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6화 〉 846. 그대를 위한 폭군
“폐, 폐하. 콥스텐 후작의 약점을 알고 싶지 않으시나요? 전 콥스텐 후작의 약점을 알고 있어요!”
콥스텐 후작.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정적의 약점이라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콥스텐 후작? 그놈은 1년 전에 죽었다.”
“…예?”
린다는 황제의 손이 자신의 다리를 벌리고 있다는 것도 잊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콥스텐 후작이 죽었다고?
황제와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황제에게 있어 최대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 그것도 1년 전에?
“콥스텐 후작. 건방지게도 짐을 아비를 죽인 패륜아라 비난했지. 뭐, 비난의 내용이 그뿐만이 아니었고 관심도 없었다만, 감히 짐을 비난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죽이셨나요?”
“황궁으로 불러내었다. 먼저 식솔들을 죽이고, 자식들을 고문하여 죽인 뒤에 마지막으로 콥스텐 후작을 삶아 죽였다.”
“귀족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
무수히 많은 귀족이 콥스텐 후작을 따른다. 콥스텐 후작은 인망 높은 귀족 중의 귀족이었으니까.
“콥스텐 후작을 위해 발언을 하던 귀족들이 몇 있긴 했지. 그들도 똑같이 죽였더니 조용하더군.”
“…….”
아니다.
눈앞에 있는 황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소설 속의 황제가 아니다.
소설 속의 황제는 폭군이라 불리며 백성과 귀족들에게 두려움을 샀으나 선이 있었다. 허나 눈앞의 황제는 선이 없었다.
미녀는 원할 때면 범하고, 귀족이라면 그게 설령 후작이라도 죽인다.
린다는 두려움에 몸을 덜덜 떨었다. 쾌락을 느끼는 몸과 공포에 질린 머리. 그 이상한 느낌에 점점 이성이 증발하는 기분이었다.
“귀엽군. 보지도 충분히 젖은 듯하니 침대에 가볼까. 짐이 즐거움을 선사해주지.”
“폐, 폐하. 저, 저는.”
“말하지 마라. 3분은 이미 지났다. 제국의 기밀을 알고 있는 것과 1년 전에 죽은 콥스텐 후작을 언급한 것은 이상하지만, 잊어주마.”
“…….”
린다는 입을 다물었다. 방법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도저히 못 참겠군. 네놈에게서 불쾌함이 느껴진다.
린다의 옆에 고대의 정령이 나타났다. 검은색으로 일렁이는 인간 형상의 정령.
“정령인가. 무엄하군.”
황제는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대지모신께서 네놈을 죽이라고 내게 속삭이신다.
고대의 정령, 오르키스가 황제를 향해 힘을 사용했다. 보이지 압력이 황제에게 가해진다. 오르키스는 황제의 몸을 짜부라뜨려서 죽일 생각이었다.
피식.
황제가 웃었다. 몸에 가해지는 압력을 무시하고 손은 들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아론다이트가 날아와 손에 잡혔다. 오러블레이드가 치솟는다. 그가 오르키스에게 검을 휘둘렀다.
-소용없다. 고작 그 따위 힘으로는 나를… 크억?!
오르키스의 존재력이 흐트러진다.
“오러블레이드에 염력을 뒤섞었다. 성배의 힘은 너 같은 정령체 놈들을 죽이는 데 유용하더군.”
-겨우 그딴 걸로….
오르키스가 발버둥 쳤다. 그는 이 자리에서 도망칠 생각이었다. 계약자? 그 정도는 다시 구하면 그만이었다. 자신을 보전하는 게 최선이다.
“어딜 도망가려고 그러느냐. 짐이 그렇게 우스운가?”
황제가 손을 뻗어 오르키스의 몸을 잡고 검을 움직였다. 오르키스가 고통스러운 듯 정령체를 이리저리 비틀었다. 무엇을 해도 황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크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과 함께 고대의 정령이 사멸했다.
린다는 소멸을 느끼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몸이 급속도로 약해진다. 오르키스와 계약하며 얻었던 건강이다. 오르키스가 소멸했으니 건강을 잃는 것도 당연했다.
‘오르키스가 소멸했어…! 아, 아무리 약해져 있다고 해도 오르키스가 이렇게 쉽게 소멸하다니….’
검을 든 황제가 린다에게 다가갔다. 그 검이 자신의 목을 치는 게 아닐까. 린다는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폐, 폐하…!”
“정령을 이용해 짐을 암살하려고 한 건 아닌 것 같군.”
“저, 저는….”
“됐다. 네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짐에게 안기는 것이지.”
황제는 검을 버리고 린다를 안아 침대에 올렸다. 침대에 눕게 된 린다는 팔다리를 휘저으며 침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범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저항은 의미 없었다. 황제가 그녀의 다리를 붙잡아 벌리고 딱딱하게 발기한 자지를 보지에 찔러 넣었다.
“아아아아아!”
린다의 몸이 발에 밟힌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사타구니에서부터 시작된 고통이 발끝까지 온몸을 저릿하게 만든다. 직후, 고통의 뒤를 따라 쾌락이 몰려왔다.
“호오. 생각보다 더 보지가 쫄깃하구나. 네 언니보다 낫군.”
“언니…, 라니.”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느냐. 네 언니는… 아니, 다른 미녀들은 모두 짐에게 안겼다. 레일라는 특별히 마음에 들어서 정기적으로 안고 있지. 나중에 후궁으로 삼을 생각이다. 물론 너도 말이다.”
황제가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가슴을 주무르며 허리를 앞뒤로 움직였다. 돌덩어리 같은 물건이 그녀의 몸속을 사정없이 찌른다.
“흐윽. 흑….”
린다는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소설 속 세계에 넣은 신이 저주스러웠다. 이러려고. 황제에게 범해지라고 자신을 이 몸에 넣은 건가?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하앙!”
저도 모르게 교성을 내뱉은 그녀는 깜짝 놀랐다. 지금 자신은 범해지고 있다. 그런데 괴롭기는커녕 즐거워하고 있다.
찔꺽찔꺽.
보지는 누가 들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젖어 있었다.
“이, 이건 이상해. 아파야 정상인데…!”
“크크. 짐은 섹스의 신이다. 짐과 하는 섹스는 즐거운 것이 당연한 법. 아무 걱정하지 말고 그저 지금을 즐겨라. 다른 여자들처럼 말이다.”
“으읍.”
린다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범해지는데 느끼고 싶지 않았다.
“린다….”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옆에 실신해있던 뮤라였다. 뮤라는 따뜻한 눈길로 린다를 쳐다봤다.
“린다. 포기해요. 포기하고 즐기면 돼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하응!”
황제는 뮤라의 보지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뮤라의 얼굴이 풀어진다. 그녀는 억지로 버티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무척 편해 보였다. 린다는 그녀를 따라 생각을 포기했다.
“아아아아아…!”
???
한달이 지났다.
린다와 뮤라는 황제의 선택을 받았다. 영애 중에서 황제의 선택을 받는 영애는 드물었고, 황제의 선택을 받은 순간부터 영향력이 남달라졌다. 백작 이상의 귀족들은 감히 눈도 마주치기 어려워했으며, 어지간한 것들은 하녀에게 명령하는 것으로 전부 이루어진다.
거기에 린다는 영약까지 하사받았다. 몸이 좋지 않아 보이니 먹고 건강해지라는 황제의 호의였다. 황제의 호의에는 감사한다. 덕분에 건강한 몸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오랜만에 황성에서 밸런타인 백작가로 돌아온 린다는 생각했다.
그녀는 진실을 알았다.
황제가 저지른 온갖 만행들을 봤다.
강간은 기본이었고, 살인도 밥 먹듯이 자주 일으킨다. 그 이유도 기가 차다.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놈이 역심을 품었다는 이유로, 마우 이유도 없이 죽인다.
경악스러운 건 황제의 비밀 정원이었다.
미녀로 이루어진 그 정원은 광기 그 자체였다. 그녀는 그곳에서 3시간 동안 조각상이 되어 가만히 있어야 했다. 뮤라는 보지꽃이 되어 흙바닥에 누워 다리를 활짝 벌렸다. 인어는 연못에서 헤엄쳐야 했고, 드워프 미녀들은 벽에 끼인 채로 숨을 죽여야 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끔찍한 게 있었다. 그녀는 에르넬 영애와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인간 목장.
흑마법사 영지에서 이뤄지는 최악의 범죄.
민간인 학살? 그건 이 인간 목장에 비하면 도리어 귀여운 수준이다.
인간을 붙잡아 가축처럼 취급한다. 하루에 100명이 넘는 인간이 이 인간 목장에 들어오고, 하루에 100명이 넘는 인간이 도축된다.
여인은 종마라 불리는 남자와 교미하고 임신한다. 마법을 이용해 임신 10달을 2주로 줄이고, 애를 낳게 한다. 그 아이도 흑마법에 의해 성장이 빠르게 진행된다. 성인이 되기까지 5달이면 충분하다는 말을 들었을 땐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여자는 인간을 낳게 없게 되었을 때 폐기되고, 종마는 주기적으로 폐기된다. 여기서 폐기는 곧 도축을 말한다.
도축된 인간의 시체는 사료가 된다.
끊이지 않는 악순환.
그곳은 현세의 지옥이었다.
“우우우욱!”
정원을 걷던 린다는 입을 막았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났다.
“괜찮으십니까?”
누군가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베르메르.”
“네. 린다. 에르넬 공녀와 함께 탈모르 후작의 영지에 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육장을 본 모양이군요.”
“…황제는 미쳤어요.”
“동의합니다.”
“그건, 인간이…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에요.”
“황제는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이라기엔 너무 강합니다. 황제의 힘은 홀로 나라를 멸망시키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그는 악신입니다.”
“……베르메르. 미쳤나요?”
린다는 어이없다는 듯이 베르메르를 쳐다봤다. 지금 베르메르가 내뱉은 말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는 순간, 베르메르는 고문당하고 죽을 것이다.
“황제에게 말할 것입니까?”
“…됐어요. 못 들은 거로 할게요.”
“린다는 다른 영애와 다르군요. 보통은 진실을 알게 되면 황제에게 충성하게 됩니다. 사육장의 인간처럼 되고 싶지 않아 하죠. 동시에 황제의 후궁으로서 가지는 권력에 빠지게 됩니다.”
“……베르메르. 오늘은 뭔가 다르네요. 하고 싶은 말이 뭔가요?”
“그동안 린다를 지켜봤습니다. 당신의 친구는 에르넬 공녀와 어울리며 정의에 눈을 돌리고 권력에 떨어졌지만, 당신만큼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
뮤라.
뮤라는 요 1개월 동안 변했다.
어느 순간부터 에르넬과 어울리기 시작하더니, 에르넬에게 물들였다. 에르넬을 따라 권력을 휘둘렀다. 남작가의 영애에 불과했던 뮤라는 권력을 휘둘러 백작가를 몰락시키고 사치를 부렸다. 황제에게 아양을 떨고, 에르넬에게 아부하며 조금이라도 많은 권력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순수한 뮤라는 이제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지난 시간 동안, 저는 당신을 관찰했습니다. 학살당하는 평민을 위해서 막아서는 당신을 봤고, 범해지는 처녀들을 보며 눈물 흘리는 당신을 봤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내년부터 제국에선….”
“초야권이 진행되죠.”
“네. 맞습니다. 황제의 폭정은 나날이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제국신민들은 그저 제국이 강해졌다고 좋아하지만, 실제로는 제국이 강한 게 아니라 황제가 강한 겁니다. 황제는 언젠간 제국 전체를 지옥으로 만들 것입니다.”
“…….”
“누군가는 그걸 막아야 합니다.”
“저보고 황제를 막으라고 말할 생각이신가요?”
“그건 불가능한 일이란 걸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혼자서 황제를 막는 건 불가능합니다. 허나…. 혼자가 아니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죠. 린다. 저희와 함께하시죠. 같이 황제를 막읍시다.”
“설마, 당신은….”
린다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베르메르는 무언가를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은색의 목걸이였다.
“자정.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 목걸이를 손에 쥐고 작게 속삭이십시오.”
베르메르의 머리가 내려갔다. 그는 린다의 오른쪽 귓가에서 속삭였다.
“황제는 죽어야 한다.”
???
린다는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이 세계에 오게 된 것. 그건 어쩌면 황제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황제는 두려우나, 인간 목장에서 사육되는 인간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황제의 힘과 권력은 나날이 강해지고 있으니…. 이 세계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무시하면 돼. 나만 무사하면 되니까. 오늘 있었던 일을 황제에게 밀고하면… 나는 평화롭게 살 수 있어. 나만, 나만 무사하면….’
어린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단지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산채로 삶아졌던 어린아이.
린다는 목걸이를 꽉 쥐었다.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가리켰다.
“…황제는 죽어야 한다.”
침대에 누워있던 그녀의 몸이 사라졌다.
잠옷 차림의 그녀는 어느 실내에 나타났다. 황금색 가득한 정원. 그리고 정원 내에는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거나,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중 절반은 린다가 알고 있는 귀족들이었다.
북부대공의 후계자, 아벨 라이스트.
그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서늘한 붉은 눈이 린다를 쳐다본다.
붉은 머리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쾌남, 제국의 제독 요르한 멜코스는 벽에 기대어 있었다. 린다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씨익 웃었다.
제국 제일 상단의 주인인 베르메르가 린다의 앞으로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린다. 당신이라면 저희와 함께할 줄 알았습니다.”
“여기는….”
“여기는 황금 정원.”
대답은 뒤에서 들려왔다. 여자가 들어도 예쁜 목소리였다. 린다가 뒤를 돌아봤다.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보라색 머리카락의 마녀가 있었다.
“황제를 죽이기 위한 모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