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8화 〉 868. 신의 아틀란티스
「세 번째 저주를 확인했습니다.」
「사냥. 예언의 사자(僞)가 사냥을 개시합니다.」
「교회 부지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교회 내에 생존에 도움이 되는 특별한 물건이 숨겨져 있습니다.」
「아주 특별한 물건을 찾으면 6,999 구역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도망치세요. 그리고 살아남으세요.」
「30분 뒤 네 번째 저주가 내려집니다.」
“움직이자.”
내가 말했다.
“여기에 다 같이 모여 있는 게 낫지 않아?”
주서현이 검자루를 매만지며 말했다. 그녀의 의도는 뻔했다. 다 같이 힘을 합쳐 예언의 사자를 죽이자.
“착각하는 모양인데, 우리의 적은 예언의 사자가 아니야.”
“……예언의 사자가 적이 아니라고? 그럼 적이 누군데?”
주서현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6,999 구역. 우린 룰에 따라야 한다는 걸 잊지 마. 그리고 지금은 내가 레기온 마스터야.”
나는 예배당 뒷문을 열고 나갔다. 내가 향하는 곳은 숙소 쪽이었다. 내 목적은 예언의 사자(僞), 도메니코에게서 도망치기보다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물건을 찾는 것이다.
‘이런 거야 뻔하지. 그 물건중에는 아마 도메니코를 죽이거나, 상처 입힐 수 있는 물건도 있겠지.’
너무 거침없이 움직였기 때문일까. 일부 사람들이 우리 뒤를 쫓아오는 게 느껴졌다.
“유진 형. 따라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유인하가 내게 물었다. 뒤를 힐끔거리는 시선이 곱지 않다. 이해한다. 급박한 상황에 낯선 이들이 쫓아오니 신경이 곤두서는 것도 당연하다.
“내버려 둬. 상대할 시간 없어.”
나는 숙소 건물을 쳐다봤다. 예배당보다 훨씬 컸다. 밖에서 교회를 봤을 때 이 정도로 넓은 곳이 아니었던 거로 기억한다. 아마 구역 공략이 시작되면서 공간이 늘어났으리라.
나는 혀를 차며 숙소 안으로 들어가 방을 하나, 하나 뒤지기 시작했다.
“서브 마스터. 너무 대놓고 움직이는 거 아닙니까? 숨어가면서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지영빈은 따라붙는 사람들을 경계하며 내게 의견을 말했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유인하가 먼저 대답했다.
“상대는 예언의 사자입니다. 아마 그 진명은 72 악마 중 20위의 악마인 푸르손이겠죠. 예언의 능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 숨어 있어 봤자 소용없을 겁니다. 유진 형도 그렇게 생각하고 대놓고 움직이는 거겠죠.”
“…유인하. 네 말이 맞다.”
떨떠름하게 말했다. 솔직히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도메니코의 진명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냥 숨어 있는 건 내 취향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랬습니까? 제가 멍청했군요.”
나는 방 안에 있는 침대를 발로 찼다. 물건이 하나 있었다.
「신성한 밧줄
사용 시 예언의 사자(僞)를 30초 동안 묶어 둡니다.
-6,999 구역에서만 사용 가능한 물건입니다.」
나는 밧줄을 릴스네에게 던졌다.
“유진 씨?”
“위험한 순간이 올 거야. 네가 사용해.”
이후에도 특수한 물건들을 몇 개 발견했다.
「날카로운 안경.
사용 시 예언의 사자(僞)의 눈을 1분 동안 멀게 합니다.
-6,999 구역에서만 사용 가능한 물건입니다.」
「불한당 인형.
사용 시 불한당이 나타나 예언의 사자(僞)와 30초 동안 싸웁니다.
-6,999 구역에서만 사용 가능한 물건입니다.」
등등의 물건이다.
대부분 도메니코를 막거나 방해하는데 특화되었다. 쉽게 말해 도망자를 위한 물건들이었다. 나는 이 물건들을 일행들에게 나누어줬다.
“성유진. 넌 왜 물건을 전부 우리에게 넘기는 거지?”
주서현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말했다.
“난 여기서 제일 강해. 그런 물건이 없어도 도망칠 수 있어. 만약의 사태 때는 너희가 써.”
주서현을 포함한 모두가 다시 봤다는 얼굴로 날 쳐다본다. 내 말에 약간 감동한 모양이었다. 그저 진실을 말했을 뿐인데 왜 감동 한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끄아아아아아아아악!”
“크헤헤헤헤헬.”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과 웃음소리가 들린다. 일행의 얼굴은 굳어졌다. 우리 뒤를 쫓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괜히 숨소리까지 죽였다.
“이번이 몇 번째야?”
“11번째입니다. 거의 3분에 한 명씩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지영빈이 대답했다.
“다른 놈들이 생각보다 잘 도망치고 있나 보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숙소 밖으로 나갔다. 자잘한 물건은 많이 모았는데, 내가 원하는 도메니코를 죽일 수 있는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네 번째 저주를 확인했습니다.」
「혼란. 생존자들은 교회 내의 무작위 장소로 이동합니다.」
「30초 뒤 네 번째 저주가 발동됩니다.」
「30분 뒤 다섯 번째 저주가 내려집니다.」
알림창을 읽은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뛰어가는 것을 멈추고 그들에게 당부했다.
“최대한 전투는 피하고 물건은 아끼지 말고 써. 그리고 만약, 구역 밖으로 나가는 물건을 발견하면 망설이지 말고 사용해. 소리 지르지 말고 조용히 움직여.”
“네. 서브 마스터. 나중에 살아서 봅시다.”
나는 30초가 되기 직전, 이민정에게 물건 하나를 사용했다.
「위치추적 바늘
대상에게 사용 시 대상의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6,999 구역에서만 사용 가능한 물건입니다.」
???
네 번째 저주로 인해 교회 창고로 무작위 이동한 나는 곧장 이민정을 찾아 움직였다. 이민정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다행이군.’
내가 이토록 이민정을 신경 쓰는 건, 그녀가 일행 중 가장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가장 먼저 죽을 가능성이 컸다.
‘있는 곳은 고해실인가.’
예배당과 다르게 밀실의 작은 방이었다. 그녀는 그곳에 숨어 있었다.
“민정아! 나야!”
그녀가 있는 고해실의 문을 열었다. 숏소드가 번뜩이며 내 목을 노린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유, 유진 오빠?!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이민정이 몸을 떨었다. 눈물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며 내게 사과의 말을 쏟아냈다. 그녀는 내 눈치를 보면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됐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란 거 알아. 오히려 잘했어.”
섣불리 고해실의 문을 연 내 잘못도 있었다. 나는 그녀를 끌어내리려다가 도리어 고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민정은 의자 위에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훌쩍거렸다.
“여기 꽤 아늑하고 괜찮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바깥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일행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나는 괜히 뻘쭘해져서 이민정의 눈치를 살폈다. 이민정은 머리를 무릎에 파묻어 몸을 덜덜 떤다. 양손에는 숏소드를 꽉 쥔 채.
나는 그녀의 등을 조용히 쓸어주었다. 그러자 이민정의 상태가 조금씩 나아졌다.
“유진 오빠…. 명진 오빠는… 절 믿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민정이 고민을 털어놨다. 그동안 이민정을 편애하듯 대한 보람이 있었다. 강명진이 제법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것도 한몫했다.
그리고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보통 조연이라면 강명진을 변호할 것이지만, 나는 강명진을 변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명진이는 누구도 안 믿어. 나도 안 믿고, 주서현도 안 믿고, 민정이 너도 안 믿지.”
“…아니에요. 명진 오빠는 유진 오빠만큼은 믿어요.”
“명진이가 내게 일을 자주 맡기긴 하지. 이해해. 남들이 봤을 땐 착각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근데 명진이가 내게 일을 자주 맡기는 건 내가 서브 마스터이기 때문이야.”
대놓고 강명진을 욕할 순 없었다. 이민정의 마음속에는 지금도 여전히 강명진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니까. 우선은 이민정의 공감과 신뢰를 얻을 필요가 있다.
“민정아. 너 명진이가 다른 사람과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거 봤어? 강명진이 따로 개인 수련을 도와주는 거 말고 말이야.”
“…아뇨. 명진 오빠는 항상 일만 해요. 제가 놀러 가자고 해도 시간이 없다며 거절하고… 흑.”
이민정이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명진이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안 믿어. 명진이가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는 건 딱 한 사람밖에 없어. 아니, 사람이 아니지.”
“비야….”
청룡 비야.
강명진이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존재다. 왜냐, 비야가 강해져야 드래곤 나이트인 강명진도 비례하여 강해지기 때문이다.
강명진의 최우선순위는 자연히 비야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 강명진이 진정 신뢰하는 건 비야 밖에 없을 거야.”
“…….”
이민정이 다시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다.
“민정아. 난 네가 명진이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
“……어떻게 알았어요?”
이민정이 고개를 살짝 들고 놀란 얼굴로 내게 되물었다. 나는 다소 어이가 없었다. 레기온에서 이민정이 강명진을 좋아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모르면 등신이다. 강명진도 이민정의 마음을 알고 있을 거다. 그리고 이민정이 고백하더라도 거절하겠지. 강명진의 목적은 아틀란티스를 전부 공략하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거니까.
“보니까 보이던데.”
“맞아요. 저, 명진 오빠 좋아해요. 명진 오빠가 아니면 전 안 돼요. 명진 오빠가 제 삶의 의미에요.”
“명진이에겐 넌 동생일 뿐이야.”
“……알아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제가 좀 더 노력한다면 명진 오빠도….”
이민정은 말을 잇는 도중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신이 말해 놓고도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그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가 도와줄까?”
“……유진 오빠가요?”
“명진이는 이대로 있으면 무너질 거야. 사람에겐 한계가 있고, 명진이도 다르진 않아. 더 늦기 전에 명진이의 마음을 풀어야 해. 그 역할은 네가 딱이지.”
난 개소리를 지껄였다. 강명진은 대단한 놈이다. 어지간한 일로는 마음이 꺾이기는커녕 흠집조차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민정은 콩깍지가 제대로 씌어있다. 강명진과 관련하여 조금만 유리한 말을 해줘도 쉽게 믿는다. 지금처럼.
“…어떻게. 제가 명진 오빠를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해. 명진이의 마음을 열고 진심을 얻으면 돼. 민정아, 혹시 내 도움을 받을 생각이 있어? 나는 네가 명진이를 구해줬으면 해.”
“전 명진 오빠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그래. 그 당당함이야. 명진이는 당당한 여자를 좋아해.”
“당당한 여자…!”
“우선 허리부터 쭉 펴고. 앉아봐.”
“…이렇게요?”
“다리도 좀 꼬고. 오만한 표정을 지어. 주서현이 자주 짓는 표정이 있잖아. 그래야 강명진이 널 다시 보지 않겠어?”
강명진을 들먹이자 이민정은 내 말에 쉽게 따랐다. 나는 은근슬쩍 손을 잡거나, 표정을 교정한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스킨십을 했다. 이민정은 내 흑심을 눈치채지 못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쿵, 쿠웅! 쿵!
밖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린다. 당당함을 연기하던 이민정의 얼굴에 두려움이 차올랐다. 나는 이민정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크헤헤헤헬! 여기 있었… 허억!”
목사 옷을 입은 사자, 도메니코를 발로 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당황한 도메니코가 내 뒤를 쫓는다.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유, 유진 오빠. 어, 어떡하죠?!”
“내가 아까 준 거 있지? 그거 써.”
이민정은 구슬을 꺼내 사용했다. 뒤를 쫓아오던 도메니코가 다리를 멈추더니 갑자기 철퍼덕 바닥에 앉았다. 구슬의 효과다.
「다섯 번째 저주가 내려집니다.」
「악몽. 예언의 사자(僞)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집니다.」
나는 예배당으로 향했다. 내가 제대로 뒤지지 못한 곳은 몇 군데가 있는데 그중에 가장 유력한 곳은 예배당이었다.
예배당 내부를 둘러보다가 정면에 걸린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십자가를 뒤로 내던졌다. 십자가 안쪽에 검이 숨겨져 있었다. 검을 손에 들자 도메니코가 들이닥쳤다.
「악에 맞서는 검
예언의 사자(僞)를 죽일 수 있는 검입니다.
-6,999 구역에서만 사용 가능한 물건입니다.」
내게 꼭 필요한 검이었다. 나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이민정을 바닥에 내려주고 페데리코를 향해 걸어갔다.
“크헤헤헤헬. 네가 그 검을 가져봤자 아무것도 못 한다.”
“놀아주는 건 끝이다.”
찰나를 사용했다. 내 속도가 빨라지고, 검은 정확히 페데리코의 심장을 관통했다. 페데리코는 내 기준으로 약한 측에 속했다. 바로 죽이지 못한 건 6,999 구역의 규칙이 그를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 6,999 구역, 폭우 속 교회를 공략했습니다.」
「특수 히든 구역입니다. 구역 지배권 대신 특수한 아이템을 획득합니다.」
「‘침착한 사냥꾼’ 칭호가 주어집니다.」
「보너스 능력치 포인트 1을 획득합니다.」
「300,000 AP를 획득합니다.」
「폭우의 피리를 획득합니다.」
「예언의 사자(僞)가 당신에게 예언을 내립니다.」
「악연이 너를 방해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