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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47 - 847. 그대를 위한 폭군 (627/2,000)

〈 847화 〉 847. 그대를 위한 폭군

“여기는 황금 정원.”

대답은 뒤에서 들려왔다. 여자가 들어도 예쁜 목소리였다. 린다가 뒤를 돌아봤다.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보라색 머리카락의 마녀가 있었다.

“황제를 죽이기 위한 모임이야.”

린다는 꿀꺽 침을 삼켰다. 이곳에 들어오기 위한 주문을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다만 이곳에 모인 멤버들이 하나같이 대단한 인물들뿐이라 몸이 긴장되었다.

특히 이곳에 중심에 있는 마녀, 모르가나는 악명이 자자한 여자로 유명했다. 원작 소설을 통해 모르가나에 대해 알고 있는 린다는 모르가나가 의심스러우면서도 동시에 납득이 갔다.

모르가나는 황제의 어미를 죽인 원수다. 그리고 황제는 모르가나의 아들과 어미를 죽이고 그 딸을 붙잡아 개 취급을 하고 있다.

린다는 오필리아를 떠올렸다. 몇 번 본 적 있었다. 오필리아는 희망도 뭣도 없는 공허한 눈으로 성적 쾌락만을 추구했다. 이미 정신이 망가진 황제의 성욕 처리 도구다.

“눈치를 보니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모양이야?”

“…모르가나 레이티어 아니신가요.”

“맞아. 황제에게 쫓기는 마녀지. 너는 린다 밸런타인이지? 황제의 후궁 후보.”

후궁 후보.

황제의 선택 받은 여자들. 여기서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후보이지 진짜 후궁은 아니다. 현재 황궁에는 후궁이 없다. 이유는 별거 없다. 에르넬이 아직 공식적으로 황제와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가 이곳에 와도 괜찮을까요? 저따위가 이 모임에 참가하기엔 하나같이 대단한 인물들이신데….”

“그거라면 걱정 마. 반대는 있었어도 대부분은 널 받아들이기로 이미 이야기가 끝났으니까. 그리고 한 번 들어온 이상 쉽게 돌려 보내줄 수는 없어. 정 하기 싫다면 기억을 지우고 보내줄게.”

“…….”

린다는 고민했다.

객관적으로 황제를 죽이는 건 미친 짓이다. 이토록 대단한 인물이 보였는데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원작 소설의 린다처럼 이용만 당하고 버려질 수도 있다.

안위를 생각하면 차라리 기억을 잃고 돌아가는 편이 낫다. 그러나 황제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자꾸만 발목을 잡는다.

“…제가 뭘 하기를 원하시는 거죠?”

“너만 할 수 있는 일이지.”

“저만 할 수 있는 일…? 황제는 저 말고도 많은 후궁 후보를 두고 있어요.”

“맞아. 그리고 그녀들 중 대부분은 황제에게 굴복했지. 그리고 너는 후궁 후보 중에서도 특별해. 이유는 모르겠지만, 황제는 널 신경 쓰고 있어.”

“……황제를 독살하거나, 황제가 자는 동안 암살하라는 일이라면 이쪽에서 사양하겠어요.”

“그런 어설픈 방식으로 황제를 죽일 수 없다는 것쯤은 우리도 알아. 우리가 네게 바라는 건 황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거야. 황제의 정보가 필요해.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황제를 죽이는 걸 도와줘.”

“…알겠어요. 하지만 시키는 대로만 할 생각은 없어요.”

모르가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협력해줘서 고마워. 베르나르. 린다 양을 안내해줘.”

“네. 모르가나.”

모르가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눈다. 린다는 귀에 집중했다. 제법 떨어져 있어서 어떤 내용인지는 완벽히 알 수 없으나, 군사 어쩌고 하는 단어가 들린다.

“린다. 이쪽으로 오시죠. 제가 주요 인물 몇몇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베르나르가 안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 지금 잠옷이라 굉장히 부끄러운데….”

“괜찮습니다. 이곳에 있는 누구도 린다의 옷차림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잠옷을 입고 오는 건 흔한 일이거든요. 보십시오. 저 사람도, 저 사람들도 잠옷을 입고 있지 않습니까.”

“…….”

베르나르가 가리키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다. 애초에 이 정원에 있는 여자는 매우 적었다. 전체의 10%밖에 되지 않는다. 젊은 여자는 린다뿐이었다. 모르가나는 젊고 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린다의 2배 이상 많은 나이를 가졌다.

‘따지고 보면 베르나르가 미리 말해줬으면 잠옷을 입진 않았을 텐데….’

지금 와서 따져도 의미 없었기에 속으로만 투덜거렸다.

린다는 베르나르의 도움으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쪽은 테르만 플라스트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린다 밸러타인 양입니다.”

“편하게 테르만이라 불러라.”

그는 중년인이었다. 유독 머리카락에 하얀 부분이 많다. 그는 회의감 가득한 눈으로 린다를 보며 무감정하게 말했다.

“린다라 불러주세요. 플라스트라는 성은 혹시….”

“그래. 플라스트 백작이 바로 나다. 우리 가문은 세금을 내라는 황제의 말에 반항했고, 그 대가로 몰락했다. 가족들은 처형당했고, 내 딸은 황제에게 범해지고 자살했지.”

“…….”

테르만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나 무심함에 가려진 분노는 린다의 등골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황제는 도망친 날 쫓지 않았다. 수배령만 내렸을 뿐이지. 황제는 날 적으로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빌어먹을 자식. 언젠간 반드시 죽여버릴 거다….”

“테르만.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베르나르가 말했다. 테르만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렇군. 황제만 생각하면 열이 뻗쳐서 말이지. 아가씨의 이름이 린다라고 했나? 그 이름은 나도 들어봤다. 후궁 후보로서 고생이 많겠군.”

“…아뇨. 적어도 죽을 일은 없으니까요.”

린다가 씁쓸하게 웃었다.

말이 좋아서 후궁 후보지 하는 일은 황제에게 다리를 벌리는 창녀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황제에게 몸을 바치는 대가로 막대한 권력과 부를 손에 넣을 수 있지만.

“내가 무신경했군. 그날부터 남을 배려하는 일이 꽤 힘들어. 사과하지.”

“전 괜찮지만, 테르만 씨의 사과를 받아들이도록 할게요.”

“고맙군. 나는 음지에서 활동하며 황제와 관련된 정보를 모두 모으고 있다. 후궁 후보인 너는 황제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니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크지. 정보를 알게 되면 내게 알려다오. 베르나르가 널 내게 소개한 것도 그 때문이겠지.”

“알겠어요. 그래도 제가 얻은 정보는 별로 없을 거예요. 황제가 하는 일은… 대부분이 여자를 안는 일이니까요.”

“사소한 정보라도 좋다. 사소한 정보가 가장 위협적으로 변하니…. 새로운 걸 알게 되면 알려다오.”

“네. 그럴게요.”

베르나르는 이어서 구릿빛 피부에 붉은 머리를 가진 쾌활한 청년에게 그녀를 데려갔다.

“아가씨. 잠옷 차림이 잘 어울리는걸?”

“린다 밸런타인이에요. 너무 놀리지 마세요. 부끄러우니까.”

“요르한 멜코스. 제국의 위대한 제독이 나야. 술이라도 한잔 할래? 여기 정원의 술은 무척 맛있으니 너도 마음에 들 거야.”

요르한 멜코스. 제국의 바다를 주름잡는 젊은 제독이었다.

“감사하지만, 사양할게요. 제가 술에 약해서… 지금 술을 먹으면 내일 아침이 큰일일 거예요.”

“아쉽네.”

린다는 요르한과 대화를 나누었다. 실속이 없는 자잘한 대화였다. 요르한은 입이 가벼울 것 같으면서도 무거운 남자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 린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린다는 그의 업무를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바다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건 매우 큰 장점이야.’

요르한과 할 수 있는 건 무척 많았다.

베르나는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다가 이어서 아벨 라이스트에게 다가갔다. 북부대공의 후계자.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진 그는 차가운 눈으로 린다를 쳐다봤다. 린다는 흠칫 놀랐다. 그의 붉은 눈은 에르넬을 떠올리게 한다.

“아벨 라이스트다.”

“린다 밸런타인이에요.”

“…….”

“…….”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린다는 구태여 대화를 이어가려 하지 않았다. 원작 소설을 통해 아벨의 성격을 아는 그녀는 그와 억지로 대화하는 건 도리어 역효과였다.

린다와 베르나르는 아벨의 맞은편에 앉아 다과를 들었다. 아벨은 다과에 손도 대지 않았다. 그는 단 음식을 매우 싫어했다.

“에르넬이 너를 괴롭힌다는 말을 들었다.”

“…후궁 후보 중에서 저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어요. 아마 제가 다른 후궁 후보들과 달리 행동했기 때문이겠죠.”

에르넬의 괴롭힘은 별거 없었다. 기껏해야 말로 모욕하는 수준이 전부다. 그 이유는 후궁 후보이기 때문이다. 에르넬이 진심으로 자신을 괴롭히려 했다면, 이미 손톱 정도는 전부 강제로 벗겨졌을 것이다.

에르넬은 후궁 후보와 미녀는 물리적으로 괴롭히지 않았다.

“그 여자가 저지른 일을 사과할 생각은 없으나, 일단 그 여자의 출신은 라이스트다. 미안하다. 그 여자는 황제가 죽을 때, 내가 직접 죽일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에르넬을 직접 죽이시겠다고요? 같은 피가 흐르는 남매가 아니셨나요?”

“그 여자는 라이스트 가문에 증오를 가지고 있다. 라이스트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지. 가지지 못하면 부숴버린다. 그 여자의 고약한 심성이다. 그 여자는 라이스트 가문의 수치이고 오욕이니 내가 직접 처리하는 게 옳다.”

“……그러시군요.”

린다는 식은땀을 흘리며 다과를 씹었다. 눈앞에 남자와는 친하게 지내기 힘들 것 같았다.

잠시 후, 모르가나의 목소리가 정원에 전체에 울렸다. 마법이 확실했다.

“좋은 소식이 있어.”

모두가 정원의 중심을 쳐다봤다. 모르가나가 우아하게 서 있었다.

“드디어 연합이 만들어졌어.”

정원 내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감탄하고, 누군가는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모두가 기뻐하고 있었다.

“연합…?”

이 모임을 말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이 모임이 연합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을 테니까.

“아, 린다는 오늘 처음 왔으니 모르겠군요. 모르가나 님이 말하는 연합은 제국 외의 국가 연합을 말합니다. 제국에 대항하는…, 보다 정확하게는 황제에게 대항하는 연합국이 창설된 것이죠.”

“제국 외의 다른 국가들이 전부 연합했나요?”

“아니요. 북부의 거인국 솔라미트는 제외입니다. 솔라미트는 현재 황제의 명에 따라 총사령관인 대장군 루테온이 라이스트 가문과 함께 정벌 중이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벨. 이참에 전쟁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전쟁은 곧 끝난다. 제국의 승리다. 저번에 황제가 나타나 솔라미트의 거인 1만명을 학살하고 돌아간 것이 컸다.”

“솔마리트 왕국 외의 국가들이 연합한 건가요?”

린다가 묻자 아벨과 베르나르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동쪽 바다에 있는 도국(島國), 그랑드 왕국. 그랑드의 국왕은 성검 엑스칼리버로 유명하죠. 서쪽 사막의 지배자인 슬레이드 제국, 수많은 수인들을 이끄는 술탄이 결단을 내렸습니다. 엘프 왕국 메일로드는 대지모신을 신봉하죠. 황제는 대지모신과 척을 졌으니 당연히 연합에 참가합니다.”

3개의 국가가 연합했다. 북부의 솔라미트 거인국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마지막 국가들이다. 이것은 최후의 저항이다.

‘거기에 이곳에 있는 모여있는 사람들까지… 어쩌면 정말로 황제를 죽일 수 있을지도 몰라.’

황제는 외부의 적뿐만이 아니라 내부의 적들까지 상대해야 한다. 아무리 무적 초인의 황제라고 해도 혼자인 이상 전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정도로 준비했다면, 황제는 죽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그러나 린다는 원인 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때는 다가오고 있어.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줘.”

모르가나의 차분한 목소리에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

린다는 황궁을 걸었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황제의 침소. 그녀는 오늘 밤, 황제에게 안긴다.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린다는 주기적으로 황제의 침소로 찾아가 안기고 있다. 그 경험만 따지면 벌써 30번이 넘는다.

그러나 좀처럼 이 일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침소로 걸어갈 때마다 몸이 긴장한다. 지금도 긴장해서 심장이 두근두근거린다.

침소에 가까워질수록 아랫배가 간질거린다. 린다는 얼굴을 붉혔다. 최근 들어 일어난 몸의 반응이 당혹스러웠다.

“읏.”

린다는 걸음을 멈추었다. 팬티를 입지 않고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실크 슬립을 입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아랫배가 너무 간지러웠다. 아니, 아랫배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우려스러운 얼굴로 다리 사이에 손을 넣었다. 이어서 끈적한 소리와 함께 손이 빠져나왔다. 손은 투명한 액체로 흠뻑 젖어 있었다.

린다의 얼굴은 이젠 아예 터질 듯이 붉어졌다.

‘이래선 내가 황제와의 섹스를 기대하는 변태 같잖아….’

뚝.

애액이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린다는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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