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8화 〉 928. 아카데미의 구원자
“성유진!!”
류하나가 소리쳤다.
나는 뒤쪽에서 날아온, 정확하게는 암살자 분신이 던진 단검을 검으로 쳐냈다. 내게 접근한 암살자가 희미하게 웃으며 내 심장을 노리고 단검을 내지른다.
검자루 끝으로 단검을 쳐냈다. 암살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여기까지 오면 실력 차이를 어렴풋이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도 암살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연막이 피어올라 시야를 가린다.
‘내 눈앞에선 의미 없어.’
파지지직.
적당히 번개를 써주면서 암살자의 공격을 받아 쳐낸다.
‘유리아의 공격에 비하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시시하네.’
유리아가 기억을 잃기 전에 나와 했던 대련을 떠올렸다. 유리아의 공격은 눈에 보여도 피하기 힘들었다. 약점 하나, 하나를 간파해 공략당하는 느낌이었다.
반면에 암살자의 공격은 그저 그곳이 급소니까 노려오는 느낌이다. 날카로움은 있으나 치밀함은 없다.
캉!
“……!!”
암살자의 단검이 위로 올라가고 앞부분이 벌어졌다. 나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영천류(影天流) 뇌광(雷光).
번개처럼 빠르게 이어진 검격이 암살자의 몸을 가른다. 피가 튀었다. 치명적인 일격이었으나, 암살자를 쓰러뜨리기엔 부족했다.
자신의 죽음을 감지한 암살자는 돌발 행동을 저질렀다. 나를 피해 분신과 싸우는 중인 류하나에게 달려든 것이다.
동귀어진.
죽음을 각오한 눈이었다.
분신은 제 몸으로 류하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큭!”
류하나의 쌍검이 분신의 상체와 하체를 베어냈지만, 늦었다. 암살자는 코앞까지 다가간 상태다.
“임무는 반드시 완수한다.”
“날 무시하니 기분 나쁜데.”
가속과 찰나를 통해 암살자를 따라잡은 나는 암살자와 부딪히며 호수에 풍덩 빠졌다. 암살자가 위로 도망치려 하는 걸 옷깃을 잡아 호수 아래로 끌어당겼다.
암살자의 얼굴이 일그러뜨리며 나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씨익 웃으며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손목이 그대로 부서지고 단검이 호수 아래에 가라 앉는다.
나는 검으로 암살자의 복부를 쑤셨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암살자의 숨이 확실하게 끊어졌다.
‘딱 좋은 기회야. 물의 축복 off.’
호수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손에 쥐고 자해했다. 치명상은 최대한 피하면서 겉보기엔 심각한 상처를 냈다.
‘존나 아프네.’
손아귀에 알약을 소환했다. 알약이 물에 녹기 전에 입에 삼켰다. [뱀파이어 헌터] 세계관의 독약이었다.
온몸이 찌릿찌릿 거린다. 미리 준비한 죽지 않을 정도의 독약이긴 한데… 계속 이렇게 있으면 죽을지도 모르겠다.
‘완전 회복을 쓰면 내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데… 빨리 구하러 안 오나?’
왔다.
호수에 들어온 류하나가 다급한 얼굴로 내게 헤엄쳐 온다. 나는 눈을 감았다. 지금부터 중요한 건 연기였다. 나는 입으로 공기를 내뱉으며 괴로운 척 몸을 꿈틀거렸다. 내 몸이 위로 떠오르려고 한다. 류하나가 서둘러 다가와 내 몸을 붙잡고 호수 위로 데려갔다.
“하아, 하악….”
류하나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내 몸을 바닥에 똑바로 눕혔다. 이어서 맥을 짚고 손가락을 내 코에 가져다 댄다. 나는 일부러 숨을 멈췄다.
“아, 안 돼…!”
류하나가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내 입에 입을 맞추고 숨을 불어넣는다. 이어서 깍지 낀 손으로 내 가슴을 압박했다.
‘…생각보다 별로야. 입을 맞추는 건 그냥 입 맞추고 숨을 불어넣는 거고, 가슴 압박은 더럽게 아프네.’
물을 토해내며 숨을 내쉬었다. 인공호흡은 즐기기엔 너무 별로다.
“성유진! 눈 떠! 성유진!!”
류하나가 내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나는 계속해서 눈을 감았다. 연기 특성이 빛을 발한다.
[이제야 복구… 제길! 반대항전은 중지다! 류하나! 지금 사람을 보내마! 성유진의 상태는 어떻지?!]
인공 던전 담당 선생의 목소리가 울린다. 암살자가 일시적으로 끊어 놓았던 통신이 복구된 것이다.
나는 아카데미 병원에 이송되어 독이 해독될 때까지 연기에 집중했다.
‘크크. 이걸로 류하나는 내게 마음의 빚을 느끼게 되겠지.’
앞으로 류하나의 관계에서 우위를 취하게 되리라.
???
류하나는 아카데미 병원, 성유진이 입원한 병실 앞에서 서 있었다. 그녀의 빈말로도 밝지 못했다.
끼이익.
병실 문이 열리고 1학년 1반의 담임 선생님인 윤희정이 밖으로 나왔다. 윤희정은 걱정으로 가득한 얼굴이었으나, 류하나를 보고 곧바로 표정 관리를 했다. 학생 앞에서 어두운 표정을 보일 수는 없었다.
“4반의 류하나지?”
“…네. 선생님. 성유진은 괜찮은가요?”
“괜찮아. 방금 잠들었어.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처음 보는 독이라 해독이 쉽지 않을 거라 했지만, 해독도 성공했어.”
“다행이네요.”
윤희정은 류하나를 쳐다봤다. 아카데미 교사 생활을 하면서 쌓은 짬밥은 류하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직감하게 했다.
“…이상한 생각 하는 거 아니지?”
“그럴 리가요. 성유진이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만약에 성유진이 죽었다면… 마음의 빚을 평생 안고 살아야 했겠죠.”
“…그래. 지금이라면 병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유진이 보고 갈래?”
“아뇨. 볼 면목이 없어요. 나중에 성유진이 깨어나면 만날게요.”
“유진이는 내일이나 이틀 뒤에 퇴원할 수 있을 거야.”
“네. …저, 선생님. 그 암살자의 정체는….”
“미안. 그건 나도 몰라. 나는 유진이를 보호하고 있느라고…. 암살자의 정체는 다른 선생님들이 알아내고 있을 거야.”
“네. 이만 가볼게요.”
류하나는 윤희정에게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그 암살자는 분명 자신을 노렸었다. 노스다이아 클랜의 힘을 사용해서라도 암살자의 정체를 알아내고 마리라.
기숙사로 돌아온 류하나는 쌍검을 들고 훈련실로 나섰다.
‘…내가 강했다면 성유진이 다칠 일은 없었을 거야.’
???
남궁화연은 잠든 성유진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평온하게 잠든 성유진의 얼굴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얼마 전에 성유진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수상한 인물이 있다.
자신은 그 말을 듣고서 조사를 하고 아카데미 교사들에게 알렸다. 그것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모두 했다. 그러나 안일했다. 자신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성유진의 말을 믿고 철저하게 아카데미 직원들을 조사했더라면 사전에 암살자를 잡아냈을 수도 있었다.
‘내 안일함이 네게 죽음의 위기를 겪게 만들었구나. 미안하다.’
남궁화연은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갔다.
???
고은하, 유채영, 손지연도 병실에 찾아왔다. 그녀들은 잠든 성유진을 보고는 안심했다. 상처도 전부 치료되어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으니까.
“멀쩡하잖아. 괜히 왔어. 장난이라도 치고 갈까? 꼬추에 낙서하고 가는 거지. 어때?”
“우와… 그건 좀….”
“고은하. 환자에게 무슨 짓이야?”
“아! 그냥 농담 한 번 한 것뿐이야! 또 나만 쓰레기 만들지?”
그녀들은 성유진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말들을 주고받았다.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조용했었던 그들은 성유진의 평온한 얼굴을 보고 말문이 트였다.
“암살자가 직원으로 위장했다며? 아카데미 존나 무능하네.”
고은하가 혀를 쯧쯧 찼다. 1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뭐… 아카데미 탓만은 아니지. 세상에는 워낙 미친놈이 많으니까.”
손지연은 팔짱을 꼈다. 어쩔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아카데미를 히어로 양성을 위한 훈련기관이자 학교. 온갖 빌런 집단의 노려지는 건 당연했다. 빌런의 입장에선 미래의 적은 새싹일 때 죽이고 싶을 테니까.
“이번엔 이걸로 끝나서 다행이라 해야 할까? 유진이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유채영이 말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성유진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만지고 있었다.
“야, 유채영. 걘 내버려두고 가자.”
“응? 벌써 간다고?”
“걍 지난 가는 길에 들린 거야.”
“고은하의 말대로 하자. 환자를 귀찮게 하는 건 안 좋아.”
그녀들은 병실을 떠날 준비를 했다.
“아 씨. 이번에 보빨 한 번 시켜보려고 했는데.”
“은하야. 보지는 제대로 씻지?”
“유채영, 네 보지나 제대로 씻어. 너 보린내 쩔잖아.”
“하아? 유언비어 퍼뜨리지 말지? 난 하루에 2번 씩이나 씻는다구. 냄새 날리없잖아. 보지 냄새라면 네가 더 나지. 고은하 넌 귀찮다며 안 씻을 때도 있잖아.”
“난 안 씻어도 냄새 안 나. 내 보지는 항상 깨끗하거든.”
“웃기네. 저번에 같이 목욕할 때 냄새 엄청 쩔던데.”
손지연은 양손을 들었다. 고은하와 유채영의 목소리가 더 커지기 전에 진정시켰다.
“아, 좀, 제발. 여긴 병원이야. 사람 많이 지나다닌다고. 부끄러운 소리는 하지 말자. 제발. 보지도 못 빨려본 티 좀 내지 말고.”
“손지연, 이 미친년이.”
“솔직히 그때 보빨은 왜 시킨거야? 펠라만 해도 됐잖아.”
그녀들은 시끄럽게 떠들며 병원을 나갔다.
???
“흐윽…. 유진아….”
병실을 찾아온 이시은은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는 성유진의 손을 잡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카데미 학장인 강지영이었다.
“…1학년 1반의 이시은이군.”
“…학장님.”
“성유진과 친한 친구였나? 곧 밤 9시다. 기숙사로 돌아가라.”
“하지만… 유진이가….”
“이시은. 넌 학생이다. 네가 성유진을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다만, 이곳에는 너 말고도 전문 간호사와 의사들이 있다. 너는 네가 해야 할 일을 해라.”
“……네.”
이시은은 마지막으로 성유진을 힐끗거리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강지연은 침대 바로 옆에 서서 말했다.
“안 자고 있다는 거 다 안다.”
그녀에겐 육감(S) 스킬이 있었다. 그 육감이 성유진이 지금 일어나 있다고 말한다.
성유진이 눈을 번쩍 떴다.
“오랜만이야. 이모. 이모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네.”
“죽었다 깨어나서 하는 말이 바로 그거냐.”
“죽은 적 없어. 독에 중독됐을 뿐이지.”
“의사의 말로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독이라고 했다. 다행히 해독 능력이 있는 의사가 있어서 망정이지…. 정말로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성유진은 할말이 없다는 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다.”
“이모가 왜 사과해. 날 이렇게 만든 건 암살자 놈인데.”
“내가 아카데미의 학장이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내가 책임질 일이지. 너와 류하나에겐 따로 상금으로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그 외에도 원하는 게 있나?”
“이모랑 같이 데이트 하는 거?”
“……하. 멀쩡해서 다행이군. 데이트는 됐고, 저녁 식사 정도는 같이 해주마.”
“암살자가 어디 소속인지 알아냈어? 그놈은 내가 아니라 류하나를 노리고 있었어.”
“정확한 정보는 없다. 얼굴도 성형했고, 지문도 조작되어 있었다. 유전자도 데이터 베이스에서 일치되는 게 없다. 정보가 없는 놈이다.”
“보통 놈이 아니었네.”
“짐작 가는 곳이 몇 개 있다.”
“어딘데?”
“…너는 푹 쉬어라. 이 이후의 일은 내가 할 일이다.”
강지영의 흑갈색 눈동자가 빛난다.
“이만 가보지.”
“벌써?”
“이 이상 오래 머물면… 더 귀찮아진다.”
???
강지영이 떠났다.
나는 그녀가 남긴 말의 의미를 뒤늦게 알았다. 강지영이 떠나고 10분 뒤,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성하리가 뛰쳐 들어온 것이다.
“유진아!!!”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내 몸을 꽉 붙잡았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내 머리가 처박혔다. 역시 뛰어난 젖가슴이었다. 나는 성하리의 가슴을 즐겼다.
“흐윽. 유진아, 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엄마는….”
성하리의 눈물이 내 머리 위로 뚝뚝 떨어졌다. 솔직히 여기까지 오면 나도 좀 미안해진다.
“엄마. 왜 울어. 나 멀쩡해.”
성하리의 손에서 겨우 벗어나 억지로 머리를 일으켰다. 성하리와 두 눈을 마주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타고 흐른다.
“못 본 사이에… 우리 아들 얼굴이 반쪽 됐네….”
눈동자를 옆으로 굴렸다. 창문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은 멀쩡했다. 의사 선생은 처음 보는 독 때문에 호들갑을 떨었을 뿐이지, 해독도 문제없이 끝났다. 상처? 치료 능력을 가진 히어로와 포션이 있는 세계다. 흉터 하나 남기지 않고 회복했다.
얼굴이 반쪽이 되기는 개뿔.
“엄마… 나 너무 힘들어.”
“흐윽…. 유진아…. 자퇴하자…. 엄마가 우리 유진이 먹여 살릴 수 있어.”
“아니. 그거 좀 그래.”
“그, 그러니?”
“그것보다 젖이나 줘. 요즘 엄마 젖을 못 먹어서 현기증 나.”
“유진아. 진정해. 여긴 병원이야.”
“아, 젖 달라고~!”
깜짝 놀란 성하리가 눈동자를 굴렀다.
“아, 알았어. 그러니 좀 조용히 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성하리가 상의를 올리고 오른쪽 가슴을 브래지어에서 꺼냈다. 나는 그녀의 분홍색 젖꼭지를 입에 앙 물고 쪽쪽 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