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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55 - 855. 그대를 위한 폭군 (635/2,000)

〈 855화 〉 855. 그대를 위한 폭군

“폐하. 보급 준비는 모두 끝냈사옵니다.”

내게 조심스럽게 보고를 올리는 남자가 있었다. 흑녹색 머리카락에 안경을 낀 남자였다. 원작 서브 남주 중 한 사람인 그는 내게 머리를 조아렸다.

베르메르 스켈로그. 제국 제일의 상인. 이번 공적으로 그는 후작이되었다.

그는 내가 반란군에 심어 놓은 첩자였다. 그리고 본심을 말하자면, 베르메르를 믿지 않았다. 원작에서도 음흉한 놈으로 묘사되었던지라 중요한 순간에 내 뒤통수를 칠 줄 알았다. 그렇기에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린다를 반란군에 넣었고.

허나 베르메르는 끝까지 배신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배신하지 않은 게 내 생각을 배신한 것이다.

“베르메르. 네가 배신하지 않은 이유는 뭐지?”

“그것이 궁금하셨사옵니까?”

“네놈은 가끔 짜증 날 때가 있다. 짐이 조금이라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 죽여버렸을 거다.”

“알고 있사옵니다. 그래서 폐하의 기분이 좋을 때만 이렇게 살짝 기어오르는 것이지요.”

베르메르가 능글맞게 웃는다. 죽일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살려두기로 했다. 이놈은 유능하다. 재상이 칭찬할 정도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내게 미녀를 바친다. 초야권에 응하지 않고 도주한 미녀들을 붙잡는 일도 하고 있다.

“대답이나 해라.”

“간단한 계산 끝에 나온 일이옵니다. 황제 폐하의 무력은 홀로 나라를 정복할 수 있을 정도로. 모르가나는 3개의 왕국이 연합하면 폐하를 죽일 수 있다고 속삭였지만, 저는 믿지 않았사옵니다. 모르가나의 말은 대부분 듣기 좋은 사기였사옵니다. 반란군의 절반 이상이 그녀의 미모에 홀려 반란에 가담했단 사실을 믿으시겠사옵니까? 무능한 것들이 모여봤자 결국 무능할 뿐이옵니다.”

“대공이나 제독은 유능하지 않나?”

“예. 그들은 유능하옵니다. 특히 라이스트 대공은 저도 깜짝 놀랄 정도이옵니다. 사람이 아니라 초인으로 보였사옵니다. 허나 그들은 선택지가 없었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원래부터 그들을 죽이실 생각이지 않으셨사옵니까?”

그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런 생각이었으니까.

“폐하. 제가 감히 충언을 올리고자 하옵니다.”

“윤허한다.”

“폐하! 모르가나를 경계하소서! 저는 그토록 간악한 여자를 지금껏 본 적 없사옵니다! 그 여자는 능히 나라를 기울게 하고도 남을 마녀이오니, 부디 그 여자를 경계하소서.”

“모르가나가 보통이 아닌 여자란 건 확실하지. 허나, 지금은 짐의 육변기에 불과하다. 짐이 여자 하나 감당하지 못할 것 같으냐?”

“제가 주제넘은 말을 올렸사옵니다. 용서하소서.”

“윤허한 일이었다. 너는 돌아가서 네가 해야 할 일을 해라.”

“예. 폐하.”

베르메르가 물러났다.

???

300만이 넘는 제국군이 남쪽으로 진군했다.

300만의 숫자는 압도적이나, 제국군을 깊숙이 살펴보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절반 이상이 노예이고, 온갖 종족이 뒤섞여 있다. 실제로 훈련받은 전문 병사는 50만도 되지 않는다.

진군은 남쪽 끝에서 멈췄다. 깎아 자른 듯한 절벽과 서인의 손바닥처럼 절벽을 때리는 거대한 파도가 그들을 막아섰다.

나는 두 눈에 힘을 주어 저 먼 곳을 쳐다봤다.

거의 100km 너머에 있는 섬이 보인다. 신의 힘으로 대륙에서 떨어지고 있는 엘프의 왕국 메일로드다.

“모르가나. 마녀섬은 어디에 있지?”

“오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이제 곧 모습을 마녀섬이 모습을 드러낼 거야.”

검은색의 몸의 굴곡을 전혀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드레스를 입은 모르가나가 말했다. 그녀의 쇄골과 가슴, 가녀린 어깨에 시선이 갔다. 내가 손을 까딱이자 모르가나가 간드러지게 웃으며 다가와 내 오른팔을 끌어안았다.

아예 대놓고 풍만한 가슴을 내 팔뚝에 비볐다. 내 오른손은 그녀의 사타구니를 만졌다.

“네가 에르넬을 휘어잡았다는 소문이 돌던데.”

“아…. 그 꼬마 말이지. 살짝 골려줬을 뿐이야. 혹시 그 아이가 네게 부탁했어? 날 혼내달라고?”

“아니. 적당히 하라고 말하러 왔을 뿐이다. 네 처지를 잊지 말고 말이다.”

“내 처지는 내가 잘 알고 있어. 그래서 이렇게…. 흐으응…. 네게 아양 떨고 있잖니. 앙….”

드레스 너머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보지가 흠뻑 젖어 있었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마차 안으로 들어가 섹스를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주위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마차에서 밖으로 나왔다. 새까만 그림자가 땅에 드리워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거대한 섬이 하늘을 부유하고 있었다.

“저게 마녀섬이야. 하늘과 바다를 움직이는 섬이지. 신비롭지 않아?”

모르가나가 뒤에서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땀에 젖은 피부는 반짝였고, 상기된 얼굴은 요염했으며, 황금색 눈동자는 나른했다.

“꽤 괜찮은 광경이긴 하군. 모르가나. 빨리 저걸 다리로 바꿔라.”

“알았어. 꽤 재미난 광경일 테니 보고 있어.”

모르가나가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하늘로 날아갔다. 그녀의 하반신은 덜덜 떨리고 있었고, 그녀의 아래로 하얀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나는 팔짱을 끼고서 기다렸다.

쿠궁. 쿠쿠쿠쿵.

마녀섬에서 굉음이 울렸다. 두려움을 느낀 병사들의 웅성거림이 더해졌다. 거대한 섬이 쪼개지고 그 파편이 허공을 날며 형태가 변하기 시작한다. 거대한 다리의 모습이다. 모르가나가 호언장담한 대로 마녀섬은 다리가 되었다.

거대한 다리가 아래로 천천히 내려와 섬을 이었다. 신기한 것은 다리를 지탱하는 기둥이 하나도 없이 바다 위에 떠 있다는 것이다. 보나 마나 마법의 힘이다.

“대단하군.”

나는 순순하게 감탄했다.

“후후. 그렇지?”

내 옆에 나타난 모르가나가 다시 내게 달라붙는다. 나는 그녀를 떨쳐내지 않았다. 내게 안기는 달콤한 여체를 밀어낼 필요는 없으니까.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중간에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마녀섬은 원래부터 부유가 가능해. 이번에는 동력이 충분했고, 나 외에도 다른 마법사들이 도와줬으니 쉽게 가능했어. 문제는… 다리의 형태를 너무 집착하는 바람에 원래의 섬의 형태로 돌아가는 건 힘들 것 같지만.”

“원래 섬의 형태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냐?”

“맞아. 형태를 바꿔도 너무 확 바꿔버렸어. 이런 건 나도 처음 시도하는 거라 몰랐던 사실이야.”

“아깝군. 마녀섬을 짐의 별장으로 삼으려 했다만.”

“후후후. 그게 뭐가 아까워, 황제 폐하가 원하시면 마탑과 흑마탑이 알아서 날아다니는 별장을 만들어 줄 텐데.”

“그렇긴 하지.”

나는 루테온을 쳐다봤다. 루테온은 미심쩍게 다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다리가 도중에 무너지면 300만이란 군세는 한순간에 바다에 빠져 전멸하기 때문이다.

무거운 갑옷을 걸친 병사들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거친 바다에 빠지면 죽음이 확정이다.

“루테온.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 진격하라.”

“예, 폐하.”

뿔나팔 소리가 울렸다.

제국군은 비바람에 맞서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간혹 파도가 드높게 치솟아 제국군을 휩쓸려고 했으나, 다리 자체에 마법적 힘이 있는지 투명한 막이 나타나 파도를 막아냈다.

“이 다리. 상당히 괜찮은 물건이옵니다. 크기만 줄일 수 있다면… 여러 곳에서 사용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루테온이 다리의 성능을 보고 감탄사를 흘렸다. 그러나 이 다리는 크기가 줄어들지도 않고, 유지비용이 엄청나다. 이 다리가 사용되는 건 이번뿐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굵은 우박이 떨어져 내렸다. 마법사들이 재빠르게 하늘을 향해 방어 마법을 펼쳤으나, 한계가 있다. 투구를 쓰고 방패를 머리 위에 돌렸음에도 떨어지는 우박의 위력은 대단해서 다수의 병사들이 죽어 나간다.

“마탑주. 이건 마법인가?”

“아니옵니다, 폐하. 마법의 힘은 전혀 느껴지지 않사옵니다. 정령의 짓이옵니다. 제가 5분 내로 해결하겠사옵니다.”

“후후후. 5분? 나라면 3분 내로 해결할 텐데.”

모르가나가 도발했다. 악질적이면 실제로 모르가나의 마법 실력이 최소 마탑주와 대등하다는 것이었다. 마탑주가 조용히 모르가나를 노려봤다.

“…3분 내로 해결해 보이겠사옵니다.”

“해봐라.”

“예. 폐하.”

마탑주의 몸이 사라졌다. 나는 곧바로 하늘로 시선을 올렸다. 본능이라고 해야 할까. 마탑주가 마법으로 어디로 공간 이동했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먹구름 사이에서 검붉은 불길이 타오르고, 냉기가 휘몰아친다.

“고상한 척하더니, 꽤 무식하게 처리하네?”

모르가나는 마탑주를 비웃었다. 마탑주는 헉헉거리며 3분 만에 내 앞에 나타났다. 그의 손아귀에는 얼어붙은 새 한 마리가 붙잡혀 있었다.

“그건 뭐냐?”

“우박을 떨어뜨리던 정령이옵니다. 생포할 기회가 있어 데려왔사옵니다.”

-빌어먹을 인간들. 너희는 저주받을 것이다! 특히 황제! 대지모신께서 너를 주시하고 계시다! 너의 무덤은 메일로드가 될 것이다!

“대지모신이 이곳에 있다는 말이 맞나 보군. 짐도 한 가지 말해주마. 대지모신은 짐이 따먹을 것이다. 짐의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하마, 대지모신은 짐의 아래에서 암캐가 되어 울부짖을 것이다.”

-크. 크크큭. 아둔하고 미친 황제여. 할 수 있으면 한 번 봐라. 네놈은 절대로 그 맹세를 이루지 못할 것이니. 하하하하하!

내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놓고 나를 비웃는 놈은 오랜만이라 그런지 기분이 급격히 나빠졌다. 아론다이트를 뽑았다. 푸른색 오러블레이드가 빛난다. 이미 고대의 정령을 소멸시켰는데, 이딴 최상급 정령쯤이야.

정령은 소멸하면서도 나를 비웃었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마탑주. 최상급 정령은 죄다 이런가?”

“…정령도 정령마다 다릅니다. 정령도 정령마다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사옵니다. 정령이라고 하여 고상한 존재인 것은 결코 아니옵니다.”

“놈을 소멸시켰어도 화가 나는군. 정령을 붙잡아 고문할 수는 없나?”

“일반적인 정령에게는 고통이란 감각이 없사옵니다. 흑마법을 이용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으나….”

마탑주가 탈모르 후작을 힐끗거렸다. 탈모르 후작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정령은 생물이 아니옵니다. 정령을 고문하는 건 효율적인 일이 아니옵니다. 차라리 어딘가에 봉인해두는 것이 훨씬 낫사옵니다.”

“됐다. 정령은 보이는 족족 죽여라.”

“예. 폐하.”

마탑주와 탈모르 후작이 고개를 숙였다.

“나도 도와줄까? 바다 쪽에 바람의 정령과 물의 정령이 몇몇 보이는데….”

모르가나가 말을 걸어왔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르가나가 환하게 웃더니 마법을 사용했다. 콰아앙! 충격파로 인해 바다에 물기둥이 치솟았다. 나는 그녀가 정령을 상대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는 걸 알았다.

“계속. 진격하라.”

군대가 나아간다.

정령들이 나타나 제국군을 막아서긴 했으나, 내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탈모르 후작, 마탑주, 모르가나의 선에서 전부 처리되었다. 역시 최고의 마법사들 다웠다.

“폐하!”

루테온이 나를 불렀다.

“당황하지 마라, 대장군. 짐도 보고 있다.”

총 5마리의 드래곤이 나타났다. 드워프 왕국에서 상대한 고룡 정도는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안 좋았다. 그때 고룡은 드워프가 휘말릴까 봐 우려되어 제국군에 브레스를 쓰지 못했다. 허나 지금은 제국군이 다리 위를 걸으며 진군하는 상황. 브레스 맞고 전멸하기 딱 좋았다.

“짐이 나서야겠군.”

5마리의 드래곤은 하늘에서 입을 쩌억 벌리더니 숨을 빨아 들이기 시작 했다. 드래곤의 흉부가 부풀어 오른다. 드래곤 브레스의 원리는 주위의 마나를 빨아들이고 심장의 마나를 이용해 내뱉는 것. 5마리가 동시에 브레스를 쓰려다 보니 시간이 제법 오래 걸리는 듯했다.

“망설이지 않고 바로 브레스를 쓰는가. 크크. 놈들이 얼마나 몰려 있는지 알겠군.”

“폐, 폐하!”

루테온이 다급하게 외친다. 여기서 제국군이 전멸하면 제국은 당분간 메일로드를 지켜만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제국 일통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대장군. 짐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송구하옵니다. 하오나 드래곤이 무려 5마리이옵니다.”

“고작 5마리다. 드워프 놈들을 상대할 때는 애먹긴 했으나, 짐은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다. 짐의 힘을 보여주마.”

스톰브레이커와 유성검천을 소환해 합체시켰다. 그래야 유성검천의 힘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떨어져라, 유성검.”

하늘에서 거대한 유성검이 나타나 드래곤을 향해 낙하한다. 검의 길이만 300M가 넘는 초대형의 검은 하나같이 시퍼런 벼락을 휘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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