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871 - 871. 신의 아틀란티스 (651/2,000)

〈 871화 〉 871. 신의 아틀란티스

이민정은 강명진에게 고백하고 차였다.

몰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나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강명진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고백을 받고 1초도 망설이지 않으며 거절의 말을 내뱉었다.

“나는 널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아니, 설령 그렇게 생각했다 하더라도… 지금 내게는 연애를 할 시간과 여유는 없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생존이고, 가장 큰 목적은 아틀란티스를 전부 공략하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강명진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말했다. 보고 있는 내가 감탄할 정도의 철벽이다.

“그, 그럼 오빠는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면… 연애를 할 생각이에요?”

“그래.”

강명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이민정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았다. 아틀란티스의 추방자들은 똑같은 한국인이라고 해서 다 같은 한국 출신이 아니다. 평행세계. 비슷하지만 다른 지구에서 찾아왔다.

이민정과 강명진의 출신은 달랐다. 아틀란티스를 전부 공략한다고 해서 똑같은 지구로 귀환하는 게 아니란 뜻이다.

무엇보다 강명진이 말하는 원래 세계는 소설 밖의 세계다.

이민정은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벌벌 떨었다.

“이민정. 지금은 강해지는 것에 신경 쓰는 게 좋을 거다. 시간이 지나면 아틀란티스는 더 격렬해질 테고, 그때 힘을 원하게 돼서는 늦는다.”

“아, 네….”

이민정이 어떻게든 대답했다. 그러나 여전히 패닉에 빠진 얼굴이었다. 강명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이민정의 멘탈을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역효과였다. 무너진 멘탈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강명진은 이민정에게 쉴 시간을 주기로 하며 헤어졌다.

이민정은 힘없이 걸으며 방으로 돌아갔다.

이건 기회였다. 멘탈이 흔들리고 약해진 이민정에게 다가갈 기회. 나는 그녀의 뒤를 조심히 따라갔다. 그녀가 방 안에 들어가기 전에 그녀를 불렀다.

“민정아.”

“…유진 오빠. 봤어요…?”

“이 일은 유감이야. 내가 고백하라고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아니에요. 고백은 옛날부터 벼르고 있었으니까…. 등을 떠밀어준 유진 오빠에게는 감사하고 있어요…. 하지만… 흑….”

이민정의 두 눈에서 눈물이 글썽인다. 나는 당황하는 척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여, 여긴 복도야. 누가 볼지도 모르니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자.”

“…네.”

자연스럽게 이민정의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앉은 이민정은 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았다.

“명진 오빠는… 제가 고백했을 때 고민조차 하지 않고 대답했어요. 저를 여자라고도 생각하지 않은 거예요.”

“아니야.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명진이에게 고백했어도, 명진이는 똑같이 대답했을 거야.”

이민정을 위로했다. 그러나 내 위로의 말은 그녀에게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내가 좀 더 여성스러웠다면… 명진 오빠도 다르게 반응하지 않았을까요?”

여성스럽지 않다는 말은 잘 어울리지 않았다. 내가 봤을 때 이민정은 미녀였으니까. 물론 그 태도에 약간 문제가 있긴 했지만.

“여성스러워지고 싶어?”

“…네. 여성스러워지고 싶어요.”

이민정은 허벅지에 차고 있던 숏소드를 만지작거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 간다. 평범한 여성은 숏소드같은 흉기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같은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나는 이민정을 빤히 쳐다봤다. 검은색 단발머리에 작은 동물을 떠올리게 하는 귀여운 얼굴. 체구와 가슴은 작은 편이지만, 비율은 뛰어나다. 마음 같아선 여기서 바로 자빠뜨리고 싶으나, 아직 나와 이민정의 관계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명진이의 취향은 전에도 말했듯이 똑 부러진 여자야.”

“…똑 부러진 여자가 되기 싫다는 건 아니에요. 제가 조금 더 여성스러웠으면, 명진 오빠가 절 달리 보지 않았을까요?”

“달리 봤겠지.”

나는 과감하게 말했다. 어쭙잖게 그녀를 위로해서는 안 된다. 내 목적은 이민정을 내 여자로 만드는 것이지, 이민정과 강명진 사이에 끼인 큐피드가 되는 게 아니다.

“민정아. 솔직히 말해도 될까? 네겐 좀 가혹한 말이 될지도 몰라.”

“…솔직히 말해주세요, 유진 오빠. 저는… 저를 바꾸고 싶어요. 오빠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동안의 너는 너무 강명진에게 의지했어. 강명진의 고혈을 빨아먹는 기생충 같았지.”

“기, 기생충?”

이민정은 충격받은 듯 입을 멍하니 벌렸다. 숏소드를 쥔 손이 떨린다.

“진정하고 차분하게 생각해봐. 그동안 네가 어떻게 지냈는지. 강명진의 앞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

이민정은 내 말에 기억을 더듬었다. 그녀의 얼굴이 시무룩해지고 더 우울해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민정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강명진에게 매달리며 생활했으니까.

‘이민정이 모르는 건, 강명진이 호구가 아니라는 거지.’

약간 오해가 있다. 강명진은 착한 놈이 아니었다.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놈이다. 사람을 버리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는 이민정을 버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민정에겐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나중이 되면 도움이 된다. 강명진은 이민정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 점은 나도 동감이다. 이민정은 주서현 정도는 아니어도 후반부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자가 되니까.

“…명진 오빠에게 너무… 너무 의지했어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명진 오빠가 구해준 것만으로도 감사 해야 했는데… 흐윽. 흑….”

이민정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녀는 튜토리얼에서 강명진의 도움을 받아 생존했다. 강명진의 입장에선 물에 빠진 걸 구해줬는데 보따리까지 내놓으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물론 진짜 강명진의 입장에선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겠지만.

“좀 심하긴 했어. 매일 강명진을 찾아서 붙어 다녔잖아? 그리고 솔직히 말해봐. 비야가 태어났을 때, 질투했지?”

“…….”

허를 찔린 이민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오물거렸다. 그녀는 잠깐의 침묵 끝에 눈물을 흘리며 시인했다.

“…맞아요. 질투했어요. 명진 오빠는 비야에겐 너무… 친절했으니까요.”

강명진이 드래곤 나이트이기 때문이다. 그는 힘을 위해 비야를 온전히 성장 시킬 필요가 있었기에, 그 누구보다 비야에게 신경 썼다.

“명진이는 눈치가 빨라. 아마 네가 비야한테 하는 질투를 알고 있었을 거야.”

“…….”

“지금도 명진이를 좋아해? 명진이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있어?”

“…명진 오빠를 좋아해요. 저는 제 자신을 바꿀 수 있어요…!”

그녀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각오 어린 눈으로 말했다. 나는 그녀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여성스러워지고 싶다고 했지? 어떤 여자처럼 되고 싶어? 마침 우리 레기온에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여성이 3명이나 있으니 목표를 정하기 쉬울 거야.”

나는 3명의 여자 이름을 나열하며 그 성격을 대충이나마 말했다.

주서현.

그 외모는 무척 아름다웠으나, 성격은 여성스럽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어지간한 남성들보다 더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가끔씩, 그녀의 행동 곳곳에서 여성스러움이 드러난다. 자신도 결국에는 어쩔 수 없는 여자라고 주장하듯이.

릴스네.

이 아름다운 엘프는 다부졌다. 돈을 밝히긴 했으나, 돈을 위해 모든 걸 버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생활력이 강했다. 내가 강조하는 똑 부러진 성격의 여성. 그 말에 딱 어울리는 여성이 바로 릴스네였다.

유서희.

처음엔 만났을 땐 미인이었으나, 다소 평범했었던 그녀는 서큐버스가 되고 변했다. 가슴은 더 커지고 얼굴은 더 예뻐졌다. 성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좀 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셋 중에서 가장 여성스러운 여자는 바로 그녀였다.

“서희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

내가 원하던 말이었다. 주서현이랑 릴스네를 선택했으면 곤란했을 것이다. 주서현은 나에 대한 반항심이 가득하고, 릴스네와 나는 퓨어한 관계였다. 유서희는 내 말에 뭐든지 따르니 컨트롤하기도 쉬웠다.

“그래. 알았어. 서희에게 부탁해볼게. 서희가 잘 가르쳐 줄 거야. 잘할 수 있지?”

“할 수 있어요.”

???

이민정과 대화를 나누고 문밖으로 나왔다. 마침 복도를 지나가던 지영빈과 마주쳤다. 지영빈은 나를 보자마자 얼굴을 굳혔다가 애써 웃는 얼굴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유진 씨! 마스터가 돌아왔는데… 민정이의 방에서 나오셨나요?”

“음. 민정이가 많이 상심한 상태라 위로해주고 왔어.”

“그, 그렇습니까.”

지영빈은 내 여자관계에 대해 조금이나마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고 저번부터, 특수 히든 구역에 갇혔을 때부터 나를 보는 눈이 영 곱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지영빈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탱커로서 능력은 출중한데 그 정의로우면서도 오지랖 넓은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영빈은 언젠간 나를 막아서게 될 거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예언에 적힌 나를 방해하는 악연이 이놈이 아니야?’

지영빈과는 어색한 대화를 나눈 뒤에 사라졌다.

적당한 기회가 온다면 지영빈을 죽여야겠다고 다짐했다.

???

유스티아 제국의 십년제를 즐기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간단히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축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으며, 가게 같은 곳에는 십년제를 기념해 이벤트같은 걸 연다.

황실이 주도하여 여는 대회같은 것도 많았다. 몬스터 사냥 대회, 요리 대회, 사격 대회 등등. 여기서 특이한 점은 황실 공인 대회는 시스템과 재휴되어 있다는 거다.

그 덕분일까. 대회에서 입상하면 뛰어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추방자들은 보상을 노리고 대회에 참가한다.

그리고 나도 목적은 다르지만, 대회에 참가했다.

낚시 대회.

이름 그대로 낚시를 하는 대회였다. 낚시 장소는 제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호수.

대회 방식은 점수제다. 물고기의 종류마다 점수가 매겨진다. 단, 치어는 잡아도 점수를 받을 수 없다.

사용할 수 있는 낚싯대 하나. 개인 낚싯대를 써도 상관없으나 랭크가 없는 낚싯대만 인정된다. 미끼도 마찬가지다. 다만 유일하게 낚싯줄만이 평범하지 않았다. 낚싯줄은 1톤짜리 물고기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튼튼했다.

나는 이 낚시 대회에 홀로 참가했다.

이유는 3가지였다. 하나는 낚시 대회의 1등 보상이 군침이 돌만큼 쓸만한 영약이었고, 내게는 필승법이 존재했다.

[유혹의 낚싯바늘

10분마다 한 번씩 유혹을 사용할 수 있다.

유혹을 사용하면 근처에 있는 물고기가 낚싯바늘에 걸린다.

가격: 3 포인트

※주의

사실 어류만 걸리는 게 아닙니다.]

유희 생활 어플의 랜덤 뽑기에서 나온 물건이다. 그래서인지 시스템은 이 낚싯바늘의 효과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 낚싯바늘을 사용하면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지.’

그리고 내가 이곳에 온 세 번째 이유. 그건 이 대회에 참가하는 누군가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낚싯대를 당겨 찌를 던졌다. 호수에 뚝 떨어진다. 일단 주위 눈치를 살폈다. 찌를 던지자마자 물고기를 낚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2분 정도 기다리자.’

나는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낚시 대회 참가자는 3,000명이 넘었다. 낚시는 비교적 간단하고, 대회 상품이 탐나니 일단 참가한 것이다. 점수에 따라 AP를 얻을 수 있으니 참가자로서 손해 볼게 하나도 없었다.

2분이 지났다.

‘유혹!’

낚싯바늘의 효과를 발동한다.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물었다. 찌가 격렬히 움직이고, 낚싯줄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힘이 보통이 아니다. 이건 월척이었다. 낚싯대에 힘을 주어 물고기를 뭍으로 끌어왔다.

“오, 오오오오!”

“벌써 잡았다고?!”

“저 크기는 뭐야!”

“농어다! 푸른 대가리 농어다!”

주위 구경꾼들이 감탄했다. 낚시꾼들은 그 소란스러움에 눈살을 찌푸렸으나, 사람이 많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심판은 내 곁으로 다가와 내가 잡은 농어를 보고 점수를 매겼다.

“튼실하고 희귀한 놈을 잡으셨군요. 푸른 대가리 농어는 기본 5점인데 80cm가 넘는 놈이니 추가로 2점을 드리겠습니다. 이름과 참가 번호는 어떻게 되십니까?”

“성유진입니다. 참가 번호는 696번입니다.”

심판은 내게 점수를 부여하고 푸른 대가리 농어를 가지고 갔다. 아쉽게도 대회 중에 잡은 물고기는 내 소유가 되지 못했다.

나는 다시 찌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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