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7화 〉 867. 신의 아틀란티스
「제 6,999 구역, 폭우 속 교회와 마주했습니다.」
「이곳은 특수 히든 구역입니다.」
「살아 남아 적을 처치하십시오.」
「마천의 왕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천공의 주인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예언의 사자(僞)가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첫 번째 저주를 확인했습니다.」
「한기. 추위를 느끼며 모든 능력치의 10%가 하락합니다.」
「1시간 뒤 두 번째 저주가 내려집니다.」
주르륵 떠오르는 알림창을 확인했다. 저주의 효과는 사실인 듯 내 몸이 급격히 무거워졌다.
10%.
고작 10%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능력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10%의 하락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와 닿는다. 체감은 20% 이상에 가깝고, 컨디션 자체가 무너지는 느낌이다.
나와 주서현은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창고에서 뛰쳐나왔다. 나야 무기를 소환하면 될 일이었지만, 주서현은 현재 무기가 없어 적당한 나뭇가지를 손에 쥐었다. 그녀가 가진 고유 특성인 검제(S)의 효과로 나뭇가지라도 제법 쓸모가 있을 것이다.
쾅!
예배당의 문을 박살 내듯이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예배당 내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불안감을 표출했다.
“뭐, 뭐야?! 특수 히든 구역? 들어본 적도 없다고!”
“일단 진정하시고 침착하게 행동하죠. 예언의 사자가 어떤 신좌인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씨발.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마차를 구하는 건데.”
소란스러웠다.
그들은 무기를 뽑아들고 저들 무리끼리 모여 서로를 경계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한 여인이 소란을 덮을 정도로 큰 비명을 질렀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가,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예배당의 천장.
그곳에 한 남자가 시계추처럼 매달려 있었다. 절반쯤 찢어진 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그 옆에는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예배당은 물을 끼얹은 것처럼 침묵에 잠겼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호락호락한 일반인이 아니다. 시체 하나 보고 경악하며 구역질을 하는 건 그들의 경험이 허락하지 않는다. 여기선 비명을 지른 여자가 특이한 쪽이다.
“코민!”
“코민은 방금까지만 해도 내 옆에 있었다고!”
“이, 일단 코민부터 내려!”
일련의 무리가 조심스럽게 시체를 내리기 시작했다.
나와 주서현은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며 일행들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일행들은 모두 무사했다. 다만 이민정은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고, 유서희는 딱 봐도 기분 나빠하며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릴스네는 활을 손에 쥐고 눈동자를 차분하게 내리깔고 주위에 감각을 퍼뜨렸다.
유인하는 언제든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지영빈 또한 무기를 들고 경계한다.
“유인하, 지영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설명해봐.”
“…….”
유인하는 눈동자를 굴러 지영빈을 쳐다봤다. 주서현과 예배당을 나가기 전 유인하가 졸고 있었던 걸 떠올렸다.
“성유진 씨.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1분 전, 갑자기 천장이 폭발했습니다. 저희는 벼락이 내려친 줄로만 알았습니다만, 자세히 살펴보니 벼락의 흔적이 아니었습니다.”
“…무거운 뭔가가 천장에서 떨어진 기척이었습니다. 정작 바닥에 떨어진 건 천장의 잔해뿐이었지만요.”
릴스네가 이어서 말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천장을 통해 들어와 예배당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기감을 퍼트렸다. 예배당 구석구석 찾아본다. 느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 기감으로 찾지 못할 만큼 강하거나, 아니면 존재하지 않거나.’
나는 혀를 찼다. 강명진이 이곳에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강명진에겐 용안(S)이 있으니까. 숨겨진 것을 찾는 건 강명진의 전문이었다.
“일단은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경계를 계속하자. 유인하. 결계 마법을 칠 수 있겠어?”
“…아까부터 시도하고 있는데 결계 자체가 발동되지 않습니다. 이곳에 있는 특수한 힘이 방해합니다.”
“골때리네. 알았어. 모두 좀 더 붙어. 뒤에 벽이 있다고 해서 안심하지 마. 벽에 숨어다니는 몬스터도 있으니까. 특히 악령 계열이면 오히려 벽이 더 위험해.”
그들은 내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악령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지영빈이 질색했다. 해병대 출신이라고 하던 그는 귀신을 무서워했다.
“…이렇게 됐으니 그냥 교회 밖으로 도망치면 되는 거 아니야?”
주서현이 말했다. 그녀는 나뭇가지를 버리고 검을 뽑아 들었다. 그녀가 긴장함에 따라 검명이 웅웅 울린다. 주서현은 능력치, 스킬 등을 전부 제외하고 순수하게 검술만 따지면 이미 나를 뛰어넘었다.
“여긴 특수 히든 구역이야.”
“…그 특수 히든 구역이 뭔데?”
“일종의 재해지. 평범한 구역은 움직이지 않아. 사람이 찾아내어 구역을 공략해야 하지. 하지만 특수 히든 구역은 정해진 곳에 있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삼키지. 지금처럼 말이야.”
특수 히든 구역은 폭풍과 같은 자연재해였다. 그러나 운이 좋으면 로또가 될 수 있었다. 특수 히든 구역을 클리어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으니까.
쨍그랑!
남자 4명이 예배당의 창문을 깨뜨렸다. 천장에서 뿐만이 아니라 창문에서도 비와 바람이 예배당 안으로 몰아친다.
“정면으로 나가는 건 멍청한 짓이야. 창문으로 나가자!”
“빌어먹을… 이게 웬 날벼락이야.”
그들은 창문 밖으로 발을 뻗었다. 그리고 막혔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가로막혀 바깥으로 나가지 못했다.
“모, 몸이 안 움직… 흐억?!”
시커먼 무언가가 밖에서 나타났다. 나는 두 눈에 힘을 주고 그것을 살펴봤다. 목사 옷을 입은 사자였다. 아니, 몸통은 인간인데 머리 부분만 사자였다.
사자는 입을 벌려 낚아챈 남자를 보란 듯이 씹어 먹었다.
“예언의 사자가 저놈이었군. 릴스네!”
“네!”
나와 릴스네는 동시에 사자에게 공격을 날렸다. 번개와 하살이 허공을 갈랐으나 창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비정상적인 접근입니다.」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5초 동안 몸이 마비됩니다.」
“크헤헤헤헬!”
남자 두 명의 머리를 빠르게 씹어 먹은 사자머리 목사가 기분 나쁜 웃음을 터트렸다. 사자는 예배당 내부에 남은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흙안개처럼 사라졌다.
“저 목사 도메니코인가?”
“네. 아마도요.”
이곳에서 가장 수상한 놈. 도메니코밖에 없지. 나는 혀를 차며 비바람에 꺼진 모닥불에 뇌전을 일으켜 다시 불을 지폈다. 릴스네는 귀를 쫑긋거리며 한층 더 진중하게 주위를 경계했다.
“서브 마스터.”
지영빈이 날 불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다려야지. 히든 구역에 정해진 룰이 드러날 때까지. 미리 말해둘게. 구역의 룰은 최대한 철저히 지켜. 이런 구역의 공략법은 룰대로 따르는 게 가장 쉽고 안전한 공략법이니까.”
모두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무리의 사람들도 내 말을 듣고 저들끼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민정. 괜찮아? 안색이 안 좋은데?”
이민정의 얼굴은 어두웠다. 식은땀을 흘리며 양손에 숏소드 2개를 꽉 쥐고 있다. 덜덜 떨리는 몸이 불안정해 보였다.
“괘, 괜찮아요. 싸울 수 있어요.”
이건 안 된다. 이민정은 지금 여느 때보다 불안정하다. 절대 정신을 가지고 있는 나는 잘 모르겠지만, 특수 히든 구역이 좋지 않은 작용하는 걸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유서희. 너는 어때?”
“…기분 나빠요. 그래도 싸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에요.”
이민정 정도는 아니어도 유서희의 안색은 창백했다. 컨디션이 안 좋은 모양이다.
나는 알림창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제 6,999 구역, 폭우 속 교회와 마주했습니다.」
「이곳은 특수 히든 구역입니다.」
「살아 남아 적을 처치하십시오.」
살아 남아 적을 처치한다. 이게 아마 공략 목적일 것이다. 적이란 목사일 테고. 즉, 당장에는 살아 남는 게 최우선이라는 뜻이다.
30분이 넘게 지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팽팽하게 긴장되었던 분위기가 느슨해졌다. 사람은 적응의 생물이었고, 지금 이 상황에서도 적응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저, 서브 마스터.”
이민정을 주시하고 있던 내가 지영빈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지?”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는 건 어떻습니까? 저쪽에 있는 안레이 레기온 일행과 잠깐 이야기해봤는데 나쁜 이들은 아니었습니다. 서로 뭉치는 쪽이 살아남기에 더 좋지 않겠습니까?”
나는 피식 웃었다. 대답할 가치도 없었다. 그 뜻을 알아차린 지영빈은 눈을 찡그렸다. 강명진이라면 좋게 설득했겠지만, 나는 아니었다. 지영빈 따위에게 신경 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두 번째 저주를 확인했습니다.」
「희생. 살아 남은 자 중 두 명이 희생해야 합니다.」
「남은 시간 : 3시간.」
「시간 내에 희생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4명이 사망합니다.」
알림창을 확인한 모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구석에 앉아 있는 2명의 남자에게 다가갔다. 원래는 4명이었으나, 절반은 사자 머리 목사 도메니코에게 먹혔다.
“뭐, 뭐냐.”
“오지 마라. 그 이상 다가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
그들이 검을 치켜들었다. 우스웠다. 나를 쫓아내기엔 그들은 너무나도 약했다. 그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다가갔다. 그들이 검을 휘둘렀지만 내 몸에 닿는 일은 없었다.
내 양손이 그들의 얼굴을 잡았다.
‘뇌전.’
한순간에 예배당을 밝힐 정도의 전류가 그들에게 흐른다. 그들이 시체가 되어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저주가 해제됩니다.」
「3분 이내에 희생자 2명이 발생했습니다.」
「숨겨진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당신이 선택한 오직 1명만이 6,999 구역 폭우 속 교회에서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선택권은 10분 후에 소멸합니다.」
「마천의 왕이 재밌어합니다.」
「마천의 왕이 자기 자신을 선택하라고 귀띔합니다.」
마천의 왕의 말은 무시했다. 마천의 왕은 내가 일행을 버리길 원하는 모양인데, 나의 사랑스러운 보지들을 버릴 수 없었다.
“에이플랜 레기온의 서브 마스터. 거기 멈춰라.”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무슨 일이지?”
“우리에게 할 말은 없나?”
“없다만.”
“……너는 우리와 상의하지도 않고 희생자를 정했다. 아니, 살해했다. 우리는 가장 위험한 적을 목사 다음으로 너라고 생각한다.”
“단체로 나와 싸울 생각인가?”
파직.
손에 뇌전을 일으키자 당당하게 말하던 남자는 주춤거렸다.
“기, 기회를 주지. 선택권을 우리에게 넘겨라.”
“너희도 알림창을 봤으면 알 텐데. 선택권은 내게 주어진 보상이고 10분 뒤에 소멸한다. 그리고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건 딱 한 명뿐이지. 너희 중에 누가 벗어날 거냐?”
“…….”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현재 예배당에 있는 인원수는 27명. 6개의 무리로 나뉘어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에게 목숨줄을 양도할 의리는 없었다.
“내게 팔아라. 그 대가로 이 명검을 주지.”
한 남자가 자신의 검을 내게 보였다.
“쓰레기군.”
나는 그를 비웃어 준 뒤 일행에게 다가갔다. 일행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주서현은 못마땅한 눈으로 날 보고, 릴스네마저 복잡한 눈이다. 지영빈은 아예 대놓고 불만 어린 눈동자였다. 유일하게 유서희만이 내게 웃어줄 뿐이었다.
“서브 마스터. 그들을 바로 죽여야 했습니까?”
“2명을 죽이지 않았으면 4명이 죽었어. 아니면 넌 사이좋게 투표로 희생자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건…. 죄송합니다.”
지영빈이 한숨을 내쉬며 사과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선택권은 유서희를 선택할 거야. 불만 있는 사람?”
지영빈이 입을 뗐다.
“서브 마스터. 민정이를 선택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민정이를 선택하면 밖에 혼자 두게 돼. 지금 민정이 상태를 보면 그게 더 위험할 것 같은데?”
“…….”
모두 입을 다물었다. 내 말에 긍정하는 것이었다.
유서희의 직접적인 전투력은 우리 중에서 하위권이고 컨디션이 안 좋다. 냉철하게 유서희를 선택하는 게 맞다.
“유, 유진 씨. 전 싸울 수 있어요!”
“알아. 그래도 밖에서 기다려.”
그녀의 어깨를 잡고 단호하게 말했다.
“…유진 씨의 뜻이 정 그렇다면…. 알았어요.”
「유서희를 선택했습니다.」
「유서희는 6,999 구역 밖으로 나갑니다.」
유서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