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852 - 852. 그대를 위한 폭군 (632/2,000)

〈 852화 〉 852. 그대를 위한 폭군

술탄이 곡도를 휘둘렀다. 붉은빛의 오러블레이드가 정면으로 날아가며 데스 나이트의 몸을 가른다.

그가 곡도를 휘두를 때마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의 언데드가 쓰러진다. 본래라면 언데드는 다시 일어서겠지만, 그의 무기가 특별한지 언데드는 일어나지 않았다.

저 초월적인 무력. 과연 술탄다웠다.

“대장군. 술탄이 가진 곡도는 보물인가?”

“먼 옛날, 대지모신은 사막의 중심에 한 그루의 작은 나무를 심었고, 초대 술탄은 그 나무를 이용해 무기를 만들었다고 들었사옵니다. 저 무기가 바로 그것이옵니다. 대지모신은 사막을 녹음이 가득한 숲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술탄이 그를 방해한 것이옵니다.”

“크크. 초대 술탄이란 놈도 재밌는 놈이군. 어떻게 죽었지?”

“대지모신의 저주를 받아 죽었다 들었사옵니다. 이후로 수인족은 대지모신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나이다. 그리고 죽은 초대 술탄은 후손도 낳지 못했으나, 사막 최고의 전사가 술탄의 자리를 계승하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고 하나이다.”

“과연. 그래서 저 곡도에서 넘치는 강력한 생명력이 느껴지는군.”

언데드는 생명력을 흡수하지만, 반대로 강력한 생명력도 상극이었다. 거기에 지금의 나는 대지모신의 기척을 느꼈다. 대지모신은 알게 모르게 술탄을 돕고 있다. 여전히 대지모신은 역겨운 년이다.

2시간이 지났다. 본드래곤은 술탄의 손에 부서졌고, 적들은 여전히 언데드와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제국군을 이끌어 공격을 명령하면, 보다 쉽게 적들을 압박할 수 있었으나 나는 그저 전장을 지켜봤다.

“탈모르 후작. 언데드가 밀려나고 있군. 이대로 있으면 언데드는 1시간도 버티지 못한다. 설마 이게 끝인가? 짐을 기어코 실망시킬 생각이냐? 날 실망시킨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지 않을 텐데.”

날 시망시킨 대가는 하나뿐이었다. 죽음. 풍유약을 만든 업적이 있는 탈모르 후작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대머리 남자 새끼한테 내릴 자비는 더 이상 없다.

“흐, 흑마법의 진수는 준비 중이옵니다. 조금만 더 신을 믿고 기다려주시옵소서.”

“…믿도록 하지. 탈모르 후작은 풍유약과 인조 성기를 만들지 않았나. 짐은 그대의 능력을 매우 신뢰하고 있다.”

“믿어주셔서 감사하옵니다! 폐하, 그래서 말이온데…. 폐하의 병사들을 사용해도 되겠사옵니까?”

“상관없다. 어차피 그러려고 데려온 것들이니.”

내가 데려온 20만의 병사는 정예가 아니다. 몰살당해도 상관없는 어중이떠중이들이다. 슬쩍 시선을 돌려 루테온을 바라봤다. 루테온은 무표정했다.

“대장군. 불만은 없나? 그대의 의견이라면 짐은 한 번 들어주겠다.”

“괜찮사옵니다. 다만… 기사는 제외해 주시옵소서. 기사는 키우기 힘든 고급 병력이옵니다.”

“기사는 전장에서 빠져라. 명령이다.”

“황송하옵니다. 폐하.”

흑마법사들은 아까와 달리 다급하게 움직였다. 저들 목숨이 걸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언데드가 거의 전멸할 때쯤, 흑마법사의 준비도 끝났다.

끼이이이익, 끼이이이이이이익!

날카로운 무언가에 긁히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그게 공간이 비명을 지리는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내 눈은 소리의 근원지, 탈모르 후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흑마법사 30명과 함께 흑마법을 전개하고 있다. 지면이 그려진 새까만 마법진이 불길하고 타오르고, 돌연 20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일제히 비명을 내질렀다.

병사들의 병사들이 저 마법진으로 빨려 들어간다. 병사들은 제물이 된 것이다.

생명력이 약한 자들부터 시작하여 병사들이 바닥에 차례대로 쓰러졌다. 병사들 전원이 쓰러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으음….”

루테온이 불편한 침음을 삼켰다.

쨍그랑!

검은 마법진 위의 공간이 부서진다. 그곳으로부터 시커먼 발이 튀어나왔다. 이어서 그것의 몸체가 전부 드러난다. 전체적으로 검은 몸이다. 등에는 박쥐 같은 날개가 접혀 있고, 머리에는 커다란 뿔이 달려있었다.

“설마 이 나를 부르는 자들이 있을 줄이야.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악마의 목소리가 울린다. 나는 그러려니 했으나, 다른 사람들은 다른 모양이다. 흑마법사들은 바닥에 무릎 꿇고 악마에게 머리를 조아렸고, 루테온은 검을 쥔 손을 덜덜 떨었다. 슬레이드 제국군은 행동을 멈추고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악마를 쳐다본다.

‘저게 악마인가. 나와 싸운다면… 내가 이기겠군.’

만약, 주제도 모르고 내게 이를 드러낸다면 악마라 하더라도 죽여버릴 것이다.

“네가 나를 소환한 흑마법사인가. 크크. 설마 20만의 인간을 바칠 줄이야. 너의 노력에는 경의를 표하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라. 기분이 좋으니 마음에 드는 소원이라면 하나 정도는 들어주마.”

“삼지창의 대악마시여! 슬레이드 제국군을 몰살해 주십시오!”

“크하하하! 참으로 마음에 드는 소원이로구나! 시시한 소원이었다면, 너의 머리통을 날렸을 것을. 너는 운이 좋다. 너의 소원, 내가 들어주마.”

어느새 손아귀에 삼지창을 든 대악마가 슬레이드 제국군을 향해 날아가 창을 휘둘렀다. 입으로는 불을 뿜고, 다리로는 지진을 일으켰다. 나보다는 못하지만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놈인 건 확실했다.

‘아니, 잠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눈에 힘을 집중하고 전장의 구석을 확인한다. 정체를 감추기 위해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가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가냘픈 체구는 여자의 것이고, 슬쩍 움직일 때 로브 안에서 보라색 머리카락 일부가 보였다.

“이 깜찍한 년! 여기에 있었구나!”

“폐하?”

“대장군. 짐은 바쁜 일이 생겼다. 여기에 있어라.”

염력을 사용해 날아갔다. 슬레이드 제국군은 대악마에게 시선이 팔려 나를 보지 못했다.

???

“모르가나! 어딜 가느냐! 지겨운 술래잡기는 슬슬 끝내자꾸나!”

하늘을 날아 도망치는 모르가나의 뒤를 추격했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모르가나를 잡으려고 했다면 벌써 5분 전에 잡고도 남았다.

나는 실실 웃으며 왼손목에 찬 팔찌를 쳐다봤다. 마탑주를 시켜 만든 공간 이동 방해기다. 이 팔찌가 있는 이상, 모르가나는 공간 이동 마법으로 내게서 도망칠 수 없다.

“크윽, 이이이익!”

모르가나가 이를 갈았다. 손바닥을 내게 향한 그녀가 마법을 사용했다. 시커먼 불길이 내 몸을 달라붙는다.

피하지 않았다. 피할 필요가 없었다.

아론다이트의 소유주인 나는 호수의 가호로 인해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드래곤이 전력을 다해 준비한 마법이나, 대마녀처럼 목숨을 바쳐 저주를 날리지 않는 이상 호수의 가호를 뚫을 수 없다.

그리고 모르가나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까지 마법을 사용해 날 죽일 여자가 아니다.

“네년이 준비한 것들은 의미 없었다만, 그럭저럭 짐을 귀찮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 노력이 기회를 더 주마. 마법을 사용해 보거라. 네년이 어떤 마법을 사용한들, 짐은 피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 사실이지?”

모르가나가 멈췄다. 나도 그녀의 추격을 멈추었다. 그녀와 나의 거리는 약 10M에 불과했다. 우리는 모래 위에 있었다.

“물론이다. 해 보거라!”

양팔을 쫘악 벌렸다. 모르가나는 황금색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고서는 무언가를 중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마 주문인 모양인데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다. 다만 음침하게 느껴질 뿐이다.

모르가나의 마나가 요동친다. 그녀의 로브가 저 하늘로 날아가고,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와인색 이브닝 드레스가 펄럭인다.

얇은 천이 몸에 붙어 몸 선이 그대로 드러난다. 굴곡진 얇은 허리와 굉장히 잘 발달한 골반, 모양 좋은 허벅지.

‘…팬티 라인이 전혀 없군. 노팬티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바람에 출렁이는 풍만한 가슴. 너무 심하게 출렁이니 가슴 쪽으로만 시선이 갔다.

“알아? 대륙은 수많은 세계 중에 하나야. 정령이 있는 정령계, 악마가 있는 지옥계 등 무수히 많은 세계가 존재하지.”

“하라는 마법은 안 하고 갑자기 무슨 말을 지껄이느냐.”

“황제. 넌 내게 시간을 너무 많이 줬어.”

쿠우우우우웅.

발아래에 커다란 마법진이 전개된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내 몸을 잡는다.

“지옥으로 꺼져버려.”

모르가나의 웃음기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마법진이 사라지고, 모래로 가득한 땅이 갈라졌다. 나락이 열렸다. 그것은 새빨간 구덩이이였고, 온갖 사악한 존재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곳의 기운이 내 몸을 지옥으로 끌어당긴다.

나는 염력으로 내 몸을 잡아 저항했다.

시선이 느껴진다. 나락의 밑바닥에서 거대한 붉은 눈동자가 나를 주시한다.

“뭐.”

거대한 눈동자를 노려봤다. 거대한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곧 내 시선을 피했다. 땅이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곧 땅은 다시 모래 가득한 사막이 되었다.

“마, 말도 안 돼…! 지옥의 파수꾼이 겁을 먹었다고…?!”

털썩.

모르가나가 모래 위에 주저앉았다. 날 보는 눈은 불가해의 괴물을 보는 듯했다.

“아마 소환마법 종류겠지. 짐을 향한 직접적인 마법을 하지 않은 건 칭찬해줄만 하나, 시시한 마법이었다.”

“…마녀섬의 고대 마법 중 하나가 시시하다고? 하, 이제 됐어. 그래도 끝까지 네 뜻대로는 되지 않을 거야.”

표독스럽게 날 노려보던 모르가나가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피식 웃고는 저벅저벅 그녀에게 걸어가 그녀의 보라색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놀란 그녀가 입을 벌리며 경악했다.

“마, 말도 안 돼…!”

“왜. 마나가 뜻대로 안 움직이시나? 크크.”

“무슨 짓을 한 거야?!”

“염력을 이용해 마나를 붙잡았다. 좀 힘들긴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지.”

“마나를 지배했다고? 그건 마치….”

“드래곤 같다고? 드래곤의 심핵을 먹고 가능해진 능력이지.”

“……대체 얼마나 강해진 거야?”

“모른다. 확실한 건 그 술탄이라는 놈도 나를 막지 못한다. 그리고 네년의 황금 정원인가

뭔가도 나를 죽이지 못할 거다.”

“그것도 알고 있구나…. 끝났네.”

모르가나의 몸이 축 늘어졌다.

“저항은 하지 않는 거냐?”

“난 끝났어. 죽일 거라면 죽이고, 고문할 거면 고문하고, 범할 거라면 범해. 어차피 아무 의미 없으니까.”

“네년이 초연하게 굴어봤자, 짐은 네년을 매일 범할 것이다. 네 딸년처럼 말이다. 짐의 육변기가 된 것을 환영한다. 모르가나.”

“…….”

나는 그녀의 몸을 들고 원래의 전장으로 돌아갔다.

???

북부의 대공의 작위를 계승한 아벨 라이스트는 황제가 전장으로 나간 틈을 타, 동료 귀족들과 함께 황궁을 장악했다. 제국 내의 60% 이상의 귀족이 반기를 들었다. 원래는 그 절반도 되지 않는 세력이었으나, 황제가 이번에 초야권을 선포하며 귀족과 백성들의 반발을 얻은 여파 때문이다.

백성들은 더는 황제를 지지하지 않는다. 황제가 죽더라도 백성의 반발은 없을 것이다.

아벨은 집무실 의자에 앉았다. 그의 누이, 에르넬은 지하 감옥에 가둬놓았다. 황제를 죽인 뒤에 직접 자신의 손으로 처형할 것이다.

“아벨.”

린다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직접 쟁반을 들고 다과를 가져왔다.

린다를 본 아벨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그려졌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대가 직접 다과를 가져올 줄이야.”

“시녀와 하녀들은 모두 갇혀 있는 상태잖아요. 제가 가져올 수밖에 없어요.”

“황제에게 복종한 여자들이다. 믿을 수 없다. 불편하더라도 참아야 하지.”

아벨은 린다와 마주 보고 앉았다. 그의 손은 자연스럽게 홍차 잔을 잡았다. 한 모금 마시자 몸이 따뜻해진다.

언제부터였을까. 린다를 보면 항상 긴장되었던 마음이 풀어진다. 어머니가 살아있었을 적과 비슷한 따뜻한 감각을 느꼈다.

처음에는 그저 쓸만한 여자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와 대화를 나눌수록, 그녀와 시선을 마주할수록, 자신을 사소한 것에서부터 배려하는 그녀를 깨달았을 때부터 아벨은 린다를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은 부질없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느 사이엔가 자신은 사랑의 포로가 되었다.

‘…황제가 죽으면 린다는 자유가 된다. 린다의 몸이 황제에게 더럽혀졌다고 해도 그건 황제의 강압에 의한 것…. 애초에 이 나라에서 황제에게 더럽혀지지 않은 영애는 없다. 순결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린다를 밀어내기엔…. 그녀는 이미 내 마음 깊숙이 들어왔다.’

린다가 아벨을 보며 웃는다. 그 사랑스러운 웃음에 아벨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을뻔했다.

아벨은 사과잼을 바른 비스킷으로 손을 뻗었다. 린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벨. 단 음식을 싫어하시지 않았나요?”

“싫어한다. 그러나 최근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해서 배가 고프군. 그리고… 네가 직접 만든 비스킷이겠지?”

“직접 만든 건 맞아요. 억지로 먹으실 필요는 없어요.”

“괜찮다.”

아벨은 홍차와 함께 비스킷을 삼켰다. 단 음식은 영 껄끄럽지만, 홍차와 함께라면 삼키지 못할 것도 없다.

꿀꺽.

“커헉! 콜록!”

아벨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독이다. 머릿속으로 상황을 파악한 그는 떨리는 눈으로 린다를 쳐다봤다.

“리, 린다, 네가 왜….”

“미안해요, 아벨. 황제 폐하와 에르넬 님의 명령이었어요.”

전혀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지금껏 본적 없는 서늘한 눈동자의 린다가 말했다.

그리고 방문이 열리고 근위기사를 대동한 에르넬이 들어왔다.

“후후후. 비참한 모습이 보기 좋구나, 아벨. 마탑주가 황궁의 결계를 발동했고, 너를 포함한 반란자들은 모두 제압한 상태지.”

“에르넬…!!”

“인상 쓰지 마렴, 동생아. 무심코 죽여버리고 싶어지잖니. 아, 네가 겪을 최후는 내가 다 생각해 놓았으니 기대하렴.”

에르넬의 손이 린다의 몸을 더듬었다. 그녀의 손은 린다의 드레스 안으로 들어가, 린다의 가슴과 음부를 매만진다.

“앗, 에르넬 님….”

“잘해 줬어, 린다.”

“흣, 거기는…. 하으응.”

에르넬과 린다는 아벨의 앞에서 입을 맞추었다.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