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4화 〉 894. 신의 아틀란티스
나는 황궁으로 달리면서 검은색 장갑을 착용했다. 내가 천마일 때 사용하는 장비다.
「만인살(萬人殺)
무수히 많은 원혼의 사념이 서린 장갑이다. 마(魔)와 관련된 힘을 증폭시킨다.
랭크: A」
마(魔)와 관련된 힘.
천마신공의 위력을 증폭시켜주는 효과다.
‘상태창.’
「이름: 성유진
클래스: 천마(天魔)
칭호: 불사자
신좌: 마천의 왕
소속: AL 401 지구.
근력: 101(+49) 민첩: 89(+41) 체력: 95(+31) 마나: 107(+42) 행운: 48(+36)
고유 특성: 기만(SSS)
특성: 천마지체 (SS)
스킬: 천마신공 (EX) 종속 (SS) 마풍신공 전수(EX)
(달의 축복 효과 적용 중.)
(상태창 적용 중)」
능력치가 뻥튀기되었다.
그리고 내 시선을 확 잡아끄는 것은 천마신공이었다. SSS랭크였던 천마신공이 한단계 상승해 EX랭크가 되었다.
‘이 능력치에 EX 랭크의 천마신공까지…. 이 정도면 제국오공과 싸워도 비빌만하지 않을까.’
실제로 싸워보지도 않았고, 제국오공의 저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기에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온몸에 활력이 넘친다. 강력해진 힘에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다.
“천마 나가신다!!”
천마후(天魔吼)를 터트렸다. 주위에 있던 황실 기사와 병사들의 몸이 충격파에 견디지 못하고 날아갔다.
엘레나는 아마 내가 고유특성인 기만(SS)을 이용해 남들 몰래 2황자와 3황자를 암살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기만(SSS)랭크가 되었지만, 몰래 2황자와 3황자를 암살할 생각은 없다. 지금 내겐 힘이 있는데 왜 겁쟁이처럼 다녀야 하는가.
“전원 몰살이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천마기를 담아 양주먹을 사방으로 휘둘러댔다. 권강이 쭉 뻗어 나가며 기사와 병사를 학살한다. 병사가 방패를 들어도, 기사가 검기로 대응해도 소용없었다.
「마천의 왕이 즐거워합니다!」
「마천의 왕이 몰살을 바랍니다!」
「몰살! 몰살! 몰살!」
“바클레이 레기온에서 이런 괴물을 키우고 있었는가! 넌 이 이상 못 지나간다! 진을 쳐라!! 저놈을 막아라! 황자 저하들을 지켜야 한다!”
기사와 병사가 황궁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숫자가 100명이 넘는다. 그들은 마치 단단한 성벽이라도 된 것처럼 굳건해 보였다.
“본좌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신장(天魔神掌).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기운이 적들을 짓눌렀다. 천마신장에 직격으로 당한 자들은 그 육체가 짓뭉개지고 피와 내장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들이 있던 바닥에는 커다란 손자국이 남겨져 있었다.
「마천의 왕이 감동… 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마천의 왕이 1,000AP를 후원합니다.
“저건 내가 알고 있는 천마신공이 아닌데.”」
옳게 봤다. 천마신장은 저번에 광명승천도에서 얻은 천마신공에 속해 있는 기술이었다. 천마신공은 일종의 기공술의 일종이다.
‘역시 바로 알아차리는군.’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마천의 왕에게 하나, 하나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마천의 왕이 1,000AP를 후원합니다.
“직접 만든 건가. 대단하군.”」
마천의 왕이 감탄했다.
‘이 새끼가 순수히 그렇게 생각할 놈은 아닌데?’
마천의 왕은 항상 날 지켜보고 있다. 그러니 내가 천마신장을 만들 정도로 무공 재능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쨌든 귀찮게 안 구니 다행이군.’
나는 다시 천마신장을 사용했다. 황궁의 문이 박살 난다.
“이, 이런 빌어먹을! 철한공께서 계셨어야… 커억!”
주위에 있는 자들을 모두 때려죽여 정리했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내 공격을 받아내고, 도망가기엔 약했으니까.
황궁의 복도로 뛰어 들어갔다. 무작정 2황자와 3황자를 추적하지 않았다. 기감을 퍼트렸다. 근처에 있는 여러 기척이 느껴진다. 당장 옆에 있는 방에 3명의 사람이 숨어 있음을 알아차렸다.
‘평범한 기운이군. 어차피 눈을 막고, 귀를 막은 상태로 숨어 있는 상태…. 굳이 죽일 필요는 없겠지.’
내 목적은 2황자와 3황자다. 구태여 귀찮음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군. 이쪽인가?’
나는 2황자, 3황자의 정확한 기운을 모르기에 무작정 강한 기운을 찾아 움직였다. 황자인 만큼 약할 리는 없을 테니까.
“광대? 그 흉흉한 기운! 습격자인가!”
“쯧. 꽝이군.”
상대는 기사였다.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지 나를 보자마자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검에서 푸른 검기가 불꽃처럼 일렁인다.
찰나를 쓰지 않았음에도 기사의 움직임이 느리게 보였다. 기사의 검을 붙잡았다. 검기는 내 몸에 조금도 상처입히지 못했다.
“내 검을 맨손으로… 너 같은 놈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대체 누구냐…!”
“본좌는 천마다.”
“천마…?”
기사의 머리에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기사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나는 쓰러지는 기사의 시체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복도를 달렸다.
8명의 기사를 죽인 뒤에 2황자와 3황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황궁의 깊숙한 곳에 호위 기사와 함께 사이좋게 모여 있었다.
“죽여라.”
2황자가 날 보자마자 서늘한 목소리로 내뱉은 말이었다.
호위 기사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여기까지 오면서 죽인 8명의 기사와는 다르다. 황자들의 직속 호위답게 정예 중의 정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단 한 걸음에 호위 기사들의 몸이 뒤로 날아가 처박혔다. 신종우의 천마군림보를 운용한 것이다.
「마천의 왕이 두 눈을 가늘게 뜹니다.」
“뭣들 하는 거냐! 상대는 한 명이다. 저 한 명조차 막지 못하는 거냐!”
“일어나라! 일어나서 놈을 죽여라!”
2황자와 3황자가 소리쳤다. 호위 기사들은 신음을 흘리면서도 몸을 일으켜 달려들었다. 마구잡이로 덤비는 것 같으나, 규칙이 있었다.
‘강자를 상대하기 위한 호위진인가. 지금 이 상황에서도 서로 합을 맞추는 건 대단하군.’
그러나 큰 의미는 없었다.
다가오는 순서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칼을 부러뜨리고, 갑옷은 갑옷채로 박살 냈다. 호위기사가 전멸하기까지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2황좌 3황자의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보통 실력이 아니군.”
“왜 우리를 노리는 거냐? 바클레이 레기온의 목적은 황제 폐하와 황태자가 아니었나?”
“어차피 죽을 텐데 뭔 말이 그렇게 많지. 조금이라도 살고 싶나?”
주먹을 치켜들었다. 천마기(天魔氣)가 위협적으로 일렁였다.
“제국비고를 알고 있느냐? 이대로 물러서 준다면 제국비고의 위치와 입장방법을 알려주마.”
2황자가 여유를 가장하며 말했다. 3황자는 당당한 척 굴고 있으나 2황자보다 연기를 못했다.
“제국비고? 날 함정에 몰아넣으려고 하는군.”
“…함정인걸 어떻게 알았지? 이미 제국비고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건 말도 안 된다. 제국비고를 알고 있는 건… 오직 황족뿐이다.”
“됐으니 죽어라.”
주먹을 뒤로 당겼다. 주먹을 내지르기 직전 2황자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델사르냐!!”
델사르.
황태자의 이름이었다. 뜻밖의 이름에 내 주먹이 잠깐 멈칫했다. 그에 2황자가 오해를 했는지 썩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어깨가 아래로 축 쳐졌다.
“역시 그놈이군…. 형제라도 권력은 나누지 않겠다는 뜻인가. 그놈을 믿은 내가 어리석었다.”
“혀, 형님! 방법을! 방법을 떠올려야 합니다!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방법은 없다…. 델사르는 우리를 죽이기로 정했다. 무릎 꿇고 애원하더라도 우리는 죽는….”
2황자의 말이 전부 끝나기도 전에 내 주먹이 움직였다. 용권이 뻗어 나가고 2황자의 머리통이 터져나갔다. 용권은 황궁의 벽까지 꿰뚫었다.
“으아아아아악!”
3황자가 비명을 지르며 달렸다. 내 옆을 지나쳐 문으로 나가려고 했다. 이번에도 용권을 사용했다. 3황자의 머리가 터졌다.
‘이걸로 엘레나의 부탁은 끝났어. 나가서 엘레나를 찾자. 뭔가 느낌이 안 좋아.’
밖으로 나가려던 내 발걸음이 멈칫했다.
2황자의 시체에서 특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2황자의 시체를 조용히 주시했다. 아주 느릿하게 몸이 재생되고 있었다.
‘아이템인가? 아니면 스킬인가? 비장의 수라면 제법 뛰어나군.’
어느 쪽이든 내게 들킨 이상 끝이었다. 이대로 2황자의 시체를 토막 내거나, 먼지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시체를 태우는 것도 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2황자는 내가 황태자가 보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대로 살아난다면 황태자와 싸우겠지.’
고민하던 나는 몸을 돌려 떠났다. 황태자가 엿을 먹으면 엘레나도 좋아하겠지.
황궁에 들어올 때와 달리 도망칠 때는 기만(SSS)을 사용해 조용히 움직였다. 꼬리가 붙으면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상태창을 다시 뇌절사로 바꿨다.
「이름: 성유진
클래스: 뇌절사
칭호: 처녀신의 순결을 빼앗은 자.
신좌: 천공의 주인
소속: AL 401 지구
근력: 101(+49) 민첩: 89(+41) 체력: 95(+31) 마나: 107(+42) 행운: 48(+36)
고유 특성: 기만(SSS)
특성: 뇌전(SS)
스킬: 아스트라페(S), 만뢰(A), 전광석화(A)
(달의 축복 효과 적용 중.)
(상태창 적용 중)」
능력치는 그대로인데 힘이 약해진 기분이다.
‘천마신공(EX)과 천마지체(SSS)가 적용되지 않아서 그렇겠지.’
제도에 들어선 나는 개판이 된 상황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몬스터가 날뛰고 있었으나, 이미 대부분이 정리되어 그 시체만 가득했다.
‘바클레이 레기온에 몬스터를 소환하는 능력을 가진 자가 있나 보군.’
제도의 인명피해는 생각했던 것만큼 심각하지 않았다. 축제 기간이라 베테랑 추방자들이 제도에 몰려 있었다는 게 좋은 쪽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파란 나비가 시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끌거나, 보호하고 있다.
‘파란 나비는… 엘레나의 환접술이지. 성실하게 황제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군.’
엘레나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엘레나가 어디에 있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보다 더 강한 힘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 거기에 엘레나가 있는 게 확실하다.
광장으로 향할수록 내 얼굴은 굳어졌다.
파란색 나비가 날개를 팔랑이며 도시 곳곳을 돌아다닌다. 파란색 나비는 엘레나의 마법. 그 자체. 지금 엘레나는 지나칠 정도로 힘을 쓰고 있었다.
“엘레나!”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엘레나는 그 중심에 있었다. 모여있는 사람들은 엘레나를 중심에 두고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그녀에게서 거대한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아, 벌써 왔나? 일은 해결했고?”
엘레나가 나를 돌아봤다.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이마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입술은 파르르 떨린다.
“엘레나. 뭘 할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관둬.”
“이미 늦었다. 환술은 시작됐다.”
나는 숨을 삼켰다. 부서진 건물이 시간이 되감기듯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환술이다. 엘레나의 환술이 현실을 바꾸고 있었다.
다만, 시체는 그대로다.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엘레나라도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건 불가능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발데르트 공작 각하!”
“아아, 환상공이시여!”
제도 신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다.
“…여기서 죽을 생각이야?”
“발데르트를 위해서다.”
대세는 황제에게 넘어갔다. 황제는 발데르트 가문과 그녀를 제재할 것이고, 그녀는 그 제재를 피하기 위한 공적이 필요했다. 광장에 시민들을 한곳에 불러모아 쇼를 벌인 것도 증인들을 만들어 여론의 방패로 만들기 위함이겠지.
“너 그렇게 하면 죽어.”
“죽지는 않는다. 앞으로… 대충 1년 남았나.”
엘레나가 중얼거리며 비틀거렸다.
나는 놀라 엘레나에게 다가갔다. 내 신경이 엘레나 한사람에게 향했다. 그게 실수였다.
“히히히히히히힝!”
말의 울음소리와 함께 바닥이 훅 꺼졌다. 몸이 아래로 떨어진다. 반사적으로 본 아래는 어두우면서도 붉었다.
「제 9,371 구역, 가뭄 지옥에 입장합니다.」
이를 악물었다. 배기를 박차며 하늘 위로 뛰어올랐다. 슬레이프니르가 나를 비웃는다. 내 몸을 이끄는 중력이 거세졌다.
「월드 리프(僞)는 당신의 죽음을 바랍니다.」
슬레이프니르는 어느 구역이든 갈 수 있는 권능이 있다. 다시 말해 놈은 나를 지옥으로 보내려는 것이다.
‘예언이 말한 악연이 이 새끼였나…!’
스톰브레이커를 소환했다.
“아스트라페!!”
스톰브레이커에 번개를 담아 던졌다. 창은 이름 그대로 번개처럼 날아가 슬레이프니르의 목을 꿰뚫었다. 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부릅뜨고 사라진다. 내가 달의 축복으로 강화된 상태란 걸 놈은 몰랐다.
‘젠장…. 놈을 죽였는데도 지옥문은 사라지지도 않는군.’
어떻게든 공중으로 뛰어도 몸은 지옥으로 추락한다. 슬레이프니르는 죽였지만, 놈이 사용한 권능은 사라지지 않았다.
텁.
누군가 내 팔을 잡았다. 엘레나였다. 눈앞에서 파란색 나비가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빚은 갚았다.”
엘레나가 작게 속삭였다. 직후, 내 몸이 밖으로 밀려 나갔다.
「제 9,371 구역, 가뭄 지옥에서 벗어납니다.」
허나 엘레나가 지옥으로 떨어졌다.
“어차피 1년밖에 남지 않은 수명이다. 신경 쓰지 마라.”
그녀의 입가 옷에는 각혈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곧 사라졌다. 지옥의 구멍이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지옥으로 발을 뻗는다.
“유진. 이미 늦었다.”
어느새 다가온 강명진이 내 어깨를 잡았다. 나는 그의 손을 쳐냈다.
“내 여자가 지옥에 떨어졌어. 내가 그러려니 하고 보내줄 것 같아? 가서 데려올 테니 나머지는 부탁할게.”
“뭣….”
강명진을 뒤로하고 작아지는 구멍을 향해 내달렸다. 구멍은 내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스톰브레이커!!”
번개의 창을 던져 구멍이 작아지는 것을 막고, 지옥 속으로 다이빙했다.
「제 9,371 구역, 가뭄 지옥에 입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