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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 - 907. 신의 아틀란티스 (687/2,000)

〈 907화 〉 907. 신의 아틀란티스

제 8,111 구역. 지하의 피라미드.

성유진의 아지트. 정확히는 천마(天魔)의 아지트도 에이플랜 레기온처럼 분위기가 다운된 건 마찬가지였으나, 에이플랜 레기온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

모래색 피부를 가진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 카샤 나크비는 제 오라비인 아마드 나크비와 함께 5,146 구역, 전갈 사막을 비롯한 천마의 구역을 관리했다.

천마신교(天魔神敎). 언제부터 인가 성유진이 의도했던 대로 불리고 있었다.

명성이 높아지면서 관리가 힘들어지고 있다. 그래도 영역을 넓히지 않고 지키는 것뿐이라면 그럭저럭 운영되고 있다.

“아. 힘들어. 벌써 반년…. 자기야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불평을 투덜대며 아지트로 들어온 카샤는 자연스럽게 냉장고부터 열었다. 음료수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녀는 콜라캔을 손에 쥐었다. 아틀란티스에서도 AP를 소모하면 현대의 음식이나 과자를 쉽게 먹을 수 있었다.

이 냉장고를 채워 넣는 건 옥정이라는 여자다. 「먹구름을 부르는 푸른 새」, 진명 용길공주의 계약자인 옥정은 마치 전속 시녀처럼 용길공주를 모신다.

카샤는 콜라를 마시면서 피라미드를 돌아다녔다.

“카샤 님…. 오셨나요.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시죠?”

옥정과 마주쳤다. 하얀머리에 붉은 눈. 풍만한 몸매. 겉모습만 보자면 성숙한 여인처럼 보이나, 다가가서 보면 어딘가 어리숙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나야 괜찮지. 오히려 네 쪽이 더 고생이 많은 것 같은데. 공주는?”

“공주님은…. 네. 언제 나와 같이 행동하고 계십니다. 다만… 요즘은 많이 지겨워지셨는지 밖으로 나가려고 하셔서….”

“반년 동안이나 여기에 틀어박혀 있었으니 나 같아도 나가고 싶어 하겠다.”

“하지만… 주인님의 허락 없이 나가는 건…. 으음….”

옥정이 곤란한 듯 턱을 잡았다. 카샤는 그녀의 고민을 이해했다. 용길공주가 이곳을 벗어나려면 천마의 허락이 필요한데, 현재 천마는 실종된 상태다.

실종된 천마를 무시하고 행동하면 되지 않냐고? 그럴 리가. 이 아지트에 있는 여성들은 모두 천마가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2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구역의 지배자가 바뀌지 않는 것. 지배자가 죽으면 지배자가 설정해놓은 사람이 새로운 지배자가 되거나, 공석이 되어야 했다. 허나 구역의 지배자는 여전히 천마였다. 단지 천마 본인 자체가 다른 어딘가에 있을 뿐.

다른 이유는 천마의 종속이다. 하복부에 새겨진 종속의 증표가 있는 한 천마가 무사하다는 결론이 된다.

“아아아! 이건 아니잖아!!”

용길공주의 비통에 찬 목소리가 울렸다. 카샤와 옥정의 시선이 용길공주에게 향했다. 언제나처럼 소파에 누워 있던 그녀는 팔다리를 휘저으며 분노의 감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저번에도 지랄이더니, 오늘은 또 왜 저 지랄이야?”

카샤가 용길공주에게 다가갔다. 상대가 신이라는 건 알고 있음에도 말과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신이라고 해도 결국 지금은 다 똑같은 신세였다.

“이건 사기야! 내가 왜 죽어야 하냐고!!”

“공주. 또 그 게임인가 뭔가야?”

테이블 위에 놓인 게임기가 보였다. 카샤는 그게 무엇인지 자세히는 모른다.

“아, 마침 잘 왔구나, 너. 본녀는 여기가 질렸다. 밖으로 나가고 싶으니 데려가라. 옥정에겐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구나.”

용길공주가 근엄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허세는 카샤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못 볼 꼴을 너무 많이 봤다.

“나한테 그럴 권한 없어.”

사실은 있었다. 밖으로 나간 용길공주가 사고를 칠 게 뻔했기에 데려가지 않는 것뿐이다.

“지금 본녀는 너무 심심하다. 심심해서… 미쳐버릴 정도로…!”

용길공주가 옥정을 향해 발을 휘둘렀다.

퍽! 퍼억! 퍽!

“악! 아악! 아앗…. 그, 그만 때려주세요, 공주님….”

무차별적으로 옥정을 폭행한다. 얼굴을 구타하고 가슴을 발로 찬다. 카샤는 말리지 않았다. 옥정을 보면 비명과 다르게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걸 알 수 있다. 옥정은 맞는 걸 즐기는 마조히스트다.

후다다다다닥!

그녀들 사이로 키가 작은 누군가가 지나와 카샤의 품에 안겼다.

“카샤 언니!”

검은 머리카락과 붉은 눈, 창백한 피부를 가진 여자아이였다. 10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카샤의 품에 콱 안겼다.

“에르시아! 못 본 사이에 더 많이 자랐네.”

카샤가 그녀를 받았다. 여자아이가 꺄르르 웃었다.

바토리 에르시아.

바토리 에르제베트와 천마의 딸이었다. 10살 남짓으로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에르시아가 태어난 지는 반년도 되지 않았다.

에르시아가 이토록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는 하프 뱀파이어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머니인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비록 분신이긴 하나 위신이다. 그 딸에게 인간의 피가 섞였다고 해서 신의 피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거기에 본체인 「피의 백작 부인」 또한 에르시아를 마음에 들어 하고, 아직 어린 에르시아와 계약을 맺어 이것저것 도와주고 있다.

“카샤 언니, 아빠는 언제 와?”

에르시아가 만날 때마다 묻는 말이었다. 카샤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언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곧 올 거야.”

“아빠가 날 싫어하지는 않겠지? 응?”

“……싫어하지는 않을걸?”

카샤는 확신할 수 없었다. 천마가 얼마나 미친놈인지 알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라도 거리낌 없이 죽이는 놈이고, 에르시아는 사랑에 의해 태어난 것도 아니다.

“흥. 그놈이 그럴 리가. 보나 마나 널 보자마자 싸대기부터 날릴 거다. 그리고 네 어미처럼 가둬두겠지.”

용길공주가 썩소를 지으며 말했다. 성격 안 좋은 그녀의 말에 에르시아가 울상을 지었다.

“공주님은 나쁜 말만 해. 카샤 언니. 아빠가 그러지 않을 거야. 그렇지?”

“에르시아. 공주 말은 신경 쓰지 마. 공주가 병신같은 말을 하는 건 너도 알잖아.”

용길공주가 발끈했다. 옥정을 괴롭히던 그녀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카샤, 네년! 무례하다! 나는 너희들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신분이다! 알아서 고개를 조아리지 못할까! 애초에 이 특수 종속이 없었다면… 이딴 곳에 갇혀 지낼 일도 없었을 텐데! 한스럽구나, 한스러워!”

누구도 용길공주에게 제대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가 지랄을 하는 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카사는 용길공주를 보며 이죽거렸다.

“비교도 되지 않는 신분이긴 하지. 비데공주와 어떻게 신분을 비비겠어?”

“이, 이, 주제도 모르는 년이!”

“고, 공주님! 고정하세요!”

옥정이 분노하는 용길공주의 팔을 잡아 진정시키려 했다. 용길공주는 거칠게 팔을 흔들었다. 옥정이 바닥에 처박혔다.

카샤는 물러서지 않았다.

“왜, 또 한 따까리 하자고?”

카샤에게서 살기가 흘려나오자 용길공주가 흠칫 몸을 떨었다. 용길공주는 이미 카샤와 몇 차례 싸웠다가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탈탈 털렸었다.

용길공주는 타겟을 바꿨다.

“에르시아!”

“응. 공주님.”

“네가 태어난 이유를 가르쳐주마. 네 아비는 쓸만한 부하를 갖기 위해 널 만든 거다. 그게 변하지 않는 진실이지!”

“응. 몇 번이나 들었어. 그리고 생각해봤는데… 그건 별로 상관없는 것 같아. 난 아빠를 만나고 싶어.”

“크으윽….”

용길공주는 비통한 음성을 흘리며 물러났다. 저번에는 에르시아가 큰 소리로 울었는데, 지금은 희미하게 웃으며 받아넘기고 있다. 아무리 위신의 피를 이어받은 하프 뱀파이어라고 해도 성장이 빨라도 지나치게 빨랐다.

“공주. 이제 그만 좀 하지? 그 녀석이 없다고 해도 애한테 신경질을 부리는 건 너무 추하잖아.”

“그 녀석 때문이 아니다!”

“내가 모를 줄 알고? 욕구 불만인 거 다 알아.”

“보, 본녀는 너처럼 천박하지 않다.”

“퍽이나. 매일밤 자위하고 잔다며? 옥정한테 들었어.”

“네 이년, 옥정!!”

“아아악! 머, 머리는 잡아당기지 말아주세요, 공주님! 아, 아파요. 하읏….”

상황은 순식간에 개판이 되었다.

카샤는 지금이 아슬아슬하다는 것을 안다.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고 있다.

“카사 언니. 나랑 대련해줘. 옥정 언니는 일부러 내 공격을 맞아서 도움이 안 돼.”

“내가 좀 거친 거 알지? 저번처럼 졌다고 질질 짜면 엉덩이 때릴 줄 알아.”

“이제 안 울어!”

“그래. 그래. 장하네. 네 엄마는 뭐 하고 있어?”

“엄마는 자고 있어. 낮이니까.”

카샤와 에르시아는 자주 사용하는 수련장으로 향했다. 카샤는 수련에 임하기 전에 에르시아에게 물어 능력치를 확인했다. 상태창을 이용해 에르시아가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름: 바토리 에르시아

클래스: 담피르

칭호: 핏빛 미래를 걷는 자

신좌: 피의 백작 부인

소속: 제 8회 아틀란티스

근력: 31 민첩: 25 체력: 25 마나: 51 행운: 13

고유 특성: 혈마지체(A)

특성: 흡혈(B)

스킬: 혈마술(C). 검술(D).」

에르시아의 능력치를 들은 카샤는 작게 감탄사를 흘렸다. 누가 이 능력치를 듣고 태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존재의 능력치라고 생각하겠는가.

‘에르시아는 부모로부터 재능을 완벽히 물려받았어.’

아틀란티스에서 태어난 아이는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고유 특성과 스킬을 유전 받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가 강하고 특별할수록 2세의 능력은 더 뛰어나다.

‘불공평한 세상이야.’

정말 불공평했다.

단지 부모를 잘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노력 없이 재능을 손에 넣을 수 있다니.

그리고 정말 불쌍했다.

타고난 출생이 아틀란티스니까. 에르시아는 아마도 20년도 즐기지 못하리라. 그 이전에 아틀란티스가 끝날 가능성이 크니까.

‘…잡생각은 됐어. 집중하자.’

고유 특성인 혈마지체(A)는 담피르인 에르시아와 딱 어울리는 특성이다. 신체능력이 상승하고 피와 관련된 스킬과 특성에 보정이 붙는다.

흡혈(B)은 대상의 피를 먹으면 능력치가 일부 영구적으로 상승한다. 대상의 존재와 강함에 따라 얻는 능력치는 다르다. 그리고 피를 먹으면 생명력과 마나를 회복한다. 에르시아가 빠르게 능력치를 올릴 수 있었던 이유가 이 흡혈(B) 스킬 덕분이다.

‘고작 B랭크에 불과한데도 이 능력…. 특성이 더 상장하면 무시무시해지겠어.’

에르시아는 대련에 앞서 유리병을 꺼냈다. 포션이라하기엔 안에 들어 있는 액체가 지나치게 붉다.

“그건 피?”

“응. 공주님한테 받았어.”

“그 공주한테 잘도 받았잖아. 잘 때 덮쳤냐?”

“아냐. 공주님도 기분 좋을 때는 잘 대해줘.”

“그 공주가 변덕이 심하긴 하지.”

용길공주의 피를 마신 에르시아의 기운이 강해졌다. 카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에르시아는 생각보다 더 성장했다.

‘이거 대충했다간 곤욕만 치르겠는걸?’

화르르륵.

카샤의 주위로 불길이 치솟았다.

주르르륵.

에르시아의 발아래로 붉은 피가 퍼져나간다.

이윽고 불과 피가 부딪혔다.

???

「살아있는 시체(僞)가 당신들을 주시합니다.」

나와 엘레나는 긴장한 채로 그녀의 앞에 부복했다.

지난 2주일 동안 니플헤임을 돌아다니며 겨우 니플헤임의 주인인 그녀를 만났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힘과 기운은 내 온몸을 짓누르고, 엘레나마저 진중하게 만들었다.

살아있는 시체(僞).

니플헤임의 여주인.

그녀는 헬이었다. 이름 자체가 지옥인 여신.

헬은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정확히 반으로 갈라서 좌반신과 우반신이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좌반신은 싱싱한 금발의 미녀다. 가슴도 풍만하다. 우반신은 반쯤 썩어 문드러진 백발의 노파였다. 구더기가 오른쪽 눈동자를 파먹고 있다.

‘으으음. 노파의 가슴은 축 늘어져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썩은 사과처럼 쭈글쭈글하겠지. 어쩌면 가슴이 시체처럼 썰려 있을 지도.’

내 시선은 자연히 헬의 아래쪽으로 향했다. 로브에 가려져서 몸의 윤곽만 보였다.

내 머리는 자연스럽게 감춰진 그녀의 음부를 상상한다.

보지는 가랑이 사이에 있으니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을 것이다. 왼쪽은 싱싱한 핑크색 보지 일테고, 오른쪽은 썩어 문드러지다 못해 시커멓고 축 늘어진 보지겠지.

‘불가능.’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당장 저 우반신을 보는 것만으로도 토가 쏠린다. 나는 성지곤이 아니다. 헬을 꼬시겠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웠다.

“꼬마야, 불경한 생각을 하는구나?”

헬이 나를 보며 서늘한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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