 입 밖으로 내밀며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엉덩이 사이에는 하얀 액체가 묻어 있다.

“황제 폐하….”

린다는 상황을 이해했다.

“가만히 있지 말고 짐으로 오라.”

“페, 폐하. 저는….”

“인사는 됐다. 짐은 너에 대해 알고 있다.”

황제가 손짓했다. 린다는 그의 카리스마에 짓눌러 천천히 침실로 걸어갔다. 넓은 침대 위에는 뮤라뿐만이 아니라 다른 미녀들도 널브러져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 마음에 드는군. 크크.”

그의 손이 린다의 풍만한 가슴을 붙잡았다. 린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으읏, 페, 폐하.”

린다는 가슴이 주물러지자 몸이 점점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몸의 반응이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뭐지? 할 말이 있나?”

“제, 제게 폐하께서 혹하실 좋은 정보가 있어요. 그 정보를 통해 제국은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거예요.”

황제는 린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가슴을 주무르던 손을 내렸다.

원작 소설에서 제국을 위해 일하던 만큼, 제국을 들먹이며 말하자 예상대로 통했다.

“제국의 발전이라. 흥미로운 말을 하는군. 딱 3분을 주지.”

린다는 머리를 굴렸다. 황제가 준 3분. 여기서 시시한 말을 해선 안 된다. 황제가 혹하다 못해 눈이 돌아갈 만한 정보를 꺼내야 한다.

“…폐하. 제국 어딘가에 마나 광산이 묻혀 있다는 걸 아시나요?”

“알고 있다. 짐은 노예들을 시켜 이미 개발 중이다. 알려지지 않은 극비지. 너는 어떻게 극비를 알고 있는 거지?”

“아, 알고 계시다고요?!”

“짐에게 목소리를 높이다니…. 불경하군.”

“죄, 죄송합니다.”

“용서하마.”

“…….”

린다가 눈동자를 굴렸다. 왜 알고 있는 거지? 마나 광산에 대한 정보는 지금 시점에서 몇 년 뒤에나 알려질 텐데.

린다는 이어서 말했다. 호수의 보물, 평원의 유적 등등. 모두 엄청난 정보들이다. 그러나 황제는 시큰둥했다.

“전부 알고 있는 정보들이군.”

황제가 귀찮음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린다는 그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알았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황제의 반응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

린다가 당황해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황제의 손이 움직였다. 풍유약으로 풍만해진 가슴을 주무르며, 다른 손은 허벅지를 쓰다듬다가 음부에 닿는다.

“흐읏!”

황제의 손가락이 음부에 닿는다. 린다는 그것만으로 머릿속이 번쩍이는 쾌락을 느꼈다. 이윽고 손가락은 그녀의 보지를 어루만졌다.

“폐, 폐하. 콥스텐 후작의 약점을 알고 싶지 않으시나요? 전 콥스텐 후작의 약점을 알고 있어요!”

콥스텐 후작.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정적의 약점이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콥스텐 후작? 그놈은 1년 전에 죽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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