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945 - 945. 아카데미의 구원자 (725/2,000)

〈 945화 〉 945. 아카데미의 구원자

“칼레스 선생님! 성유진에게서 떨어지십시오!”

남궁화연이 소리쳤다. 칼레스가 내게 붙어 있는 꼴이 못마땅한 듯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고, 얼굴은 찌푸려진 상태다.

‘설마, 남궁화연이 질투하는 건가.’

입가가 자꾸 떨렸다. 이놈의 인기. 어쩌면 좋을까.

“아이참. 누가 선도부장 아니랄까 봐. 딱히 은밀한 곳을 만진 것도 아니니… 이 정도 스킨십은 괜찮잖아? ”

“안 됩니다. 마루한 아카데미의 풍기가 어지럽혀집니다. 무엇보다 칼레스 선생님은 선생님이 아닙니까. 선생님으로서 선을 지키십시오.”

“정말이지… 선생님도 한 대 치겠네? 알았어. 이제 막 부임돼서 짬 없는 선생님은 물러나야지.”

칼레스가 내게서 멀어졌다.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아카데미의 풍기를 지킨 남궁화연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질투가 아니라 의무감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정령과 건물을 바라봤다. 정령과 건물은 아카데미 본관에서 대충 10분 거리다. 건물 주위에는 나무가 가득했고, 그 옆에는 작은 냇물이 졸졸 흐른다. 본관 표면에는 식물인지 이끼인지 모를 것들이 가득했다.

‘정령은 곧 자연이니, 일부러 자연과 어우러지게 지었겠지.’

13년 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다. 차라리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음산해 보이긴 하는군. 칠대 불가사의니 뭐니 이상한 소문이 돌 것 같긴 해.’

이걸 셋이서 청소한다? 어마어마하게 힘들 것 같다. 그리고 하루 만에 청소하는 건 누가 봐도 불가능하다.

“청소는 힘들 것 같군.”

“그러네. 직원들을 불러서 청소시키면 안 되니?”

“안 됩니다. 직원들 모두 바쁜 상황입니다.”

“청소 전문 업체를 부르면 되잖니.”

“학장님이나 부학장님에게 말씀하십시오. 제겐 권한이 없습니다. 요즘 아카데미의 분위기로는 외부인을 쉽게 불러들이지는 않겠습니다마는….”

“에휴. 그럼 학생들은 동원하는 건? 1학년들은 한가하잖니.”

“학생들의 반발을 사는 건 좋지 않습니다. 칼레스 선생님.”

“요는 반발을 사지 않으면 되는 거잖니.”

칼레스가 요염하게 웃었다. 아카데미 여학생이라면 몰라도 성욕이 한창 폭발할 때의 남학생이라면 조금만 자극해도 노예처럼 부려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까진 제가 참견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학생들의 반발을 너무 많이 사지 않는 게 좋습니다. 아카데미 내에서 학생들의 입김은 제법 엄청납니다.”

“그건 나도 동료 선생님들에게서 들었어. 5년 전에 검무과 교사 한 명이 학생들의 시위로 퇴출당했다며?”

“예. 언론에도 대서특필되었죠. 저를 비롯한 학생들은 그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정령과 건물 입구에서 멈춰 섰다. 나무 문이었는데 박살 나 있었다. 칼레스는 곤란한 듯 비음을 흘렸다.

“이런 곳을 사용하라니… 위쪽은 날 미워하는 걸까?”

“아마 아닐 겁니다. 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란 걸 모르는 거겠죠. 이번에 확인과 청소를 위해 온 것이니… 제가 부학장님께 보고하겠습니다.”

“괜찮은데. 나도 학장님에게 보고할 생각이거든.”

학장과 부학장.

그녀들이 어느 라인에 속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라고 말하고 싶으나, 선도부장인 남궁화연은 애매했다. 옛날부터 선도부 자체가 부학장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원작에서 남궁화연은 부학장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부서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먼지가 가득한 복도가 보였다. 낡아빠진 나무 바닥과 깨진 창문. 분위기는 훌륭했지만, 생활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칼레스의 한숨을 깊어진다.

“정령과 사무실이… 2층에 있네.”

“우선 1층부터 둘러보고 2층으로 올라가죠.”

우리는 남궁화연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꼼꼼하게 살펴봤다.

‘난 아마도 유일하게 정령과 소속이 될 테니까.’

그리고 내가 동아리실로 점찍고 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아카데미 본관에는 동아리실로 사용할 공간이 별로 없다. 무엇보다 본관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아카데미 본관과 떨어져 있어서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섹스 동아리를 만들기엔 여기가 딱 좋아. 정령과 선생도 한 명뿐이고….’

다시 말해 정령과 선생인 칼레스만 잘 꼬시면 섹스 동아리는 어떤 문제도 없이 운영될 수 있다.

1층 강의실에 들어선 우리는 신음을 흘렸다. 잡동사니들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강의실이 쓰레기장처럼 보였다.

“…이게 다 뭐니?”

“쓰레기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쓸만한 물건도 몇 개 보이는군요. 아마 다른 과에서 쓰지 않는 물건이나 처리 곤란한 쓰레기를 정령과에 버린 거로 보입니다.”

칼레스와 남궁화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귀찮음이 확 몰려왔다.

“여길 청소해야 한다고요? 일주일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 같은데요.”

“…나도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어쨌든 강의실이 심각한 건 충분히 알았으니 청소는 나중으로 미루고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덜컹.

쌓여 있던 잡동사니들이 흔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물건으로 향했다.

덜컹덜컹덜컹!

거칠게 흔들리던 잡동사니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와 남궁화연은 담담하게 잡동사니를 쳐냈고, 칼레스는 미끄러지듯이 자연스럽게 움직여 잡동사니를 피했다.

“화연 선배. 아무래도 이 건물은 악령에 씌인 것 같은데요.”

“폴터가이스트. 악령의 짓이겠지. 일이 꼬이는군.”

“흐응. 악령이 쓰인 정령과 건물이라…. 재밌는걸?”

누구 한 명 당황하지 않았다.

악령이나 귀신.

다른 세계에선 초현실적인 무언가 일진 몰라도, 이 세계에선 귀신이나 악령 같은 언데드는 몬스터에 분류된다.

해결법도 간단하다. 악령을 찾아내 죽이면 된다. 그게 영 어렵다면 언데드에게 극상성인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제를 데려오면 된다. 그것도 아니면 전문 엑소시스트에게 아예 의뢰를 맡겨 버리거나.

우리는 덤벼드는 잡동사니들을 전부 쳐내고 밖으로 나왔다.

“선배. 이제 어쩌죠? 그냥 물러나요?”

“폴터가이스트를 사용하는 걸 보니 위험한 악령으로 보이지 않으니 우리가 처리하기로 한다. 칼레스 선생님. 도와주시겠습니까?”

“물론이지. 앞으로 내가 생활할 건물에 정령이라면 몰라도 악령이 있는 건 나로서도 반가운 일은 아니니까.”

그렇게 퇴마가 급조되었다.

나는 심드렁했다. 원작 이벤트가 원래보다 빠르게 진행된 것뿐이다.

1층을 구석구석 확인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

칼레스가 팔짱을 끼고 어딘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천장이었다.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천장.

‘7대 불가사의 중 2개를 벌써 만나버렸군.’

7대 불가사의의 소문을 낸 놈이나, 소문을 들은 놈들은 악령의 존재를 알면서도 내버려 뒀을 것이다. 그편이 더 재밌으니까. 쉽게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아카데미 학생들에겐 나름의 가십거리가 필요했다.

“내가 일할 곳에서 피냄새가 나는 건 최악인데… 기분 나쁘네.”

칼레스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지금까지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오싹한 느낌이 등골을 훑고 지나간다. 남궁화연 또한 얼굴을 굳혔다.

“어머.”

칼레스는 우리의 긴장을 눈치채고 분위기를 풀었다.

“미안해. 나도 모르게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어. 옛날 버릇 때문에 피만 보면 흥분하게 되어버린다니까.”

그녀는 손을 들어 스스로를 달래듯이 뺨을 쓰다듬었다. 스윽스윽. 그녀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풍만한 가슴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만, 아카데미 교사가 되기 전에 하시던 일이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남궁화연이 진지한 기색으로 물었다. 칼레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할 수 없어.”

“…뭐, 알겠습니다. 미심쩍긴 해도 아카데미 교사로 부임했다는 건 학장님께서 신원을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하니….”

남궁화연은 날카로운 기세를 거뒀다.

“얘들아. 제안할 게 있어. 흩어져서 행동하자.”

칼레스가 의견을 말했다.

“흩어지는 건 좋은 의견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남궁화연은 회의적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아니, 좀 더 천천히 생각해보니 칼레스의 의견이 괜찮을 것 같았다. 혼자 있으면 농땡이 부리기 좋으니까.

“화연아. 생각해보렴. 우리가 모여 있으면 악령이 제대로 모습을 드러낼까? 우리에게 당하지 않으려고 더 깊숙이 숨지 않을까?”

“선생님의 말에도 일리가 있군요. 하지만….”

남궁화연의 눈이 나를 바라봤다. 나를 걱정하는 것이다.

“화연이는 유진이를 너무 무시하는구나.”

“무시? 아뇨. 저는 무시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겁니다. 유진이의 능력은 인정하고 있으나… 유진이는 1학년으로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괜찮아. 유진이는 강해. 악령 따위에게 당하지 않아. 내가 장담할게.”

“칼레스 선생님의 말씀이 맞아요. 선배, 전 악령 따위에게 당하지 않아요. 흩어져서 행동하죠. 그래야 더 빠르게 일을 끝낼 수 있을 테니까요.”

남궁화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1층에 걸리는 게 있어. 1층을 한 번 둘러볼게. 유진이는 2층, 화연이는 3층 어때? 마지막 4층을 여유가 되는 쪽이 확인하는 거야. 나도 1층을 둘러보고 바로 4층으로 올라갈게.”

“반대할 이유는 없군요. 그렇게 하죠.”

“저도 찬성이요.”

그렇게 우리 셋은 흩어졌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바닥에 주저앉아 인벤토리에서 음료수를 꺼내 홀짝였다. 의욕이 전혀 나지 않았다.

‘어차피 악령의 본체는 4층에 있어. 칼레스나 남궁화연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그렇게 농땡이를 피우고 있을 때였다.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무슨 곡인지는 바로 알아차렸다. 워낙 유명한 곡이었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곡이었으니까.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라는 곡이었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나를 부르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물을 지나쳐 피아노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피아노가 제 혼자 연주하고 있었다. 나는 심드렁하게 피아노를 쳐다봤다.

‘정령안. 천안.’

두 개의 눈을 동시에 발동했다. 내 눈은 황금색으로 빛나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악령을 포착했다.

소복에 긴 검은색 머리를 가진 귀신이었다. 딱 봐도 처녀 귀신이다. 갑자기 흥미가 샘솟았다. 나는 귀신에게 더 집중했다.

‘오.’

얼굴이 제법 괜찮았다. 창백하다는 걸 제외하면 어지간한 여자들보다 낫다. 나는 피아노를 향해 다가갔다.

“키힛. 키키키히히힛.”

처녀 귀신이 기괴하게 웃는다. 내게 공포를 주려는 의도인 게 확실했다. 그러나 나는 도리어 흥분했다. 목소리도 썩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이, 처녀 보지. 내가 널 성불시켜 주지.”

처녀 보지가 연주를 멈추고 획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정면으로 보니 더 괜찮아 보였다. 가슴은 B컵…. 너무 작지도 않고 딱 적당했다.

나는 바지를 벗었다. 딱딱하게 발기한 자지가 존재감을 내뿜는다.

“키에에에에엣!”

화들짝 놀라며 기겁한 처녀 보지가 손톱을 휘둘렀다. 검은색 손톱이 확 늘어지더니 내 목을 노린다. 나는 고개를 까딱여 가볍게 피했다. 처녀 보지가 주춤거렸다.

‘처녀 보지… 아니, 처녀 귀신의 처녀 보지 맛은 어떨까. 기대되는군.’

나는 처녀 보지의 긴 치마를 들어 올렸다. 하얀 버선을 신은 발과 창백한 피부의 종아리와 허벅지.

“허벅지 괜찮은데?”

시선을 더 위로 올렸다. 팬티… 가 아니라 하얀 속곳이 있었다.

“가끔 보면 전통적인 게 야한 것보다 더 꼴린단 말이지.”

처녀 보지를 밀쳤다. 처녀 보지가 바닥에 넘어졌다. 나는 그녀 위에 올라탔다. 버둥거리는 팔을 한 손으로 제압하고, 다른 한 손으로 처녀 보지의 옷을 찢으려고 했다.

“이, 이, 미친 놈…!”

“뭐야. 제대로 된 말도 할 줄 알잖아. 더 꼴리네.”

부우욱! 찌이이익!

저고리를 뜯어냈다. 모양 좋은 젖가슴이 나왔다. 창백한 피부와 대조적으로 젖꼭지는 선홍색이었다.

꼴깍꼴깍. 군침을 삼켰다. 젖꼭지가 아주 탐스럽다.

“저리 꺼져! 이 미친놈아!”

옆에 있던 피아노가 움직이더니 내 몸을 쳤다. 방심하고 있던 나는 대응도 하지 못하고 벽에 처박혔다.

“으, 젠장 처녀 보지… 따먹어야 하는데….”

깜짝 놀랐다. 처녀 보지의 몸이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도망치려 한다. 나는 빠르게 달려가 처녀 보지의 다리를 잡으려고 했다. 손은 아슬아슬하게 처녀 보지의 발을 놓쳤다.

“씨발!”

그리고 뒤에서 날아온 피아노가 내 등을 짓눌렀다. 콰직! 낡은 나무 바닥이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졌다. 나는 아래로 추락했다. 다행히 피아노는 바닥에 걸렸는지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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