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9화 〉 869. 신의 아틀란티스
「제 6,999 구역, 폭우 속 교회를 공략했습니다.」
「특수 히든 구역입니다. 구역 지배권 대신 특수한 아이템을 획득합니다.」
「‘침착한 사냥꾼’ 칭호가 주어집니다.」
「보너스 능력치 포인트 1을 획득합니다.」
「300,000 AP를 획득합니다.」
「폭우의 피리를 획득합니다.」
「예언의 사자(僞)가 당신에게 예언을 내립니다.」
「악연이 너를 방해하리라」
공략이 끝났다.
나와 이민정은 교회 밖의 숲 속으로 이동되었다. 무심코 하늘을 쳐다봤다. 새파랗다. 방금까지 먹구름으로 하늘을 어둡게 물들이고, 천둥 번개가 치던 상황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무는 빗물에 젖지도 않았고, 땅은 푸석푸석하다.
내 손에는 검은색의 단조로운 피리가 들려 있었다. 「폭우의 피리」다.
“유진 씨!”
유서희가 나를 부르며 다가왔다. 그녀 주위에 다른 일행들도 있었다. 낙오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교회 안에는 우리를 제외하고 생존한 다른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들은 다른 곳에 있나?’
위험한 놈들은 아니었으니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다친 곳은 없지?”
“네. 없어요. 그 구역 밖으로 나오니 기분 나쁜 것도 사라졌고요.”
“그래? 그럼 움직이자.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제도에 도착할 거야. 힘들어도 제도에서 쉬는 편이 더 나아.”
「이름: 성유진
클래스: 뇌절사
칭호: 운명 파괴자
신좌: 천공의 주인
소속: AL 401 지구
근력: 88 민첩: 76 체력: 82 마나: 96 행운: 38
고유 특성: 기만(SS)
특성: 뇌전(S)
스킬: 아스트라페(B), 만뢰(B), 전광석화(D)
(상태창 적용 중)」
보너스 능력치 포인트는 바로 사용했다. 아끼면 똥된다는 말이 있고, 보너스 능력치를 사용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다. 행운. 나는 보너스 능력치를 얻으면 보통의 방법으로는 올리기 힘든 이 능력치를 올린다.
이어서 이번 특수 히든 구역을 공략하고 보상으로 얻은 물건도 확인했다.
「폭우의 피리
일회용.
폭우를 부를 수 있다.
폭우는 세 시간 동안 유지된다.
랭크: S」
기후를 바꾸는 물건이었다.
내가 뭐라 평가하긴 애매했다. 이런 물건들은 어디까지나 쓰기 나름이니까. 비가 내리지 않는 구역에서는 S 랭크 이상의 가치를 가지겠지만, 비가 내리는 구역에서는 C랭크 이하의 가치다.
어쨌든 나는 폭우의 피리를 잘 챙겨뒀다. 언제 어디서 쓰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특수 히든 구역은 지배할 수 없다는 게 아쉽군.’
나는 일행을 이끌고 제도로 걸어가면서 아직 남은 보상 하나를 생각했다.
내게 떨어진 예언.
「악연이 너를 방해하리라」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포괄적인 내용이었다.
악연? 이 세계에서 나와 악연을 맺은 인물들은 넘쳐난다. 그리고 악연이 나를 방해하는 것도 당연하다. 나와 악연을 맺은 자라면 나를 싫어할 테니까.
‘중요한 순간에 악연이 나타나 나를 방해한다는 건가? 아니면 지금부터 악연을 맺지 말라는 뜻인가?’
좀 더 자세히 말해줬으면 모를까. 이딴 식으로 모호하게 말해주니 짜증만 날 뿐이었다. 무시하고 싶더라도 사람 마음은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
「제 2,255 구역. 유스티아 제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제도에 도착했다.
아직 공식으로 십년제의 선포가 이루어진 것도 아닌데 제도는 축제의 열기로 떠들썩했다. 관광객의 수는 엄청나게 많았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사람들이다.
일행들은 제도를 보며 감탄사를 끊임없이 내뱉었다. 시골에서 대도시로 올라온 촌놈. 딱 그 모습이었다.
“인파에 휩쓸리지 말고 제대로 따라와.”
나는 그리 말하며 앞장서서 길을 걸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축제 기간 동안 머무를 숙소를 구하는 것이었다. 강명진은 적당한 숙소를 구하면 된다고 했지만, 싸구려 숙소는 내가 허락하지 못한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싸구려 숙소에 머무를 필요는 없지.’
그리고 지금 상황에선 싸구려 숙소를 구하는 것도 힘들다. 이미 제도를 찾아온 사람들이 웬만한 숙소는 전부 차지했기 때문이다. 근처 도시의 마차도 구하기 힘든데 숙소라고 다를까.
‘최악의 경우 숙소를 구하지 못하고 제도 밖에서 노숙 해야 하게 될지도 몰라.’
노숙만큼은 꼭 피하고 싶다.
내가 찾은 곳은 제도 안쪽에 있는 호텔이었다. 어느 도시나 그러하듯 도심지에 갈수록 가격은 비싸진다. 5층의 높은 건물, 5M가 넘는 벽담과 입구를 지키는 든든한 경호원들.
고급이란 말이 어울리는 호텔이었다.
“죄송합니다, 손님. 현재 저희 호텔의 객실은 모두 예약되어 남는 방이 없습니다.”
호텔 지배인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 태도와 기품을 보자면 귀족가에서 일했던 것이 틀림없다.
“가격은 3배로 드리겠습니다. 안 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저희 호텔은 손님과의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나는 뒤로 물러섰다. 예상한 반응이었다. 돈만 보고 기존의 예약을 없애기에는 잃는 것이 많을 테니까. 무엇보다 이 정도의 호텔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보통 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못해도 중견 이상의 레기온이겠지.
‘중견 레기온과 시비가 걸리면 불리해지는 건 이쪽이지.’
에이플랜 레기온은 아직 중견 규모의 레기온이 아니었다.
‘후우. 약하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군. 황제일 때가 좋았는데….’
내 말이 절대적인 법이었던 유희 세계. 그 절대 권력이 부러웠다.
“혹시 다른 고급 호텔은 아십니까? 가격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제도에선 저희 보다 좋은 호텔은 몇 곳 있으나…. 그쪽도 예약이 꽉 차서 방을 구하시진 못할 겁니다. 조금 더 일찍 오셨으면 모를까. 지금 시기에선 어떤 호텔도 어려울 겁니다.”
지배인의 말미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와 일행들은 고급 호텔이란 호텔은 전부 돌아다녔다. 그러나 빈방은 없었다.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제도가 노을빛으로 물들었으나, 우리 중 누구도 그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고만 있지 못했다.
“서브 마스터. 적당히 좋은 숙소를 구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지영빈이 물었다.
“적당히 좋은 숙소도 상황은 마찬가지야. 그리고 저기 봐.”
나는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대로를 터덜터덜 걸으며 성문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보인다. 숙소를 구하는 걸 포기하고 성 밖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숫자가 몇천 명은 된다는 것이다.
“저들도 숙소를 구하지 못했는데 우리라고 쉽게 구할 수 있겠어?”
“……우리도 밖에 나가서 노숙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보아하니 노숙 자리도 구해야 할 것 같은데….”
“영빈 씨의 말이 맞습니다. 빨리 나가서 자리를 잡죠. 늦으면 좋은 자리도 못 잡을 겁니다.”
릴스네는 발을 몇 번 굴렀다. 많은 사람들이 제도를 빠져나가는 걸 보고 초조해진 모양이다.
“…하아. 노숙은 질색인데….”
유서희가 중얼거렸다. 그녀처럼 입 밖으로 내지 않았을 뿐 누구도 노숙을 바라지 않았다. 특히나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노숙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쁘고, 여러 가지 문제가 즐비할 것이다.
“노숙은 안 해. 여기까지 와서 노숙이라니… 미쳤다고 그러겠어? 따라와. 서브 마스터의 능력을 보여주지.”
“유진 씨. 혹시 집을 사들일 생각이에요? 단기로 임대하는 형식이라면… 가능성 있을 것 같은데.”
“그것도 호텔과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아. 시기가 시기다 보니 바가지를 쓰는 건 둘째치고, 중견 규모의 레기온 쯤 되면 돈은 넘쳐나니까.”
나는 그들을 이끌고 움직였다.
유스티아 제도는 계획도시다. 도시를 설계단계부터 계획적으로 만든 도시다. 상업구역, 거주구역, 군사구역 등이 나뉘어 있다. 거주 구역 중에는 오직 귀족만을 위한 구역이 있다.
‘이 구역의 저택을 사들이기 위해선 보통의 돈과 지위만으로는 안 되지만.’
나는 성큼성큼 귀족 구역으로 향했다.
귀족 구역 입구에서 제지당했다. 놀랍게도 병사가 아닌 기사들이 직접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잠시 멈춰주십시오. 이 앞은 평범한 구역이 아닙니다. 혹시 귀족이십니까?”
“귀족은 아니지.”
기사의 눈이 찌푸려진다. 귀족이 아닌데도 내 말투가 건방졌기 때문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말투였으니까.
“…유명 레기온 출신이십니까? 유명 레기온이라 하더라도 이곳은 귀족이 아닌 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귀족분과 약속되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물러나 주십시오.”
기사는 검자루에 손을 올렸다. 물러나지 않겠다면 무력을 쓰겠다는 뜻이었다. 나를 제외한 일행들은 긴장했다. 기사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도에서 일하는 기사. 그동안 만난 어중이떠중이와는 다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기사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기사는 가늘게 뜬 눈으로 종이를 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감찰관 임명장?! 바, 발데르트의 감찰관이셨습니까? 제가 감찰관님을 못 알아봤습니다. 죄송합니다!”
기사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평범한 감찰관이었다면 모를까. 나는 무려 발데르트 공작가가 인정한 감찰관이다. 제국의 다섯 기둥 중 하나인 환상공이 직접 임명한 감찰관!
‘임명장을 가지고 있기 잘했군.’
현재 비공식적으로는 감찰관의 지위를 반납했지만, 이 임명장만큼은 진짜다. 나중에 엘레나에게 사정을 설명하면 용서해 줄 거다. 내가 그녀를 위해 고생한 게 얼마나 많은데 이 정도도 못 해줄까.
“이제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나? 그리고 발데르트 저택이 어디에 있는지 안내해줬으면 하는군.”
“그… 죄송합니다만, 정확한 신분 확인이 필요합니다.”
“뭐? 지금 이 감찰관 임명장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온다고?”
“상부에서 직접 내려온 명령인지라…. 그리고 임명장 하나만으로 보내드리기에는… 워낙 세상에 미친놈이 많아서 사칭 범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쯧. 어쩔 수 없지. 내 신분은 어떻게 확인할 거지?”
“발데르트 저택에 사람을 보내 연락하겠습니다. 발데르트가의 집사가 보증한다면 신원 확인은 끝납니다.”
효율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내겐 곤란한 일이었다. 지금 제도에는 엘레나가 없다. 그녀는 축제 기간 중에 등장할 예정이다.
발데르트 별장에 빌붙으려는 내 계획이 어그러질지도 모른다.
“잠깐.”
“예?”
“그 일이라면 내가 보장해줄 수 있다.”
예전에 엘레나에게 받았던 소라고둥을 꺼냈다. 물론 평범한 소라고둥은 아니었다.
「바람에 묻히는 목소리
한 쌍으로 된 소라고둥.
대상과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같은 하늘에 아래에 있는 이상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랭크: A」
“아, 통화 도구입니까? 편리한 물건을 가지고 계시군요.”
기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주고 소라고둥에 신호를 보냈다. 30초 정도 기다리자, 상대방과 연결되었다.
“뭐냐, 난 바쁘다. 시답잖은 이야기라면 나중에 해라.”
엘레나의 시큰둥한 목소리였다.
“존경하는 발데르트 공작 각하! 공작 각하의 충성스런 감찰관인 성유진입니다!”
내가 큰소리로 외쳤다.
“……뭐지?”
나는 상황을 설명했다. 엘레나의 한숨 소리가 소라고둥을 통해 전해졌다.
“…거기 기사여. 들어라, 이 자는 내가 임명한 감찰관이며, 발데르트 가문의 신하다. 약간의 착오가 있어 별장의 집사에게 알리지 못했다. 그의 신원은 내가 보증할 테니 들여보내도록.”
기사는 당황했다. 그의 눈동자가 거친 파도에 맞서는 배처럼 흔들린다.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허, 허나 각하….”
기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목소리만으로는 당신이 정녕 엘레나 발데르트가 맞는지 확인할 수 없다. 라고 감히 말할 수 없었다.
“일을 잘하는군. 나는 그대 같이 근면한 기사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잠시만 기다려라. 별장 집사에게 연락을 보내지.”
“예, 예. 감사합니다. 발데르트 공작 각하!”
기사는 소라고둥을 향해 허리를 깊게 숙였다. 소라고둥의 연결은 이미 끊어져 있었다. 우스운 광경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귀족 구역 안쪽에서 늙은 집사 한 명이 나타났다. 그는 우리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집사인 세지오입니다. 가주님께 이야기를 듣고 손님들을 모시러 왔습니다.”
“안내를 부탁하지.”
나와 일행들은 집사를 따라 귀족 구역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러면서 기사의 어깨를 탁탁 두들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