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1화 〉 861. 그대를 위한 폭군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모르가나마저 내게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린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두 발로 서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하.”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것들의 의도가 훤히 보였다. 동시에 천신의 의도도.
“칼리모로스.”
드래곤 로드를 불렀다.
내 앞에 부복했던 그가 몸을 일으켰다. 나를 향한 존경심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감정 자체가 안 느껴지는 눈동자다.
“말씀하십시오.”
“천신을 죽여야겠다. 짐을 천신의 신전으로 보내라. 네 마법실력이라면 가능하겠지.”
“송구하오나, 천신은 소멸했습니다.”
내 눈썹이 꿈틀거렸다. 언짢은 표정을 노골적으로 지어 보였으나, 칼리모로스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왜지?”
“천신은 세계를 되돌리며 모든 힘을 소진하고 소멸했습니다.”
칼리모로스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세계 전체의 시간을 되돌리는 일. 어지간한 힘으로는 이루기도 힘든 일이다. 거기에 천신은 스스로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네 말은 못 믿겠다. 날 돕지 않겠다면 여기에 가만히 있어라.”
칼리모로스는 내 적이었다. 딱히 나를 진심으로 충성하지도 않는다.
천신이 숨어서 힘을 기르고 있는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더 성가시게 변하기 전에 천신을 찾아내 죽여야 한다.
“…알겠습니다. 천신의 신전으로 보내드리죠.”
칼리모로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눈앞에 워프 게이트가 나타났다. 천신이 있는 달과 이어진 게이트다. 나는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칼리모로스의 함정이라고 해도 타파할 자신이 있었다.
달에 이동한 나는 기감을 퍼트리며 천신의 신전으로 걸어갔다.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신전의 내부까지 걸어갔다.
천신이 앉아 있던 신좌가 있었다. 신좌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
기감을 집중해서 퍼뜨려도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가능성은 두 가지. 달 이외의 장소에 숨어 버렸거나, 칼리모로스의 말대로 정말로 소멸했거나.
‘젠장. 이런 식으로 날 엿 먹이는군.’
화를 담아 신좌를 발로 찼다. 신좌가 박살 났다. 그 파편이 바닥을 굴렀다.
세계 전체가 회귀해봤자 내게 좋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굉장히 짜증나는 일이다. 내가 이뤘던 모든 것들이 리셋 되어버렸으니까.
‘…폭군 점수는 1억 넘게 달성했으니… 귀찮은 짓을 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도 장점은 있었다.
회귀 전에 따먹은 미녀들의 처녀를 다시 한 번 따먹을 수 있다는 것.
‘그래도 가슴이 너무 작아. 다시 탈모르 후작을 불러 풍유약을 만들어야겠어.’
나는 워프 게이트를 통해 황궁으로 돌아갔다.
???
제국으로 돌아온 나는 가장 먼저 초야권을 선포했다. 이 세상 모든 여자는 내 허락 없이 감히 결혼하지 못한다. 내게 허락하지 않고 결혼을 했다? 그들이 속해 있는 마을과 도시를 날려버릴 의향이 가득했다.
‘죽여야 할 놈은 죽여야겠지.’
직접 나서기 귀찮아서 대장군에게 맡겼다.
이후에 나는 처녀들을 범하고, 에르넬을 황후로 삼았다. 솔직히 에르넬 만큼 내 취향인 여자는 없었다. 엘프 여왕과 모르가나? 그녀들은 내 전용 육변기에 불과했다.
회귀하고 좋은 점은 내가 굳이 나설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모두가 알아서 기었다. 문제가 될만한 놈은 내가 명령하지 않아도 죽였다. 뛰어난 미녀가 있으면 내게 바쳤다. 스스로 나를 찾아오는 미녀도 있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후궁의 지위를 확실히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권력을 원하는 자들은 후궁의 자리를 노렸다. 한 번 후궁의 자리를 꿰차면 늙거나 못생겨지지 않는 이상 물러나지 않으니까.
“황제 폐하! 풍유약을 만들어왔사옵니다!”
“잘했다, 탈모르 후작. 앞으로도 계속 풍유약을 만들어라. 풍유약이 곧 희망이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허나, 폐하. 인간 목장 계획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탈모르 후작의 질문에 신하들이 긴장했다. 인간 목장은 그 이름만큼이나 추악한 곳. 어떻게 해서든 막고 싶을 것이다.
나는 귀찮음을 담아 탈모르 후작에게 손짓했다.
“알아서 해라.”
인간 목장은 효율적으로 폭군 점수를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폭군 점수를 1억 넘게 얻은 지금에선 인간 목장을 운영하든, 말든 아무래도 좋았다.
미녀들의 경우 하루에도 수백 명씩 찾아오는데, 인간 목장으로 굳이 미녀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이 세계는 넓었고, 자연 미인은 많다.
“폐하. 라이스트 대공 일가는 어찌하실 생각이시옵니까?”
라이스트 대공가는 반역자 가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황후인 에르넬의 가문이었다.
“관심 없다. 에르넬에게 물어서 처리해라.”
에르넬이라면 라이스트 대공가를 괴롭히다가 없애버릴 것이다. 물론 굳이 그게 아니어도 상관없다.
‘보지 정원은 포기할 수 없지.’
그리고 린다. 빙의자인 그녀 또한 회귀했다. 본래 빙의하던 시기보다 훨씬 이전에 기억을 가지고 회귀한 것이다. 나는 그러려니 하며 그녀를 받아들였다. 린다가 내 좆집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아, 하앙. 너무 기분 좋아…!”
내 몸 위에서 허리를 흔들던 모르가나 몸을 일으켰다. 자지가 빠져나가자마자 보지에서 조수를 뿜어댔다. 그녀의 보지가 벌렁벌렁거렸다.
나는 양손으로 실신한 에르넬과 린다의 풍만한 가슴을 주물렀다. 역시 풍유약이다.
“…왜 그래? 오늘따라 분위기가 평소와 다른걸?”
모르가나가 내 상체에 엎드렸다.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여체가 올려지는 감각은 꽤 좋았다.
“이게 마지막이다.”
“마지막?”
모르가나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녀를 보니 괜히 또 아쉬워진다. 절대적인 권력으로 뭐든지 가능한 세상.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괜히 서글퍼진다. 아직 못 따먹은 미녀들도 많은데.
‘그래도 유리아의 기억은 되찾아야지.’
이 세계에 온 목적을 다시금 떠올린다.
“너랑은 상관 없는 이야기다.”
“…뭐야. 괜히 서운해지네? 우리가 그 정도로 가벼운 관계였어?”
“육변기 주제에.”
“황제 폐하께서 애용하는 육변기지.”
모르가나가 내 목을 끌어안으며 입을 맞춰왔다. 나는 부드러운 여체를 느끼면서 퀘스트를 완료했다. 나는 현실로 이동했다.
[진정한 폭군.
로맨스 판타지 세계에는 수많은 폭군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진정한 폭군은 없습니다. 폭군의 탈을 썼을 뿐인 제왕들뿐입니다.
‘그대를 위한 폭군’ 세계에 들어가 진정한 폭군이 무엇인지 보여주십시오! 폭군이 되어 세상을 유린 하십시오!
폭군이 되어 최소 100만 폭군 점수를 달성하십시오.
퀘스트 보상 ? 폭군 점수에 따라 주어집니다.
100만 달성 ? 1,000 포인트.
1,000만 달성 ? 랜덤으로 능력치 20 상승
1억 달성 ? 전지의 조각.
※페널티가 다수 존재합니다.
※포인트를 소모해 페널티 일부를 완화하거나, 없앨 수 있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진정한 폭군’의 퀘스트 보상이 주어집니다.]
[현재 폭군 점수 ? 141,055,361]
[100만 폭군 점수 달성으로 1,000 포인트가 주어집니다.]
[1,000만 폭군 점수 달성으로 랜덤으로 능력치가 20 상승합니다.]
[상승된 능력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근력: 3 체력: 3 민첩: 7 지능: 0 정력:5 마나: 2]
[1억 폭군 점수 달성으로 전지의 조각을 획득합니다.]
[전지의 조각.
질문 3개의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난해한 질문이라도 전지의 조각은 대답할 것입니다. 그게 설령 아득히 먼 미래에 대한 질문이라 할지라도.
현재 사용한 횟수 - 0
가격 : -
※주의
유희 생활 어플과 관련된 질문은 무시됩니다.]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조금 오랫동안 했던 유희 생활이라 그런지 괜히 시원섭섭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힘이 약해졌다는 게 가장 실감이 크네.’
신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던 힘은 사라지고 없었다. 오러블레이드? 음. 어떻게 발현하더라?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러블레이드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전혀 모르겠다.
[성유진
레벨: 76
근력: 88 체력: 83 민첩: 87 지능: 80 정력: 95 마나: 92]
[사용 가능 포인트: 2,709]
지금의 내 능력치와 포인트였다.
포인트는 원래 이것보다 많았었는데, 포인트를 지불해 ‘그대를 위한 폭군’ 세계의 물건을 가져왔다. 풍유약과 발모제. 발모제는 둘째 치더라도 풍유약은 포기할 수 없었다.
‘크크. 풍유약만 있으면… 내 취향의 거유들을 잔뜩 만들어낼 수 있지!’
사용한 포인트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제 전지의 조각을 사용해서 유리아의 시련이 뭔지 알아내볼까. …아니지. 조금 찝찝하니 그대를 위한 폭군의 엔딩부터 보자.’
어차피 현실 시간에서 흐른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내게는 시간이 많았다. 먼저 끝낼 걸 확실히 끝낸 뒤에 해도 늦지 않는다.
‘어디 엔딩이 어떻게 나는지 한 번 볼까?’
나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황제의 일상은 늘 같았다. 하루종일 미녀들을 품에 안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보지 정원을 산책하고, 오후에는 초야권에 의해 황궁으로 끌려온 미녀들을 품에 안는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미녀가 생기면 바로 후궁으로 받아들였다. 황제의 명령은 절대적이었으므로 여자에게 거부권은 없었다.
‘시간을 빨리 돌려보자. 반란이 일어날 때가 있을 텐데….’
그러나 내 생각과 다르게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황제는 자신의 욕망만 충족할 수 있으면 얌전했다. 마음에 드는 남자를 죽이는 경우는 있어도 대량학살이 일어나는 경우는 없었다.
30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황제는 여전히 황제였다. 그의 권력은 절대적이었다.
천신교는 천신이 아닌 황제를 신으로 모시기로 했다. 천신이 황제를 인정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세계에서 황제는 곧 신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황제에 대한 불만이 튀어나왔다. 젊은이들이 그 중심이었다. 회귀의 기억이 없는 새로운 생명들. 회귀전의 황제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알지 못하는 자들. 그들은 황제의 폭거에 반하여 무기를 들고 일어났다.
결과는 뻔했다.
전멸.
30년 동안 놀고먹기만 한 황제는 여전히 세계 최강이었다. 남부 끝에 위치한 대지모신도 황제의 눈치를 살피며 수그리는데, 수만 명이 일어났다고 해서 황제를 어떻게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반란자들이 괘씸해서 참을 수 없도다. 흑마탑이여, 반란자들의 영혼을 잡아 지하 깊숙한 곳에 가둬라. 반란자들은 그 영혼이 소멸할 때까지 고통받아 마땅하리라.”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황제의 선포가 떨어졌고, 반란자들은 죽어서도 편하지 못하다.
황제는 수많은 여자를 임신시켰다. 그가 낳은 아이들은 모두 여자아이였다. 황제가 흑마법사를 시켜 여자만이 태어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흑마법사는 인공적으로 사람을 만들 수 없어도, 임신한 아기의 성별을 인공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황제는 자신의 딸들이 성인이 되면 주저하지 않고 취했다. 근친? 황제는 그딴 걸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감히 황제에게 대드는 일도 없었다.
더욱더 시간이 지났다.
황제의 황후였던 에르넬이 죽었다. 그녀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늙지 않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흑마법을 이용해 젊음을 유지한 것이다. 다만 수명까지 늘리지는 못했다. 후궁이었던 린다와 레일라를 비롯한 여자들도 늙어 죽었다.
100년이 지났음에도 황제는 건재했다. 황제가 가진 막대한 힘이 그의 수명을 대폭 늘려주었다. 허나, 그 한계는 있었다.
모르가나는 죽지 않았다.
에르넬이 죽고 새로이 황후가 된 그녀는 권력을 이용해 세상을 가지고 놀았다.
반란군이 일어났다.
그리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제 황제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회귀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자는 드물었다.
황제의 권력은 영원했다.
영원할 것 같았다.
이름 높은 마녀이자, 황후였던 모르가나가 200년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황제는 그녀가 죽은 날, 눈물을 흘렸다. 보고 있던 내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모르가나…. 짐은 그대를 사랑했던 것 같군. 한낱 육변기에 불과한 주제에…. 건방지도다….”
물론 그렇다고 여자를 안지 않은 건 아니었다.
황제는 그날부터 조금씩 변했다. 모르가나의 죽음으로 자신의 죽음을 인식한 것이다.
“폐하. 불로불사를 연구하겠사옵니다. 제물이, 제물이 많이 필요하옵니다.”
“흑마탑주. 짐은 불로불사에 관심 없다.”
“허나 폐하…. 이 제국에는, 이 세상에는 폐하의 통치가 필요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