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9화 〉 879. 신의 아틀란티스
“내가? 당신의 계약자를 두려워한다고? 그럴 리가! 좋아. 대결을 받아들이지. 대신, 네가 패배하면 각오해야 할 거야.”
아르테미스가 두 눈을 부릅뜨며 성질을 부렸다.
제우스 덕분인지, 아르테미스의 타고난 다혈질적인 성격 덕분인지 몰라도 대결은 성사되었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신과 인간이 대결하는 이야기도 몇 개 존재하지.’
그리고 신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신에게 기어오르는 걸 못마땅하게 여긴다. 대표적으로 아라크네 이야기가 있다. 아라크네는 아테나와 대결했고, 승리했으나 결국엔 거미가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신과의 대결에서 승리해도 거미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대결에서 패배한 아르테미스가 악감정을 갖고 날 해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신좌는 제우스지. 올림푸스의 최고신.’
나와 계약한 신좌다.
비록 어떠한 사고로 아르테미스에게 경멸당하는 것 같긴 하나, 그의 권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천공의 주인의 권위가 정말로 땅에 떨어졌다면, 아르테미스는 그를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행동했을 것이다.
천공의 주인이 이 대결을 입회했으니, 그는 나를 배신할 생각이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대결은 어떤 방식으로 할 거지?”
아르테미스가 내게 물었다.
“대결은 총 6번이다.”
“6번?”
아테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입장에서 6번은 생각보다 많은 숫자일 것이다. 나는 손가락으로 구속당한 님프들을 가리켰다.
“여기 붙잡힌 님프는 5명이지. 5번의 대결은 님프들의 순결을 걸지. 네가 대결에서 이기면 님프를 풀어주겠다. 하지만 내가 이기면 님프의 순결은 내 것이다.”
“…목숨이 아니라 순결? 보면 볼수록 제우스 같은 놈이로군.”
아르테미스의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차라리 깔끔하게 죽여라.”
“이 여자들은 평생 순결을 지키리라 맹세했지. 어차피 죽여도 위신에 불과하니 큰 타격이 없지. 하지만 위신이라곤 하나 내게 순결을 잃었다는 사실은 너희에게 큰 치욕이 되겠지.”
“어떻게 해서든 신에게 치욕을 안겨주려고 머리를 굴리는 꼴이 역겹구나.”
아르테미스는 경멸과 혐오가 섞인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래서. 안 받아들일 거야? 결국, 네가 이기면 되는 일이잖아. 네가 여기서 대결을 회피한다면 제 시종을 죽게 내버려둔 부덕한 여신이라고 소문이 나겠지.”
아르테미스는 피하지 못한다. 제 체면이 걸린 일이 되었으니까. 입회를 맡은 신이 없더라면 모를까. 아르테미스보다 높은 신이 지켜보는 이상 무시할 수 없다.
“같잖지만 내 시종들을 위해 대결을 받아들이마.”
“흐윽! 아르테미스 님!”
“저희들을 위해, 이런 비열한 인간과 대결을 하시다니!”
“평생 모실게요, 아르테미스 님!”
님프들이 아르테미스의 이름을 부르며 감동의 눈물을 줄줄 흘렸다.
“여섯 번째 대결은 너의 영혼을 걸어라! 내 기필코 네가 영겁토록 고통받게 만들 것이다!”
아르테미스가 살벌하게 외쳤다. 그녀에게서 흘려 나오는 적의는 진심이었다. 솔직히 나도 약간 쫄렸다. 여기가 현실이었다면 그냥 도망치는데 초점을 뒀을 지도 모른다.
“좋아. 내가 지면 내 영혼을 지지고 볶든 마음대로 해. 대신 내가 이기면… 네 순결은 내가 가져간다.”
“이, 이, 주제도 모르는 인간 놈이!!!”
얼굴이 시뻘겋게 변할 정도로 분노한 아르테미스가 고함을 내질렀다. 그녀에게서 뿜어지는 기세에 나는 가슴을 붙잡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압력을 느꼈다.
아르테미스에게 있어 순결은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어차피 본체도 아니잖아. 진정하라고.”
간신히 쥐어짜내듯이 말했다.
「천공의 주인이 경고합니다.」
「올림푸스의 12신으로서의 격을 갖춰라.」
천공의 주인이 직접 나서자 효과가 있었다. 아르테미스는 이를 악물며 기세를 없앴다.
「천공의 주인이 아르테미스의 대답을 촉구합니다.」
「다시 묻지. 대결을 정식으로 받아들일 건가?」
“…제우스. 아니, 아버지. 이건 제 순결이 걸린 일입니다. 저는 순결의 여신입니다. 고작 인간 따위와의 대결에서 제 순결을 걸어야 합니까? 그 자체가 모욕입니다.”
아르테미스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럴 때만 아버지로군.」
“이 일은 그분께 보고할 것입니다.”
「천공의 주인이 언짢아합니다.」
「이를테면 일러라. 이건 나와 관련되었지만, 너의 일이다. 그 여편네가 내게 뭐라 할 명분은 없다.」
“제우스…!!”
「패배가 두려워 인간과의 대결을 회피하는가?」
천공의 주인이 그녀의 성질을 살살 긁었다. 진퇴양난이다. 여기서 대결을 피해도 권위가 떨어질 것이다.
“누가 패배를 두려워한다고 했지?! 나는 대결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아르테미스는 대결로 인해 잃을 것과 얻을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외쳤다.
나는 씨익 웃었다. 하지만 아직 이걸로 부족했다.
“시스템! 신과 인간의 대결이야! 네가 심판을 봐야지!”
아틀란티스에서 가장 공명정대한 건 시스템이다. 내 계획에는 시스템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스템이 응답합니다.」
「이건 당신이 벌인 일입니다.」
「시스템이 개입할 이유는 없습니다.」
“알아. 그러니 AP를 대가로 지불 할게.”
정당한 대가만 있다면, 시스템을 못 움직이게 할 것도 없다.
「원하는 조건을 말씀하십시오.」
“능력치 평준화. 나와 아르테미스의 능력치를 똑같이 만들어줘.”
눈앞에 있는 아르테미스의 능력치는 나보다 뛰어나다. 당장 싸운다면 5분도 버티길 힘들 정도로. 대결의 승산을 위해서 능력치는 반드시 맞춰져야 한다.
「650.000 AP가 필요합니다.」
“……생각보다 더 많군.”
곁눈질로 아르테미스를 쳐다봤다. 아르테미스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이다. 그러나 나를 막지 못했다. 그녀에겐 나를 막을 권리가 없다. 나는 추방자로서, 아틀란티스를 살아가는 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했다.
나는 내가 가진 AP를 확인했다.
「보유 AP: 603,505」
약 5만 AP가 부족했다.
내가 예상한 건 40만 AP다. 다시 말해 25만 AP 차이만큼 아르테미스의 능력치가 높다는 뜻. 아무리 올림푸스의 12신이라고 하더라도 위신치고 지나치게 높은 능력치였다.
「보유한 AP만큼 능력치를 조정하시겠습니까?」
5만 AP.
그 차이는 절대 적지 않았다. 원작의 정보를 이용하면 일주일 내로 5만 AP를 벌 자신이 있지만, 지금 당장은 불가능했다. 한 가지 방법을 제외하고는.
“천공의 주인이시여! 5만 AP가 부족합니다!”
「천공의 주인이 50,000AP를 후원합니다.
“아주 기대되는 군.”」
평소라면 내 말을 무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천공의 주인의 흥미를 끄는 상황이다. 이토록 재밌는 상황에서 나서지 않을 리 없었다. 특히 이 대결에는 아르테미스의 처녀가 걸렸다.
「AP를 확인했습니다. 능력치가 평준화됩니다.」
“잠깐 기다려라.”
아르테미스였다.
“대결에 앞서 구체적인 대결 방식을 말해라.”
“…그건 아직 정하지 않았는데. 대결 방식은 서로 돌아가면서 정하는 게 어떻지? 대결은 총 6번이니 절반은 내가 대결 방식을 제안하고, 나머지 절반은 네가 대결 방식을 제안하는 거야. 납득할만한 대결 방식이라면 토르 달지 말고.”
“첫 번째 대결은 네가 정해라. 그다음은 내가 정하겠다.”
나는 아르테미스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두 번째. 즉, 짝수가 되면 마지막 6번째. 아르테미스의 순결이 걸린 대결 방식은 아르테미스가 정하게 된다.
그리고 아르테미스는 자신의 순결이 걸린 만큼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한 대결 방식을 선택할 것이다.
나로서는 그 여지도 주고 싶지 않지만, 이글이글 타오르는 아르테미스의 눈을 보면 이번엔 물러날 필요가 있다.
‘아르테미스는 능력치 평준화에 조용히 동의했으니… 이번은 내가 양보해야겠지.’
상대를 꺾을 때는 상대가 최대한 자신 있는 분야에서 꺾어야 제맛이다.
‘이건 나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지만.’
「신과 인간의 대결이 성사되었습니다.」
「천공의 주인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 대결에 입회합니다.」
시스템이 공식으로 신과 인간의 대결을 선포했다.
「천상을 향한 발걸음, 위대한 업적입니다.」
「칭호, 신을 향한 도전자를 획득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2 상승합니다.」
「능력치 평준화가 이뤄집니다.」
원작을 통해 이미 알고 있던 업적이었다. 신에게 도전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게 위험한 짓인지라 하지 않았을 뿐이다.
능력치 평준화가 이뤄진다는 것은 꼼수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름: 성유진
클래스: 뇌절사
칭호: 위대한 도전자.
신좌: 천공의 주인
소속: AL 401 지구
근력: 91 민첩: 79 체력: 85 마나: 100 행운: 41
고유 특성: 기만(SS)
특성: 뇌전(S)
스킬: 아스트라페(B), 만뢰(B), 전광석화(D)
(상태창 적용 중)」
나는 내 능력치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 능력치가 100에 도달했다. 마나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리고 지금의 나라면 오러블레이드, 검강(劍?)이라 불리는 그것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신과 인간의 대결에 관한 소문이 신좌들 사이에 퍼집니다.」
「수많은 신좌가 대결을 호기심을 느낍니다.」
금세 소문이 퍼진 모양이다. 아마도 마천의 왕의 짓이 아닐까 추측된다.
“비공개로 해라. 다른 신좌들의 놀잇거리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르테미스가 말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비공개라니. 즐거움을 원하는 신좌들이 침울해 하는 모습이 내게도 보이는군. 나는 공개를 요구한다. 아르테미스. 넌 패배가 무섭나?”
뿌득. 아르테미스가 또 이를 갈았다. 슬슬 그녀의 치아가 걱정된다. 아니면 신이니까 이빨도 자라나?
“…좋다. 허락하지. 오만방자한 인간의 말로는 신들의 즐거운 유희거리가 되겠지.”
아르테미스는 자신이 진다는 생각을 털끝만큼도 하지 않았다.
「신과 인간의 대결은 많이 이들에게 공개됩니다.」
원래는 이곳은 기본적으로 신좌의 시선이 차단되지만, 이곳의 주인인 아르테미스가 허락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단, 조건이 있다. 이런 귀한 것을 보여주는데 시청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되지. 안 그렇습니까? 천공의 주인이시여.”
「천공의 주인이 동의합니다.」
“시청료는 설정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나도 조건이 있다. 신들이여. 조용히 지켜봐라. 너희의 간섭을 허락하지 않는다.”
「신좌들은 신과 인간의 대결을 시청하기 위해 1,000 AP를 시청료로 지불 해야 합니다.」
「신과 인간의 대결의 구경꾼들은 간섭할 수 없습니다.」
「마천의 왕이 시청료를 지불합니다.」
「달의 꽃이 시청료를 지불합니다.」
「태양의 대적자가 시청료를 지불합니다.」
「반짝이는 사냥꾼이 시청료를 지불합니다.」
「아름다운 사자가 시청료를 지불합니다.」
「황금 수집가가 시청료를 지불합니다.」
「검은 복수가 시청료를 지불합니다.」
「따뜻한 화로의 여주인이 시청료를 지불합니다.」
「전사의 인도자가 시청료를 지불합니다.」
「올림푸스의 여주인이 시청료를 지불합니다.」
「떨어진 별이 시청료를 지불합니다.」
「피를 머금은 꽃이 시청료를 지불합니다.」
「태양의 노래가 시청료를 지불합니다.」
…….
시스템 알림창이 주르륵 떴다. 정체는 아는 신좌도 있었고, 정체를 모르는 신좌도 있었다. 나와 연관된 신좌 대부분은 시청료를 지불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신좌들이 지금 이 순간은 집중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참고로 내게 들어오는 시청료는 300AP다. 원래는 아르테미스와 나눠 가지므로 500AP가 들어와야 하나, 200AP는 수수료로 시스템이 가진다. 아르테미스도 나와 비슷할 것이다.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3만 AP 넘게 모였다. 못해도 100명 이상의 신좌가 지금 이 대결을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인간. 첫 번째 대결을 정해라.”
나는 님프 하나를 들어 올렸다.
“이번 대결에 걸린 여자는 이 님프다. 내가 이기면 이 여자의 순결은 내 것이 된다. 불만 없겠지?”
“내가 이기면 그녀를 안전히 풀어줘라.”
6번의 대결에는 모두 여자의 보지. 아니, 처녀의 순결이 걸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이긴다.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그러니 내가 이길 수 있는 대결 종목을 잘 선택해야 한다.
“첫 번째는 달리기 경주입니다. 혹시 이의 있으십니까?”
“…달리기 경주라.”
장담할 수 있다. 지금 아르테미스는 아탈란테에 대해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달리기 경주로 유명한 건 아탈란테였고, 아탈란테는 아르테미스에게 순결을 서약한 인물이었으니까. 뭐, 달리기로 유명한 아탈란테와는 동명이인이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종목은 제가 정했으니 달리기 경주 장소는 그쪽이 정해도 돼.”
선심 쓰듯 말했다. 애초에 목욕탕에서 할 수 없으니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