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919 - 919. 하와이 (699/2,000)

〈 919화 〉 919. 하와이

한하린과 서로 끌어안고 키스한 상태에서 내 손은 슬금슬금 움직였다. 노골적으로 그녀의 엉덩이와 가슴을 만진다. 한하린은 반발하지 않았다. 근처에 보는 눈도 없고, 내 손길에 익숙해진 것도 있다.

이대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 그렇게 마음먹고 한하린의 옷 안으로 손을 넣으려는 순간이었다.

뒤쪽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아쉽지만 떨어졌다. 교관 앞에서 섹스하려면 할 수 있으나, 한하린의 훈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하린에게도 ‘영웅의 회오’ 던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 이곳에서 최대한 무언가를 깨닫는 게 맞다.

입술 사이로 은색 실이 쭈욱 늘어지다가 끊어졌다. 한하린이 감았던 눈을 떴다. 의외라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아쉬워도 여기까지 왔는데 훈련해야죠.”

“…네가 웬일이야.”

“날 아주 짐승으로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하린 누나를 위해서 참을 줄도 알아요.”

“……고마워.”

한하린이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러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새침한 얼굴을 지었다.

교관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검은 옷으로 몸과 얼굴을 가린 그는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이런 방법으로 트라우마를 해결할 줄이야…. 사랑의 힘은 대단하군요.”

교관이 실없는 말을 해댔다. 정신적 트라우마? 사랑의 힘? 내가 볼 땐 그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었다. 한하린에겐 작은 계기가 있었다면 바로 극복했을 정도에 불과하다. 단지, 그 계기가 지금까지 없었을 뿐이다.

나는 한하린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고 뒤로 물러났다. 한하린의 시선은 나를 따랐으나, 곧 교관에게 향했다.

“…환술이 사라졌어요. 이걸로 된 건가요?”

“한하린 훈련생. 지금 기분은 어떻습니까?”

“개운하네요. 마음이 가볍다고 해야 할까요.”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알아두십시오. 한하린 훈령생은 완전히 정신적 문제를 완전히 극복한 게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한하린 훈련생의 마음을 좀먹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언젠가는 완전히 극복할 때가 올 테니….”

“명심하도록 할게요. …그런데 남은 시간 동안의 훈련은 어떻게 되는 거죠?”

“현재 한하린 훈련생에게 가장 필요한 훈련법을 알려드리죠. 한하린 훈련생은 마나를 정교하게 제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하린은 쉬지 않고 훈련에 임했다. 교관이 가르쳐주는 대로 마나를 좀 더 정교하게 움직이기 위해 노력한다.

한 발 떨어져 있던 나는 이 공간이 한하린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걸 알았다. 다시 생각해도 훈련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개인적으로 갖고 싶을 정도로.

한하린은 금세 마력 제어에 빠져들었고, 교관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한하린 훈련생이 다음 훈련으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니 감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마나를 정교하게 제어하는 것만으로도 강해집니까?”

“한하린 훈련생의 가장 큰 문제점은 출력의 조절입니다. 중력조작이라는 능력 자체가 출력 조절이 힘들죠. 한하린 훈련생이 능력을 뜻대로 완벽하게 다룰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크게 강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한하린 훈련생은 좀 더 강해질 테고, 그때 지금의 훈련이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하린이를 잘 부탁합니다.”

“저는 제 일을 할 뿐입니다. 훈련생은… 훈련하지 않습니까?”

“전 훈련이 끝나서요. 제가 여기 있으면 방해만 될 뿐이니 가보겠습니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한하린과 몸을 섞는 건 던전 밖으로 나가서 해도 늦지 않다.

‘돌아가서 벨리스랑 떡칠까. 벨리스랑 떡칠 수 있는 것도 이 던전에 있을 때뿐이니….’

벨리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던 나는 세상이 찢어질 듯한 거대한 충격음을 들었다. 압도적인 존재감에 공기가 떨리는 느낌. 나는 본능적으로 마른침을 삼키며 존재감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천안(天眼)을 발동해 멀리 떨어진 그곳을 확인한다.

‘한아영이… 2명…?’

2명의 한아영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둘을 구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1명은 현대적인 복장이고, 다른 1명은 판타지적인 복장이니까.

‘판타지스러운 옷을 입은 한아영이 가짜겠지. 오기 전에 들은 적 있어. 도플갱어처럼 상대를 흉내 내며 전투를 통해 강함의 방향을 알려주는 교관이 있다고.’

얼음검과 얼음창이 허공에서 부딪히며 부서진다. 얼음 조각은 추락하지 않고 허공으로 치솟아 폭풍이 되어 사방을 찢어발긴다.

나는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한아영이 저렇게 강했었나? 저번에 봤을 때보다 훨씬 강해진 건 확실하네.’

내 수준으로 저기에 끼어들면 5분도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나는 한참 지켜보다가 벨리스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기절했던 벨리스는 일어나서 바닥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옷을 벗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벨리스 교관님.”

“……그래. 이제 너도 만족 했겠… 윽.”

팔팔하게 서 있는 내 꼬추를 본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그만해라. 이 정도면 너도 충분히 만족하지 않았나.”

“이게 만족한 상태로 보이십니까?”

“…….”

“남은 시간 동안 절 상대해주십시오. 설마 벨리스 교관님이 되시는 분이 도망치시는 건 아니겠죠?”

“…후우. 내뱉은 말도 있으니… 좋다. 상대해주마. 앞으로 더 꼴사나워질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 와라!”

“갑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졌다! 내가 졌다아아아아아아앙!”

바닥에 누운 벨리스는 보지에서 조수를 뿜으며 애벌레처럼 꿈틀거렸다.

???

삐삐삐삐삐삐삐삐!! 삐삐삐삐삐삐삐!

던전에 들어온 지 40시간째. 들어오기 전에 받은 시계에서 알람 소리가 울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뒤편을 쳐다봤다. 밖으로 나가는 포탈이 열려 있었다.

“벨리스 교관님.”

“왜, 왜…. 흐읏….”

벨리스는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몸을 움찔움찔 떨었다. 온몸이 정액투성이다.

“시간이 됐습니다. 나가보겠습니다.”

“아… 그렇군.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나…. 이제 겨우 쉴 수 있겠군.”

벨리스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아마 두 번 다시 너와 만날 일은 없겠지. 그러니 교관으로서 마지막으로 말하마. 육체 단련을 게을리하지 마라. 최후의 순간까지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너 자신뿐이란 걸 잊지 마라.”

“감사했습니다. 벨리스 교관님의 근육 보지를 잊지 못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하는 말치고는 너무 하지 않나.”

피식 웃은 벨리스의 몸이 빛으로 변하더니 사라졌다. 나는 그녀가 있었던 곳을 잠깐 바라보다가 포탈을 타고 밖으로 나갔다.

한하린이 가장 먼저 나와 있었다. 두 번째가 나였다. 이어서 3번째로 나온 건 장고준이었다. 장고준의 안색은 무척 좋지 않았다. 눈 밑은 시커멓고 입술은 바짝 말라 있다. 옷에 피까지 묻어 있다.

“고준 형? 피가 묻어 있는데… 어디 안 좋아?”

“괘, 괜찮아.”

장고준이 비틀거렸다. 관리자 중 몇 명이 들것을 가지고 달려오더니 장고준을 눕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아영이 밖으로 나왔다. 당당하게 밖으로 나온 그녀는 실려 나가는 장고준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고준아?!”

“아, 아영아… 난 괜찮아….”

관리자들은 익숙한 듯 행동했다. 장고준처럼 거칠게 훈련하다 다치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하는 모양이다.

“심각한 상처는 아니니 병원에서 이틀 정도 집중 치료를 받으면 회복될 겁니다.”

관리자의 말을 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포탈에서 비켜섰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4명의 백인이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한국 협회 직원을 따라 숙소를 돌아갔다.

나와 한하린은 한아영을 힐끗거렸다. 협회 직원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인데, 한아영과 자주 만나는 나와 한하린은 그녀의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는 걸 알았다.

“언니, 혹시….”

“쉿.”

한아영이 검지를 들어 올렸다.

“나중에 말해줄게. 지금 말하면… 보통 소란스러워지는 게 아닐 테니까.”

“…….”

한하린의 얼굴이 굳어진다.

한아영의 저 반응은 모를 수가 없었다. 한아영은 ‘영웅의 회오’ 던전에서 벽을 넘은 것이다.

대한민국 최연소 S급 헌터의 탄생이다.

물론 기존의 S급 평균 실력에 비하면 떨어지겠지만, 그것도 한아영이 성장하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는 한하린의 손을 잡았다. 굳어 있던 한하린이 내 얼굴을 힐끗 보고는 피식 웃는다. 한결 편해진 얼굴이다.

???

“S급이 되었어. 아직 협회의 인증은 받지 못했지만… 확실해. 항상 내 앞을 막고 있던 것이 사라지고 힘이 더 강해졌으니까.”

한아영이 말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난리 나겠군. 당분간은 한아영과 만나지도 못하겠어.’

바빠질 것이다. 당연히 미국 같은 다른 국가에서도 그녀에게 접근할 테고, 언론은 그녀에 대해 대서특필하겠지.

“…축하해, 언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 소식을 들으면 좋아할 거야.”

“축하해요, 누나.”

“고마워, 하린아, 유진아. 한국에 가면 지금처럼 여유를 부리지 못할 거야. 그러니 하와이에 있는 3일 동안 최대한 놀고 싶어.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건 참아줘.”

하와이에 이틀을 더 있다가 돌아갈 예정이었다. 돌아가기 전까지는 자유다.

“고준이는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우리와 함께 돌아갈 거야. 목숨에 지장도 없고, 후유증도 없을 테니 걱정할 필요 없이 안심하고 놀면 돼.”

“그래? 다행이네.”

“아쉽네요.”

전혀 아쉽지 않았다. 방해꾼이 사라졌다. 제자리에서 팔짝 뛰며 함성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기쁘다.

나뿐만이 아니라 한하린도 장고준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한 태도다. 그를 조금이나마 걱정하는 건 친구인 한아영밖에 없다.

“그런데 아영이 누나, 일정은 어떻게 하려고요? 무작정 놀 수는 없잖아요.”

“으음. 그러네. 산책은… 좀 꺼려지네.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귀찮고… 너희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까지 산책하고 싶진 않잖아? 일단 해보고 싶은 거 말해볼까. 난 스쿠버 다이빙을 해보고 싶어.”

“그거 자격증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기본은 배우긴 해야하지만, 우린 괜찮아. 우린 C급 이상의 헌터니까.”

“하긴…. 마나를 사용할 줄 아는 C급 이상부터는 진짜 초인 취급이니까요. 고작 스쿠버 다이빙을 못 해서 물에 빠져 죽을 일은 없겠죠. 하와이 근처에는 몬스터도 없을 테고. 나쁘지 않네요.”

“너희는 뭘 하고 싶어?”

“저도 누나랑 같이 스쿠버 다이빙 할 게요. 그 외에는… 뭐, 대충 쉬다가 비행기 타고 귀국해야죠.”

“……나도 활동적인 건 별로지만 스쿠버 다이빙 정도는… 괜찮겠지.”

나와 한하린의 대답을 들은 한아영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항상 다정한 그녀였지만, 지금은 왠지 서늘하게 느껴졌다.

“둘이 무슨 일 있었니? 왠지 평소와 다른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번에 성장한 건 언니뿐만이 아니야. 우리도 성장했어.”

“유진이는 겉으로 봐선 잘 모르겠고… 하린이 너는 성장했네. B급 헌터 중에서 널 이길 헌터는 없을 거야.”

“조만간 A급 헌터가 될 거야.”

“그래. 언니는 하린이를 응원해.”

뭔가 분위기가 어색하다. 한하린의 분이기가 살짝 바뀌어서 그런지 한아영도 평소와 좀 다르게 반응하는 것 같다.

나는 분위기를 환기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저녁부터 먹고 잠이나 자죠. 둘 다 훈련하느라 잠도 못 잤으니 피곤하실 거 아니에요?”

꼬르륵.

한아영의 배에서 난 소리였다. 한아영이 볼을 붉이혀 배를 팔로 감쌌다.

“뭐라도 먹긴 해야겠어. 한식이 먹고 싶은데… 안 되겠지?”

“한식? 있어요. 최고의 김치찌개를 대접해드리죠.”

인벤토리에서 한식을 꺼냈다. [백환] 세계의 메이드들이 만들어준 음식들이다. 유리아가 해주는 음식이 가장 뛰어나고 맛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쉽게도 유리아는 기억을 되찾기 위해 수련하느라 바쁘다.

늦은 저녁을 먹은 한하린과 한아영은 방으로 돌아가 엎어져 잠들었다.

섹스를 하고 자자! 라고 하기에는 그녀들이 너무 피곤해 보였다. 그녀들에겐 나처럼 완전 회복 같은 스킬이 없다. 피로가 더 쌓여 일이 벌어지기 전에 편히 잠들 수 있도록 내버려 뒀다.

‘괜찮아. 흑백쌍보 섹스는 나중에도 할 수 있으니까.’

나는 방에 들어가 자는 척하다가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혈기 왕성한 내 몸은 섹스 없이 잠들기 힘들었다.

‘여긴 현실이니… 내 신분은 속여야지. 일루시터, 공간 이동 주문서… 인피면구!’

[광명승천도] 세계에서 얻은 인피면구를 쓰면 내가 누군지 알아볼 일은 없을 것이다.

‘위험한 일을 할 생각은 없지만… 현실에선 조심스럽게 움직여야지.’

나는 씨익 웃었다.

‘호텔 근처에 괜찮은 창녀들이 있겠지. 크크.’

돈은 충분하다.

‘하와이의 창녀들아! 내가 정복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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