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8화 〉 948. 아카데미의 구원자
“수업의 방향을 바꿔야겠어.”
칼레스가 말했다. 오늘의 그녀는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었다. 블라우스의 앞부분은 열려 있어 풍선처럼 탄력적인 유방과 와인색 브래지어가 엿보였다. 치마는 더 가관이었다. 약간의 바람만 불어도 은밀한 곳이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다.
‘노골적으로 날 유혹하고 있군.’
『칼레스의 호감도: 66』
호감도를 확실했다. 참고로 나는 호감도를 올리기 위해 딱히 뭔가를 한 적 없었다. 그저 몇 번 마주치고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호감도가 올랐다.
‘원작 게임에선 호감도 70이 결혼이 가능한 수준이지. 66이면 이미 결혼을 생각해도 괜찮은 수준이야.’
호감도 66. 섹스는 가능한가?
가능했다.
호감도 시스템이 있다고 해도 일률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사람마다 다르다. 호감도 66이여도 철벽을 칠 수 있고, 호감도 30이어도 섹스를 허락하는 여자도 있다. 혼전 순결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어제는 이론 수업을 했잖아요. 이론 수업은 안 하고요?”
“이론 수업에서 내가 네게 가르칠 게 있었니?”
“…없었죠.”
그녀가 가르쳐주는 이론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어렸을 적에 진령성가에서 지긋지긋하게 배웠던 내용이었다. 아무리 내 머리가 나빠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알려주는 정령에 대한 이론을 완전히 잊어먹을 정도는 아니다.
‘기억하는 거랑은 이해하는 거는 다르지만.’
그걸 알고 있기에 전대 가주인 성명생은 일단 주입식으로 내 머리에 지식만 쑤셔 넣었다. 언젠간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였다.
나는 그 의견에 회의적이었다.
‘다른 세계에 가면 쓸모 없어지는 소설 속 설정에 불과해지니까.’
그렇기에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 이제부터 뭘 할건데요? 정령술도 안 하고, 이론도 안 하면… 할게 없는데.”
“네 재능을 갈고닦아야지.”
“제 재능이요?”
“정령친화력.”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술에 재능이 전혀 없고, 이론에도 관심 없는 나를 진령성가가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타고난 특성인 정령안(S)과 높은 정령 친화력 때문이다.
‘정령친화력이 있어야 정령과 계약할 수 있고, 정령친화력이 높을수록 강한 정령과 많이 계약할 수 있으니까.’
정령술은 결국 정령의 힘을 효율적으로 이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령술이 없더라도 강력한 정령을 부리는 쪽이 더 낫다. 라는 게 어렸을 적 나를 가르친 성명생의 말이었다.
“기대되네요. 뭘 하면 될까요?”
“정령친화력을 높이는 방법은 많아. 그중에서도 가장 간단한 방법은 자연과 함께하는 거지.”
칼레스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나는 어쩐지 불안해졌다.
???
“허억! 추워! 추워요, 칼레스 선생님!”
나는 정령과 건물 근처에 있는 냇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냇가 주제에 발이 닿지 않을 정도로 깊었고, 그 주위에 살얼음이 동동 떠 있었다. 칼레스가 정령술을 이용해 물의 온도를 확 낮춰버린 것이다.
“괜찮아. 넌 그 정도로 죽지 않아. 지금도 얼굴에는 혈색이 잘 돌고 있어.”
뭍에 의자를 피고 앉아있는 칼레스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얄미워서 한 대 치고 싶었다. 미녀만 아니었으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 이제 나가도 되죠?”
“안 돼. 이제 겨우 3분밖에 안 지났잖니. 좀 더 자연을 느껴보렴.”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성명생도 정령친화력을 키워주겠다고 날 폭포수에 처박았다.
‘그때는 대부분 자동 진행을 했지만….’
의자에 요염하게 앉아 있는 칼레스가 보인다. 덥다는 이유로 블라우스 상의를 펄럭이고 있었다. 와인색 브래지어가 훤히 보인다. 거기에 꼰 다리 사이로 와인색 팬티가 보였다. 지금 자동 진행을 할 순 없었다.
“으음. 역시 넌 대단해.”
칼레스가 콧소리를 냈다. 날 보는 눈빛이 보다 뜨거워졌다.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내 주위로 물의 정령과 얼음 정령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는 결계가 설치되어 있어서 기본적으로 정령을 보기 힘들어. 결계의 영향을 적게 받는 곳이 여기 정령과 터지지. 그래도 결계의 영향을 무시하지 못하니 정령들은 쉽게 모여들지 않아. 그런데도 정령들은 네 주위로 모여들었어. 네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니?”
“어푸! 선생님이 정령을 부르는 술식을 썼잖아요!”
“그건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거야. 정령들이 이끌린 건 너야. 아마 나였다면 10분이 지나도 1마리도 나타나지 않았을걸?”
“어푸, 어푸! 선생님 추워요! 힘들어요! 이제 나가도 됩니까?!”
나는 물속에서 버둥거렸다.
내 주위로 모인 물의 정령과 얼음의 정령들이 꺄르르 웃는다.
-이 인간 재밌어! 좋은 냄새도 나!
-지금 노는 거야? 같이 놀까?
-내가 더 시원하게 해줄게!
물살이 거세지고 더 차가워졌다. 정령 새끼들이 날 엿먹이고 있었다. 성질 같아선 당장 제압한 뒤에 저 자갈밭에 대가리부터 박으라고 소리치고 싶다. 칼레스가 없었다면 그렇게 했으리라.
“칼레스 선생님…!”
애타케 칼레스를 불렀다. 효과는 있었다.
“…정말이지. 그렇게 힘드니?”
“네. 힘들어요!”
“알았어. 밖으로 나오렴. 최소 1시간은 있어야 정령친화력이 조금이라도 늘 텐데….”
칼레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밖으로 나갔다. 사실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물의 축복]을 가진 나다. 물에 좀 들어가 있다고 해서 지칠 리가 없다. 물의 차가움? 차갑긴 했으나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카, 칼레스 선생님.”
“자, 여기 닦아줄게.”
칼레스가 부드러운 수건으로 내 몸을 닦았다. 그녀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몸이 떨렸다.
-더 놀자!
-이제 시작이잖아!
-같이 놀자!!
정령들이 또 지랄이었다.
“유진이는 인기가 좋구나?”
“정령들인데요. 뭘.”
수건을 쥔 칼레스의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단련된 복근을 훑고, 배꼽 아래로 향한다.
“서, 선생님….”
“선생님에게 맡겨두렴.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아.”
수건은 음부에 닿을까 말까 하다가,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았다. 솜씨가 엄청났다. 내 자지는 그녀의 손길에 흥분하여 점점 힘이 들어갔다.
숨기지 않았다. 칼레스는 이미 내 자지를 봤다. 그러니 도리어 과시했다. 칼레스는 내 발기 자지를 보고도 못 본 척 했다. 수건은 내 발끝까지 전부 닦았다.
“자, 끝. 선생님은 여분의 수건을 가지고 올게. 기다리고 있으렴.”
“…여분의 수건이요?”
“이대로 수업을 끝낼 수는 없잖니. 5분 정도 쉬다가 다시 하자.”
“아… 네.”
칼레스가 정령과 건물로 들어갔다.
물과 얼음의 정령들은 여전히 내 곁으로 엉겨 붙었다.
-계속 놀자! 물놀이하자!
-얼음 좋아해?
-얼죽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
나는 인상을 팍 썼다. 정령안을 발동하고 내 가슴에 들러붙는 물의 하급 정령, 운디네를 잡았다. 겉보기에는 요정처럼 생겼다. 운디네는 뭔가 재밌는 일이 있지 않을까 기대감으로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봤다.
-우리 뭐 하고 놀까?
“닥쳐, 족팡매야.”
운디네를 바닥에 내던졌다. 자갈밭에 박힌 운디네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애초에 영체. 고통을 느낄 리가 없었다. 허나, 내가 마나를 사용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발에 마나를 가득 담아 운디네를 잘근잘근 밟았다.
-꺄아아아아악!
운디네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퍼졌다. 주위 다른 정령들이 당황한다.
-왜, 왜그래?!
-우린 친구잖아! 친구끼리 이러는 거 아니야!
-폭력 멈춰~!
“십새끼들이. 가만히 있어 주니까 맞먹으려고 드네. 모카.”
“꾸욱.”
소환된 모카는 상황을 바로 읽어내고는 두 눈을 부라렸다. 상급 정령의 경지를 목전에 둔 모카의 살벌한 기운에 하급 정령들이 바들바들 떨었다.
“상황 파악했지? 대가리 안 박고 뭐하냐.”
-우, 우린 너랑 계약하지 않았어!
-네 말을 들을 필요는 없어!
하급 정령들이 눈동자를 굴렸다. 정령들은 모카가 틈을 보이는 순간 바로 도망칠 것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손바닥에 정령옥을 소환했다.
바들바들 떨던 하급 정령들의 시선이 내 손바닥 위에 못 박혔다. 본능적으로 정령옥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꿀꺽꿀꺽. 침넘기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나랑 계약하면 이걸 줄 수도 있어.”
-하, 할게!
-나도!
-저거 뭐야? 엄청 갖고 싶어! 계약하면 주는 거지? 할래!
하급 정령들의 계약의 의지를 표했다. 계약은 그대로 성립되었다. 하급 정령들과 나는 계약으로 이어졌다.
이걸로 하급 정령들은 내게 묶였다. 멍청한 것들이었다. 정령옥에 정신이 팔려 계약 조건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했다.
“전부 대가리 박아!”
퍽!
하급 정령들이 내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고 일제히 대가리를 박았다.
-어, 어? 내가 왜 이래?
-거부할 수 없어!
-그거 준다고 했잖아! 왜 안 주는 거야?!
“줄 수도 있다고 했지, 준다고 한 적은 없어. 모카.”
“꾸욱.”
하급 정령들을 보는 모카의 눈이 아련해졌다. 옛날 생각이 났다. 따지고 보면 모카도 정령옥 때문에 나와 계약하게 됐으니까.
“이 새끼들 교육 좀 잘 시켜. 알았지?”
“꾸욱.”
모카가 맡겨만 달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모카를 믿었다. 모카는 이미 지금 같은 경험을 몇 번이나 해왔다.
“꾸욱. 꾸욱, 꾹!”
모카가 외쳤다. 하급 정령들이 벌떡 일어났다. 하급 정령들은 모두 울상이었다.
-히잉. 하, 한 번만 봐주면 안 돼?
-무서워…. 관등성명이 뭐야?
-저거 먹고 싶어….
“꾹!”
모카가 위협적으로 날개를 퍼덕였다. 효과는 뛰어났다. 하급 정령들은 냅다 대가리를 바닥에 박았다. 모카는 하급 정령들을 굴리기 시작했다.
대충 2분이 지나자 하급 정령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이병! 운디네!
-이병! 글라이스!
-이병! 운디네2!
숙련된 조교의 힘은 엄청났다.
“모카. 곧 선생님 오신다. 저 밥벌레들은 숲으로 데려가서 굴려.”
“꾹.”
고개를 끄덕인 모카가 하급 정령들을 데리고 숲으로 날아갔다. 하급 정령들은 울상이었지만, 계약으로 인해 묶여서 도망갈 방법이 없었다.
칼레스가 다가왔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봤다. 정령들을 찾는 것이다.
“정령이 안 보이네?”
“사라졌어요.”
“전부?”
“네. 전부요.”
“그럴 리가 없는데….”
칼레스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곧 다시 엄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자, 유진아. 수업은 계속해야지. 냇물에 들어가.”
“꼭 이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정령친화력을 올릴 수 있잖아요.”
“물론 네 말대로 다른 방법도 있어. 불에 타거나, 땅에 박히거나, 숲에서 하루종일 생활하거나.”
“…차라리 이게 더 낫네요.”
“네가 생각하기에도 그렇지?”
나는 다시 냇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진중한 태도를 고수했다. 칼레스의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대충 10분 정도 지나자 하급 정령이 내 곁으로 모여들었다. 이병이 된 하급 정령이 아니라, 민간 하급 정령이었다.
-뭐해?
-노는 거야?
-자! 얼음이야! 시원하지?!
하급 정령들이 내게 장난을 쳤다.
‘망할. 요즘 하급 정령 새끼들은 버릇이 없어도 너무 없어.’
나는 참으면서 칼레스가 자리를 비우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오늘 22마리의 정령 노예를 얻었다.
???
나는 이른 아침부터 칼레스와 함께 기차를 탔다. 기차의 목적지는 함경북도에 있는 산이다.
‘함경북도라….’
원래는 북한의 북동쪽에 있는 지역이다.
[아카데미의 구원자] 세계는 현실과 다르다. 북한이 처음부터 없었다. 당연히 6.25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기차를 타고 중국이나 러시아로 떠날 수 있었다. 멀지만 유럽으로도 갈 수 있다.
쿵.
내 어깨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칼레스의 머리였다. 칼레스는 쿨쿨 잠든 상태였다.
‘오우….’
그녀의 옷깃이 열려 있었다. 탄력적인 가슴은 위에서 보니 더 박력이 넘쳤다. 깊게 잠든 칼레스의 숨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조금만…. 조금만 만지면 모를 거야.’
오른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녀의 어깨를 살짝 잡았다. 그녀는 깨어나지 않았다. 손은 점점 내려가서 그녀의 가슴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탄력적인 가슴이었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흐으…?”
칼레스의 눈꺼풀이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여전히 비몽사몽 한 눈이었다.
“대현아….”
칼레스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