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4화 〉 934. 아카데미의 구원자
빠드드득!
골드 레이디는 이를 갈았다. 경찰과 함께 뒤늦게 은행에 도착한 그의 부하인 김서준은 화난 그녀의 얼굴을 보고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부, 부장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됐어. 너도 최대한 빠르게 움직인 거 알고 있으니까.”
김서준은 주위에 널려 있는 시체를 둘러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도들은 역시 전부 죽었군요. 인질은 무사합니까?”
“경비원은 죽긴 했지만, 인질들은 전부 무사해.”
“역시 그렇습니까….”
다크 히어로 적광은 괜히 다크 히어로 취급받는 게 아니다. 막무가내로 움직여도 결과는 지금처럼 상당히 좋게 나온다. 거기에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적광에 대한 여론도 좋고, 협회 상부도 적광을 좋게 보고 있다.
적광은 실력과 더불어 행운도 받쳐주는 놈이었다. 흔히 말하는 난 놈이다.
“부장님. 아까 적광을 쫓아가는 거 봤습니다만… 놓치셨습니까?”
“놓쳤어. 최대 속도는 전투기에 맞먹을 정도로 빨라. 준비 없이는 잡기 힘들어.”
“곤란하게 됐네요. 그 준비하는 것도 원한다고 바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속도는 전투기 수준. 투명화도 가능하니…. 적광을 잡는 건 진짜 힘들겠습니다.”
김서준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잡아야 해. 그 새끼는 다크 히어로도 아니야.”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이것 봐.”
골드 레이디가 던진 노트북을 받아든 김서준은 화면을 빤히 직시했다. 은행 내의 CCTV 영상이다. 다시 말해 적광이 강도를 무자비하게 죽이는 영상.
“벌써 영상을 확보하셨습니까? 역시 부장님이십니다. 빠르시군요.”
“헛소리는 됐고. 보기나 해.”
“……적광은 강도가 인질을 잡았는데도 거침없이 행동하는군요. 아예 인질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그 이후도 문제야. 강도들은 포기했어. 무기를 버리고 목숨을 원했지. 하지만… 그 새끼는 기어코 강도들을 전부 죽였어. 반항하지 않는 인간을 도륙했지. 저건 다크 히어로가 아니라 살인마야.”
“…네. 그 말대로입니다. 적광은 위험합니다. 범죄학자의 말로는 적광은 언제 선을 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선을 넘는 순간…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것이고요.”
“상부도 알고 있지? 당장 그 새끼 범죄 등급이랑 현상금부터 올리라고 해.”
“몇 번이나 건의하고 있습니다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습니다. 요즘 빌런과 몬스터, 던전이 늘어나는 것에 비해 히어로들이 부족하니… 적광같은 다크 히어로를 이용하려는 속셈이죠.”
“미친 새끼들. 이용할 걸 이용해야지.”
골드 레이디는 혀를 쯧쯧 찼다.
김서준은 시선을 살짝 내려 골드 레이디의 가슴팍을 확인했다. 몸에 딱 달라붙는 타이즈 옷이라 젖가슴의 윤곽이 확실해서 민망했다.
“뭘 봐?”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영상을 보니 적광에게 공격당하지 않았습니까? 검은색 기운을 보니 마력 같은데…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날 밀어내려고 한 공격이라 별로 아프지도 않았어. 그리고 그거 마력 아니야.”
“아니라고요?”
“비슷하지만 달라.”
그리고 1시간 뒤. CCTV 영상은 편집되어 세상에 공개되었다. 강도의 인질이었던 은행원들이 증인이었기에 CCTV 영상을 시민들에게 숨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침대에 누운 나는 잠들기 전에 인터넷을 확인했다.
생각했던 대로 인터넷은 ‘적광’으로 떠들썩했다.
[적광이야 말로 진짜 히어로다.
적광이 빌런 새끼들을 거침없이 죽이니 속이 시원하다. 요새 빌런 놈들 날뛰는 소식 많아서 기분 더러웠는데, 적광이 등장하자 빌런 소식이 확 줄은 게 실감 된다.
적광은 매우 잘하고 있다. 범죄 일으키는 사회의 쓰레기들은 전부 죽여 없애야 한다.
나는 적광 지지한다.
무명1: 글쓴이처럼 살인마 새끼 지지하는 새끼도 살인마임.
무명2: 난 글쓴이 이해함. 진짜 요즘 적광 나타나고 나서 빌런 숫자 줄었음.
무명3: 머리로는 안 된다고 알고 있는데, 가슴으로는 적광을 지지하게 된다.
무명4: 솔까말 웬만한 히어로보다 적광이 더 나음.
무명5: 오늘 공개된 영상 못 봤냐? 적광 이 새끼 인질 구할 생각 1도 없었음. 강도가 인질 죽이든 말든 행동했을걸.
무명6: 근데 결과적으로 인질 한 명 안 죽었으니 됐지. 그리고 인질보다 빌런 새끼 죽이는 게 더 중요하지. 인질 때문에 살려주면 100% 나중에 또 인질극해서 피해 더 발생한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다!
무명7: 윗새끼 싸이코 새끼임.
무명8: 나는 오늘 어떤 부작용, 조건 없이 적광으로 각성한다.]
[적광 강간마 새끼
적광이 강간한 여자 빌런만 벌써 4명이다.
그것도 전부 미녀만 강간하고 죽이지는 않는다. 더 웃긴 건 못생긴 여자는 가차 없이 죽여버린다는 점이다. 적광 이 새낀 미친놈이 확실하다.
그리고 이번에 골드 레이디 찌찌 만지는 거 봤냐? 이 새끼 100% 일부러 그랬다는데 내 장을 걸 수 있다.
무명1: 솔직히 킹부러임
무명2: 나도 골드 레이디 찌찌 만지고 싶다.
무명3: 나는 오늘 어떤 부작용, 조건 없이 적광으로 각성한다.]
[적광 님을 지지합니다.
2년 전에 빌런 조직인 오피드에게 아들이 납치당했었습니다. 경찰에 신고하고, 히어로 협회에 아들을 구해달라고 부탁해도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따로 히어로 매니지먼트에 찾아가서 의뢰도 했습니다. 소용없었습니다. 누구 한 명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년 전에 아들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중국의 빌런 조직에 팔려가 세뇌와 훈련을 받다가 죽었습니다. 그 시체는 뒷골목에 아무렇게나 버려졌습니다. 아들은 1년 만에 시체가 되어 제 품으로 돌아온 겁니다.
적광 님이 이 글을 보실지는 모르겠지만… 꼭 적광 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오피드를 없애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성오 씹어먹을 새끼를 죽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빌런 새끼들은 죽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빌런 새끼들을 죽여주십시오. 저같은 피해자들은 빌런 새끼들이 죽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명1: 경찰이나 히어로 협회나 현상금만 매길 줄 알고 진짜 무능함. 나도 적광 지지합니다.
무명2: 적광도 범죄자가 맞긴 한데… 이런 사연 들으면 적광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무명3: 저희 부모님도 빌런한테 강도를 당했습니다. 그 새끼들은 현재 감옥에서 잘 먹고 잘살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 엄마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진짜 적광이 그 새끼들도 죽여줬으면….
무명4: 빌런 새끼들은 전부 사형 때려야 함. 중국이나 미국에선 사형인데 유독 한국은 빌런에게 관대함. 이게 나라냐.
무명5: 적광이 우리 반 일진 새끼도 죽여줬으면.
무명6: 이번에 오피드에 납치되었던 아이들도 적광덕분에 구출되었습니다. 적광이 없었으면 그 아이들이 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저도 적광을 지지합니다.
무명7: 나는 오늘 어떤 부작용, 조건 없이 적광으로 각성한다.]
인터넷의 여론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광에게 유리했다.
유명한 언론사 기사를 봐도 적광을 비판하면서도 은근히 옹호하는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적광이 사람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기 때문이지.’
범죄자에게 조금의 자비도 없다.
모조리 사형.
안 그래도 범죄율이 높고, 몬스터의 존재로 인해 살벌하기 그지없는 이 세상에서 적광의 존재는 시원한 탄산음료 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골드 레이디의 소속이 거기… 피스타 히어로 매니지먼트던데. …나도 가입할까?’
골드 레이디와 마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과 같은 소속인 나를 봤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상상만 해도 짜릿해진다.
‘나쁘지 않아. 마키나가 물어오는 정보력에도 한계가 있고…. 특수한 아이템 같은 것도 받을 수 있을 테고.’
여차할 땐 계약이고 나발이고 도망치면 그만이다. 매니지먼트에 내 정체를 알려줄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뭐, 섣부르게 판단을 내리는 건 좋지 않겠지. 외려 귀찮아질 수도 있으니까. 매니지먼트 계약은 천천히 생각해봐야지.’
스마트폰을 옆에 내려두고 두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그동안 따먹었던 여자 빌런들이 떠오른다. 다시 따먹고 싶다. 근데 그 여자들은 지금 현재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다.
‘…감옥에 쳐들어가서 따먹으면 되지 않을까? 덤으로 감옥에 갇혀 있는 다른 미녀 죄수들도 따먹고…. 생각만 해도 헹복하네. 내일은 새로운 미녀 빌런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
방과 후.
나는 훈련실을 찾았다. 이번에는 류하나가 목적이 아니었다.
훈련실 로비에서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김천우와 마진배가 함께 훈련실 로비로 들어왔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천우는 나를 보고 의외라는 듯이 눈을 떴고, 마진배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예전 생각이 난다. 저번에 마진배에게 까불면 남동생을 죽여버린다고 협박했었다.
“유진아. 설마 우리 기다리고 있었어?”
“너만 기다리고 있었지. 이번 주말에 시간 되냐?”
“이번 주말? 괜찮아. 무슨 일이야?”
“중요한 일.”
김천우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내가 말한 중요한 일이 악마와 관련된 일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잠깐. 천우를 어디에 데려가려는 거지? 성유진.”
“넌 알 것 없어.”
“제대로 대답해라, 성유진!”
“알 것 없다고. 그리고 내가 저번에….”
“자, 자, 그만.”
김천우가 나와 마진배 사이를 끼어들었다.
“진배야. 먼저 훈련실에 가있지 않을래? 난 유진이랑 대화 좀 하고 갈게.”
“…천우. 성유진은 질 좋은 놈이 아니다. 이 녀석과는 되도록 어울리지 않는 편이 낫다.”
“…유진이도 그렇게 많이 나쁜 녀석은 아니야.”
“나쁜 녀석은 아니다라…. 쯧.”
혀를 찬 마진배는 몸을 획 돌리더니 훈련실로 향했다. 김천우는 한숨을 내쉬며 나와 마진배 사이를 번갈아 봤다.
“유진아. 진배랑 무슨 일 있었어?”
“저번에 나대면 남동생을 찾아내 죽여버린다고 했지.”
“…뭐?”
놀란 김천우가 곧 분노한 기색을 내비쳤다. 주먹을 꽉 쥐고 날 노려본다.
“…그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진배를 협박한 거야?”
“마진배. 딱 봐도 말 안 듣는 놈이잖아. 엮이면 귀찮아지니 딱 잘라 말한 것뿐이야.”
“진배가 엮이면 안 되는 일…. 그렇구나. 네 뜻은 알았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말은 심했어. 진배에게 사과해.”
“내가 왜.”
“네가 잘못했으니까. 사정을 제대로 말하면 진배도 용서해줄 거야. 나도 도와줄게.”
“지랄. 그럴 필요 없으니까. 내버려 둬. 그리고 따라와. 둘이서 얘기하자.”
“휴우…. 유진아. 넌….”
김천우가 복잡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나는 그 같잖은 눈빛을 무시하고 적당한 훈련실 안으로 들어갔다. 훈련실 내부라면 누군가가 이야기를 훔쳐 들을 일은 없을 거다.
“김천우. 이번 주말에 우린 백령도로 간다. 경매 초대장은 구해놨으니 모습을 가릴 옷이나 가면이나 구해와.”
“백령도? 경매? 거긴 왜?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줘.”
설명이 적었다는 걸 인정하며 김천우에게 더욱 자세히 설명해줬다.
“백령도에서 열리는 불법 경매에 마인이 몰래 숨어들었다는 정보를 입수했어. 우리 목적은 그 마인이지.”
“마인….”
마인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김천우의 기세가 바뀌었다. 그의 투지에 괜히 나까지 긴장된다.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군. 역시 김천우다.’
그래 봤자 날 이기기엔 훨씬 멀었지만.
“해야 할 말은 다 했으니 주말까지 준비 끝내라. 그리고… 마진배를 비롯해 다른 사람에겐 입 다물어.”
“…알았어. 마인… 반드시 죽여버리겠어.”
김천우는 열정적으로 중얼거리며 마진배가 있는 훈련실로 떠났다.
???
성하리와 최정화는 선박을 타고 백령도에 내렸다. 오늘 열리는 백령 지하 경매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백령 지하 경매는 불법인 만큼 모습을 감출 필요가 있었기에 둘 다 가면을 썼다. 성하리는 늑대 가면을 썼고, 최정화는 화려한 보석이 박힌 나비 가면을 썼다.
“넌 왜 불편하게 드레스를 입은 거야?”
성하리가 어이가 없다는 듯 최정화의 차림새를 지적했다. 최정화는 파티에나 어울릴 법한 남색 드레스를 입은 것이다.
“백령 경매에 참가자들은 못해도 수십 억의 자산가들이야. 격식 있는 장사라고. 너처럼 티셔츠에 청바지 입고 참가할만한 장소가 아니야. 자, 네 드레스도 가져왔으니 갈아입어.”
최정화가 가방을 내밀었다. 성하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필요 없어.”
“어휴.”
최정화는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