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876 - 876. 신의 아틀란티스 (656/2,000)

〈 876화 〉 876. 신의 아틀란티스

「지금부터 1위부터 5위까지의 사냥대회 점수 순위를 공개합니다.

1위. 기딘 유스티아

2위. 오잠 스팅어

3위. 세이라 아르피스

4위. 성유진

5위. 강명진」

기딘 유스티아는 3황자이고 오잠 스팅어는 거대 레기온의 마스터다.

강명진은 3위 여야했다. 강명진의 실력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가진 정보를 최대한 이용해 몬스터를 사냥하며 3위를 달성하고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나와 세이라가 참가하면서 이변이 됐다.

‘달의 사냥꾼의 분노를 받아서 몬스터가 우리를 발견하면 도망가기는커녕 죽자 살자 덤벼왔지.’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3위를 노리고 있는 강명진이 알아서 하겠지. 이놈이라면 알아서 나와 세이라를 제칠 것이다.

우리는 수상한 놈들을 뒤따라 갔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기딘 유스티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금발 곱슬머리에 붉은색의 눈동자를 가진 미남이었다. 눈꼬리가 살짝 처졌다. 귀공자라는 분위기가 확 드는 그는 또래의 다른 귀족 4명, 호위기사 5명과 함께 있었다. 저 귀족들은 기딘의 추종자이며, 지금 일어날 사건의 목격자들이다.

뿐만이 아니라 기딘의 앞에 강명진이 있었다. 원작 내용과 같이 기딘과 함께 저녁 식사 중이었다. 여기서 강명진은 휘말리게 되며 기딘을 구하며 공을 세우고 많은 이들로부터 주목을 받게 된다.

‘역시 원작대로 진행되는군. 나와 엘레나가 올 필요는 없었어.’

정체를 파악하는 것도 쉽게 끝날 것이다. 도망치는 놈 중 하나를 따라가 붙잡으면 되니까.

“너희는 누구지? 갑자기 나타나서 무례하군. 복면을 벗고 얼굴을 보여라.”

3황자 기딘이 자리에서 일어나 수상쩍은 놈들을 향해 말했다. 차분한 목소리에는 절제된 살기가 느껴진다. 연기 실력이 뛰어났다. 호위기사들이 검을 뽑았고, 강명진도 창을 쥐었다. 귀족들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뒤로 물러서서 상황을 지켜봤다.

“황자님. 저희가 괜히 복면을 썼겠습니까? 죄송합니다만, 황자님은 이곳에서 죽어주셔야겠습니다.”

“내 목숨을 노리는군. 너희 뒤에 있는 건 누구냐?”

기딘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걸 저희가 직접 말해드릴 것 같습니까? 저희는 그저 맡은 일만 할 뿐입니다. 쳐라.”

테러리스트들이 기딘을 향해 달려들었고, 그들과 호위기사가 부딪혔다.

쾅! 콰아앙! 쾅!

불꽃이 터지고 얼음 기둥이 치솟는다. 테러리스트 중에 한 사람이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3황자를 죽여라!”

“황자님을 지켜라!”

그들은 치열하게 싸웠다.

테러리스트와 호위기사는 서로를 죽였다. 그 치열함을 보면 자작극이라고 절대로 생각할 수 없다. 나는 힐끗 엘레나를 쳐다봤다. 팔짱을 낀 그녀는 파란 눈동자로 조용히 내려다봤다.

세이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엘레나에게 물었다.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을 거지? 3황자의 호위기사 2명이 죽었다. 이대로면 3황자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

“…아니. 나설 필요는 없어 보이는군. 이 일은 저들이 알아서 해결할 수 있다.”

“우린 뒤쪽으로 물러난다.”

“뒤쪽으로?”

“그래야 도망치는 놈을 잡기 수월할테니까. 그리고 3황자와 마주해봤자 좋은 일은 없다.”

우리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비명 소리를 등지고 뒤로 움직였다.

크르르르르….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연스레 발걸음이 멈췄다. 우리들은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올리고 숲의 먼 곳을 쳐다봤다.

약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멧돼지가 있었다. 5M가 넘는 거대 멧돼지였다.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다. 멀리서 보는데도 그 기세가 남달랐다.

검은색의 가죽을 가진 멧돼지는 붉은 눈을 빛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목적지는 나와 세이라다.

지금 사태의 원인을 바로 알아차렸다. 달의 사냥꾼의 분노. 망할 노처녀 때문이다.

“공작 각하. 마법은 풀렸습니까?”

“풀리지 않았다. 저 멧돼지에게 통하지 않았을 뿐이다. 보통놈이 아니다. 아마 너희들 때문인 듯하니… 알아서 처리해라.”

엘레나는 불퉁스럽게 말하고는 여기사를 데리고 물러났다.

“바, 발데르트 공작 각하? 저는 세이라 공녀님의 호위기사입니다!”

“저 멍청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할 시간에 날 도와라.”

엘레나가 여기사를 데리고 갔다. 세이라는 여기사를 힐끗거릴 뿐 말리지 않았다. 그녀는 대검을 양손에 쥐고 전투 자세를 취했다.

“유진 경. 내가 앞으로 나서서 저 멧돼지의 이목을 끌지. 경은 뒤에서 공격을 집중해라.”

“예. 공녀님.”

세이라가 멧돼지와 맞부딪혔다. 콰아아아아앙! 지축이 흔들릴 듯한 충격파가 울렸다. 아마 강명진과 기딘도 거대 멧돼지의 존재를 눈치채고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으리라. 엘레나가 자리에서 이탈한 것도 그 때문이다.

스톰브레이커를 손에 들고 투창을 준비하던 내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멧돼지의 어금니 올려치기에 당한 세이라의 몸이 위로 붕 떠올랐기 때문이다.

“공녀님!!”

“나는 괜찮다! 공격해라!”

파직.

내 몸에서 뇌전이 튀었다. 뇌전은 스톰브레이커에 몰려들었다.

‘아스트라페.’

스킬을 발동했다. 그편이 더 강력해지기 때문이다. 뇌전이 스톰브레이커를 휘감았다. 멀리서 본다면 내가 번개를 손에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천공의 주인이 탄식합니다.」

「마천의 왕이 낄낄 웃습니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서 반응하는가는 둘째치고 나는 멧돼지의 머리를 향해 투창했다. 시퍼런 벼락이 하늘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대기를 찢는다. 멧돼지가 이번에도 고개를 움직였다. 어금니로 내 스톰브레이커를 받아 쳐내려는 것이다.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멧돼지는 받아 쳐내는 것에 성공했다. 스톰브레이커가 빙글빙글 회전하며 하늘로 날아간다.

멧돼지가 다시 내게 돌진해온다.

멧돼지는 세이라의 존재를 간과했다. 세이라가 하늘에서 떨어지며 대검을 휘둘렀다. 멧돼지의 몸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꿰에에에에에에엑!

「달의 사냥꾼이 당신을 노려보며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부들부들 떱니다.」

「달의 사냥꾼(僞)이 달빛 화살을 당신에게 겨눕니다.」

「천공의 주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천공의 주인이 달의 사냥꾼을 진정시킵니다.」

「늦었습니다. 역효과입니다.」

밤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에서 빛줄기가 내게 날아온다. 미리 경고해둔 시스템이 고마웠다. 덕분에 대비할 수 있다. 그리고 천공의 주인이 짜증 났다. 천공의 주인이 나선 건 오히려 역효과였다. 아스트라페(B)를 쓴 내게도 잘못은 있지만, 본질적인 원인은 천공의 주인이다.

‘스톰브레이커!’

스톰브레이커를 역소환하고 다시 내 앞에 소환한다. 나는 스톰브레이커의 형태를 방패로 바꿨다.

「마천의 왕이 당신의 무기에 관심을 보입니다.」

스톰브레이커는 지금껏 사용하지 않았던 무기다. 갑자기 나타나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으니 흥미가 있는 게 당연했다. 시스템은 별 반응 없었다. 익숙해진 것일까. 아니면 일단은 지켜보자는 뜻일까.

나는 마나를 끌어올려 신체를 강화했다. 특히 하체에 집중하면서 양손을 들고 방패를 들어 올렸다.

피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저건 신의 화살. 유도 기능 정도는 기본적으로 탑재했겠지.’

어설프게 피하려 했다가는 피만 볼 것이다. 확실하게 막아내는게 낫다.

달빛 화살이 방패와 부딪혔다.

소리가 일어나지 않았다. 달빛 화살은 말 그대로 달빛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실린 힘은 결코 무시하지 못한다. 내 몸은 뒤로 밀려났다. 마나를 이용해 오러를 일으켜 방패에 둘렀다. 그럼에도 내 몸은 계속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퍼억!

등과 나무가 부딪혔다. 우지끈. 나무가 부서지며 내 등을 계속 뒤로 밀려났다. 나무 4그루가 연달아 쓰러졌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느새 달빛 화살은 사라졌고, 나는 바닥에 무릎 꿇고 숨을 내쉬었다. 뚝뚝. 코에서 피가 떨어졌다.

“유진! 괜찮나?!”

강명진이 다가와 내 어깨를 잡고 부축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강명진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멧돼지는?”

“3황자가 합세해서 싸우고 있다. 저 여인은… 세이라 아르피스인가. 발데르트 공작은 어디에 있지?”

“놈들을 쫓으러 갔어. 엘레나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하니까.”

“알겠다. 이전에 협의 했던 대로 침묵하지.”

「달의 사냥터의 우두머리를 처치하셨습니다.」

「사냥꾼이 여러명입니다. 기여도에 따라 점수를 제공합니다.」

「41점을 받았습니다.」

나는 강명진을 쳐다봤다. 아무렇지 않은 걸 보니 알림창이 뜨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강명진은 멧돼지와 싸우지도 않았다. 기여도 자체가 없었다.

“명진아. 네 목적은 3위 아니야? 어떻게 할 거야?”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고, 방법은 있다. 다만 세이라 아르피스가 참가하는 건 예상외다. 그래서 말인데… 세이라 아르피스를 맡아줄 수 없나?”

“내 실력으로?”

“적당히 방해만 해주면 된다. 거기에 너는 세이라 아르피스와 안면을 틀고 있지 않나. 성유진, 부탁하지. 3위 보상은 비야를 성장시키기 위해 꼭 필요하다.”

“뭐, 알았어.”

나는 고민 없이 강명진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원래부터 사냥대회의 입상에는 별 관심 없었다. 그건 세이라도 마찬가지 이리라.

“근데 문제가 있어. 달의 사냥꾼에게 미움을 받았거든.”

“…아까 그 달빛 화살을 봤다. 아마 너와 게약한 신좌의 영향이겠지.”

강명진은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강명진은 나와는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 대화하기 편했다.

“뭐 좋은 정보 없냐? 몬스터가 없는 곳이 있다거나….”

강명진은 잠시 침묵했다. 눈동자가 조금씩 움직이는 걸 보니 뭘 하는지 눈치챘다. AP를 소모해 신좌들의 시선을 차단한 것이다.

“……성유진. 이곳이 어딘지 아나?”

“어디긴. 제 2,350 구역인 달의 사냥터지.”

“달의 사냥꾼의 진명이 뭔지는 짐작했겠지?”

“아르테미스.”

“맞다. 그녀는 달의 여신이고, 이곳은 달의 여신의 영역이다. 사냥터답게 여기저기에 사냥감이 널려 있지. 그렇지만 딱 한 곳, 사냥감이 없는 곳이 있다. 여신이 휴식을 취하는 곳이지.”

“거기가 어딘데?”

“숨겨져 있어서 복잡하다. 메모장같은게 있나?”

메모장과 볼펜을 그에게 주었다.

“우선 초승달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럼 작은 냇물이 흐르는 곳을 발견할 것이다. 냇물을 따라가지 말고 근처에 있는 파란 꽃이 피어있는 곳이 있다. 그 꽃이 무더기로 피어있는 곳을 찾으면 작은 웅덩이를 발견할 수 있을 거다. 웅덩이 안으로 들어가면 안전지대가 나온다. 그곳은 신좌들도 볼 수 없는 제한된 곳이니 아르테미스를 피해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호오.”

나는 전혀 모르던 정보였다. 이런 설정이 있는지도 몰랐다.

“이다음이 중요하다. 절대로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

“절대로 지켜야 하는 것?”

“AP를 사용해서 신좌들의 시선을 차단하고 찾아가라. 그리고 해가 뜨기 1시간 전에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아니, 안전하게 2시간 전에 빠져나오는 게 좋겠군.”

“좋은 정보를 얻었네. 고마워.”

나는 몸을 일으켰다. 힘 좀 쓰느라 코피를 약간 흘렸을 뿐이지, 몸 자체는 멀쩡했다.

강명진은 나를 뚫어지라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훗. 그곳이 어딘지 벌써 알아차린 모양이군. 하긴 너라면 그러고도 남지.”

강명진은 제멋대로 나를 보며 감탄사를 흘렸다.

거기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강명진은 예전부터 나를 고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의 신뢰를 받아서 나쁠건 없으니 별말 하지 않았다.

“반갑군. 아르피스 공녀에게서 대략적이나마 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강명진과 같은 레기온의 서브 마스터라지? 미친 멧돼지를 잡고 점수를 얻었다. 오늘 너희 레기온에게 신세를 지는군.”

“성유진이라 합니다. 기딘 황자님.”

나는 기딘 황자와 인사를 했다. 약간의 대화를 나눈 뒤에 뿔뿔이 흩어졌다. 기딘은 호위기사의 죽음에 심란한 척했으나, 기분 나빠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됐든 자신의 계획대로 이루어졌으니 마음속으로는 기뻐하고 있으리라.

나와 세이라는 움직였다. 엘레나는 뭐, 알아서 하겠지. 여차하면 마법으로 쫓아올 그녀다. 제국오공 중 한 명인 환상공이니 걱정할 필요도 없다. 나보다 더 강한데 누가 누구를 걱정할까.

“네가 말한 곳이 여기인가?”

“맞아.”

웅덩이를 내려다봤다. 겉으로 보기엔 얕은 웅덩이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강명진의 정보가 틀렸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나는 웅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몸이 아래로 쑤욱 빠지더니 웬 동굴 속에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광경을 본 나는 입을 벌렸다.

“인간 남자?!”

“꺄아아아악!”

“아르테미스 님! 구해주세요!”

알몸의 미녀 5명이 노천탕에 들어가 있었다. 강명진이 내게 이런 선물을 해줄 리가 없으니, 아마도 그녀들의 존재는 짐작하지 못하고 가르쳐줬으리라.

‘내 행운이 높아서 그런가?! 운이 좋군!’

나는 헤벌레 웃었다.

이곳이 어디인지 눈치챘다. 왜 강명진이 신좌의 시선을 차단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천공의 주인이 흐뭇하게 웃습니다.」

천공의 주인과 마천의 왕은 내 계약 신좌로서, 신좌 시선 차단에서 예외로 뒀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내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니까. AP도 아낄 때는 아껴야 한다.

‘크크. 여긴 아르테미스의 목욕탕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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