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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93 - 893. 신의 아틀란티스 (673/2,000)

〈 893화 〉 893. 신의 아틀란티스

진지하게 배신각을 세우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하더라. 잠시 머리를 굴리던 나는 손바닥으로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헛소리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 엘레나.”

“……!”

뺨을 맞은 엘레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충격 요법이 효과가 있는지 우울하던 그녀의 분위기가 변했다.

엘레나의 요동치던 눈동자가 차분해졌다.

“하아.”

여러 의미가 담긴 한숨을 내쉰 엘레나가 내 도움 없이 바닥에 똑바로 섰다. 폭발음이 터지고, 비명이 울리는 주위를 확인한다. 엘레나는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의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았다.

“날 때린 건 네가 두 번째다. 뺨을 맞는 건 오랜만이라 정신이 번쩍 들더군. 힘 좀 빼고 때릴 수는 없었나? 지금도 뺨이 얼얼하다.”

엘레나의 뺨에는 내 손바닥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상황이 급해서 힘이 좀 많이 들어갔어. 첫 번째가 누군지 궁금한데.”

“내 어머니다. 많이 맞았지.”

“…설마. 뺨 맞았다고 죽인 거야?”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군.”

엘레나가 피식 웃었다. 그녀가 마법을 사용했다. 그녀가 입고 있던 드레스가 사라지고, 평소에 입던 제복으로 바뀌었다. 아쉽게도 마법 소녀의 변신 같은 건 아니었던지라 엘레나의 알몸은 보지 못했다.

그녀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판이군.”

“많이 개판이긴 하지.”

정면에서 유스티아의 황제와 바클레이 레기온 연합의 마스터인 반레이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황제는 밀리지 않았다. 어마어마했다. 그들이 부딪힐 때마다 그 충격파로 인해 황궁 일부가 날아가고 있다.

“바클레이 레기온이 끼어들 줄 몰랐어. 그 마스터인 반레이가 황제의 목을 노릴 줄은 더더욱.”

“나는 대충 상황이 짐작 가는군. 황제는 이미 예전부터 바클레이 레기온과 접촉했었다. 아마 엔젤러스 레기온과 바클레이 레기온을 두고 손익을 따지며 비교했겠지.”

“황제는 엔젤러스 레기온을 선택했고, 바클레이 레기온은 그에 빡쳤다는 거지?”

“맞다. 그리고 유스티아 제국을 힘을 깎기 위해 테러를 저질렀다. 유스티아 제국의 세력은 아틀란티스 최고이니. 바클레이 레기온으로선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힘을 유스티아 제국의 힘을 줄이고 싶은 거겠지.”

앞뒤 안 가리고 습격한 게 아니다.

하긴 바클레이 레기온 연합이 단지 화났다는 이유만으로 덮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넌 왜 안 끼어들어?”

“유감스럽게도 난 죄인의 신분이다. 죄인인 내가 함부로 나서면 황제 폐하의 입장이 어떻게 되겠나.”

과연 그녀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당장 그녀는 눈을 빛내며 주위를 훑어보고 있다.

“습격자들은 왜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 거지? 나야 둘째치고 넌 제국오공 중 한 명이잖아.”

“그들의 목적은 우리가 아니라 황제와 황태자다. 나를 제외한 제국오공은 황제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으나, 다른 이들에게 막혀서 황제를 돕지 못하고 있지.”

가브리엘은 황태자를 지키고 있었다.

“…황제가 저렇게 강했나.”

“황제에게는 비밀이 있다. 단순히 황족의 피를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는 유스티아의 옥좌를 지킬 수 없다.”

“그 비밀이 뭔데.”

“나도 모르니 비밀이지. 확실한 건… 천년공과 관련 있다는 거겠지. 너는 모르나?”

“몰라.”

엘레나를 향해 건물 파편이 날아온다. 나는 엘레나의 앞에서 스톰브레이커를 소환해 파편을 쳐냈다.

“그런데 그 천년공은 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거야?”

“황제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년공은 원래 저랬다. 적극적으로 황제를 돕지는 않지만, 황제가 죽는 것만큼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막아낸다. 천년공은 황제 이상으로 의문이 가득한 자다.”

그때, 인명구조에 집중하고 있던 강명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발데르트 공작 각하, 저와 유진은 이곳의 사람들을 구하며 자리를 피하는 게 옳은 것 같습니다.”

나는 힐끗 시선을 돌렸다. 3층에서 습격자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세이라가 보인다. 딱히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다.

“나쁘지 않군. 그러도록.”

엘레나가 허락했다. 나는 강명진의 생각을 대충 알았다. 강명진은 발데르트 공작가와 손절각을 보고 있다. 에이플랜 레기온이 발데르트 공작가의 후원을 받은 만큼, 발데르트 공작이 몰락하면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명진아. 난 지금 발데르트 공작 각하의 호위 기사야. 난 내가 맡은 임무를 끝까지 할 거야.”

“……알겠다. 나는 사람들을 최우선으로 구하겠다.”

강명진이 대답하며 사라졌다.

엘레나는 신기하다는 듯이 날 쳐다봤다.

“왜 그랬지? 내게 얻을 게 아직 남아 있나? 미리 말해두지. 나는 죄인이 되었다. 황제와 황태자는 나를 죽이려 할 것이다. 이참에 나를 이용해 본보기를 보여 황권을 다질 생각이겠지. 제국오공의 명성이 지나칠 정도로 높았으니까.”

“글쎄. 안 망할걸. 기껏해야 벌금이나, 근신명령으로 끝나겠지.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철한공과 가브리엘을 움직인 것처럼 말인가? …나는 네가 두렵다. 내가 너를 점점 믿게 되어간다는 것이 괴롭다. 내가 너의 배신의 감당할 수 없게 될까 봐 두렵다.”

“몇 번을 말해야 믿는 거야. 배신 안 한다니까?”

“미안하군. 아무리 그래도 믿을 수 없다. 그리고 평소의 네 행동도 생각해라. 믿을 수 있겠나?”

그렇게 따지면 할 말이 없다.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발데르트 공작!!”

반레이와 싸우고 있는 황제가 소리쳤다. 엘레나가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예. 폐하.”

“그대의 처분은 후일로 미루겠다! 그대의 근신도 철회하노라!”

“하명하시옵소서.”

“짐을 도울 필요는 없다! 무도회장에 있는 귀족들을 대피 시켜라! 그들은 모두 제국의 유능한 관리자들이다! 이곳에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제도 또한 소란스러우니, 제도 신민들을 지켜라!”

“황제 폐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엘레나가 본격적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그녀가 개입하자 무도회장 내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폭음이 줄어들고, 죽어 나가던 귀족들이 한결 수월하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습격자들은 엘레나를 향해 뛰어들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이군.”

엘레나가 손가락을 튕겼다. 환술에 걸린 습격자들은 애꿎은 허공에 검을 휘두르거나, 동료를 공격했다.

나도 움직였다. 스킬인지, 아이템인지 모르겠지만, 엘레나의 환술에 벗어나는 자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상대했다.

‘찰나.’

검으로 바꾼 스톰브레이커를 휘둘러 습격자를 죽였다. 나는 적극적으로 사람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얻는 이득이 얼마 없었고, 나보다 강한 놈들도 제법 많았다. 바클레이 레기온과 깊숙이 얽히는 건 사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엘레나는 은근슬쩍 귀족들을 죽이고 있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발데르트 공작가에 손해가 되는 귀족들을 환술로 조작하여 습격자의 손에 죽는 교묘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또각또각.

엘레나는 차분히 무도회장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오니 제도의 광경이 보였다. 도시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폭음과 함께 건물이 무너지고 시민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여기까지 들린다.

‘바클레이 레기온 연합… 작정했군. 이건 못해도 몇 달 전부터 계획을 세웠겠어.’

엘레나가 움직였다. 제도 쪽이 아니었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어느 귀족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하이먼 골드렉스 자작을 필두로 한 발데르트 가문의 가신들이었다. 가주인 엘레나를 배신하고 황태자에게 붙은 배신자들.

엘레나가 다가오자 그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가, 가주님!”

“저, 저희를 어찌 하실 생각이십니까?!”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황태자 전하께서 가만히 있지 않으실 겁니다!”

“따지고 보면 가주님께서 먼저 저희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습니까! 저희에게 환술을 걸어 기억을 조작하다니! 그건 선을 넘는 일이었습니다!”

“…….”

두려움에 질린 가신들이 반발했다. 유일하게 하이먼만이 침묵했다. 그들은 도망가려고 했으나 마법의 장막이 그들 주위를 감싸고, 바깥의 시야를 차단했다.

“안일했었다. 너희에게 걸었던 환술은 12년 전의 내가 전력을 다해 걸었던 환술이다. 너희들이 죽더라도 환술은 풀리지 않을 거라 확신했었다만, 설마 황태자가 내 환술을 풀어버리는 능력을 가진 자를 데리고 있었을 줄은….”

“가주님.”

“그래. 하이먼. 남길 말이 있나?”

“저는 가주님이 그때 제게 환술을 걸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 잘못이라는 말인가? 흠. 인정한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좀 다르군. 내가 너희를 믿고 환술을 걸지 않았어도, 너희는 황태자에게 붙었을 것이다.”

“자, 잘못했습니다, 가주님!”

“살려주십시오, 가주님!

발데르트의 가신들이 앞다투어 무릎 꿇고 빌기 시작했다. 엘레나는 그들을 무시했다. 그녀의 시선은 하이먼에게만 향했다.

”환술을 걸지 않았다면, 황태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내가 너희를 믿었다면 같은 구질구질한 이야기는 관둬라. 지금 중요한 건 현재다. 너희들은 나를, 발데르트 가문을 배신했다. 그리고 나는 배신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폐하. 자비를 내려주소서. 저희는 발데르트의 치부를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인정하마. 그리고 너는 발데르트 가문을 위해 오랫동안 일해주었지. 최소한의 자비를 베풀어주마. 자결을 허락한다.“

”감사합니다, 가주님.“

하이먼이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그는 단검을 쥐고 자신의 목을 망설임 없이 찔렀다. 그의 노구가 바닥에 쓰러졌다.

엘레나는 이어 손을 휘둘렀다. 바람의 송곳이 그들의 목과 심장을 꿰뚫는다. 그들은 모두 죽었다. 엘레나는 그들의 시체를 마법 공간에 넣었다.

”시체는 당장 태우는 편이 빠르지 않아?“

”이들은 배신했으나 발데르트의 가신이다. 오랫동안 가문을 위해 일해온 만큼, 시체만큼은 예우해줄 것이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하이먼 그 영감이 배신한 이유는….“

”안다. 하이먼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조작된 기억을 되찾았다고 해서 부귀영화나 복수에 눈이 멀어 나를 배신한 게 아니다. 아마 황태자와 거래를 했겠지. 내가 지위를 잃는 대신, 발데르트 가문의 안전을 보장받는 종류로.“

엘레나는 우울한 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밤하늘 위로 올라가는 검은 연기가 보인다. 엘레나가 다시 고개를 내렸다.

”유진. 네게 부탁이 있다.“

”지금 상황에서?“

”지금 상황이기 때문이다. 직접 하고 싶으나, 애석하게도 나는 황제의 명령을 수행해야 한다. 이 이상 뜸을 들이면 황제나 황태자가 이후에 트집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맨입으로 안 되는거 알지?“

”빚은 언젠가 갚으마.“

엘레나의 말은 믿을만 했다. 그녀는 은원 관계가 확실하니까.

”알았어. 내가 뭘 하면 돼?“

”처리하지 못한 배신자가 있다. 2황자와 3황자. 그들을 죽여다오.“

”조금 빡센 임무로군.“

”2황자와 3황자의 무력은 너에 비하면 별 볼일 없다. 호위 기사가 성가시긴 하겠지만, 지금은 습격으로 혼란스러우니 평소처럼 단단하지 않을 테지. 너라면 가능하다. …실패하더라도 나중에 기회가 생기겠지.“

”나도 그놈들은 별로 마음에 안 들었어.“

”알고는 있겠지만,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된다. 네게는 몸과 흔적을 숨길 수 있는 능력이 있겠지.“

”오랜만에 천마로서 활동하는군.“

나는 그녀의 앞에서 옷을 바꿔 입었다. 해카테 케이프도 인벤토리에 넣고 우스꽝스러운 광대 가면을 얼굴에 착용했다. 내 고유 특성인 기만(SS)을 이용하면 정체를 완벽에 가깝게 숨길 수 있다.

”나중에 보자 엘레나. 그때는 못 다한 춤이라도 추자.“

”춤인가. 배우긴 했으나, 남자와 춤을 춰본 적이 없어서 실수할지도 모르겠군.“

”내가 리드해줄 테니 걱정하지 마.“

”다른 의미로 걱정된다만.“

나와 그녀는 그대로 헤어졌다. 그녀는 제도가 있는 방향으로, 나는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켜 준 황궁 방향으로.

‘이런 일은 신속하게 끝내야지. 달의 축복 사용.’

「달의 축복을 사용합니다.」

「달의 축복은 6시간 동안 유지됩니다.」

「신체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고유 특성과 스킬의 랭크가 한 단계 상승합니다.」

「달의 여신이 따스한 눈으로 당신을 지켜봅니다.」

「달의 축복의 효과가 추가로 소폭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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