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3화 〉 883. 신의 아틀란티스
‘…당했다? 무슨 말이야?’
나는 영문 모를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가늠했다. 천공의 주인은 어떤 뜻으로 말한 것일까.
「어디선가 매타작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천공의 주인에게 자세히 물어보려고 해도, 천공의 주인은 자식 교육에 한창이었다.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 혼자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잠시 뒤.
부스럭부스럭.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조용히 시선만 돌려 확인했다. 2명의 남자였다. 한 명은 손에 창을 쥐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커다란 배낭을 들고 있다. 사냥꾼은 입은 옷이 화려하다. 딱 봐도 귀족이었다.
사냥 대회 참가자와 그 종자로 보인다. 그들은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사냥감에게 조심히 접근했다.
‘사냥감은 아르테미스의 사냥개군.’
창을 든 사냥꾼이 마구잡이로 사냥개를 향해 달렸다. 그 움직임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사냥개는 으르렁거리며 사냥꾼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냥개가 사냥꾼을 사냥하겠네.’
결과를 예측하며 시큰둥하게 보고 있을 때였다. 돌연 사냥개의 움직임이 느려졌고, 사냥꾼의 창이 사냥개의 목을 꿰뚫는다. 사냥개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사망했다. 아르테미스의 사냥개치고는 지나치게 약했다.
“하하하! 또 사냥에 성공했군! 역시 내 사냥 실력은 진짜야!”
“대단하십니다, 도련님!”
알아차렸다.
종자다.
종자가 스킬을 사용해서 사냥개를 약화했다. 사냥꾼은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마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사냥해왔으리라.
‘……종자의 사냥 개입은 반칙이잖아. 근데 왜 시스템은 제재를 가하지 않는 거지?’
이상했다.
혹시 사냥꾼이 종자의 개입을 모르기 때문인가? 아니, 시스템이 그렇게 허술할 리 없다.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사냥에 개입할 수 없는 종자를 사냥 대회에 굳이 데려갈 필요가 있을까.
「1위. 기딘 유스티아
2위. 오잠 스팅어
3위. 강명진
4위. 스테판 앙쇼
5위. 성유진」
‘…….’
5위.
내가 5위였다.
아르테미스와 수중 사냥 대결에서 물고기를 죽이긴 했으나, 사냥 대회의 사냥감은 물고기가 포함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어젯밤부터 사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5위를 유지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엘레나밖에 없어. 엘레나가 사냥감을 죽이고 그 점수가 내게 들어오는 거라면?’
종자가 죽인 사냥감에 알림창이 뜨지 않으면 된다. 그럼 알아낼 방법이 없다. 이 사냥 대회에선 총 점수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 점수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건 오직 1~5의 입상 순위뿐이다.
나는 1위인 기딘 유스티아를 떠올렸다. 어제 본 그는 사냥꾼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귀족들을 이끌며 사냥을 하고 있었다. 그가 필사적으로 사냥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만약에. 그의 종자가 그의 호위 기사가 아니었다면? 그의 정체 모를 종자가 사냥을 대신하고 있다면?
‘시스템이 그딴 꼼수를 허락할 리가… 아니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이 사냥 대회의 주최자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스템은 그저 심판에 가까웠다. 사냥 대회의 진짜 주최자는 황실이다. 사냥 대회의 규칙을 알려주는 것도 시스템이 아니라 황실이었다.
황실은 막대한 AP를 소모해 시스템을 끌어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시스템에게 대회의 심판을 부탁했겠지.
‘세상에 공표한 사냥 대회 규칙과는 전혀 다른 규칙으로.’
시스템이 참가자를 속인 건 아니다. 시스템은 그저 황실과 계약한 규칙대로 사냥 대회를 관리할 뿐이다.
‘황실. 이 새끼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황실은 사냥 대회의 종자를 1명에 한한다고 말했지만, 진실은 종자에 제한이 없을 수도 있었다.
‘하여간. 이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니까.’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천공의 주인이 말한 ‘당했다’. 그 말의 뜻을 파악했다.
‘아르테미스의 소환한 사냥개는 어이없을 정도로 약했어. 신이 소환한 사냥개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르테미스는 처음부터 약한 사냥개를 소환한 거야.’
이유는 하나.
힘을 아끼기 위해.
아르테미스는 다섯 번째 대결을 포기했다. 자신의 시종이 내게 범해지도록 방치했다. 시종을 버릴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는 뜻이다.
아르테미스는 자신의 순결이 걸린 여섯 번째 대결에 집중할 생각이다.
‘제한 시간이 1시간이었던 술래잡기를 3시간으로 늘린 건 회복 시간을 벌기 위해서겠지.’
지금 아르테미스가 어디에 있는지는 짐작 간다.
아르테미스의 목욕탕. 그 신비한 목욕탕을 이용해 피로를 풀고 체력을 회복하고 있을 것이다.
‘방해하러 갈까?’
아니다.
어떤 그 목욕탕에 어떤 함정을 설치했을지 모른다. 저래 보여도 사냥의 여신이니 함정을 설치하는 것에 도가 텄을 것이다.
괜히 위험을 초래하는 것보다 안전하게 다섯 번째 대결에서 승리를 가져가는 게 낫다. 방해하기에는 이미 제한 시간의 절반이나 지났다.
‘다섯 번째 님프를 따먹어야지.’
나는 하늘을 쳐다봤다. 이미 어두컴컴하게 변한 밤하늘이다. 아르테미스는 달의 힘을 받아 빠르게 회복할 것이다.
‘여섯 번째 대결 종목은 아르테미스가 선택한다.’
어떤 종목을 선택할지 짐작 간다. 내가 해야 할 건 내게 유리한 조건을 내거는 것이다. 그러나 썩 자신은 없었다. 다섯 번의 패배를 경험한 아르테미스는 승리하기 위해 알량한 자존심은 버릴 테니까.
‘목욕탕에는 세이라가 있을 텐데…. 세이라는 도망갔나?’
세이라의 안위는 걱정되지 않는다. 세이라는 애도 아니고, 지금의 아르테미스에게 인질로 잡힐 정도로 약하지 않으니까.
???
「대결에서 승리했습니다.」
“하윽, 흑, 아아아아….”
대면좌위. 바닥에 앉은 내 품에 안긴 님프가 눈물을 흘리며 몸을 들썩였다. 나는 그녀의 젖가슴을 입에 물면서 허리를 조금씩 튕겼다. 님프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
님프가 내게 범해지는데도 아르테미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체력 회복에 집중하고 있다.
아르테미스에게 시간을 주는 건 멍청한 짓이다. 알고 있다.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허리를 멈출 수 없었다. 다른 4명의 님프들과 다르게 다섯 번째 님프는 내 움직임에 맞춰서 반응하고 있다.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창녀처럼 엉덩이를 흔드는군. 아마 아르테미스의 지시겠지.’
효과는 있었다. 나는 쉽사리 님프의 몸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나는 다른 님프들과 그러했듯이 1시간 동안 님프를 범한 뒤에 몸을 일으켰다. 조금 더 섹스하고 싶으나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냈다.
‘아르테미스도 따먹어야지.’
시스템을 불렀다.
“시스템. 여섯 번째 대결을 시작하지. 아르테미스는 어디에 있지?”
「신과 인간의 대결. 그 마지막 대결을 위해 이동합니다.」
산꼭대기로 이동했다. 아르테미스도 있었다. 그녀도 방금 막 이동했는지 몸은 흠뻑 젖은 상태로 따끈따끈한 수중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녀는 님프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젖은 검은색 머리카락과 하얀 피부. 봉긋 솟은 젖가슴 끝에는 유두의 모양이 도드라졌다. 여신을 따먹을 생각을 하자 아랫도리가 벌써부터 불끈거린다.
“크크. 내게 순결을 바치려고 목욕부터 하셨나?”
“헛소리하지 마라. 여섯 번째 대결은 사냥 대결이다.”
예상했던 대로의 종목이었다. 아르테미스가 가장 자신 있는 것. 그건 뭐라고 해도 사냥이다. 4번째 대결에서 사냥을 선택하긴 했으나, 그건 나로 인해 수중 사냥으로 변했다. 아르테미스가 원하던 것은 결코 아니었으리라.
“사냥은 내가 너무 불리하잖아. 이미 사냥 대결을 했고… 다른 거로 하자.”
“거절한다. 이게 마지막 대결이다. 사냥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
아르테미스가 강하게 나왔다. 자존심보다 순결을 더 중요히 여긴다는 뜻이다. 이렇게 나오면 사냥 대결은 확정이다. 여기까지 와서 내가 그녀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그럼 이번에도 수중 사냥은 어때?”
“하. 나는 지금껏 네가 제안하는 조건 대부분을 받아들였다. 그건 나의 배려였고, 자비였음을 잊지 마라.”
옳은 말이라서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마음속으로는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내게 유리한 조건을 걸어야 한다.
그때, 내 시야에 은은하게 빛나는 파란색 나비가 들어왔다. 아르테미스는 시야에 나비가 들어왔는데도 조금도 반응하지 않는다. 그녀는 나비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엘레나다.’
엘레나가 내가 있는 곳을 파악했다. 어쩌면 지금 내가 처한 상황까지 알아차린 것일지도 모른다. 나비는 내 시야 안에서 팔랑팔랑 날았다.
‘…어쩌면….’
아니다.
생각을 멈춘다.
엘레나에게 도움을 요청해서는 안 된다. 그건 부정행위다. 4번째 대결에서 태양의 노래가 아르테미스를 도와준 것과는 다르다. 아르테미스는 도움을 요청한 적 없으며, 태양의 노래가 멋대로 간섭했다.
시스템은 일종의 자연현상으로 판단 한 것이다. 물론 시스템은 태양의 노래에게 제재는 먹였지만.
“후. 알았어. 일단 대결의 자세한 내용부터 들어보자. 그냥 사냥일 리는 없겠지?”
“이번 사냥 대결의 요점은 누가 더 뛰어나게 사냥하는 가다.”
“…누가 더 뛰어나게 사냥하는가? 점수제가 아니군. 심사는 누구 하지?”
“심사는 우리를 지켜보는 신좌들이 한다.”
“신좌들의 심사는 절대적으로 공정해야 해.”
“공정함을 맹세한 신좌들만이 심사할 수 있다. 됐나?”
신좌들이 맹세한다면 그 공정함을 믿을 수 있다. 신좌에게 중요한 건 권위이고, 맹세를 어기는 건 권위를 땅에 버리는 행위다. 거기에 시스템이 있으니 심사와 관련된 부정행위는 없을 것이다.
아르테미스가 손을 들었다. 그녀의 유려한 검지가 어느 한 곳을 가리킨다.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던 거대 멧돼지가 있었다.
“기본 사냥감이다. 저 칼리돈의 멧돼지를 사냥해야 사냥으로 인정된다. 칼리돈의 멧돼지를 사냥하지 못한다면… 심사할 것도 없이 패배다.”
“그건 네게도 통용되는 말이겠지?”
“흥. 내가 칼리돈의 멧돼지를 사냥하지 못할까. 당연하다. 그리고 미리 말해두지. 상대방을 방해하는 건 금지다.”
자신감에 찬 아르테미스를 보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당장 자빠뜨려서 따먹고 싶었다.
“아무 조건 없이 네 사냥 제안을 받아들이지. 대신 나는 추가 보상을 요구한다.”
“추가 보상?”
아르테미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 대결의 걸린 것은 나와 그녀다. 내가 지면 나는 아르테미스에게 죽으며, 사후까지 고통받게 될 것이다. 죽은 나를 어떻게 괴롭힐지는 모르겠지만.
대신 나는 아르테미스의 순결을 갖는다. 순결의 여신이 더 이상 순결하지 않게 된다. 그녀에겐 목숨보다 더한 것이다.
“내가 이기면 네 순결과 더불어 하루 동안 내 노예가 되는 것이다.”
“감히 여신을 노예로 부리려고 하는가? 주제도 몰라도 한참 모르는군!”
아르테미스가 버럭 소리쳤다.
“난 네가 제안한 사냥 대결을 아무 조건 없이 인정했다. 리스크가 올라갔으면 당연히 그에 비례하여 보상도 올라가야지. 그게 싫다면 내 쪽에서 사냥 대결을 거절하겠다.”
“크읏….”
아르테미스가 입술을 곱씹었다. 그녀는 바로 내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이건 대결 자체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대결에서 아르테미스가 유리한 건 똑같았다.
아르테미스의 입장에선 이기면 된다. 이기면 내게 순결을 넘기는 것도, 노예가 되는 일도 없다.
“…알았다. 네가 이긴다면 날 노예로 부리든 마음대로 해라. 그럴 일은 어차피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과연 그럴까. 그건 두고 봐야지.”
「신과 인간의 대결. 그 마지막 대결이 성사되었습니다.」
“네가 먼저 할 건가?”
아르테미스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먼저 해.”
아르테미스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본다. 이것만으로 내가 약간 더 유리해질 수 있다.
“네 생각이 훤히 보인다. 그러나 네가 이길 일은 없을 거다.”
차갑게 말한 아르테미스는 활을 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활시위를 잡아 부드럽게 당긴다. 달빛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나타났다.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초승달에서 달빛이 나와 아르테미스의 몸을 감쌌다. 아르테미스에게 애교를 부리던 달빛은 이어 달빛 화살로 모여들었다. 아르테미스의 모든 힘과 마나, 권능이 달빛 화살 하나에 스며들었다.
나는 작게 신음을 흘렸다. 아르테미스에게 느껴지는 신성함과 힘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르테미스가 활시위를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