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933 - 933. 아카데미의 구원자 (713/2,000)

〈 933화 〉 933. 아카데미의 구원자

요즘 내 일상이 약간 변했다.

낮에는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받고 저녁에는 일이 없을 시 다크 히어로 활동을 했다. 주로 하는 일은 빌런을 찾아내 죽이는 일이었다.

『이름: 성유진

근력: C+ 체력: B- 민첩: B- 내구: C- 마나: A-

특성: 정령안(S)

스킬: 정령계약(A) 정령강령(A) 역장(C+) 검술(B+)

카르마: 선(善) 17』

자잘한 놈을 죽이는 건 잘 안 오르는 편이긴 한데, 어쩔 수 없었다. 위험한 놈은 잘 숨는다. 그놈들을 찾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까놓고 말해서 원작 지식에 의존해 빌런을 찾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현재 나는 빌런을 찾는 일을 마키나에게 맡기고 있다. 기계 정령인 마키나는 사이버 망령이나 다름없다. 원한다면 사이버 세계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무적 같아 보이지만, 한계는 존재한다. 이 세계의 빌런들은 인터넷에 크게 의존하지 않으니까.

“아, 힘들어!”

오늘도 사이버 세계에서 정보를 수집하던 마키나가 불만을 토했다.

“힘들다구! 유진! 차라리 히어로 매니저랑 계약하자! 걔들이 알아서 질 좋은 빌런 정보를 가져올 거야! 돈까지 벌 수 있다구!”

“안 한다니까. 그리고 그놈들이 물어오는 것들 대부분은 던전이나 몬스터 처리에 관련된 일일걸. 그건 효율이 별로야.”

“효율은 지금이 더 별로야! 나 혼자선 한계가 있다구!”

“뭣하면 히어로 협회 사이트를 해킹하던가.”

“나도 당연히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 방화벽이 장난 아니야. 나도 뚫기 힘들어.”

이 세계의 각성자 중에는 사이버 세계와 관련된 특성을 가진 각성자가 존재한다. 마키나도 만능은 아니라는 소리다.

‘마키나가 징징거리는 것도 지겹고…. 괜찮은 히어로 매니지먼트를 알아봐야 하나?’

히어로 매니지먼트는 내가 다크 히어로라도 계약할 것이다.

다크 히어로도 히어로다! 라는 듣기 좋은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인기 있는 다크 히어로는 평범한 히어로 보다 훨씬 돈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계약하지 않은 척하겠지만.

“찾았어!”

“어딘데?”

“강남! 지금 강남에서 강도 사건이 발생했어!”

“언제 발생했는데?”

“정보가 올라온 지 1분도 안 됐어.”

“할만하군.”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악마의 광대 가면]을 합체한 스톰브레이커를 갑옷으로 변화해 몸에 걸치고 마키나를 빙의시켰다. 붉은 악마같은 투구와 사이버틱한 몸체. 다크 히어로 ‘적광’이 되었다.

공간 이동 주문서를 찢어 서울로 이동했다.

‘마키나 투명화. 제트 엔진은 최대한 조용히.’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하늘을 날았다. 빌딩 사이를 비행하는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오른쪽! 왼쪽! 다시 오른쪽!

마키나의 정확한 안내에 따라 강도 사건이 발생한 곳에 도착했다. 은행 앞에 검은색 차량이 모여 입구를 막고 있었다. 은행 앞에는 시민들이 모여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은행을 주시하고 있었다.

‘천안(天眼) 발동.’

천안을 사용해 은행 내부를 투시한다. 강도 8명이 은행의 돈을 털고 있었다. 위험해 보이는 놈은 없다. 나는 기척을 숨기며 은행 안으로 걸어갔다.

은행원은 대충 30명 정도로 바닥에 엎드린 채로 벌벌 떨고 있다. 시체 4구가 보인다. 은행에 경비를 서고 있던 히어로로 보인다.

-도시 카메라를 해킹해서 알아냈어. 약 1분 뒤에 경찰과 히어로가 도착할 거야.

‘1분이면 충분하지.’

은행 안으로 몰래 들어간 나는 가장 구석에 있는, 다른 강도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놈에게 다가갔다. 왼손으로 입을 막고, 오른손등에서 검을 빼내 목을 찔러 조용히 처리했다. 시체는 조심히 바닥에 내버려 두었다.

“돈! 돈! 빨리 챙겨!”

“1분 안에 끝내! 이것만 성공적으로 끝내면 우린 부자가 될 수 있어!”

“거의 다했어! 재촉하지 마! 신경 거슬리잖아, 시발!”

흥분한 강도들이 소리쳤다. 그들의 탐욕으로 그득한 시선은 돈 가방에 꽂혀 있었다.

‘감지 계열 능력을 가진 놈은 없는 모양이군.’

일이 편해지겠다.

3명째의 강도를 잡아 목에 검을 쑤셨다.

“니들 아까부터 조용히 뭐해. 빨리 일하라고…?”

강도 한 놈이 내 쪽을 쳐다봤다. 나는 여전히 투명화 상태를 유지 중이었으나, 죽은 강도는 아니었다.

“씨발! 뭐야!”

강도가 소리쳤다. 다른 강도들도 고개를 홱 돌려 내 쪽을 쳐다봤다.

“죽었다고?!”

“뭐, 뭔가 있다!”

“뭐해, 병신들아. 의심스러우면 일단 갈겨!”

강도들이 총을 쥔 손으로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슈트에 총알이 부딪쳐 튕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투명화를 해제한다.

“적광…!”

“이 새끼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강도 중 한 명이 내 등 뒤를 노렸다. 그의 주먹 쥔 양손이 돌덩어리로 변하더니 내 머리를 내려쳤다.

까앙!

소리만 요란했다. 강도는 마나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어중이떠중이다. 능력만 각성한 일반인. 딱 그 수준이다.

주먹을 쥐고 놈의 머리를 후려쳤다. 머리가 터지며 피와 뇌수가 후두둑 떨어진다.

“미, 미친…!”

“네가 그러고도 히어로냐!”

강도들이 주춤거렸다.

“나는 내가 히어로라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들에게 말했다. 물론 기계음으로 변조되어 내 진짜 목소리는 아니다. 뚜벅뚜벅 걸으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강도에게 걸어갔다.

“오지 마! 이 인질이 안 보여?!”

“꺄아아아악!”

강도가 여자 은행원을 인질로 잡았다. 나는 재빠르게 여자를 훑어봤다. 화장은 진하다. 허나 내 눈을 속일 순 없다. 미녀가 아니다. 내 발걸음을 붙잡지 못했다.

“비, 빌어먹을!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진짜 죽인다?!”

강도의 총구는 정확히 은행원의 관자놀이를 겨눴다.

“말했을 텐데. 나는 히어로가 아니라고.”

철컥!

내 오른손등에서 검이 튀어나왔다.

정말 인질을 죽여도 상관없었다. 진심으로 다크 히어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죽이는 것도 아니니 내게 오는 페널티는 없다. 뭣하면 인질과 함께 죽여도 괜찮다. 페널티가 있겠지만 감당할 수 있다.

“으, 으아아아!”

공포에 질린 강도가 인질을 내팽개치고 도망쳤다. 은행 강도라고 해서 인질을 막 죽이는 극악한 놈들은 별로 없었다. 필요에 의해 인질을 죽이는 것인데, 그 필요가 없으니 인질을 버렸다.

“도망치게 내버려둘 것 같나.”

강도에게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하반신과 상반신이 분리된다. 피와 내장이 바닥을 가득 채웠다.

“우웨에에에에엑!”

강도 중 한 명이 구역질했다. 참고로 강도들은 모두 검은색 복면으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었다.

쿵!

강도 중 한 명이 무릎 꿇었다. 강도들이 당황하는 것으로 보아 리더인 모양이다.

“저, 적광! 살려줘! 자수할게! 돈도 포기하고 자수할 테니 살려줘, 제발…!”

목숨 구걸.

현명하다면 현명한 대처였다. 은행을 털어봤자 목숨이 없으면 돈을 누리지도 못한다. 근처에 있던 강도들도 리더를 따라 무릎 꿇고 내게 목숨을 구걸했다.

“정말로 네 잘못을 인지하고 있는 거냐?”

“저, 정말이야! 다시는 하지 않을게! 히어로와 경찰이 오면 바로 자수할 거야! 믿지 못하겠으면 지금 당장 인질들을 풀어줘도 좋아!”

강도 리더가 랩을 하듯 다급하게 말했다. 나는 그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강도 리더는 복면까지 벗었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얼굴은 공포로 질려 있었다.

“약속할게. 다시는 이런 일은 하지 않을 거야. 앞으로 성실하게 일하면서 돈을 벌겠어. 그러니 제발 살려줘…!”

“그렇군. 그 말은 꼭 지키길 바란다.”

우우웅.

검에 검은색 검기가 코팅된다. 마치 메케한 연기처럼 위로 상승하다가 희미해져 사라진다.

“사, 살려준다고 했잖아…!”

“그런 말 한 적 없다. 너희는 죽어야 내게 도움이 된다.”

검을 휘둘렀다. 피와 비명이 난무했다. 도망치려 했던 강도도, 목숨을 구걸하는 강도도 예외 없이 전부 죽였다.

『카르마: 악(惡)이 1 상승합니다.』

『카르마: 악(惡)이 1 상승하는 대신 선(善)이 1 차감됩니다.』

‘…망할.’

예상과 달랐다. 카르마 선이 오를 거라 생각했는데 악이 오르면서 선이 낮아졌다. 그 이유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은행 강도들은 진심으로 반성한 것이다.

-왜. 일이 잘 안 풀렸어? 뭔지 모르겠지만 빨리 도망치는 게 좋을걸.

콰앙!

천장에서 황금빛이 떨어지더니 내 몸을 후려쳤다. 뒤로 날아가면서 상대를 확인한다.

몸매가 드러나는 파란색 쫄쫄이 옷을 입은 여자가 있었다. 가슴은 F컵으로 추정되며 허리는 잘록하고 엉덩이는 탱탱하다.

이마를 깐 긴 블론드 헤어스타일의 미녀다. 회장의 비서처럼 깔끔한 얼굴이다.

파란색 쫄쫄이 옷의 팔과 등 부분에는 에너지드링크로 유명한 음료수의 로고가 그려져 있다. 아마 홍보비로 매달 수 억은 받겠지.

-와! A급 히어로 등장!

마키나는 시키지도 않은 상대의 프로필을 띄웠다.

A급 히어로 고유림.

한국 히어로 협회 집행 4부의 집행부장이며, 피스타 히어로 매니지먼트와 계약한 히어로다.

별명은 골드 레이디. 그녀의 눈부신 미모와 뛰어난 능력으로 인해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히어로 중 한 명이다.

골드 레이디는 시체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인질들을 향해 손짓했고, 인질들은 헐레벌떡 은행 밖으로 도망쳤다.

“적광! 다크 히어로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범죄는 여기서 끝이야. 널 잡아 법의 심판대에 올려주겠어.”

땅바닥에 처박혔던 나는 몸을 일으키며 고유림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고유림

근력: A- 체력: B 민첩: A 내구: B- 마나: A+

특성: 천상의 광명(SS)

스킬: 광자화(S), 전투감각(A+), 태양(A)

호감도: 4』

『천상의 광명

특성 랭크: SS

빛을 사용할 수 있다.

주위가 밝을 때 능력치가 소폭 상승한다.

마력을 적대한다.』

‘이 정도 능력치면 A급 히어로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지. 싸우면 내가 100% 진다.’

눈앞이 번쩍거렸다.

골드 레이디가 코앞에 있었다. 그녀는 내 양팔을 꽉 잡았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황금빛이 내 몸을 구속한다. 힘을 줘도 빛을 떨쳐낼 수 없었다.

“저항하지 마. 너도 팔다리가 잘리고 싶진 않잖아?”

“…냄새가 난다.”

“냄새?”

골드 레이디가 코를 킁킁거렸다. 대번에 눈살을 찌푸렸다. 냄새라곤 피 냄새와 내장에서 풍기는 역겨운 오물 냄새뿐일 테니까.

“처녀의 냄새가 난다. 너는 처녀로군.”

“하… 이 개새끼가!”

골드 레이디가 내 머리를 후려쳤다. 약간이지만 투구 모양이 찌그러졌다. 역시 한 성깔 하는 여자다.

“너, 잡아가기 전에 얼굴 좀 확인해보자. 갑자기 확 궁금해지네.”

그녀의 손이 내 투구를 붙잡았다. 그녀의 손에서 황금빛이 일어난다.

-아아아앗! 엄청난 고열이야! 지금 투구가 녹고 있어! 이대로면 40초도 못 버티고 투구가 녹아내릴 거야!

‘상황 설명 고맙군.’

-뭐 그리 여유로운 거야?! 이대로면 바로 정체가 들킨다고!

‘여유로우니까 여유롭지. 싸워서 이기는 건 힘들어도 도망치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공간 이동 주문서를 찢으면 된다. 물론 시선을 피해서 찢는 게 좋다. 지금 공간 이동 주문서가 알려져 봤자 좋을 것 하나 없다.

‘1회차 때처럼 공간 이동 주문서에 대한 대응이 나올 수 있으니까. 우선은 이 구속에서 벗어나 볼까.’

천심(天心)을 발동한다.

나를 구속하던 황금빛이 흩어지고, 내 투구를 잡아 녹이던 골드 레이드의 손이 미끄러진다.

“엇?”

골드 레이디가 당황한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양 손바닥을 앞으로 뻗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신장(天魔神掌).

쫄쫄이에 감싸인 풍만한 가슴을 손바닥으로 쳤다.

“크앗윽?!”

기습의 일격에 대응하지 못하고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가슴이 아주 탄력적이군. 마음에 들어. 그럼 안녕이다. 다음에는 보지도 만져주지.”

“이 시발 새끼가 진짜!”

고유림이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빛줄기가 나를 노린다.

‘가속. 찰나.’

옆으로 피하며 제트 엔진을 가동해 바깥으로 돌진했다. 쨍그랑! 유리를 박살 낸 나는 하늘을 날았다. 뒤에서 고유림이 황금빛에 감싸여 나를 쫓는다.

‘마키나! 최대 출력이다!’

-이미 최대 출력이야!

소닉붐을 일으키며 도망갔다. 다행히 골드 레이디는 날 쫓아오지 못했다. 빛을 다룬다고 하나, 그녀는 인간이다. 빛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건 불가능했다. 그게 가능했다면 그녀는 이미 세계 최강이었겠지.

적당한 곳에서 공간 이동 주문서를 찢어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골드 레이디… 새끈한 여자야.”

그 가슴. 또 만지고 싶다.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