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9화 〉 859. 그대를 위한 폭군
‘시발…. 내가 나무에 박다니…. 나무 오나홀이라고 생각하자. ……토할 것 같아. 슬슬 멈출까?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근데 씨발. 이 나무는 왜 갑자기 발광하고 지랄이야?’
비유도 뭣도 아니라 대지모신의 몸이 형광등이라도 된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질적인 힘이 느껴진다.
대지모신이 나를 방해할 때면 느꼈던 힘이다.
‘뭔가를 하려는 모양이군.’
이대로 있으면 대지모신은 죽는다. 죽고 싶지 않으니 발악하는 것이다. 나는 힘차게 흔들던 허리를 멈추고 검을 들어 올렸다.
‘퍼포먼스는 끝이다.’
그 굵기만 수백 미터에 달하는 세계수를 검을 휘둘러 끊어내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세계수의 몸에 난 틈이 벌어지더니 나를 집어삼켰다. 어마어마한 흡입력에 대처하지 못했다. 방심하고 있었다는 이유가 더 컸다.
몸에 압력이 느껴진다. 평범한 압력이 아니다. 나라도 까딱하면 죽을 것 같았다.
-죽어라!
대지모신의 목소리. 아니, 의지가 느껴졌다. 내게 범해지며 잔뜩 화가 난 듯했다.
“…답답하다.”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염력을 사용했다. 내 몸을 염력으로 이끌어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움직여도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
나무인지, 액체인지 모를 것이 내 몸을 붙잡는다. 짜증을 담아 뿌리쳤다. 오러블레이드를 사방으로 방해되는 것들을 전부 베어냈다. 허나 그것들은 내 몸을 다시 압박한다.
-죽어라!
“…귀찮게 구는군. 좋다. 누가 이기는지 한 번 해보자.”
나는 세계수의 안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염력과 오러블레이드로 주위를 찢어발기며 휘저었다. 세계수는 끊임없이 날 압박하려고 했으나, 내 오른팔 하나 상처입히지 못했다.
‘이딴 게 대지모신이라니.’
대지모신은 약했다. 실망스러울 정도로. 하긴. 지금껏 대지모신이 나를 방해한 것 중에서 위험한 것들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귀찮고 짜증 났을 뿐이었지.
‘다르게 생각하면 내가 더 강한 거지.’
-아아아아아아아아!
대지모신의 고통에 찬 의지가 들렸다. 효과는 있었다.
‘뇌전.’
내 몸에서 발생한 푸른 뇌전이 대지모신의 내부를 타고 질주했다. 파지지직, 파지직! 뇌전이 날뛸수록 대지모신의 고통은 더 강해졌다.
꿀렁꿀렁.
벽의 일부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나는 입가를 끌어올렸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게 바로 출구라는 것을.
나는 꿀렁이는 벽을 향해 움직였다. 두꺼운 식물 줄기가 나타나 내 몸을 끌어안는다. 오러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잘려나가긴 했으나 상당히 질겼다. 식물 줄기는 끊임없이 나를 붙잡는다.
“질척거리지마라.”
천심을 사용했다.
내 몸을 붙잡던 식물 줄기가 떨어져 나갔다. 이상한 광경이었다.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다. 게임으로 치면 시스템적인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한 느낌이다.
콰앙!
꿀렁이는 벽을 찢고 세계수 밖으로 나오자 바로 하늘이었다. 염력을 통해 몸을 부유하며 지상을 내려다봤다. 당황하는 제국군과 엘프들이 보인다.
“후우. 공기가 신선하고 좋군.”
나는 몸에 묻은 액체, 세계수의 수액을 털어내고 검을 들었다. 세계수의 몸통에서 수천 개의 식물 줄기가 튀어나와 나를 노린다. 그 꼴이 마치 촉수 같아서 기분 나빴다.
“이제 그만 죽어라.”
위에서 아래로 검을 휘둘렀다.
오러블레이드는 거대한 참격이 되어 세계수와 부딪혔다. 세계수의 몸이 파였다. 그러나 완전히 베어내진 못했다.
나는 유성검천과 스톰브레이커를 합체시켰다.
“유성검.”
1km가 넘는 초거대 검이 하늘에 만들어졌다. 파지직. 유성검의 검신에 뇌전이 튀었다.
“지긋지긋한 년. 이제 끝이다.”
거대한 힘을 품은 유성검이 아래로 떨어진다. 물론 그 아래에는 세계수가 위치해 있다.
세계수의 나뭇가지가 움직인다. 유성검의 검신을 붙잡아 옆으로 던지려고 한다. 죽지 않기 위한 발악이었다.
허나 나는 그 발악을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염력으로 유성검에 힘을 주었다. 흔들리던 유성검이 다시 아래로 수직 낙하했다. 세계수는 유성검을 막지 못했다. 세계수가 거대한 몸체가 유성검에 의해 갈라지고, 나뭇가지는 뇌전을 견디다 못해 타오른다.
쿵!
유성검의 검끝은 지상까지 닿았다.
대지모신은 죽었다.
[대지모신에게 영원한 안식을 안겨주었습니다!]
[15,000,000 폭군 점수를 획득합니다!]
[현재 폭군 점수 ? 113.181,155]
[1억 폭군 점수를 달성했습니다. 퀘스트를 종료하시겠습니까?]
이전 퀘스트와는 달랐다. 이전 퀘스트는 목적이 달성하자마자 현실 세계로 귀환했어야 했는데, 지금은 내 의사를 묻고 있다.
‘점수를 달성하는 퀘스트라 그런가? 좀 더 높은 점수를 기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 같군.’
퀘스트 종료를 뒤로 미뤘다.
고생해가며 대륙을 통일한 황제가 되었다. 못해도 즐길 건 즐겨야지 않겠는가.
나는 염력을 이용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제국군 병사들은 함성을 질렀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커다란 함성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황제 폐하께서 대지모신을 범하고 끝장내셨다! 황제 폐하께 까불면 신조차 죽는다!”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은 황제 폐하시다! 제국은 영원하리라!”
반대로 엘프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이럴 수가….”
“이건 끔찍한 악몽이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게 분명하다. 누군가 나를 죽여주지 않겠는가? 나는 꿈에서 깨고 싶다.”
“여왕 전하! 여왕 전하가 실신하셨다! 신관! 신관은 어디에 있는가!”
“아, 아아. 신성력이… 신성력이 사라졌습니다….”
엘프들은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낄낄 웃으며 패닉에 빠진 엘프들을 쳐다봤다.
“수고했어. 설마 정말로 대지모신을 범하고 죽여버릴 줄이야…. 넌 상상을 초월하는 남자야.”
모르가나가 말했다. 순수하게 감탄한 듯하면서도 나를 놀리듯이 말한다. 내가 쏘아보자 모르가나는 낮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대장군. 상황을 정리해라. 메일로드 왕국은 이제 제국의 영토다.”
“예. 폐하.”
“대지모신의 잔해를 불태워라.”
병사들은 내 말에 충실히 따랐다.
몇몇 엘프들이 잔혹 무도한 짓이라며 날뛰었으나, 세계수와 함께 불태우자 조용해졌다.
나는 옥좌에 앉아 타오르는 세계수를 쳐다봤다. 2km에 달하는 크기의 나무가 밤하늘을 배경으로 불타오른다. 꽤 볼만한 광경이었다.
“아, 안 돼…!”
내 품에 안겨 있던 알몸의 메일로드 여왕이 깨어났다. 기다리고 있던 일이었다. 나는 양손으로 그녀의 몸을 희롱했다. 쫄깃한 가슴과 탱탱한 엉덩이가 마음에 쏙 들었다.
여왕은 내게 희롱당하는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정면을 향해, 불타는 세계수를 향해 애절하게 손을 뻗는다.
“대지모신이 죽었다. 멋지지 않나?”
나는 여왕의 보지에 자지를 삽입했다. 그녀가 실신한 사이에 몸을 만져 잔뜩 흥분시켜 놓았기에 보지는 흠뻑 젖은 상태였다.
찔꺽.
“하아악! 아, 안 돼! 막아야… 어머니를 태워선 안 돼…!”
“이미 늦었다. 크기가 크기다 보니 내일까지는 거뜬히 불타겠군. 크크.”
찌걱찌걱.
자지를 쑤실 때마다 보지가 꽉꽉 조여온다. 마음에 들었다.
“이 멍청한…! 어머니가! 대지모신께서 사라진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정녕 모르십니까?!”
“무슨 뜻이긴. 날 방해하는 놈이 사라졌다는 뜻이지.”
빠득.
여왕은 이를 악물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동자로 나를 노려본다.
“대지모신은 이 땅의 시작과 끝이며 중심입니다! 대지모신께서 사라진 이상 이 땅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오직 쇠락한 미래만이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이 세계를 멸망으로 이끈 것입니다.”
“거 참, 말이 많군. 보지나 잘 조이라고.”
짜악!
엉덩이를 내려쳤다. 손맛이 뛰어났다.
“어차피 세상에는 신이 없어도 잘 돌아가게 되어 있으니까.”
“당신은… 후회하게 될 겁니다.”
“너는… 내 아이를 낳을 것이다!”
“하아아아악!”
불타는 세계수를 보며 그녀를 아침까지 범했다.
???
며칠 뒤.
나는 엘프 여왕이 했던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세계수가 사라지고 정글은 빠른 속도로 생기를 잃었다. 생기발랄했던 나무는 시들었고, 깨끗했던 강물은 무언가에 오염되듯 더러워졌다.
“땅이 기운을 잃어가고 있군.”
“…엘프 여왕의 말은 사실이었사옵니다. 지금은 메일로드 왕국에만 영향을 끼치고 있으나, 곧 대륙 곳곳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옵니다.”
마탑주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심각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러려니 했다. 지금 당장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내 목적은 달성했으니.
“그래서. 지금 당장 위험한가?”
“그건… 아니옵니다. 허나 땅의 기운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땅에서 생성되는 식량이 점점 줄어들 것이옵니다.”
“괜찮다. 먹는 입을 줄이면 되니. 그럼 식량이 부족할 일은 없어지겠지.”
“…….”
마탑주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내 말이 그냥 내뱉는 말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제국군 일부를 남겨두고 제국으로 돌아갔다. 메일로드 섬은 더 이상 대륙과 멀어지지 않았다. 대지모신이 죽었기 때문이다.
제국으로 돌아가면서 대륙의 이상 현상을 목격했다. 갑자기 마을 우물이 마른다던가, 잡초로 가득했던 평원이 사막으로 변하는 등의 이상 현상들이다.
“…폐하. 이대로면 대륙은 30년 안에 멸망할 것이옵니다. 대책을 마련해야 하옵니다.”
마탑주가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마탑주의 의도가 뻔히 보였다. 자신이 필요 없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필요 없어지면 내가 언제 처형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마탑주. 알아서 대책을 마련해라.”
“…예. 폐하.”
마탑주가 사라졌다.
나는 축제를 벌였다.
제국이 대륙을 통일한 기념 축제였다.
황궁에는 오직 미녀들만을 불렀고, 광란의 섹스 파티를 벌였다. 누구도 날 막지 못했다. 감히 날 막을 수 있는 놈은 없었다.
거슬리는 놈은 죽이고, 범하고 싶은 여자는 범했다.
나는 이 세상의 절대권력자였다.
며칠 내내 미녀들의 숲에서 놀던 나는 이 퀘스트를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수많은 미녀들이 내 손짓에 따라 무릎을 꿇고 다리를 벌리는 편리한 세계니까.
‘그래도 유리아만큼 내 마음을 끄는 여자는 없군.’
나는 옥좌에서 일어났다.
“대장군.”
“예, 폐하!”
“천신교의 사제들을 모조리 죽여라.”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이 세상은 제국만이 유일하며, 오직 황제 폐하만이 제국의 정당한 통치자이나이다!”
루테온이 광신도처럼 외치고는 근위기사들을 이끌고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천신교의 대신관과 남자 사제들은 전부 죽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 놈은 처리해야지.”
폭군 점수를 모두 채웠지만, 찝찝하게 남겨둘 생각은 없었다. 게임할 때의 기분이다. 클리어하기 직전에 뭔가 하지 않은 게 있으면 찝찝하고 미련이 남으니까.
하늘을 올려다봤다.
밤하늘.
그곳에 푸른 달이 반짝이는 별과 함께 빛나고 있다.
“……진짜 할 생각이야?”
모르가나였다.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낀 채로 날 보고 있었다.
“남은 건 한 놈뿐이다.”
“…대지모신이 죽었을 때를 생각해. 대지모신이 죽고 대륙은 점점 쇠약해지고 있어. 천신이 사라진다면… 그만한 재앙이 대륙을 덮칠 거야.”
“그게 짐이랑 무슨 상관이지?”
“재앙이 생긴다고. 이 세상을 멸망으로 이끌 재앙이.”
“그깟 재앙.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하아.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겠네.”
“막을 생각이냐?”
“무슨 수로? 나는 너한테 묶여 있어.”
“이제 보니 내 자지가 고파서 그러는 모양인데… 들어가서 잠이나 자라. 내일 아침까지 돌아올 테니.”
“하….”
모르가나가 기가 차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천신을 조심하는 게 좋아. 대지모신과 다르게 천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어떤 꿍꿍이를 가졌는지 몰라.”
“뭔가를 할 수 있었다면, 이미 하고도 남았겠지.”
나는 염력을 통해 몸을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향해 날아갔다.
천신.
하늘의 신.
그는 하늘에서 땅을 살펴본다. 허나 하늘에는 누군가가 기거할만한 장소가 없었다. 딱 한 곳, 달을 제외하면.
순식간에 대기를 돌파했다. 기압이라던가, 온도라던가. 그깟 것들이 나를 막기에는 내가 너무 강해졌다. 지금 나는 우주에 맨몸으로 나가도 아무 문제 없었다.
달을 밟은 나는 눈앞에 있는 하얀 신전을 보며 웃었다.
“제대로 찾아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