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2화 〉 932. 아카데미의 구원자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수라(天魔修羅).
양손에 천마기를 일으키고 날아오는 화염구를 바닥으로 쳐냈다. 화염구가 터지더니 벽과 바닥에 불이 붙었다. 나는 불꽃을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강한 바람이 불길을 꺼뜨렸다.
“쓰으으으읍.”
랩터가 숨을 들이켰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관찰하듯 쳐다본다.
“네놈이 사용하는 그 힘…. 마인이었나. 인간쓰레기가 왜 우릴 노린 거지?”
마인.
악마와 계약한 자를 일컫는 단어.
악마는 인류의 적이다. 따라서 악마와 계약해 힘을 받은 자는 인류의 적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몬스터보다 경멸받는 게 마인이며, 빌런 사이에서도 마인은 배척하는 대상이다.
“이게 악마의 힘처럼 보인다고?”
“…아닌가? 이제 보니 악마의 힘이 아닌 것 같기도 하군….”
기가 차는 말이었다. 뭐, 비슷하다는 건 인정한다. 악마의 힘과 마찬가지로 어둡고 파괴적인 힘이니까. 그러나 천마기는 악마의 힘과 전혀 다르다.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검(天魔劍).
손등에 돋아난 검날에 검은색 검강을 일으켰다. 일시적으로 일으킨 검. 오래 유지하지 못 한다. 기꺼해야 5초가 한계다.
“헉!”
놀란 지성오가 다급히 몸을 비틀어 검을 피했다. 그 와중에도 기다란 꼬리로 내 무릎을 휘감아 끌어당겼다. 균형을 잃은 나는 그대로 바닥에 쿵 쓰러졌다.
“검강이라…. 순간적으로 식겁했다.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정말 검강이라고 믿을 뻔했군. 크크.”
내 등위에 올라탄 지성오가 입을 확 벌리더니 내 팔을 잡아 씹었다.
콰직! 콰지직!
-아, 안 돼…! 어떻게 되먹은 악력이야! 너무 세잖아!
갑옷이 부서지고 오른 팔이 뭉개진다. 나는 이를 악물며 새어 나오는 비명을 참았다.
천마신공을 이용해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등위에 올라탄 지성오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마키나! 갑옷의 형태를 가시로 바꿔!’
-에잇!
삐죽삐죽.
갑옷 표면에 강철 가시가 솟아 지성오를 공격한다.
지성오는 조금의 반응도 없었다. 갑옷 가시가 지성오의 가죽을 뚫지 못한 것이다. 지성오는 기어코 내 오른팔을 전부 뜯어내 씹어 먹었다.
“끄억. 이 상태에선 인육이 맛있단 말이지. 특히 넌 내가 먹어본 인간 중에서 순위권에 들 정도로 맛있었다. …분명 내장도 맛있겠지. 기대되는군.”
-꺄악! 어떡해! 너 팔이…!
‘연기 하지 마.’
-아, 들켰어? 헤헤.
‘마키나. 내 마나를 전부 써도 좋으니 출력을 높여. 가능하지?’
-정말 다 써도 돼?
‘써.’
-한계 돌파! 갑니다!
내 안에 있던 마나들이 마키나에게 확 빠져나간다. 동시에 슈트가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아카데미의 구원자] 세계의 나는 다른 건 몰라도 마나 하나에는 자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마나 수련을 집중적으로 해왔다.
슈트의 힘으로 몸을 일으킨다.
“어, 어어어?”
당황한 지성오가 입을 확 벌리더니 투구를 씹으려고 했다.
‘씹으려면 처음부터 머리를 씹었어야지. 뭐, 머리를 씹는다고 해도 내가 죽을 일은 없었겠지만.’
콱! 콰콰콱!
팔을 씹었던 아까와 달리 투구는 멀쩡했다. 슈트의 내구도 또한 높아진 것이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하나 남은 왼손으로 용권을 사용했다. 내 주먹은 정확히 지성오의 가슴에 박혔다. 그러나 아쉽게도 끝내지는 못했다.
“커어어억!”
랩터가 뒤로 날아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놈의 입에서 피가 울컥 나왔다.
‘쯧. 이제 마나가 없어서 천마신공은 쓰지 못하는데….’
그냥 패기로 했다. 지금 내 슈트의 성능은 그것만으로 충분하게 할 것이다.
지성오에게 가까이 다가는데, 지성오가 돌연 벽에 몸을 부딪쳤다. 벽이 부서지고 하늘이 보였다.
“이 수모는… 나중에 갚겠다! 그동안 그 몸뚱이나 잘 지켜라! 내가 네놈을 뼈한조각 남기지 않고 씹어 먹을 테니!”
입에서 피를 흘리는 랩터가 뒤뚱거리며 밖을 향해 뛰었다.
자살? 아니다. 지성오의 육체가 익룡으로 변하더니 그대로 하늘을 향해 날아간다.
-뭐야. 익룡으로 변신할 수 있었어? 이상한 능력이네!
“완전 회복.”
몸이 회복된다. 지성오에게 먹혔던 오른팔이 순식간에 재생하고, 비었던 마나가 차오른다. 촤르르륵. 슈트가 다시 오른팔을 감쌌다.
‘마키나. 슈트의 지금 출력은 언제까지 유지되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앞으로 15분 정도?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군.’
부서진 벽을 향해 뛰었다. 슈트의 힘으로 순식간에 10M 높이까지 치솟았지만, 만유인력에 의해 내 몸은 당연히 아래로 떨어진다.
“카카카카! 멍청한 새끼! 날개도 없는 놈이 하늘을 날려고 해? 건방진 것도 정도가 있다!”
지성오는 도망가다 말고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며 아래로 추락하는 나를 비웃었다.
‘마키나. 날개.’
-에휴. 내가 무슨 만능 고양이인 줄 알아? 날개한다고 날개가 뿅하고 나타날 리가… 있네?
마키나의 능력인 기계화.
슈트의 일부를 총으로 만들 수 있다면, 당연히 날개도 만들 수 있다.
내 등 뒤에 강철로 이루어진 날개가 나타났다. 삐죽삐죽하게 생겼는데 겉모습만 날개와 비슷할 뿐이지, 실제로는 제트엔진 부스트에 가깝다.
우우우웅!
내 몸이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깜짝 놀란 지성오가 날갯짓하며 도망치려 했다. 느렸다. 감히 파충류의 피막 따위가 제트 엔진을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우습기만 했다.
순식간에 지성오에게 날아가 그 뒷덜미를 붙잡았다.
‘궁극기 온! 대미장식이다!’
공중에서 한차례 돌고 지상을 향해 떨어진다.
“메카 슬램!”
나는 마음속으로 마키나에게 명령했다. 속도를 더 높여라. 최대한의 속도로.
-이 이상 더 높이면 너도 위험한데?
하라면 해라.
-아! 나도 몰라 죽어도 날 원망하지 말라구!
등의 제트 엔진이 굉음을 내며 최대한의 출력을 내렸다. 나는 지성오와 함께 아스팔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물론 지성오가 내 밑에 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충격음과 함께 먼지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충격파는 사방으로 뻗어나갔고, 아스팔트 한가운데는 작은 크레이터가 새겨졌다.
300M가 넘는 높이에서 아스팔트에 꽂힌 지성오는 인간 상태로 돌아왔는데 처참한 꼴이었다. 깨진 그릇처럼 몸이 박살 났다. 피와 내장이 흐르고 살과 뼛조각이 사방에 흩어졌다.
『카르마: 선(善)이 1 상승합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비명을 지르듯 욱씬거렸다. 입안에서 피가 차올랐다. 땅으로 떨어지면서 발생한 충격파는 슈트가 온전히 막아주지 못했다.
물론 슈트도 정산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에 금이 갔다.
찰칵.
셔터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올리니 웬 30대 초반의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날 찍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딸국질을 하더니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저, 저기 이름이 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두려움이 서린 눈동자다. 그런데 도망치지 않고 날 찍고 있다. 약간 기가 찼다.
‘마키나. 기계음으로 음성 변조.’
-예썰!
“나는 적광이다.”
“저, 저는 히어로매니지먼트에서 일하는 히어로 매니저 강수열입니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명함을 스윽 봤다. 받지는 않았다. 굳이 남자 새끼의 명함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나는 히어로가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기 죽은 건 A급 빌런인 지성오지요? 적광 님은 다크 히어로가 아니십니까? 저는… 아니, 저희 회사는 적광 님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다크 히어로.
이 세상에선 히어로 협회에 속하지 않고 히어로 활동을 하는 히어로를 말한다.
대부분의 다크 히어로는 과격하기 짝이 없어서 공식적으로는 빌런으로 낙인 찍히지만, 시민들은 다크 히어로를 또 다른 영웅이라며 찬양한다.
“필요 없다.”
“그, 그러지 마시고.”
나는 그를 무시하고 제트 엔진을 가동했다. 내 몸이 하늘 위로 솟구쳐 날아가기 시작한다.
“적광 님!!!”
김수열이 뒤에서 큰 소리로 날 불렀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CCTV와 사람이 없는 산으로 날아간 나는 곧장 인벤토리에서 공간 이동 주문서를 꺼내 기숙사로 돌아갔다.
“변신 해제.”
스톰브레이커가 내 몸에서 떨어지고, 마키나가 빙의를 풀었다. 60cm의 작은 인간이 된 마키나가 내 주위를 두둥실 떠다녔다.
“저기 말이야. 그 사람이랑 같이 일하는 것도 좋지 않아? 히어로 매니저가 있으면 여러모로 편하잖아. 다크 히어로라고 해도 비공식적으로 지원 받을 수 있고.”
“그딴 놈이랑 엮이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리고 말했잖아. 다크 히어로 놀이라고.”
스트레스 해소.
그리고 카르마 선(善)을 꾸준히 쌓기 위한 작업.
이번에 무려 카르마 선(善)을 2포인트나 얻었다.
“그래도 아깝잖아. 그 공룡 놈의 현상금은 무려 120억이었다고! 너도 아깝지? 응? 120억이라고! 건물만 몇 개야!”
“그깟 푼돈. 관심 없어.”
소파에 앉았다. 아직도 몸이 욱씬거렸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난 관심 있다고! 난 보상이 필요해! 얼마나 내가 열심히 널 도와 줬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보상을 주면 앞으로 내가 더 열심히 널 도와줄 수 있어! 우린 파트너 잖아? 응?”
노예가 언제 파트너가 됐는지 모르겠다.
마키나는 포기하지 않고 내 옆에서 자꾸 쫑알댔다. 몇 번 협박하면 당장은 조용해지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귀찮게 굴 것이다.
“자.”
정령옥 하나를 소환해 던졌다. 간식을 본 강아지처럼 두 눈을 커진 마키나는 정령옥이 떨어진 곳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정령옥! 맛있는 정령옥!”
바닥에 떨어진 정령옥을 주워 헐레벌떡 입안에 집어넣는다. 마키나의 뺨이 볼록 튀어나왔다. 정령옥을 사탕처럼 핥아 먹는 것이다.
“흐흥. 흐흐흥~”
마키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마냥 행복해 보였다.
‘정령옥이 그렇게 맛있나?’
정령옥 하나를 입에 넣었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퉷하고 뱉었다.
그러고보니 옛날에 정령강령 상태로 정령옥을 먹었던 게 기억난다.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맛있긴 했던 것 같아.’
마키나가 다다다 뛰어와 내가 뱉은 정령옥을 작은 두 손으로 낚아챘다.
“이건 내 꺼야!”
“내가 먹던 건데 더럽지도 않냐?”
“더, 더러워도 씻으면 돼! 고작 그 이유로 정령옥을 포기할 순 없어.”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개똥에 정령옥을 박아 넣으면 네가 먹을까?”
마키나는 큰 충격을 받은 얼굴로 울상을 지었다. 두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씨. 씻으면 돼! 그리고 진짜로 그럴 거 아니지? 진짜로 그러면 아줌마한테 네가 못살게 굴었다고 이를 거야!”
“농담이지 농담. 자, 하나 더 먹어라.”
정령옥을 던져주자 마키나가 환하게 웃었다. 마키나도 정령이다. 정령옥을 먹으면 조금씩이지만 강해진다. 다만 일반적인 정령이 아니라서 그런지 극적인 변화는 없다.
참고로 천둥부엉이 모카는 정령옥을 꾸준히 먹어서 그런지 요새 상급의 경지를 엿보고 있다.
나는 TV를 켰다.
TV 화면 속에서는 뉴스 속보로 ‘적광’에 대한 것이 방송되고 있었다.
???
한국 히어로 협회 집행 4부의 집행부장인 고유림은 부하로부터 서류 한 장을 받았다.
서류에는 요즘 한참 떠들썩한 적광에 대한 정보였다. A급 히어로이자 ‘골드 레이디’라는 이명을 가진 고유림은 눈살을 찌푸렸다.
서류에 대부분이 공백이었기 때문이다.
“이거 왜 이래? 기본적인 정보도 없잖아.”
“없는 걸 어떻게 합니까. 그놈 철저하게 자신의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전투 흔적에서 적광의 혈액을 발견했다며? 게다가 C급 빌런인 박설을 강간하고 그 정액이 채취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최소한 이 서류의 절반 이상은 채워야지.”
“그거에 대한 정보도 적혀 있지 않습니까. 그 뒤쪽에.”
“이 내용을 나보고 믿으라고?”
“그게 사실입니다. 아마 어떤 특수한 능력을 가진 모양입니다.”
고유림은 다시 서류에 시선을 떨궜다.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혈액과 정자를 통한 유전자 검사 결과였는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적광의 유전자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더욱 정확하게 말해서 살아 있는 생물의 것이 아니다.
마치 유전자 자체에 장난을 쳐놓은 것 같았다.
혈액을 살펴보면 적혈구의 모습이 마치 악마의 얼굴처럼 생겼고, 정액의 정자는 광대의 얼굴 모양이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적광의 정체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나마 놈이 다크 히어로라서 다행아닙니까.”
“다크 히어로? 개소리 하지 마. 놈은 박설을 강간했어.”
“박설도 빌런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박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박설 입장에선 다행이 아닐까요?”
“다행은 무슨. 난 강간당할 바엔 차라리 죽었을 거야. 상부는 뭐래?”
“강간 사실은 공표하지 말랍니다.”
“놈을 다크 히어로로 만들어 이용할 모양이네.”
“설령 대중에게 알린다고 해도 안 믿을 겁니다. 거기에 강간당한 게 하필이면 빌런인지라…. 여론은 여전히 다크 히어로에게 좋게 돌아갈 겁니다.”
이 세계의 평범한 시민들은 빌런에게 시달렸다. 빌런이 죽고, 강간당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시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특히나 빌런 집단인 오피드는 살인 청부는 물론이고 어린아이 납치까지 하는 극악한 놈들. 시민 중 누구도 그들을 동정하지 않는다.
“다크 히어로는 개뿔. 이놈은 빌런이야. 빌런 등급이랑 현상금은 정해졌어?”
“예. 빌런 등급은 B. 현상금은 60억입니다.”
“적당하네.”
적광이 죽인 지성오는 A급 빌런이지만, 순수 실력은 B급에 불과하다. 그런 지성오를 죽였으니 적광은 B급에서 시작이다. 나중에 등급이 오를지 몰라도 지금은 B급이 적절하다.
“어떻게 합니까?”
부하가 물었다. 그녀가 속한 집행 4부는 적광을 맡기도 했다.
“어쩌긴. 아무 단서도 없잖아. 일단 적광은 내버려두고 다른 일부터 하자.”
“네. 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