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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49 - 849. 그대를 위한 폭군 (629/2,000)

〈 849화 〉 849. 그대를 위한 폭군

나는 루테온의 뒤편을 쳐다봤다. 5M가 넘는 거인의 머리가 얼어붙은 채로 있었다.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죽었는데 원통함이 가득했다.

“수고했다.”

[바바리안과 거인족을 굴복시키고 또 하나의 국가를 정복했습니다!]

[8,081,500 폭군 점수를 획득합니다!]

[현재 폭군 점수 ? 46,227,195]

꽤 놀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직접 나서서 군대를 이끈 것도 아닌데 솔라미트 왕국을 이렇게 빠르게 정복할 줄은 몰랐다. 물론 도중에 한 번 직접 나서서 10만 정도 쓸어버리긴 했지만.

그 외의 나머지는 루테온과 프린츠 라이스트가 군대를 이끌고 솔라미트 왕국을 정복했다.

‘하늘을 나는 쌍익족 부대와 드워프들의 기술력이 많은 도움이 되었나 보군.’

루테온과 프린츠 라이스트. 두 사람 모두 제국에서 손꼽히는 지휘관들이다. 북부를 정복한 게 마냥 이상한 것만은 아니었다.

“공을 세웠으니 그에 걸맞은 보상을 내려야겠지.”

나는 대충 그들이 정복한 솔라미트 왕국의 영지를 그들에게 하사했다. 어차피 나중에 트집을 잡아 언제든지 빼앗을 수도 있고, 관리가 귀찮았기에 떠넘겼다.

힐끗.

눈동자를 옆으로 돌렸다. 내 옆에 에르넬이 앉아 있었다. 그녀가 황후가 될 것은 기정사실로, 벌써부터 황후로서 행동하고 있다. 나는 그녀를 막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라이스트 대공이 죽지 않아서 심통이 났군.’

프린츠 라이스트가 이번 전쟁에 참가하게 된 건 에르넬의 뜻이었다. 그녀는 제 아버지가 죽기를 원했다. 수많은 암살자와 독살 시도까지 했으나, 프린츠는 끝까지 살아남아 전쟁에서 승리하고 내 앞에 당도했다.

“콜록, 콜록.”

프린츠가 고개를 숙이고 기침을 터트렸다. 그의 안색은 심히 좋지 않았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고, 에르넬의 두 눈이 반짝였다.

에르넬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허벅지 위에 앉았다.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내 몸을 손바닥으로 훑는다. 나는 유혹하는 그녀는 부채를 들어 얼굴을 반쯤 가리고 말했다.

“폐하께서 눈앞에 계시는데 기침을 터트리다니. 라이스트 대공은 너무 무례하군요. 폐하, 라이스트 대공에게 벌을 내려 황실의 위엄을 보여야 해요.”

물컹.

에르넬은 가슴이 내 상체에 닿는다. 그녀는 이어서 내 뺨을 잡고 부드럽게 쓰다듬고 달콤한 숨결로 속삭인다.

“폐하. 라이스트 대공에게 벌을 내리셔요.”

“에르넬의 말이 맞다. 짐의 앞에서 기침도 참지 못하느냐? 네놈의 머릿속에서 득실거리는 마구니가 짐의 눈에 보이는구나. 대장군, 라이스트 대공의 머리를 때려죽여라.”

“……!!”

알현실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이 경악한다. 루테온은 물론이고 벌을 내리라고 말한 에르넬까지 마찬가지다. 설마하니 기침 좀 했다고 죽이라고 말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대장군. 짐의 명령을 듣지 못했나?”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스르르르릉.

대장군이 검을 뽑는 소리가 서늘했다.

“대장군. 짐은 때려죽이라고 했다.”

내가 손짓하자 근위기사 한 명이 철퇴를 들고 왔다. 루테온은 우묵한 눈으로 철퇴를 받았다.

나는 프린츠를 쳐다봤다. 그는 의연했다. 내게 목숨 구걸도 하지 않았다. 이미 훨씬 이전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대공. 할 말이 있다면 해라. 유언 정도는 들어주마.”

“폐하, 저는 폐하께 할 말이 없습니다. 대신, 제 여식에게 말해도 되겠습니까?”

“윤허한다.”

프린츠는 에르넬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너를 잘못 키웠구나. 그때 너를 제도로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너도 달라졌을까.”

까득.

에르넬이 이를 악물었다. 분노로 인해 표정이 일그러진다.

나는 손을 들어 그녀의 가슴을 쥐었다. 내 손보다 더 큰 가슴이라 한 손으로 전부 쥐는 건 불가능했다. 에르넬은 표정 관리를 하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가주 자리는 아벨이 아닌 제게 주셨어야 했어요. 이제 좀 그때의 선택이 후회되시나요?”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저… 너로 인해 죽어갈 많은 이들에게 죄스러울 뿐이다.”

“죽는 그 순간까지 고결하시군요. 참 대단하세요. 대장군! 뭐하세요! 당장 저 죄인을 죽여버리세요!”

대장군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내게 향했다.

“행하라.”

철퇴가 내려치고, 프린츠의 머리가 박살 났다.

“…….”

나는 에르넬을 쳐다봤다. 에르넬이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녀의 표정은 짜증이 가득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에르넬과 입을 맞추었다.

“…아, 폐하….”

짧은 키스가 끝나고 에르넬이 뜨거운 시선으로 날 쳐다봤다. 그녀가 내 목을 끌어안았다. 그녀는 이전보다 더 날 사랑하는 듯했다.

에르넬을 귀여워 해줄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루테온이 날 불렀다.

“폐하.”

“뭐지?”

프린츠를 죽인 것에 대해 비난을 하는 건가 싶었으나, 곧바로 그 생각을 지웠다. 루테온은 다른 의미로 미친놈이다. 제국을 위해서라면 제 자식도, 제 친구도 죽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바라는 강대한 제국에는 내가 있기에 성립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없다면 식민 지배당하는 국가들이 일어날 것이고, 제국은 감당하지 못하리라.

“슬레이드 제국, 그랑드 왕국, 메일로드 왕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사옵니다.”

수인 제국, 인간 왕국, 엘프 왕국.

제국이 정복하지 못한 3개의 국가였다. 그리고 현재 3개국은 제국에 대항하여 연합한 상태였다. 황제를 죽이기 위한 모임에 참가하는 린다와 내가 심어 놓은 첩자에게 들은 이야기니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연합의 뒤에는 모르가나가 있다.

“내버려둬라. 설마 그것들이 짐에게 위험하다고 말할 생각은 아니겠지?”

“…아니옵니다. 그저 폐하를 귀찮게 하지 않을지 우려될 뿐이옵니다.”

“그것들은 얼마든지 쓸어버릴 수 있다. 그러지 않는 건 제국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국은 부유해지고 강대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여유가 없었다. 식민 지배도 원활하게 하려면 당장 시간이 필요했다.

“최대한 준비하겠나이다.”

“준비해야 하는 건 재상의 일이겠지. 재상은 또 바빠지겠군.”

나는 그레이트 홀을 떠나기 전 그에게 물었다.

“대장군. 천신과 대지모신이 거슬린다. 둘을 죽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두 명의 신.

내버려 둬봤자 내게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으니 찾아내 죽일 생각이었다. 죽인다면 대량의 폭군 점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지모신.

이 여신 만큼은 붙잡아서 범할 것이다. 육변기로 만들겠지만, 죽이게 되더라도 범하고 죽인다. 그렇게 맹세했다.

“신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없나이다. 다만, 천신은 하늘에서 기거하며 대륙을 내려다보며, 대지모신은 땅에서 우리를 보듬는다는 말은 들은 적 있나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신 따윈 없다고. 그러나 이 세계에는 신이 존재한다. 초대 황제가 얻은 성배가 그 증거다. 그리고 원작에서 천신이 나왔다. 남주인공의 회귀. 그 원인이 바로 천신이다.

사실 천신이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그것보다는 대지모신의 위치가 더 궁금했다. 대지모신은 원작에서도 언급만 될 뿐이지, 자세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으니까.

“폐하. 천신과 대지모신에 호기심이 생기셨다면, 대신관을 불러 물으시옵소서. 그녀는 신성력이 타고났으며, 제국내 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신학의 권위자이옵니다.”

“아, 그렇군. 전문가가 근처에 있었군. 워낙 존재감이 없는 년이라 잊고 있었다.”

나는 에르넬과 함께 그레이트 홀을 떠났다.

이참에 천신교를 한 번 건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마침 그 명분에 대한 정보도 손에 넣었고.

‘폭군 점수를 얼마나를 줄려나.’

???

제국에는 황실과 천신교가 1년 주기로 함께하는 행사가 있다.

천운대제(天運大祭).

황제가 천신교 본교에 가서 천신에게 예를 표하고 제사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귀찮고 의미 없다는 이유로 천운대제를 무시했다. 천신교는 감히 내게 제사를 하자는 말을 올리지도 못했다.

그리고 천운대제 외에도 행사는 많았다. 그중 가장 큰 행사는 내가 황제로 즉위했을 때, 천신교에서 제사를 지내며, 내가 황제가 되었음을 천신에게 알려야 했다. 물론 무시했지만.

이번에 변덕이 생긴 나는 천운대제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천신교 본교에 입장했다. 제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은 아닌지라 마차를 조금만 타면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천신교의 사제들이 줄을 서서 나를 반겼다. 그들은 짜기라도 한 듯,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위대한 제국의 태양이신 황제 폐하를 뵙사옵니다.”

한 늙은 신관이 내 앞에 무릎 꿇었다. 그의 옆에는 대신관 페넬로페가 있었다. 늙은 신관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네가 대신관 오블랑인가.”

대신관 오블랑. 천신교의 본부를 운영하는 업무를 가진 자다. 말하자면 그가 천신교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자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천운대제의 준비는 모두 끝마쳤사옵니다. 폐하께선 약간의 준비만 하시면 되옵니다.”

“약간의 준비?”

“준비된 성수로 몸을 깨끗이 씻으시고 준비된 제의를 입으시옵소서.”

“흐음. 마침 샤워를 하고 싶었던 참이긴 했다. 천신교에는 성녀가 있다 들었다. 짐의 목욕시중으로 적당하겠군. 불러와라. 아, 다른 미녀 수녀들도.”

“…폐하. 성녀는 천운대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옵니다. 성공적인 천운대제를 위해 지금 제사의 준비를 하고 있사오니, 부디 천신교의 입장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성녀가 천운대제에서 하는 일이 뭐지?”

“저희 대신관들과 함께 폐하를 축복하며, 폐하의 머리에 제관(帝冠)을 씌우는 일이옵니다.”

“그래? 뭐, 알겠다.”

내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오블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대로 페넬로페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렸다. 황궁에서 생활하며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페넬로페다. 내가 여자에 한해 쉽게 물러서지 않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다.

“폐하. 제가 폐하를 안내하겠사옵니다.”

“그렇게 하라.”

오블랑의 뒤를 따라 걸었다. 나는 혼자였다. 재상은 바빠서 오지 못 했고, 근위기사는 귀찮았기에 명령을 내려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 애초에 내 손가락 하나도 이기지 못하는 근위기사 따위가 날 호위하는 건 말도 안 된다.

길을 걷던 내가 멈춰 서자 오블랑이 의아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폐하? 혹여… 마음에 드시지 않으신 점이라도….”

“이놈을 봐라.”

바닥에 엎드리고 있는 사제를 가리켰다.

“…그가 무슨 실례라도.”

“방금 고개를 들어올렸다가 짐과 눈을 마주치고 내렸지. 실로 불쾌하군. 네놈, 고개를 들어봐라.”

오블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엎드렸던 사제는 벌벌 떨면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제 막 성인식을 치른 것 같은 젊은 남자였다. 개구쟁이의 느낌이 확 났다.

“폐, 폐하. 마르코는 아직 어리옵니다. 아마 폐하의 용안이 궁금하여 고개를 들었던 것으로 사료 되옵니다. 이곳은 천신교의 본교입니다. 천신께서 지켜보고 계시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조용히 내 뒤를 따르던 페넬로페가 다급히 나서며 말했다.

“짐은 실로 불쾌하다. 페넬로페 네게 기회를 주지.”

장검을 소환해 페넬로페에게 건넸다. 페넬로페는 장검을 받아들였다. 제법 무게가 있지만, 페넬로페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다. 대신관, 그것도 성녀 출신의 여자다. 그녀의 힘은 어지간한 성인 남성보다 뛰어나다.

“네년이 직접 이놈을 처형해라. 짐의 불쾌함을 없애라.”

“…아, 아아… 폐하…. 제발 자비를….”

페넬로페가 덜덜 떨었다. 엎드려 있던 놈이 다급하게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폐하! 잘못했사옵니다! 살려주시옵소서! 살려주시옵소서!”

“버러지 새끼가 감히 짐의 고막을 더럽히는군. 뭐하느냐, 페넬로페. 죽여라.”

그때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엎드리고 있던 사제 놈이었다. 정의감으로 가득 찬 잘생긴 미남이었다.

“폐하! 저는 안토니오 블란티스 이옵니다! 블란티스 공작가의 차남이며, 대신과 후보이옵니다! 부디 이 아이의 무례를 용서해주시옵소서!”

요지를 간단했다. 블란티스 공작가의 이름을 보고 진정하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를 비웃으며 염력을 사용했다.

“허억? 헉! 모, 몸이!”

안토니오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가 공중에서 터졌다. 핏물이 튀고 내장이 후두둑 떨어졌다. 오블랑의 안색이 시커멓게 죽었다.

“페넬로페. 천신교가 피로 점철 된 꼴을 보고 싶나? 짐은 죽이라고 했다.”

“……황제 폐하의 명령을 따르겠사옵니다.”

페넬로페는 눈물을 흘리며 젊은 사제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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